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
S5 : 23화
“아 왜 하필 저예요!”
“그럼 내가 타리?”
칠성의 지시로 김규형이 개발한 기간트 병기.
김규형이 이름 지은 바로는 ‘베이직’ 모델.
조종사가 직접 조종하며, 데이터를 분석해 세부 조정만 하는 단계에 이르렀기에 테스트가 필요 한 상황이기도 했다.
그리고 칠성이 이 베이직 기간트의 테스터로 불러낸 사람은 김태홍.
칠성이 김태홍을 불러낸 건 만만해서 이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너 요즘 개기는 게 맘에 안 든다?”
“아~ 제가 뭘 요.”
“너 아직도 고위마법 못 뚫었지?”
“아니, 사람이 어떻게 몇 달 만에 고위마법을 뚫어요? 뭐라도 좀 챙겨 주면서 그러던가. 초급 마법이랑 마법서 몇 개 던져주고....”
김태홍이 입이 댓발 나와서 툴툴 거리다가, 칠성의 쨍 한 눈빛을 의식하곤 주눅이 들어 말꼬리가 흐려진다.
아닌 게 아니라 김태홍이 김칠성으로 부터 마법을 사사 받은 지는 채 일 년도 되지 않은 시점.
‘아직도’ 고위마법을 못 익혔냐는 말 은 일반적인 사람 입장에선 너무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럼 수련이라도 좀 빡시게 하던가. 맨날 처 놀고 다니는 거 모를 줄 아냐?”
그렇다고 김태홍이 성실하게 수련에 전념하고 있는 것 도 아니었지만 말 이다.
“맨날 여자랑 놀고 다니기나 하니까 그 시간에 거기 있었지.”
째릿.
김태홍을 흘겨보는 칠성의 눈빛이 번뜩인다.
일전에 김태홍이 김주희와 함께 있는 칠성을 보곤 한솜이에게 일러준 일을 말 하는 것 이다.
칠성은 그저 한솜이에게 줄 반지를 고르는 데 김주희에게 도움을 요청 한 것 이었지만, 김태홍이 오해할 법 하게 말을 전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루었던 것 이다.
칠성이 무슨 의도로 다그치는지 알아챈 태홍이 끙. 소리를 내며 식은땀을 훔친다.
“아, 그래요. 그 때 일은 내가 잘못 했고요. 무슨 드라마도 아니고. 그런 일이 있을 줄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요?”
김태홍은 당당했다.
젊은 남 녀 둘이 호텔로 향한다?
충분히 누가 보아도 오해할 만 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칠성은 자신의 스승이나, 한솜이는 자신이 오래 알고 지낸 누나이자 전우다.
친한 누나든, 전우든 배신할 수 없는데 한솜이는 심지어 둘 다다.
의심 가는 것 은 일러줌이 의리였고.
당시 김태홍 자신의 행동은 두 번 돌아가도 똑같이 할 정도로 당당했다!
“꿍...”
그런데 자신을 노려보는 칠성의 눈길에 주눅이 드는 것 은 왜 일까.
결국 시름시름 앓는 소리를 내며 베이직 기간트의 조종석에 올라탄 김태홍.
“뭐, 까짓 거 해 주지.”
사실 등 떠밀려 올라탄 것 이지만 기간트의 조종 자체가 무섭지는 않은 김태홍 이었다.
아니 오히려 일면 기대되는 부분도 있었다.
애시 당초 성격이 소심하다기 보다는 지르고 보는 타입에 가까운 덕도 있었다.
“양편에 있는 핸들을 잡고 마나를 살짝 불어넣어 봐.”
기간트의 가슴팍에 열려있는 조종석에 앉은 김태홍.
밑에서 김규형이 조종법에 대해 훈수를 두었다.
김태홍이 살펴보자 과연 김규형의 말처럼 조종석의 양편에 회색빛 금속으로 이루어진 손잡이 같은 것 두 개가 달려 있었다.
“이렇게 하면 되나...?”
기이잉-.
김태홍이 양편의 핸들을 잡고 마나를 조금 밀어 넣자 기간트의 양쪽 눈동자에 불이 번쩍 들어왔다.
동시에 조종석의 커버가 내려와 조종석이 순식간에 밀실이 되었다.
조종석 사방에 있는 디스플레이들이 마법적 환영으로 기간트 주변 상황을 비추어주었다.
“히야.”
김태홍이 감탄사를 뱉었다.거대한 몸체의 기간트 병기를 조종하는 기분.
마치 처음으로 차를 몰 때의 쾌감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이어지는 테스트.
천천한 걸음, 문제없었다.
손을 펴고 쥐고, 관절을 돌려보고.
각종 기동들 역시 무난하게 다 이루어 졌다.
김규형은 데이터들을 창고 한편에 있는 전산 장비들을 통해 받아보며 미세조정을 위한 자료를 축척했다.
“야! 이제 한 번 날아봐.”
한참이나 테스트가 이어지던 중, 칠성이 목소리를 높였다.
칠성이 굳이 김태홍을 테스터로 부른 것 은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단순히 미세 조종등을 위한 테스트라면 오히려 칠성이 직접 하는 것 이 훨씬 빠르고 정확할지 모른다.
어둠의 거인과는 다를 지언정 거대한 몸체를 움직이는 데에 대한 감각은 확실히 칠성을 따라올 파일럿이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다만 칠성은 초보 파일럿이 기간트의 성능을 어디까지 끌어낼 수 있는지 가늠 해 보고자 하는 목적이 더 컸다.
김태홍은 일반 헌터들 중에선 꽤나 강한 편이다.
그도 무려 A급 헌터였으니까.
사실 김태홍이 친한 사람들이 우연하게도 모두 A급 헌터.
거기다가 심지어 주변에 있는 사람이 김칠성이라 그 존재감이 많이 가리어 져서 그렇지,
사실 전국적으로, 혹은 전 세계 적으로 줄줄이 수 없이 많은 헌터들 중, 김태홍 정도 되는 헌터는 찾아보기 힘든 편 이었다.
하지만 기간트의 조종에 있어선?
완벽하게 초보다.
전혀 경험이 없다.
애시 당초 현재 지구에서 기간트 조종경험이 있는 사람이라곤 정말로 김칠성과 바티칸의 몇몇 기사를 제외하곤 전무했다.
사실 지금 UHD 의 기술력으론, 축척해둔 마석만을 이용해 기동하는 기간트를 만들어 내는 게 충분히 가능했다.
그리고 실제로 이 베이직 모델도 여타 기술들이 적용되어, 기존의 기간트 병기에 비해서 극도로 낮은 마나로도 충분히 운용이 가능했다.
이전의 기간트들이 지구의 등급표 기준으로 적어도 더블 에스(SS) 등급의 헌터들이 운용 할 수 있었다면,
이 베이직 기간트는 고작 A 등급 정도의 헌터라면 충분히 운용하는 게 가능했다.
여기다가 극단적으로 마석 관련 기술을 적용하면, 기동 시간에 한계점이 생길지언정 일반인이라도 조종 할 수 있는 기간트병기를 만들어 내는 게 불가능 한 것 은 아니었다.
말인 즉 조종사가 굳이 헌터가 아니라도 되었다.
하지만 칠성은 헌터들에게 기간트의 조종을 맡길 계획 이었다.
조종 실력은 둘 째 치고, 조종이 익숙해진 경우로 칠 경우 그 어떤 조종사도 실제 전투에 있어 헌터를 따라 갈 순 없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신체능력, 동체시력과 반응 속도 등은 둘 째 치고.
기간트를 사용한 전투는 화기시대 전투 보다는 냉병기 시대 전투에 가까웠다.
즉 총이나 대포, 미사일 같은 화기 보다는,
직접 검을 휘두르거나 아예 주먹질을 하는 형태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런 방식의 전투에 익숙한 건 절대적으로 냉병기를 들고 몬스터와 목숨을 건 합을 주고받던 헌터들 이었다.
현대의 군인들이 아무리 조종술에 뛰어나다 해도 이 감각에서 만큼은 우위일 수 없는 것 이다.
그래서 김칠성이 하필 테스터로 김태홍을 고른 데에는
만일 김규형의 베이직 기간트를 일반적인 헌터에게 주었을 때, 어느 정도의 훈련이 필요 할 것 인가?
그것을 김태홍을 통해 가늠해보고자 하는 이유가 있었던 것 이다.
그리고 그걸 알아보려면 가장 어려울 게 분명한 비행 기능 역시 사용해 보는 것 이 옳았다.
“그럼 시작 합니다?”
창고 밖의 공터.
UHD 건물 단지는 이제는 서울의 강북지역 거의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단지였다.
기존의 건물을 통째로 산 경우도, 기존에 건물이 있던 자리를 밀어버리고 새로 지은 것들도 있었다.
UHD 건물들 사이의 공터로 기간트를 끌고나온 김태홍, 그리고 지켜보는 칠성과 김규형.
징-
베이직 기간트 전신에 펼쳐져 있는 경량화 마법의 법진이 흘러들어간 마나로 번뜩인다.
가벼워진 기간트의 몸체가 마치 무중력 공간에 있는 것 마냥 가벼운 발차기로도 서서히 떠오른다.
기이이잉!
점등된 화력 비행장치가 불꽃을 내 뿜는다.
서서히 상승하는 기간트 기체.
“얏후!”
김태홍이 쾌재를 내 질렀다.
“제법 잘 하나?”
“그러게, 생각보다는....”
밑에서 지켜보는 김칠성과 김규형도 상공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기간트를 바라보며 말을 주고받는 찰나였다.
“어, 어라?!”
허공에서 휘청인 기간트.
기간트의 기체가 휘청거리자 크게 당황한 김태홍.
이내 기간트가 제 멋대로 폭주하기 시작한다.
콰아아!
UHD 건물을 향해 마치 급발진 차량처럼 갑작스럽게 날아 돌격하는 베이직 기간트!
“꺄악!”
그 관경을 본 사람들이 비명을 내 지른다.
와삭.
“*보이드*”
콰웅!
다행히, 다급하게 칠성이 소환해 낸 그림자 정령의 거대한 손아귀가 UHD 건물의 그림자에서부터 뻗어 나와 베이직 기체를 받아낸다.
“진짜 골치 아프게 하는구만.”
“휴.”
간신히 대형 참사를 막아낸 칠성, 그리고 옆에 있던 김규형이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베이직 기간트의 조종석에 앉아있던 김태홍도 십년감수 했다는 소리와 함께 흥건한 식은땀을 닦아내었다.
“넌 그거도 하나 제대로 못 하냐?!”
물론 그 뒤 칠성에게 만만한 김태홍이 흠씬 깨졌음은 두 말 할 필요도 없었다.
* * *
솨아아아-.
조리개로 물을 주는 소리가 마치 작은 폭포 같았다.
화분들에 번갈아가며 물을 주고 있는 것 은 다름 아닌 앞치마를 두른 지우혁.
칠성의 친구이자, 선배 헌터.
A등급의 헌터로 전 대한민국 헌터*특별부 레이드 전담 3팀의 팀원.
수헌부를 거쳐 UHD의 요원까지 했었던 굴지의 헌터 중 한명.
마계에서 넘어 온 피의군주 메피스토의 오른팔 발스락스를 단신으로 격퇴 한 철권.
또, 알려지지 않은 사실로 비전 무술 취권의 차세대 계승자이기도 했었다.
“흐흐흥~”
그런 그가, 평화롭기 그지없어 보이는 상가 건물 1층의 꽃집을 관리하고 있었다.
식물의 잎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무명천으로 더러운 것을 슬쩍 닦아주는 모습을 보자면 이미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읏.”
원인을 알 수 없는 오른손의 신경통에 얼굴을 살짝 찌푸리는 지우혁.
그가 헌터를 그만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손을 스트레칭 하듯 몇 번 쥐었다 폈다 하더니 이내 다시 섬세한 손길로 작업에 들어간다.
꽃집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이 프레지아는 나경씨가 정말 좋아하겠다.”
하나경이 꽃을 좋아한다.
거의 그것 뿐.
소일거리로 카페 같은 것이나 해볼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저 하나경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꽃집으로 정해진 것 이다.
키가 185나 되는 근육질,
훤칠하고 단단한 몸체의 거구의 남자가 앞치마를 두르고 꽃을 돌보고 있으니, 주변 상인이며 손님들이며 사람들 마다 재미있다며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그래도 장사는 제법 잘 되었다.
시장 속에 있는 자그마한 상가건물에 자리 잡은 꽃집.
주변 상인들도 지우혁에겐 친절했고 아무런 문제도 없는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지는 듯싶었다.
“어이고, 안녕하쇼. 뉴페이스시네.”
“누구...?”
지우혁이 아침에 들어온 꽃들을 정리하고,
디스플레이까지 마칠 무렵.
이제 잠시 캡슐 커피라도 내려 먹으며 숨을 돌릴 참에 꽃집앞으로 들어서는 남자들.
한명한명이 지우혁 부럽지 않은 거구에 떡대는 오히려 무식할 정도로 더 벌어졌다.
마치 유니폼 마냥 하나같이 날티나는 와이셔츠에 대충 검은색 정장을 덮어 입은 무리들.
손을 슬쩍 들어 인사를 하는 남자는 머리를 방송이 마냥 짧게 자른 데다 한쪽 눈가에 상처까지 있다.
누가 봐도 꽃집 손님은 아닌 그들 무리를 보고 지우혁이 의심어린 시선을 보냈다.
모두들 한 가닥 하게 생긴 녀석들이다.
암살자.
은퇴한 헌터, 요원들을 대상으로 맺힌 게 많은 녀석들이 보복을 가해오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었다.
어딘가에 남아있다는 포세이돈의 잔당일지도 몰랐다.
지우혁이 어금니를 으득 뭄과 동시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주먹을 꽉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