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무집행 흑마법사-130화 (130/145)

# 130

S5 : 24화

“아~ 이게 우리만 좋자고 하는 게 아니여 사장님.”

눈가에 상처가 난 불량배가 지우혁을 다그치며 그르렁 댔다.

지우혁은 남몰래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디 조직이나, 어둠의 세력에서 보낸 암살자가 아니라 뻔한 동네 깡패라니.

보호세.

말로만 들으면 상당히 매력적이고 합리적인 제도다.

다만 지우혁이 불법적인 일을 해 수익을 올리는 것 도 아니고, 그렇다고 노점상을 운영 중인 것 도 아니었는데 도대체 무엇으로 보호 해 주는 것 인지는 모호했지만 말이다.

더군다나 21세기에 이런 구시대적인 발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지우혁은 믿을 수 가 없었다.

“것 참.”

지우혁이 자기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허리춤에 양 손을 얹었다.

덩치 큰 불량배가 총 4명.

물론 나름 자기들 구역에선 힘 좀 쓰던 놈들이 모인 것이겠지만 지우혁의 눈에는 우습게만 보였다.

사람의 목을 맨손으로 따 버리는 몬스터들과 거의 매일같이 칼 한 자루 들고 코앞에서 싸워내던 지우혁이다.

몬스터 앞에 서면 쪽 도 못 써볼 불량배들이야 한참이나 같잖았다.

“어이고, 우리 사장님 운동하셨어?”

지우혁이 허리춤에 손을 얹으며 어깨를 펴자, 그걸 일종의 자신들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 녀석들이 가사 롭다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사장님이 여기 처음 와서 모르나본데. 여기 사람들 다 ~ 냈어. 매달. 어?”

지우혁이 아무 말 도 없이 있자, 자신들의 겁박이 먹힌 것 이라고 오해한 듯 이런저런 시시껄렁한 말을 늘어놓으며 보호세를 내놓으라고 압박한다.

지우혁이 아무런 반응도 없이 그들을 보고만 있는 것에는 내적인 고민이 있었다.

물론 주먹을 쓰자고 마음먹으면 이 녀석들 다시는 이런 짓을 할 엄두를 못 내도록 만들어 줄 수 도 있었다.

아니, 이런 짓은커녕 제대로 걸어 다니지 못하게 만드는 것도 몸 풀기 수준에서 끝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짓을 했다간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을 즐기면서 살겠다는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

까짓 거.

얼마나 한다고, 주고 치워 버릴까.

사실 꽃집조차 소일거리로 하고 있는 지우혁,

이들이 요구하는 금액이 그다지 큰 것 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요구한다고 주기에도 마음이 불편하다.

‘하여간 꼭 이렇게 판 깨는 놈들이 있다니까.’

여러모로 기분 잡친다.

그런 생각들로 어지러운 머리로 그들을 쳐다보고 있는데.

불량배들은 그런 지우혁의 눈빛이 반항의 뜻 이라고 생각 했는지 한껏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못 주겠다는 거야?!”

분위기를 잡는 불량배들은 점점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 해 갔다.

게다가 지우혁도 전혀 밀리지 않고 버티고 서 있다.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듯,

양쪽의 눈빛이 허공에서 번쩍 번쩍 스파크를 일으키고 있을 때였다.

“어 저기 있네, 야! 지우혁!”

줄지어 있는 상가들이 만들어낸 라인 저 멀리서 지우혁을 부르는 사람.

“김칠성?”

한손에는 작은 병 주스가 줄줄이 담긴 선물용 상자를 쥐고 있는 김칠성이다.

머리 위로 손을 들어 흔들어 보이는 김칠성.

지우혁 역시 마주 손을 들어 준다.

“야~ 가게 잘 차려놨네!”

덩치 큰 불량배 사이들을 매우 자연스럽게 비집고 들어가는 칠성.

그들에 비하면 고작 어깨까지 밖에 안 오는 칠성이 지나가는데도 슬쩍 슬쩍 밀린 불량배들의 몸이 휘청거린다.

“크크크. 천하의 지우혁이 꽃집 총각이라니. 웃기다. 웃겨!”

“웬일이야?”

칠성의 말에 방금까지 굳어있던 지우혁의 표정이 한껏 풀린다.

“개업 했다니까 한번 와 봤지~그런데, 니들은 뭐냐?”

주스상자를 건네고는 슥 뒤의 불량배들을 돌아보는 칠성.

“아~ 저분들? 보호세를 걷으시겠다고 왔는데?”

지우혁이 팔짱을 끼며 쓱 웃었다.

어디 한번 당해보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구시대로 치면 칠성은 경찰권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 수호*헌터부의 장관인 칠성.

그리고 대한민국 경찰은 이제 수호*헌터부 산하에 있는 기관이다.

안 그래도 경찰을 부를까 고민 중 이었는데,

아예 경찰들의 대빵이 몸소 출동해 준 셈 이였다.

“저...정말 김칠성?”

“마, 맞는 거 같은 데요 형님?”

불량배들의 자신들의 눈을 의심하며 수선을 피웠다.

하기야 요즘 시대 김칠성을 못 알아본다면 간첩.

아무리 A급 헌터라도 일개 헌터인 지우혁이야 못 알아 볼 수 도 있다.

하지만, 국제기구인 UHD 대표인 칠성.

뿐만 아니라 하물며 지구를 구해낸 영웅으로 추앙되고 있는 김칠성을 모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뭐 보호세? 그거 삥 뜯는 거 아니야?”

칠성이 방금 전 까지 와는 다르게 확연하게 공격적인 눈빛으로 불량배들의 전신을 훑었다.

어디 한 주먹거리도 안 될 것 들이?

하지만, 이번에는 칠성이 주먹을 꺼낼 필요조차 없었다.

“아니, 아닙니다. 어떻게 저희가 감히 김칠성님 지인에게 보호세를 받겠습니까.”

충격적일정도로 공손한 태도와 말씨.

눈가에 상처가 난 빡빡머리가 당장 절이라도 할 기세로 고개를 조아린다.

방금 전 까지 가게를 엎어버릴 분위기 였는데.

갑작스럽게 지나치게 겸손해 지니 그 꼴을 본 지우혁의 다리에 힘이 풀려 삐끗 할 지경이었다.

“걱정 마십시오. 김칠성님. 친구 분은 제가 책임지고 지켜 드리겠습니다.”

“흠, 그래?”

지우혁의 가게 앞으로 몰려온 불량배 무리 들 중에서는 머리로 보이는 빡빡이가 이렇게 공손한 태도로 나오자 불량배 중 한 놈이 불안한 듯 호들갑을 떤다.

“형님, 춘식이 형님 어떻게 감당하려고 이러십니까. 이러다 재떨이 날아옵니다.”

“어허! 새키야! 우리가 어떻게 김칠성님한테 보호세를 받냐? 김칠성님은 지구 전체를 보호 해 주시는 분인데. 말이 돼? 엉?”

자기들 끼리 투닥거리는 불량배들.

하지만 빡빡이의 완고한 고집에 일단락 된 것 같다.

“걱정 마십쇼. 이 시장 가게들 다 수금해도 여기는 못하게 할 테니까요.”

“전체.”

다짐을 하는 빡빡이에게 한마디 덧붙이는 칠성.

“예?”

“그냥, 이 시장 전체에서 손 떼시라고. 남자가 쪼잔하게. 스케일이 있어야지. 안 그래?”

시장의 주민 상인들이 죄다 불량배들에게 피해를 보는데 지우혁의 가게만 면제 된다고 해서 마음 좋아할 지우혁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지우혁의 성미를 아는 김칠성.

여차하면 공권력을 동원해서라도 청소를 한번 해 줄까 하는 상황이었다.

“끙... 알겠습니다! 김칠성님 말씀 이라면야. 이쪽지역은 시원하게! 저희가 무상으로 지켜드리겠습니다.”

“아니 혀, 형님!”

여차하면 경찰들로 쓸어버리려는 칠성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빡빡이 불량배는 통 크게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팡팡 두들기며 자처해서 이 시장의 수호자가 되어주마 선언했다.

놀란 부하들이 말렸지만 이미 결심이 선 빡빡이에겐 소용이 없었다.

“내가 책임 질 테니까. 걱정 붙들어 매라 들.”

눈빛을 번뜩이는 빡빡이의 의지는 결연하기 까지 했다.

의외의 소동은 그런 식으로 마무리 되었다.

“사실 전 칠성교 교인입니다.”

빡빡이가 자리를 뜨기 전, 김칠성의 귓가에 그렇게 속삭이는 것 이었다.

칠성의 목 뒤에 소름이 쭉 돋았다.

그리고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칠성교에서 신으로 모셔지는 김칠성 본인.

그 김칠성이 명령한 지우혁의 가게와 시장의 수호.

이상하게 말이 잘 통한다 싶었더니,

이것은 빡빡이에겐 일종의 사역이었던 것 이다.

“세상에나...”

저 멀리 걸어가던 빡빡이가 문 듯 멈춰 서서 슬쩍 춤을 춘다.

칠성이 얼마 전 UHD 건물 근처에 모여들어있던 칠성교 교인들 앞에서 추었던 춤 이다.

슬쩍 작은 몸짓으로 화답 해 주는 칠성.

빡빡이가 씩 웃더니 예의바르게 인사를 올리곤 돌아간다.

“별일이 다 있네.”

가게 안으로 들어와서 앉은 칠성.

세상은 역시 오래 살고 보아야겠다고 중얼거리는 칠성에게 지우혁이 녹차를 내어 온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이어지던 와중.

“얼마 안 남았지?”

“엉.”

무엇이 얼마 안 남았는지 까지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아차린 칠성이 대답하고 녹차를 후릅 거렸다.

마계의 조종으로 지구에 심어져 있던 모든 도어, 그들이 부르는 이름으론 방주 의 ‘씨앗’ 들이 일제 개화한 사건.

그 일제개화로부터 이미 4주 가량 지난 시점이었다.

헌터들에게 사로잡혀 칠성에게 심문을 당했던 마계 관리자의 예고가 맞아 떨어진다면 고작 일주일 정도 남은 상황.

일주일 뒤, 지구로 통하는 차원의 문 이 열리고 이세계에서 지구인들의 마나를 수확 하려는 ‘수확선’ 이란 존재가 들이닥친다.

그리고 그것이 지구의 멸망으로 해석되는 상황.

“바쁘겠네.”

“응. 바빠질 것 같아서 미리 한번 와 봤어.”

내일부터 오스트레일리아 국민들 전체의 대 이동이 시작 될 것 이다.

그간 최고의 준비를 해 내기 위해 수확선의 존재자체가 비밀이었으나.

어느 정도 UHD의 목표치에 해당하는 준비도 되었고, 이제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피난을 시키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겨지는 타이밍 이었다.

관리자의 예고에 따르면 차원의 문이 열리는 곳 은 그가 마계에서 지구로 넘어온 곳이기도 한 오스트레일리아 부근.

어느 정도 규모의 피해를 입힐지 예상이 안 되니, 우선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을 타국으로 피난시킬 생각 이었다.

“그래 그럼, 가 봐.”

“야. 지우혁.”

인사를 하는 지우혁을 두고 차에 올라타려던 칠성이 문득 지우혁을 보며 말 한다.

“걱정하지 마. 이번 일 끝나고 다음에 또 올 거니까. 믿어라.”

“...그래.”

칠성의 말은 당당히 마계의 침공을 막아 보이겠다는 뜻.

알아들은 지우혁이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또 보자고.”

떠나는 칠성의 차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지우혁이 작게 중얼거린다.

어찌 안 믿을 수 있으랴.

다른 사람이 아니라 김칠성인데.

아니, 친구인데 말이다.

* * *

“이게 다 뭐야.”

한솜이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말은 핀잔을 주면서도 얼굴은 싱글벙글 미소가 가득하다.

한솜이 집의, 10여 평이나 되는 커다란 발코니엔 꽃이 가득하다.

꽃이 가득 담긴 바구니가 발코니를 꽉 채웠다.

색색의 파스텔 빛깔 꽃들이 마치 그림 속 같은 풍경을 만들어냈다.

오후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햇살이 서서히 석양을 만들어 낼 준비를 하며 주홍빛 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친구가 개업을 했다는데 좀 팔아줘야지. 그래야 재수 있데.”

“아, 우혁씨? 아니 그래도, 좀 심하지 않아?”

그러면서 또 웃음을 터뜨리는 한솜이.

아무리 그래도 스케일이 커도 너무 크다.

그런 한솜이에게 꽃으로 만든 화관을 씌워주는 칠성.

저 멀리 석양빛이 한솜이의 머리칼에 어린다.

“...그때 기억나냐?”

“뭐?”

“왜 그 때. 첫날에.”

처음 지구로 돌아와 헌터가 되어 대한민국 헌터 특별부에 출근한 첫날의 일.

장관인 안희운의 호출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던 두 사람.

유리벽으로 된 엘리베이터 덕에 먼 곳에서 비춘 석양이 한솜이의 머리칼에 어렸고, 자신의 모습을 빤히 보던 칠성을 한솜이가 추궁했었다.

“아~ 그 때 자기 헛소리 한 거? 킥킥킥. 어찌나 당황해서 허둥대던지.”

“아니, 그걸 또 헛소리라고 하다니. 낭만이 없어 낭만이~”

“그 때 는 정말 순진한 사람이구나~ 완전 순둥이구나, 했는데 알고 보니 완전 카사노바에...”

“아, 그때는 내가 여자랑 있는 게 워낙 오랜만 이었다니까?”

실제로, 당시 칠성이 연애감정 비슷한 걸 느낀 것 은 약 150년 만 이었다.

허둥댔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때도, 지금도. 너무 예뻐. 내가 허둥대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칠성의 그 말에 감명 받은 듯한 표정이던 한솜이.

“당연히 그래야지!”

“아따!”

장난스럽게 웃으며 칠성을 꼬집는다.

먼 석양을 보는 두 사람.

그런 한솜이의 눈가에 보일 듯 말 듯한 눈물이 맺힌다.

칠성이 처음 만난 날의 이야기를 한 덕분에, 두 사람이 여태까지 겪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간 때문이다.

많이 쳐 줘야 일 년 조금 더 되는 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일이 있었고, 그렇기에 감정 역시 애틋했다.

“수확선 이라는 거, 오기 전에 결혼 할 까?”

한솜이는 아마 그래서 그런 말을 한 것 같다.

설사, 수확선이 온 뒤에 이 세상이 없어진다고 해도.

내일이 없다고 해도 칠성과는 결혼한 사이로 남고 싶다. 그런 욕심이 들었다.

“아니.”

곰곰이 한솜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칠성은 고개를 저었다.

“이번일 끝나고 바로 하자. 약속.”

마지 못 해 칠성이 내민 새끼손가락에 손가락을 걸어주는 한솜이.

그런 한솜이를 안아주는 칠성.

다른 이유는 없었다.

칠성은 내일이 도래할 것을 믿는다.

두 사람의 실루엣을 앞에 두고 저 멀리 석양이 하늘을 주홍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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