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
S5 : 25화
오스트레일리아.
다른 말로는 호주.
호주 대륙의 동남쪽 부근, 움쑥 들어간 만에 펼쳐진 바닷가.
본 다이 비치.
이곳은 본디 시드니 근처의 바닷가로 현지인은 물론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유명 명소 중 한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일반인들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었다.
아니, 애초에 현 시각 호주 대륙 전체에 군 관계자와 세계 각국에서 모인 헌터들과 서포트 팀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남아있지 않았다.
마계에서 왔다가 호주의 헌터들에게 사로잡혔던,
방주의 관리자라고 자칭한 마족이 예언한 수확선의 등장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고지능, 마나가 생식하기 가장 조건을 갖추고 있는 생물체 중 하나인 인간.
이런 인간에게 마나의 씨앗을 심고, 도어와 몬스터로 마나를 키우도록 유도한 마계인들.
그들이 여태껏 키워온 인간들의 마나를 수확하기 위해 보내는 수확선.
하지만 마나란 것 은 다르게 말하면 생명 에너지와 일맥상통 한다.
그 수확의 형태는 필시 학살로 이어질 것 이 자명했다.
그리고 그 인류 역사에 있어 전무후무한 대학살의 광시곡을 막기 위해 모인 사람들.
전 세계 각국의 이름난 헌터들, UHD 가 연구개발한 아티펙트 장비로 무장한 헌터가 아닌 군인들.
그리고 역시 UHD가 개발한 장갑과 무기로 무장한 전투기들과 해상에 떠 있는 무장 함선들.
그 모든 것들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적을 포위하듯 본 다이 비치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관광객들을 반갑게 맞이하던 여관의 옥상엔 보기에도 살벌한 주포들이 설치되어 있었고,
부푼 마음으로 관광객들이 차를 달렸을 도로위엔 커다란 전차들이 자리 잡았다.
그들 사이사이, 그리고 해변가 근처는 각국의 헌터들이 타고 있는, 김규형이 개발한 양산형 기간트 병기 베이직 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예언된 시간은 점차 다가오고 있었고,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끌벅적 하기보다는 오히려 조용히 가라앉은 분위기.
말하자면 이것은 세계와 세계의 결전이었다.
이 전쟁의 승패에 달린 것은 인류의 역사.
지금 이 순간,
피부색과 언어. 민족과 국경을 넘은 인류 결전의 전사들이 숨을 가다듬고 있었다.
“.......”
스스슥-.
바람이 불었다.
본 다이 비치로부터 약 100 킬로미터 떨어진 UHD 전진기지.
평소라면 어떤 심각한 상황에서라도 여유를 부렸을 칠성이지만 지금은 UHD 전진기지 위에 떠 있는 어둠의 거인의 손바닥 위에서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서 조용히 눈을 감고 있을 뿐 이었다.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끝났다.
칠성의 몸을 감싸고 있는 묵빛의 전신갑옷 크로우, 그리고그리고 심지어 칠성 고유의 기간트 병기인 어둠의 거인조차 UHD 의 기술력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어둠의 거인과 크로우 양쪽 모두에 칠성의 마나를 강화 해주는 장치들이 속속들이 자리잡게 되었고,
이제 어둠의 거인은 칠성과 의식 일체화를 하지 않고도 마력 증폭 아티펙트의 기능을 수행 할 수 있었다.
즉 직접 어둠의 거인을 타지 않고도, 어둠의 거인이 근처에 소환만 되어 있다면 무조건 칠성의 마법을 강화시켜 주게 되었다.
도어 헌터로 도어들을 부수면서 만들어 낸 투명한 마석.
이 마석들로 칠성의 마나는 물론 칠성의 애검인 소울 콜렉터 역시 최대치로 충전되어 있었다.
베이직 기간트 병기들은 물론, UHD에서 개발한 특수 탄환을 장전해 둔 전차들은 한 대 한 대가 홀로 실체화 몬스터를 상대 할 만큼 강력했다.
모든 병장기들은 마법을 방어하는 마법 진을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물처럼 평화로운 칠성.
꼬르륵!
“썩을.”
칠성의 미간이 구겨진다.
그러고 보니 한 끼도 못 먹었다.
이론상으로는 마나가 낭낭히 충전되어 있으니 허기에 시달릴 일도 없는데,
위장이 비어있으니 속이 허하다.
그래, 오늘 저녁은 카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카레가 먹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갈비도, 그러고 보니 초밥도.
마계 이 새끼들은 온다던 시간이 지난 거 같은데 왜 코빼기도 안 보이지?
칠성이 벌떡 일어났다.
소울 콜렉터를 허공을 향해 치켜들고 외친다.
“쫄았냐 마계 새끼들아!!”
어쩐지, 칠성이 매우 사소한 이유로 지구를 명망 시키고자 하는 세력에게 시비를 걸 무렵이었다.
파직!
번득. 칠성의 눈이 크게 떠졌다.
마법을 익힌 자 라면 느낄 수밖에 없는 감각.
특히 김칠성이라면 더더욱 진하게 느끼는 그 감각!
마나에 대한 탐지력.
마법 대전이 빈번한 세계를 살아오면서 아주 작은 마나의 흐름이라도 놓치지 않도록 발달된 감각.
하지만 이번의 것 은 그렇게 예민함 감각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되었다.
쿵! 쿵!
귀로 들리는 소리가 아니다!
마치, 귓전을 울리는 듯한 마나의 파동.
격류!
저 멀리 본 다이 비치 위 상공,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아무런 전조도 없이 시작된 마나의 충돌.
순식간에 본다이 비치에 상주해있던 헌터들이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법을 배운 헌터들,
아니 비단 마법을 배우지 않아도 마찬가지 였다.
마나가 몸에 흐르는 주제에,
이정도 거대한 마나의 흐름을 느끼지 못 한 다는 건 눈 뜬 장님과 다름이 없었으니까!
꿈틀!
마침내 거대한 움직임이 마나적 감각이 아닌 육안을 통해서 나타났다.
분명히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 마치 공간을 붙잡아 뒤트는 것 마냥 일렁거린 것 이다.
핑!
그리고 허공에 갑작스레 뚫고나온 강철의 뾰족한 무언가.
허공에 나타난 칼날 같은 것이 주변의 공간을 만화경처럼 왜곡 시키며 하늘이란 수면에 솟아오른 것처럼 불쑥 등장했다.
치지지지직-!
그리고 이어지는 엄청난 소음.
이번에는 마나의 탐지로 느껴지는 흐름이 아니었다.
진정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고막을 찢어버릴 듯한 어마어마한 소음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그 소음에 발맞추어 고개를 빼꼼 내밀었던 쇳조각은 점차 그 몸체를 불리며 이리저리 자신의 모습을 퍼즐처럼 맞춰나가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꼬깃꼬깃 구겨 찢어버린 종이조각을 하나하나 맞추어 다시 펼쳐 제 모습으로 맞추어가는 과정과 비슷해 보였다.
그렇게 완성된 것.
모습은 이제는 익숙하다 싶은 모양의 철문이었다.
보통의 문이 아니었다.
인류가 여태까지 세운 초고층 빌딩들 몇 개를 합쳐 놓아도 그 크기를 이길 수 없을 듯한 높이.
넓이는 인간이 가진 군대의 몇 개 사단이 지나가도 널널할 정도로 커다랗다.
아니 그 문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도시를 덮을 수 있을 지경이었다.
저 높이 뻗어 올라간 문은 어디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인지 보이지도 않았다.
활활 타오르는 듯한 불온한 검은빛 마나.
그 마나로 점철된 검은 빛의 문의 양쪽 문짝엔 신화속 존재들이 양각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아후라 마즈다와 태양신 라... 인간들의 각종 신화속 존재들.
그리고 문 양편의 기둥에 자리 잡은 나팔을 든 천사.
그리고 그 모든 장식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눈을 굴리고 숨을 쉬었다.
당장이라도 무엇이라도 말이라도 할 것 만 같았다.
아마도 마족의 관리자가 예언한 차원의 문.
그것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너무나도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내뿜고 있었다.
도대체 저런 크기의 문을 넘어 올 존재는 무엇이란 말 인가?
결연한 의지의 인간 병사들을 일순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그 누구도 무었을 해야 할지,
혹은 어떠한 명령을 내려야 할지 알지 못 했다.
한 사람만 빼고.
“전군!!”
칠성의 목소리가 모든 지휘 체계에 전달되었다.
어느새 어둠의 거인에 탑승 해 있는 칠성.
“공격하라!!!”
칠성의 명령과 동시에 정신을 차린 인간군.
하늘에 돌연 나타난 거대한 검은 문을 향한 공격을 개시했다.
발사된 미사일들이 마나의 폭풍을 일으키며 문을 마구잡이로 두들겼다.
“*유성 강타*!”
동시에 칠성의 마법역시 적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쿠우웅!!!
대기권을 뚫고 불꽃의 꼬리를 달고 들어온 유성이 문을 부숴버릴 기세로 작렬했다.
칠성이 날려 보낸 커다란 유성이 기둥에 매달려있는 천사의 머리통을 깨부쉈고 천사는 비명을 지르며 산산히 분해되어 물보라를 일으키며 바다로 추락해 가라앉았다.
쿠등, 쿠등, 쿠드드등-!
하지만 거대한 문은 쩍쩍 금이 가고, 부숴진 장식들의 잔재를 떨궈 내면서도 아주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그 무수한 폭격에도 떨리는 양쪽 문짝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아가리를 벌린 것은 검붉은 마나의 폭풍우.
“캬아아악!!”
마나의 폭풍우를 타고 문을 뚫고나온 것은 거대한 와이번 이었다.
드래곤과 비슷한 생김새.
하지만 보다 조류 혹은 익룡에 가까운 모습.
드래곤이라면 있었을 양 팔이 없고, 커다란 날개와 비교적 얇은 몸.
‘수확선은 아닌 것 같은데.’
쯧.
칠성이 혀를 찼다.
언 듯 마나의 구성을 보니 마계의 예언자가 인류 전멸을 예고 한 수확선이라기엔 너무 허접한 모습.
아니나 다를까 선두의 녀석을 비롯해 연이어 세 놈이 모습을 드러낸다.
예상은 했던 바다.
아마도 수확선을 호위하는 전력.
예부터 주요 전력을 보호하기 위한 호위 전력은 모든 편성의 기본이었다.
거대한 항공모함이 아무것도 없이 떨렁 본채만 다니는 일은 있을 리 가 없는 것 이다.
그리고 마계라고 그런 게 없을 리 없었다.
하지만 호위전력 이라고 해도 일반 몬스터.
그러니까 실체화 몬스터를 기준으로 해도 너무나도 거대했다.
피슝!
어느새 텔레포트로 선두의 녀석의 코앞에 등장한 칠성.
그 칠성이 타고 있는 어둠의 거인의 모습이 마치 거대한 배를 홀로 막아선 인간처럼 작게 보일 지경이었다.
고작 어둠의 거인과 엇비슷한 크기의 몬스터에도 수 백 명씩의 인명 피해를 입었던 것 이 과거의 인간이다.
어마무시한 크기가 주는 공포감은 필연적으로 자신보다 덩치가 큰 상대를 피하는, DNA 본능 속의 무언가를 자극했다.
하지만,
“허접하단 말이야.”
퍼엉!!
“키륵!!”
어둠의 거인이 휘두른 펀치에 와이번의 미간이 터져나갔다.
마나를 그득그득 실은 어둠의 거인의 펀치가 빌딩 몇 개를 덮을 상처를 와이번의 머리통에 새긴다.
호위 전력은, 호위 전력일 뿐.
제 아무리 거대한 몬스터라 해도.
덩치만 커다란 녀석은 칠성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아니, 칠성은 물론이고.
퍼퍼펑!
지상에서, 그리고 해상에서 쏘아올린 미사일들.
그리고 전투기의 탄환들이 세 마리의 와이번을 유린한다.
칠성은커녕, 발달한 인간들의 상대조차 되지 못 한다.
마계의 녀석들이 준비 해 온 게 고작 이정도 수준이라면, 인류 멸망을 운운하며 입에 올린 게 망신이 되리라.
더욱더 쏟아져 나오는 와이번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가고일들.
수 도 없는 몬스터들이 밀려 나온다.
와이번이 내뿜은 불꽃이 해변가의 인간 군대에 닿기 직전.
피링!
군인들이 가진 장비가 펼쳐낸 마법 결계에 막히어 산화된다.
반대로 인간들의 화기가 불을 뿜을 때 마다 거대한 몬스터들이 추락하고 침몰한다.
긴장했던 것 과 달리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마계의 전력을 알 수 없기에,
인류가 가진 모든 재량을 끌어다 투입 한 것이 효과가 있는 듯 했다.
“아유, 빨리 끝내고.”
칠성 역시, 한 번의 주먹, 한 번의 마법을 내 지를 때 마다 몬스터들을 흔적도 없이 산화시켜 버리고 있었다.
“밥이나 먹자고.”
여유 역시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