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
S5 : 22화
김칠성은 일전에 안희운과 조소장, 김규형의 일행들을 자기 손 으로 풀어주었다.
마계의 관리자가 예언한 공습을 대비하기 위한 방책 중 하나였다.
자신의 능력과 조소장의 아티펙트로 S급 헌터의 능력을 지니고 있는 안희운.
암흑계 고위마법까지 쓸 수 있는 그는 둘째로 두고라도, 김규형과 삼천왕은 이세계에서 제국을 통일했던 파티다.
지구에 와서 하필이면 김칠성이 그들의 첫 번째 상대가 된 것이 그들의 유일한 불운.
칠성만 없었다면 지구전복을 능히 해냈을 어마무시 한 전력을 갖춘 자들이다.
마계의 관리자라는 마족이 지구에 찾아오고,
그간 나타났던 도어들의 비밀.
그리고 일제 개화와 방주, 수확의 인류 멸망을 예언한 상황.
그야말로 고양이 손 이라도 아쉬운 상황, 이들의 무력과 지력을 보태야 한다는 칠성의 판단이었다.
그들 중 전투가 주된 전력인 안희운과 삼천왕은 국외 미션들에 투입되고 있는 중 이었다.
지난 일제개화 사태 때도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활약했다.
그리고 전투도 물론이지만 칠성이 기간트의 연구 개발을 부탁해 둔 김규형, 그리고 아티펙트와 화력무기의 결합에 전력을 보태기로 한 조소장은 UHD가 위치한 대한민국의 UHD 아티펙트 연구소에 남모르게 숨어들어 있었다.
물론 어딘가에서 온 던전 테크놀러지 전문가로 둔갑해서 말이다.
유일하게 숨죽이고 연구소에 출입하던 조소장을 알아본 것은, 범법자가 되어 파직되고 감옥에 간 조소장 대신 소장의 자리를 맡게 되었던 장영실 소장 뿐 이었다.
워낙에 커다란 연구소,
거기다 이미 외국인 연구원들의 숫자가 한국 국적의 연구원들을 훨씬 압도했다.
일부러 마주치지 않으려고 작정한다면 절대로 볼 일이 없는 공간.
하지만 장영실 소장은 UHD 에서도 책임자 위치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장영실 소장의 눈 까지 피하는 것 은 불가능했다.
그가 자리를 내 주어야 조소장이 자리를 차지하고 연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칠성은 그간의 연구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 UHD 연구소 한편에 은거하고 있는 조소장을 찾아간 차 였다.
“쉽게 설명하면, 생명력을 끌어올리는 겁니다. 마나샘을 순식간에 쥐어 짜 내는 것 이지요.”
지금은 범죄자인 안희운에게 협조했던 죄로 죄소자로 수감되어 있었던 조소장.
반질반질한 대머리가 인상적인 던전 테크놀러지 전문가다.
간만에 입은 백의의 연구복이 머쓱한지, 아니면 칠성을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린 건지 쭈뼛대는 모습이다.
“생명력을?”
“네. 일시적으로 본래 신체가 가지고 있는 마나 출력을 높이는 일인데. 후유증이 없을 수 없죠. 아직 정확히 사례나 데이터가 나오진 않았지만, 교감신경계에 큰 무리가 가는 일입니다.”
조소장이 만들어낸 아티펙트들은 특이했다.
겉보기엔 평범하지만 착용해서 마나를 밀어 넣는 순간 밝은 형광빛으로 빛이 나곤 했다.
게다가 제법 평범한 헌터가 착용해도 어마무시한 능력을 내곤 했다.
검을 쥐면 명검을 쥔 무사가 된 것 같았고,
건틀릿을 착용하면 천하제일의 권사가 된 기분을 만끽 할 수 있었다.
A급 헌터 정도가 착용하면 주먹질 한번이 공기를 찢고 적의 살점을 뜯어냈다.
“젠장.”
칠성이 눈을 굴렸다.
걱정어린 눈빛이었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유증 이라는 거, 심각해?”
“글쎄요...어느 정도 심각할 것 인지야 확실하지 않지만, 후유증이 없을 리가 없는 물건입니다.”
칠성은 일전에, 안희운의 부하인 정명석이 만들어 둔 함정을 격파하면서 조소장이 비밀리에 만들어 그들에게 착용시켰던 아티펙트 몇 개를 슬쩍 가져왔다.
그리고 그 중 하나를 친한 친구인 지우혁에게 건네었다.
지우혁은 칠성이 건네준 아티펙트 건틀릿을 거의 쓰지 않는 것 같다가, 일전에 메피스토 펠레스가 서울을 침공했을 때 돌연 건틀릿을 착용하고 나타났다.
악마 군단과 메피스토의 직속 부하들이 어지럽힌 서울의 난전 속,
형광빛으로 창연히 빛나는 건틀릿을 착용한 지우혁은 기묘한 무술을 사용하며 악마들을 주먹으로 찢어발겼다.
물론 당시 전력에는 큰 도움이 되기야 했지만,
사실은 큰 후유증을 동반 하는 물건이었다니 어쩐지 찝찝해 진다.
“후우.”
그래서 휴대폰을 꺼내 본 칠성.
연락처 목록에서 지우혁의 번호를 발견하고 누르려다 잠시 멈춘다.
“에라이.”
그러곤 짧게 혀를 차곤 휴대폰을 도로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어차피 떠난 사람인데.
지우혁은 문자 그대로 UHD, 그리고 수헌부를 떠났다.
때는 칠성과 UHD 가 전력을 다해, 지구상에 심어져 있던 모든 씨앗이 개화 하는 ‘일제 개화’ 사태를 막아낸 직후였다.
‘칠성아. 나 이제 쉬어야 겠다.’
그렇게 말 했었다.
칠성은 괜히, 알면서도 쉬다가 오라고 휴가를 주마 했지만. 지우혁은 이미 결심이 선 이후였다.
정말로 목숨이 위험했던 일제 개화 사태를 겪고,
그 이후 자신의 인생을 반추 해 본 뒤 내린 결론이었다.
그리해 마계의 대 공습이 곧 일어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저 모든 것에서 손을 떼고 평범한 인생으로 돌아가기로 한 것 이다.
‘젠장, 신경 쓰이게. 언제 한번 들러봐야 겠군.’
그렇다고 해서 오랜 친구가 친구가 아닌 것은 아니었다.
지우혁을 배신자라고 부를 심산도 없는 칠성이었지만,
갑작스러운 지우혁의 은퇴는 맥 빠지는 일이긴 했다.
그리고 조소장이 자신이 개발한 제품들에 대한 설명들을 이어갔다.
착용하면 일반 사병.
그러니까 마나에 대한 능력이 전무하다 시피 한 일반 군인들도 몬스터 등의 존재에 데미지를 입힐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전략 슈트.
손바닥 만 한 아티펙트 판들이 곳곳에 장갑처럼 부착되어 있는 전투복이다.
조소장이 말 했던 대로 마나샘을 강제 활성화 시켜주는 물건이다.
헌터가 아닌 일반 군인이 입더라도 쥐어짜 내진 마나로 어지간한 C급 헌터 이상의 전력을 낼 수 있게 만들어주는 물건.
이것이 조소장이 이루어낸 성과.
여기에 기존 K-이그저스트를 계량한 몬스터 제압용 화기들.
몬스터 제압을 위한 기관총과 미사일.
전투기와 탱크등 기존 화력병기에 덧댈 수 있는 마력 방어 시스템.
UHD에 집결한 지구 최고의 지성들이 지난 시간동안 만들어낸 성과물들이다.
‘말도 안 된다 진짜.’
칠성의 솔직한 감상이었다.
두 가지 의미였다.
인간의 아티펙트 개발기술이 이정도 수준에, 그것도 이리도 단기간에 올라올 수 있었다는 점.
마법이란 존재가 지구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고작 10년 전.
하지만 마법이 원래부터 만연한 세상이었던 판브르크 대륙의 수준을 이미 아득히 뛰어넘어 있었다.
이제 몬스터를 퇴치하는 미사일을 날려버리고,
초중급 마법은 그냥 퉁겨 내 버리는 전차를 생산할 지경에 이르렀다.
더군다나 마나 이용 능력자들 역시, 설사 재능이 없는 자 라도 엇비슷한 활약을 가능하게 해 주는 전투복 까지.
너무나도 대단하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그동안 뭘 한 거야.’
너무나 한심한 일이기도 했다.
인류가 한 마음 한 뜻 으로 힘을 모으니 이렇게도 어마어마한 성과가 이렇게나 단 기간에 나오는데.
대체 무엇 때문에 그간엔 이런 성과를 내지 못 했었단 말인가.
인류의 적 이라는 몬스터.
하지만 그 몬스터를 두고도 사실은 서로 반목과 견제로 허비한 세월과 자원이 헤아려 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 이다.
헌터의 전력을 서로 비교해보며 견제하고,
새로운 던전 테크놀러지가 개발되면 인류를 위한 공유가 아닌 각자 국가의 극비사항으로 붙이기에 바빴다.
정말로 지구가 박살 날 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듣고서야, 정말 진심으로 모든 경계를 넘어서 힘을 합칠 수 있었다.
조소장과 장영실소장 밑 UHD 연구원들이 개발한, 헌터가 아닌 일반 군인들을 위한 장비들의 프로토 타입(시험 버전) 을 둘러본 칠성.
칠성의 발이 향한 다음 장소는 역시 인근의 거대한 창고였다.
그 곳에는 예의, 은발의 더벅머리가 인상적인 연금술사 김규형이 있었다.
그리고,
“이거야?”
“응. 프로토타입.”
창고 안을 가득 메우다 시피 하는 압도적 크기의 마력 병기, 기간트가 서 있었다.
칠성이 백색의 금속으로 이루어진, 키가 30여 미터 정도 되 보이는 거인의 형상의 발을 손으로 퉁퉁 두들겼다.
김규형이 만들어낸 기간트의 프로토타입은 어둠의 거인보다 덩치가 살짝 큰 것 같았다.
“흐음~ 이거 뭐, 제대로 굴러가긴 하는 거지?”
칠성이 의심스럽다는 눈빛으로 김규형이 만들어낸 기간트를 훑어본다.
짙은 보랏빛에 마치 자수정 보석의 원석을 깎아내어 만든 것 같이 보이는, 한마디로 아름다운 명품 같은 칠성의 어둠의 거인.
혹은 황금빛의 갑주를 덕지덕지 붙여 둔 바티칸의 기간트 병기들.
김규형이 만들어낸 기간트는 그런 것 들 과는 대조적으로 상당히 백지 같은 밋밋한 느낌이었다.
“우습게보지 마, 겉보기엔 심심해 보여도 비행능력까지 갖춘 놈들이니까.”
“뭐? 진짜?”
“엉. 화력엔진의 보조를 받는 형태야.”
김규형이 설명을 이어갔다.
기간트 병기는 원래 하늘을 날진 못 한다.
칠성의 어둠의 거인은 예외라고 할 수 있었다.
님프족의 영혼 공학기술, 드워프족의 아티펙트 제작술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어둠의 거인.
어둠의 거인은 주인의 마력과 마법을 공유할 수 있는 매우 특별한 기간트 병기였다.
거기다 자체적인 마력 증폭 기능도 갖추고 있었다.
그렇기에 칠성이 마력 변환 슈트인 크로우로 청마법에 속하는 비행 마법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되자, 어둠의 거인 역시 그 힘으로 날아다니는 게 가능해 진 것 이었다.
실제로 칠성과의 전투에서도 바티칸의 기간트들은 비행능력이 아예 없어, 전투용 헬기로 이송되어 칠성이 있는 장소까지 날아오기도 했다.
그런데 김규형이 만들어낸 기간트 병기는 자체적인 비행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사물에 적용시키기 좋은 경량화 마법.
그 경량화 마법을 기간트 병기 전체에 적용, 마력의 힘으로 기간트 병기의 무게를 순식간에 줄인 뒤에, 제트기 등에 사용되는 화력 엔진 백팩의 추진력으로 비행을 하는 형태였다.
“끌끌, 뭐 괜찮네. 폼은 안 나지만.”
칠성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표정은 어쩐지 비웃는 표정 이었지만 말 이다.
어둠의 거인을 타고 다니는 칠성이니 칠성의 눈에는 간신히 아동바동 허공을 헤메이며 날아다닐 기간트 병기.
그것도 덩치가 산만한 기간트가 등에 장착되어 있는 백팩에 매달려 날아다닐 꼴을 생각하니 우습기 짝이 없었지만,
사실은 대단한 장족의 발전이었다.
“준비는 돼있는 거지? 한번 날려볼까?”
“준비는 되어 있지만, 난 안 탄다?”
칠성의 물음에 김규형이 재빨리 발을 뺐다.
“뭐, 너 아니라도 탈사람 많지.”
칠성이 재빠르게 휴대폰을 꺼내서 누군가를 호출했다.
고민의 여지조차 없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김규형의 기간트를 보관해 둔 창고에 머리를 드민 사람.
“예에?! 저 보고 이걸 타라고요?”
어쩌다 보니 칠성의 흑마법의 유일한 계승자,
김태홍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