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
S5 : 33화
인류의 멸망을 예언한 마족 도어 관리자.
그가 예고했던 모든 인류를 ‘수확’ 하기 위해 차원을 넘어온 최악의 병기이자 최고의 키메라.
‘수확선’ 의 몸체가 서서히 스러지고 있었다.
키에에에엑!!
너울너울 불에 탄 몸체는 본래의 형태를 잃고 조각조각 나뉘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몸체의 중심에서 돌연 생겨난 불기둥은 그 알 수 없는 기묘한 생물체를 잔인하리만치 찢어놓았다.
기적과도 같은 우연과 필연의 연속이 만들어 낸 인류 최후의 공격이었다.
반전은 없었다.
발끝을 세워 걷는 불가사리 같은 기묘한 회백색의 거대한 덩어리의 수확선의 몸뚱이는 그대로 몇몇 오스트레일리아의 도시들을 짓뭉개며 지면에 안착했다.
“휴우.”
칠성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승리.
승리.
승리의 순간 이었다!
[와아아아아!!]
칠성의 어둠의 거인과 연결되어있던 UHD 통신채널 너머로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기쁨의 함성이었다.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피식. 웃음을 짓는 칠성.
“성공이야.”
[그래? 축하한다.]
이 반응은 뭐지?
지구상에 숨 쉬고 있는 누구라도 기뻐해도 좋은 순간이었다.
칠성은 이번 공격의 일등 공신 중 한명이라고 할 수 있는 김규형에게 통신을 돌렸다.
인간으로선 감당하기 힘든 규모의 마나를 운용해내고, 위대한 정신력으로 모든 것을 컨트롤해 낸 김칠성.
그리고 거대한 스케일의 신급 마법을 실행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마석을 모아낸 UHD 와 세계 각국의 헌터들.
하지만, 애시 당초 이 불기둥 마법을 염두에 두고 기간트의 아티펙트화를 설계한 연금술사 김규형.
그가 없었다면 이 또 한 불가능한 작전이었다.
그래서 칠성은 굳이 누구보다 이 작전의 성공을 기뻐할 김규형 에게 먼저 통신을 돌려 성공한 사실을 알린 것 인데, 어쩐지 반응이 신통찮다.
“무슨 남 일처럼 그러냐. 이럴 땐 좀 더 좋아해도 되잖아.”
[하하하. 그래, 뭐. 나도 기분 좋아.]
좀체 들을 수 없던 김규형의 웃음소리.
칠성은 슬쩍 미소를 띄우며 어깨를 으쓱 했다.
이러다 정들겠구만.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숙적으로 처음 만났지만,
이번 전장을 헤쳐 나오며 어쩐지 모든 것을 뛰어넘는 전우애가 생기려는 참 이었다.
어쨌든 겉보기엔 지극히 이성적이지만 결론적으론 세계를 자기 기준으로 정화하겠다는 사이코패스니 동료로 둔다던가 하는 것 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지만.
이번일이 끝나고 나서 한 잔 정도야 하자고 할 참 이었다.
“어라?”
김규형과 연결 되어있던 통신채널이 끊겨있음은 물론,
‘연결 불가’ 라는 메시지를 띄우고 있는 화면을 발견 한 칠성.
“뭐야, 새끼.”
무언가 찝찝했지만 지금은 김규형의 행방보단 더 큰일들이 많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화면을 노려보다 쯥~! 입맛을 다시며 UHD 의 항공모선, 즉 전진기지로 어둠의 거인을 조종해 날아가는 칠성.
* * *
비슷한 시각,
러시아의 한 도시에는 한 무리의 능력자들이 위험에 빠져 있었다.
“방심하지마!”
피-융!
활을 든 남자 궁수가 쏘아낸 화살이 여자 격투가의 뒤를 치려던 골렘의 수정구를 꿰뚫었다.
자신의 눈 역할을 하는 수정구에 쩌억 쩌억 금이 가자 허둥대는 인간형 골렘.
그 골렘의 목을 거대한 검을 휘두른 검사가 베어내 버린다.
“헉.헉... 제기랄.”
“끝인가.”
이들은 김규형을 보좌하는 부하들이기도 한 삼천왕.
그들의 상황은 매우 심각하게 안 좋았다.
이 쪽 지역의 수호를 맡아 열심히 싸우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어딘가에서 날아오는 골렘들의 행렬은 끊이질 않았고,
간혹 이상할정도로 강한 골렘이 등장해 애를 먹었다.
이 지역의 헌터들은 전멸한지 오래.
오래도록 버틴 삼천왕도 이제는 온몸 곳곳이 부상 투성이였다.
그런 그들을 둘러싼 십 여척의 골렘들.
희망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운 상황.
으득.
그들이 이를 악물며 마지막 결전을 준비하는 그 때.
허공에서 나타나는 그림자.
쐐애앵!!
창공을 가르고 홀로 날아온 베이직 기간트 한 대.
그들에게 접근함과 동시에 열린 베이직 기간트의 조종석에서 튀어나오는 한 남자.
“*멈춰라*”
위이잉!
기간트 병기에서 뛰어내린 남자의 몸이 채 땅에 닿기도 전.
남자의 스펠에 따라 불타오르는 듯한 적색의 마나가 전장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마치 석상이 되기라도 한 양 모든 동작을 마치 사진처럼 멈춘 십여대의 골렘들.
“폐하!”
놀란 여자 격투가가 소리를 높여 남자를 불렀다.
등장한 남자의 정채는 김규형.
“뭣들 하고 있나? 저 녀석들부터 처리해!”
김규형은 골렘들의 움직임을 막느라 지끈 거리는 관자놀이를 매만지며 명령했다.
“예!!”
쾅!!
쩌저적!
명령을 받든 세 명의 활약으로 순식간에 골렘들이 정리되었다.
“핫!!”
이를 악문 발차기에 골렘의 머리통이 부수어 졌고, 시퍼런 검날이 목을 베었다.
차례차례 쓰러진 골렘들.
그제 서야 한 숨 돌리는 김규형.
“괜찮으십니까?”
숨을 쌕쌕 몰아쉬는 김규형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부하들.
“괜찮다.”
괜찮다고 했지만 김규형은 품안에서 예의 마약성분이 그득한 연초를 빼 물었다.
이제 고작 이정도도 버티지 못 하게 된 것인가.
하는 씁쓸한 생각을 하면서.
하지만 부하들이 걱정하고, 또 놀란 것 은 김규형의 몸 상태 때문만이 아니었다.
“왜... 왜 오셨습니까!”
격투가가 따지며 물었다.
그렇게 따지는 그녀의 눈가엔 눈물이 살짝 맺혀 있었다.
기껏해야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그녀 였기에 보는 사람의 마음을 못내 찡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묻지 마라.”
김규형이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리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대답이 웃겨서 피식 웃었다.
어느새 조금 닮았나.
이런 밑도 끝도 없는 대답은 늘 철두철미한 김규형 본연의 것 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시시 때때로 버럭 하는 김칠성의 그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면 지금 이 결정.
그러니까 사지에 가까운 전쟁터로 스스로 날아 들어온 것도 평소 그의 철학에는 위배되는 것 이었다.
사람을 늘 도구 취급하는 그로서는 말 이다.
애초 김규형은 이번 전쟁을 위해 10기의 아바타를 준비했다.
아바타는 사실 모든 연금술사들이 애호하는 수단은 아니었다.
두 자릿수의 아바타는 김규형 그가 절대로 자신의 안위만큼은 위험에 빠뜨리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 10대의 아바타도 모두 써 버렸다.
어떤 순간에도 자신의 안위만큼은 지킨다.
그리해서 다음의 기회를 기약하며 때를 기다린다.
이것이 김규형의 유일한 전략이자 철학이었다.
사람을 도구취급 한다는 건 속인들의 잘못된 인식이다.
김규형에게 자신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두는 이유는. 자신만큼은 대업을 위해 움직여야 할, 살아 있어야 할 사람이라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인식은 자신만이 이 세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사람이란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 이었다.
그런 그의 외골수 같은 철학이 김칠성을 만나면서 흔들렸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렇게 스스로를 사지로 내몰고 있는 지경에 이른 것 이다.
“내 어찌, 자네들을 버릴 수 있겠나.”
이전의 자신 같았으면 싸구려 감상이라고 비웃었을 대사를, 정말 진심으로 뱉으면서 말 이다.
“폐하!”
“폐하!!”
어린 여 격투가는 눈물을 훔치고.
일행 중 가장 무표정한 검사조차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릴 참 이었다.
하지만 인간을 죽이기 위한 살육병기인 골렘들은, 이들이 감상에 빠질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어느새, 백 여기에 가까운 골렘들이 김규형과 무리들을 둘러싸고, 날카로운 손톱을 빛내고 있었다.
김규형이 타고 온 기간트는 부수어진 지 오래였다.
어딘가에 도움을 요청할 수단조차 없었다.
김규형이 준비해 온 연금술의 비약들을 헤아려 보며 전투를 지시했다.
“명령이다. 전투에서 대승 후 모두 살아서 돌아간다!”
“예!!”
초조한 식은땀이 흐르는 김규형의 얼굴 위로 슬며시 작은 미소가 번졌다.
너무도 바보 같은 명령이었다.
바보 같은 상황이었다.
김규형 그 자신이 그토록 비웃던 바보 천치 무리.
이번에는 그 자신이 바로 그 바보 천치 무리 정 가운데에 끼어있는 격 이었다.
그런데,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뻤다.
무언가 큰 벽을 뛰어넘은 기분 이었다.
‘개운 하구만.’
이성을 기반으로,
효율과 계획을 추구하는 결정.
그런 것이 아닌, 오로지 마음 내키는 대로 질러버리는 것.
그것에는 묘한 쾌감이 있었다.
아마 김규형이 처음부터 이런 인물이었다면, 김칠성과 친구가 되는 것 도 불가능은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그렇게 되는 일 은 없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사태가 진정된 뒤 UHD 요원들이 폐허에서 이 일행을 발견했을 때는,
수 도 없는 골렘들의 잔해.
그 사이에 시체가 되어버린 동료들의 보호를 받으며 숨죽여 울고 있는 여 격투가 만이 유일한 생존자였기 때문이다.
* * *
UHD의 요원들과 각국의 군인들이 지구상에 남아있는 마계의 잔당을 정리하는 사이,
칠성은 UHD 의 전진기지에 있는 회복실에 누워있었다.
칠성은 내키지 않았지만 의사의 권고였다.
극심한 정신력과 체력의 소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회복실엔 기계장치들로 꾸준히 산소와 마나의 밀도가 높은 공기가 공급되고 있었다.
워낙에 편안한 공간 덕에 날이 섰던 신경도 슬슬 무뎌지고,
칠성의 눈이 자신도 모르게 감길 무렵이었다.
“대표님!”
장영실 소장이 헐레벌떡,
통신수단이 연결되어 있지 않은 회복실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칠성을 불러냈다.
“뭔데 그래”
“이건 보셔야 할 것 같아서요.”
장영실 소장을 따라가서 보게 된 건 차원의 문의 마나의 파장을 분석하고 있는 그래프 와 지표들 이었다.
“무슨 일이야?”
“그게... 문이 다시 열리고 있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칠성의 물음에 침을 꿀꺽 삼키는 장영실 소장.
“무언가가 넘어올 것 같습니다.”
과연, 장영실 소장의 말 대로였다.
잔잔히 잦아들었던 차원의 균열이 다시 조금씩 일렁거리며 몰아치기 시작하고 있었다.
쐐애애애액-!
그리고 연이어 시작된 차원의 폭풍.
그 속에서 튀어나온 것은 일련의 마족 무리였다.
커다란 뿔을 단 채 핏빛 날개를 편 마족.
붉은 피부의 압도적인 존재감의 그!
전신이 근육질인 그의 주변을 호위하기 위해 피부색이 색색으로 다른 각종 악마들이 새카맣게 몰려들어 있었다.
마치 마차처럼 끌고 나온 많은 몬스터들도 눈에 띄었다.
“어, 어떻게 해야 하죠?!”
허둥대는 장영실 소장.
“전군 경계. 공습에 대비한다!”
칠성은 그렇게 명령하곤 크로우를 불러내어 어둠의 거인 속으로 순간이동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서히 묵빛의 전신갑옷이 칠성의 몸을 감싼다.
꾸웅!!
그 순간이었다.
압도적인 존재감의 마족이 영창 한 주문에 마족들을 향해 미사일을 날리던 지상의 인간군이 순식간에 반파되었다.
“제기랄, 끝도 없구만!”
식은땀이 흘렀다.
방금 나타난 마족은 가벼운 캐스팅으로 고위 마법 중 하나인 ‘태양길’을 만들어 냈다.
더군다나 위력은 일반적인 태양길이 아닌, 상상을 초월 한 것 이었다.
칠성은 반사적으로 알 수 있었다.
‘마신이 직접 올 줄이야.’
어찌 된 일 인지야 모르겠으나, 마계에 권속 되어 있어야 할 마신이 제멋대로 남의 차원까지 들쑤시고 다니고 있었다.
그것도 계약 소환 한 사람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말 이다.
UHD 전진기지에 있던 칠성의 신형이 푸른빛 마나와 함께 사라졌다.
직후 칠성을 태운 어둠의 거인이 창공을 향해 지체 없이 솟아오른다.
“저 새끼도 운 더럽게 안 좋다.”
칠성이 쓰윽 입꼬리를 들어 올려 송곳니를 보였다.
“저 새끼도 설마 내가 여기 있을 줄은 몰랐겠지.”
이건 아마도 확실하다.
제 아무리 현 마신이라고 해도 지구에 도착한 자신을 김칠성이 가로막으리라곤 생각 못 했을 것 이다.
전대 마신을 패 죽인 사람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