# 140
S5 : 34화
지구의 시간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10여년 전.
나름대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던 김칠성을 자신들의 세계로 소환한 대 마법사 멀린.
그 멀린이 살고 있던 판브르크 대륙에는 이러한 예언이 있었다.
“최후의 그날,
하늘에서 칠성(七聖)의 대왕이 내려오리라.
누구도 막지 못 할 힘으로, 그를 막아서는 모든 것은 한 줌 재가 되리라.
신이 아닌 것은 그의 수족이 될 것이며,
신들은 무릎을 꿇을 것 이다.
인간들은 지배자가 아닌 노예가 될 것 이며,
그를 부를 계약자와 함께
칠성의 대왕이 온 영토를 지배하리라.”
판브르크 대륙의 대 현자.
오스마크라프트가 죽어가며 유언처럼 남긴 마지막 예언이었다.
사실, 이 예언이 내려진 것은 비단 판브르크 대륙 뿐 만이 아니었다.
비슷한 예언이 내려진 것 은 총 일곱 개의 세계.
하나같이 언급하는 것은 일곱별의 왕 이었다.
하지만 이 정채가 모호한 일곱별의 대왕 이란 표현 덕 분에, 일곱 개의 세상에선 무수한 오해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 예언덕에 초토화 된 세계 중 하나는 바로 마계.
자기 스스로가 일곱별의 마왕임을 자처하는 이 들이 벌인 전쟁으로 인해 영토는 황폐화 되었고,
어마어마한 힘을 휘두를 수 있다는 마신을 둘러싼 쟁탈전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덕분에 마계의 세계는 문자 그대로 지옥이었다.
수 도 없는 마족이 무의미한 전쟁에 희생당하고 노예로 팔려 다녔다.
수많은 가짜 일곱별의 마왕들이 등장해 세상을 어지럽혔다.
그리고 지금, 그 누구보다도 진짜 일곱별의 마왕에 가까운 자.
핏빛 가죽의 카르샤크가 지구의 상공에 위풍당당한 두 날개를 펴고 떠 있었다.
지구라는 행성 자체가,
그의 등장에 반응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구름들은 붉게 물들었으며 잔잔했던 바다는 날카롭게 찰랑거렸다.
매서운 칼바람은 오로직 그의 주변에서만 잔잔했다.
지구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가 날카로운 낮은 음색의 쉭쉭대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옆에 선 역시 핏빛가죽 일족의 마족이 정황에 대해 보고를 했다.
“...어처구니 없게도, 그런 식으로 현재는 상당한 기술력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허!”
카르샤크로서는 통탄할 노릇 이었다.
자신들이 지구를 멸망시키기 위해 보냈던 고효율의 생체 마공학 병기. 키메라.
차원이동에 들어가는 부담을 줄이고,
현지의 생물에 스며들어 본체로 삼고, 마공학 병기로 만들어버리는 혁신적인 이차원 정복기술.
여러 차원을 정복하려던 카르샤크.
하지만 차원 정벌엔 고질적인 문제가 있었다.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차원을 이동하고 나면 이동한 대상이 가지고 있던 원래 마력만큼의 힘을 발현 할 수 가 없었다.
육체는 순식간에 이동되지만, 절반이 넘도록 뚝 떨어진 마력은 경우에 따라선 일 년 혹은 수년이 지나야 원래 수준으로 복구가 되었다.
물론 낮아진 마력으로 정벌을 이어가는 것 도 가능이야 하지만, 그래서야 소위 말하는 수지타산이 도무지 맞질 않았다.
전쟁은 코스트다. 이득을 봐야한다.
이 모든 단점을 극복한 것이 키메라 병기.
적을 헤칠 존재를 아예 그 차원에서 태어나게 만들어버리는 수법.
이 수법으로 인해 핏빛 가죽의 카르샤크는 마계의 신성한 보물인 마신의 심장을 손에 넣은 뒤로 여러 차원들을 정벌 해 올 수 있었다.
적들을 죽일 키메라, 그리고 마나의 성장을 자극하는 파장을 동시에 내뿜는 방주. 씨앗.
씨앗의 영향으로 마나가 키워진 고지능 생물들이, 키메라들로 인해 고전하며 죽고 나면 키메라 안에 희생자들의 마나가 흡수되어 쌓인다.
그리곤 최후엔 초대형 키메라인 수확선을 보내어 그 키메라들을 모두 죽여 흡수.
카르샤크는 수확선이 만들어주는 마나의 정수를 취하기만 하면 한 행성에서 쥐어 짜 낼 수 있는 마나 전체를 손쉽게 손에 얻을 수 있는 혁신적인 시스템.
지난 여섯 개의 차원 중 여섯 개의 행성이 이런 식으로 카르샤크의 마나로 환원되었다.
그런데 그런 자신들의 주력 병기를 막아내다 못해,
그 병기들의 시체를 분해해 그 기술력을 흡수하는 종족이라니?
게다가 이제는 키메라에 적용한 기술들을 훨씬 뛰어넘은 상태로 무장해 자신들의 앞길을 막았다.
더군다나 한 대 뿐인 소중한 생체병기인 수확선을 박살내어 놓았다.
“기가 막히는군!”
지구인이 펼친 던전 테크놀러지라는 저력은 카르샤크로서는 계산 외, 상식 밖의 반격이었던 것 이다.
방주 관리자의 목숨을 건 보고를 받았을 때도,
수확선의 붕괴를 알리는 알람을 받았을 때도,
이런 상황이 펼쳐져 있을 것 이라곤 생각도 못 했다.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 였다.
키에에엑-!
지금도 카르샤크와 함께 지구로 날아온 키메라 공학자들은 실시간으로 초대형 키메라들을 소환해 여러 방향으로 뿌려대고 있었다.
한 마리 한 마리가 바다를 마시고 화산을 내뿜을 수 있는 멸망급의 혼종이었다.
카르샤크 본인이 온 이상 더 이상 지구에 희망은 없었다.
그리고 그 때 였다.
콰아아앙!!!
거대한, 바다를 들이마시는 키메라.
마치 겉보기엔 메기 같은, 허공을 천천히 유영하는 어류형의 키메라의 두 눈이 뒤집어졌다.
동시에 키메라의 복부에서부터 뚫고 나온 물체가 자기보다 수 백 배 큰 키메라의 몸체에 커다란 구멍을 내 부수어 버리며 등 뒤 쪽으로 튀어나왔다.
“저, 저게 무슨...!”
카르샤크의 비서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카르샤크 본인 역시 멍하니 입을 벌릴 지경이었다.
카르샤크의 본대 키메라 술사들이 소환해 낸 멸망급 혼종을 단 일격에 잠재워 버리며 등장한 존재.
카르샤크 입장에선 의문의 마공학 병기였다.
바로 김칠성이 타고 있는 기간트, 어둠의 거인!
그런 칠성의 등장과 동시에.
칠성의 뒤로 UHD 의 모선을 비롯한 수 백 여대의 공중전함.
그리고 수 천 대의 전투기들이 칠성의 뒤를 따랐다.
“네놈 새끼들이 저거 만들었냐?!”
버럭!
마력으로 강화된 칠성의 노호성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조각 조각 분해되어 바다 위로 떨어져 내리고 있는 멸망급 혼종을 가리키며 묻는 칠성.
벙 쪄 있는 마족들 중엔 커다란 수정구를 여럿이서 받쳐 들곤 주문을 읊다가. 칠성의 등장에 깜짝 놀라 캐스팅을 멈춘 키메라 술사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네 놈들 이구나?”
내가 저런 거 좀 만들지 말라고 했을 텐데.
하여간 새끼들, 말 더럽게 안 들어요.
마족들의 입장에선 심하게 억울할 생각을 하며 사랑의 매를 시전 하는 김칠성.
퍽, 퍼억!
“끄악!”
무답무용.
어마무시하게 묵직한 사랑의 매.
무자비한 어둠의 거인의 펀치에 수정구는 깨어지고, 얻어맞은 키메라 술사들은 의식을 잃고 바다에 처박혔다.
인간군과 마계의 군대가 뒤엉켰다.
절대적인 것 은 없었다.
멸망급 혼종의 거대한 키메라도 인간군의 폭격에 나가떨어졌다.
간간히 빗발치는 마족의 마법에 인간군의 전투기들이 재로 변해버리기도 했다.
혼란스러운 전쟁터 속.
단 두 사람만이 고요히 멈추어 선 채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카르샤크를 노려보는 김칠성.
김칠성을 노려보는 카르샤크!
“저게 인간이란 말 인가?”
카르샤크는 알 수 없는 마력을 품은 칠성을 이리저리 뜯어보고 있었다.
칠성 역시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자신이 상대해야 할 것 은 다른 잔챙이 들이 아닌 저 핏빛가죽의 마족임을!
서로눈빛이 번뜩이는 순간.
누가 먼저랄 것 도 없이 서로에게 덤벼들기 시작했다!
쐐애애애액!!
“덤벼!!”
콰까앙!!!
칠성이 펼친 여러 가지 속성의 고위마법.
불타는 화염, 공기마저 얼려버릴 냉기의 격류.
신성한 빛의 참격과
어둠의 용트림이 카르샤크에게 명중했다.
단 하나만 명중해도 천하의 대 마법사도 무릎을 꿇을 어마어마한 마력의 폭풍우!
피슝!
그 마법의 폭격들을 뚫고 카르샤크가 매끈한 날개를 번뜩이며 날아들었다.
“죽어라 인간!”
“흐아아앗!”
거대한 몸체의 어둠의 거인.
그리고 키 180cm의, 어둠의 거인에 비하면 왜소한 몸집의 카르샤크의 주먹이 맞부딪혔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누가 봐도 벌레 같은 크기의 카르샤크가 짓이겨져 버릴 것 같은 충돌!
꾸드드드드드득!!
하지만, 벌어진 상황은 정 반대의 것 이었다.
“뭐야?”
칠성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카르샤크가 내지른 펀치.
그 주먹이 어둠의 거인의 주먹 장갑을 종잇장처럼 구겨버렸다.
펑!
폭음과 함께 터져나가는 어둠의 거인의 주먹 부위!
그리고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펑, 펑, 퍼퍼퍼퍼퍼퍼퍼펑!!!
팔목, 팔뚝, 어깨!
어둠의 거인의 상반신을 날려버리며 펀치를 꽂은 카르샤크가 어둠의 거인을 관통해왔다.
퍼각!
마침내 어둠의 거인의 조종실을 부수고 들어온 카르샤크의 펀치가 김칠성의 몸통에 꽂혔다.
“젠장.”
힘겹게 욕지기를 뱉은 칠성이 입에서 피를 흩뿌렸다.
칠성의 두 눈이 뒤집어졌다.
파아아아아앙!!!
상식을 초월한 펀치의 여풍이 칠성의 몸체를 관통하고 어둠의 거인을 산산이 찢어 놓았다.
칠성의 몸을 감싸고 있던 전신 갑옷 크로우 역시 펀치를 맞은 부위부터 산산조각으로 부수어져 흩어졌다.
조각조각 부서져 내리는 어둠의 거인.
뜯어져 나가는 조종실의 파편과 함께, 칠성의 몸이 허공에 흩날렸다.
“...흠, 이름을 물어볼 정도는 아니었군.”
냉소적인 미소를 던진 카르샤크가 칠성이 떨어져 내려가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날아올랐다.
카르샤크와 칠성의 전투가 치러지고 있던 상공보다 한참 밑.
“예상 낙하지점 시뮬레이션!”
콰슈우웅!
UHD의 전진기지이자 하늘을 나는 모선인 마더쉽 안에선 장영실 소장이 고군분투 중이었다.
날개 잃은 새처럼 추락하는 칠성을 구조하려는 것 이다.
“바람 역장 준비해!”
“예!”
조종실엔 장영실 소장을 비롯 마더쉽의 파일럿과 직원들이 힘을 합쳐 칠성을 구조하기 위해 전력을 다 하고 있었다.
떨어지는 칠성을 따라잡기 위해 UHD 의 마더쉽은 출력장치를 최대로 켠 체 스스로 허공에서 땅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목표물과의 조인 3초...2초..1초!!”
선장의 외침.
초조하게 기도하는 심정으로 달린 UHD 의 요원들.
부웅!
땅으로 날아들던 UHD의 모선이 순식간에 균형을 회복하며 수평으로 허공에 선다.
그와 동시에 에어백 형태로 보존되는 바람의 폭풍을 쏘아 올리는 모선 갑판의 빛나는 마법진.
그 위로 칠성의 몸이 안착한다.
“끅.”
충격 때문인지, 안심이 되어서 인지 칠성이 의식을 잃는다.
“구조 성공했습니다!!”
“좋아!”
하지만 기뻐하기엔 일렀다.
칠성을 구조해낸 UHD 의 모선.
그 앞으로 거대한 입을 쩌억 벌리며 다가오는 키메라.
하늘을 나는 장어 같이 생긴 멸망급의 혼종이 입을 벌리고 덤벼들고 있었다!
“제기랄! 긴급탈출!”
“긴급탈출!”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기-기-기잉-.
순식간에 모선의 절차가 마무리되고 마력의 엔진이 빛을 낸다.
푸른빛의 무리가 UHD 모선을 감싸 안는다.
“3대허가 완료! 좌표설정 완료! 실행만 남았습니다!”
“간다!”
보고를 들은 장영실 소장이 조종간의 스틱을 주욱 올린다.
“텔레포트!”
번쩍!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빛을 내 뿜으며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UHD의 항공모선.
쩌억!
허공을 가로지른 멸망급 혼종의 입만 허전한 입맛을 다실 뿐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