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
S5 : 21화
“으휴.”
깨끗한 고급 오피스텔.
창문에 걸어둔 블라인드 사이사이로 햇빛이 들어오고 칠성이 잠에서 깬다.
바쁜 하루의 시작이다.
칠성은 얼마 전 부터 독립을 했다.
경제적으로야 애 저녁에 하고도 남을 법 했으나,
그간은 부모님을 모시니 하는 이유 때문에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두 분 집을 새로 얻어드리는 김에 독립했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씻고 옷을 갈아입고,
간단하게 출근 준비를 마친 칠성이 그럴싸한 정장 차림이 됐다.
순식간에 나타나서 입혀진 크로우와 이어지며 발밑에 나타난 마법진.
[청마나로 파장을 변환합니다.]
“*텔레포트*”
번쩍!
텔레포트와 동시에 갑옷을 해제한 칠성.
그런 칠성이 아무 말 없이 오른손을 쓴 옆으로 내밀자 대기 중이던 성진이 미리 준비 해 둔 브랜드 커피숍의 커피를 쥐어준다.
곧 바로 근처에 있던 리무진에 타는 칠성과 성진.
“오늘은 조소장, 그리고 김규형 미팅이 잡혀있고요....”
간단한 성진의 일정 브리핑이 이어진다.
칠성이 텔레포트 해 온 곳은 차고였다.
수헌부 건물 근처에 건물을 하나 사 둔 덕이다.
사실 텔레포트라면야 바로 수헌부 내부로 할 수 도 있었다.
하지만 몇 가지 이유에서 그런 방법은 자제하고 있었다.
첫째론 텔레포트 기술 자체의 보안 문제다.
실제로는 칠성 입장에서 텔레포트를 쓰는 게 그렇게 큰 일이 아니라곤 해도, 밖에까지 그런 사실이 알려질 필요는 없다.
총알이, 미사일이 무기인 시대는 지났다.
정보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무기인 시대다.
특히나 텔레포트 같은, 일반적인 사람들에겐 거의 미지의 기술 같은 이런 마법은 충분히 보안에 신경 쓸 필요가 있었다.
텔레포트의 사용법, 들어가는 마나, 한계와 가능범위 등 모든 것을 비밀리에 붙일 필요가 있었다.
언제 어디서 악용 당할지 모르기에.
어쩌다 한번 이동하고 마는 곳 이면 모를까, 평소에 자주자주 이동을 해야 하는 곳 이면 날파리들이 붙을 것을 대비한 방지책을 세워둘 필요가 있었던 것 이다.
칠성이 사들인 건물에는 이미 충분히 추적방지 마법 처리를 해 놓았다.
시시각각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UHD 건물이나 수헌부 건물과 다르게 출입 인원도 철저하게 통제된다.
한마디로 이 차고가 칠성의 ‘안전가옥’ 이었다.
안전가옥이라고 부르는 안전한 장소들을 텔레포트 루트 중간 중간에 넣어서 신변을 보호하는 수법.
판브르크 대륙에 있을 때, 텔레포트가 장기인 마법사들이 하던 것을 따라 한 것 이다.
그리고 안전가옥에서부터 비교적 짧은 거리인 수헌부 건물 까지는 차로 이동.
칠성은 자신이 업무차 주로 가게 되는 곳들에 이렇게 하나씩 안전가옥을 만들어 두었다.
안전 가옥 화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 대게 주택이나 건물을 통째로 구매하곤 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뭐 이렇게 까지 공을 들여 돈낭비를 하냐고 핀잔을 줄지 몰라도, 칠성의 판단엔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 이었다.
물론, 이런데 쓰이는 돈이 크게 아깝다는 감각을 주지 못 할 정도로 넘쳐나는 돈도 이런 결정들에 한 몫 하기도 했다.
수확선이 등장하는 대공습까지 이제 5주 조차 남지 않은 상황,
대비를 위한 바쁜 일정에 대한 브리핑을 칠성이 아직도 이어가는 찰나. 칠성의 눈에 무언가 보였다.
“저건... 뭐야?”
리무진의 창 밖에 보이는 인파에 대한 이야기 였다.
그들은 커다란 판넬에 칠성의 얼굴을 붙이는가 하면,
무언가 알 수 없는 붉은 구호가 새겨진 현수막을 휘두르기도 했으며.
커다란 티브이 스크린에 칠성이 어느 언론사와 한 인터뷰를 틀어두곤 연신 박수를 치는 등 알 수 없는 행동을 했다.
시위대인가?
자연스럽게 그런 쪽으로 칠성의 생각이 기우는 와중에 성진의 설명이 이어진다.
“저기 그게... ‘칠성교’입니다.”
“뭐? 칠성교?”
양화대교도, 한남대교도 아니고 칠성교란 말 인가?
칠성의 이름을 딴 대교의 건축 기념 굿판이라도 벌이고 있다는 소린가?
“네 그게... 신흥종교입니다.”
“뭐어?!”
예상치도 못 한 답변에 양 눈이 쟁반만큼 커진 칠성.
“와아아아아아-!”
“재림신 칠성님을 믿지 않는 자 몬스터들이 득실득실한 지옥에 빠질 것 이고 -!”
“김칠성! 김칠성! 김칠성! 김칠성!”
정말이었다.
티끌만큼 내린 리무진 창문.
그 사이로 어마어마한 소음들이 서라운드로 밀려들어온다.
“저 인파가 전부?!”
“네... 그게 생각보다도 규모가 큽니다. 신자도 국, 내외 가리지 않고요.”
‘칠성교’를 상징하는 듯한 백의를 입은 사람들이 대로변에 끝도 없이 열을 맞추어 서 있었다.
옷은 모두 백색이라는 특징 뿐, 입은 옷들은 각양각색이었다.
흰색 여성용 정장에서부터, 흰색 추리닝 까지.
흰색이라는 드레스 코드만 맞추면 오케이 인 것 같았다.
어림대중으로 봐서 수 천 명이다.
그중에는 정말로 외국인들도 상당 수 섞여 있는 것 이 보였다.
나이, 성별, 인종과 국적을 넘어선 신흥종교!
미국 대통령이 선신善神 이니, 악신惡神 이니.
알 수 없던 소리를 하더니.
이제는 정말 문자 그대로 신 취급을 받게 되어버린 칠성.
“나 참, 무슨 정신 나간 짓들인지!”
칠성이 진저리를 쳤다.
좋은 소리도 1절만 하라고 했다.
그런데 그냥 팬클럽도, 지지 세력도.
아니 그래, 지지정당이나 그런 것도 아니고.
노벨상 받게 생겼단 소리를 듣고도 은연중 그러려니 했는데,
이제는 정말로 칠성을 신으로 모시는 종교라고?
이건 1절이 아니라 한 13절 쯤 나간 것처럼 보였다.
더불어 정신도 나가보였다.
“어어어.”
“저, 저게 맞지 않습니까? 번호가 3...7....”
“김칠성, 김칠성 님이십니다. 여러분!”
그때였다.
일순간에 칠성교라는 백의의 신자들이 칠성의 리무진을 알아보고 펄쩍 뛰기 시작했다.
“세상에!”
성진의 얼굴이 파릿하게 질렸다.
저 많은 인파가 리무진을 향해 뛰어들기라도 한다면!
환호하며 당장이라도 덤벼들 준비를 하는 것 같은 인파.
눈을 딱 감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성진.
하지만 성진이 우려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칠성교 내부는 상당히 질서 정연하게 관리가 잘 되는 것 인지, 아무도 리무진으로 덤벼들거나 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격렬히 환호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무언가를 날려 보내는 것이 툭툭 칠성 리무진의 창문을 앞뒤로 건들 인다.
그들이 입은 옷처럼 하이얀 백색의 종이 비행기다.
펑! 펑! 펑!
그들이 쏘아올린 흰색의 꽃가루도 칠성의 리무진 주변을 흩날린다.
“김칠성님!”
“지구를 구하신 김칠성님!”
“엉엉엉!”
게다가 이제는 칠성으로선 무엇인지 짐작 도 할 수 없는 노래까지 함께 부르는 수천의 사람들.
너무나도 광기어린 이 분위기에 덩달아 칠성의 심장마저 두근두근 할 지경이었다.
“휴우.”
그렇다면 뭐 어쩌리!
동참 할 수 밖에!
지이이잉-.
내려가는 칠성의 리무진 창문.
“자, 장관님!”
“예에~ 제가 김칠성입니다.”
당황한 성진이 말렸지만 이미 질러버렸다.
열린 창문사이로 칠성이 한손을 내밀고 사람들을 향해 흔들어 준다.
“꺄아아!”
“김칠성님께서 날 보셨어!!”
정말로 까무라쳐서 기절을 하는 여자.
보지도 않았는데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며 기쁨에 미쳐서 날뛰는 남자.
칠성이 손을 흔들며 지나가자 대로변에 서있던 인파들이 마치 파도타기를 하듯 울렁울렁 거리며 어마어마한 리액션을 한다.
“이거....”
그들의 그런 모습을 보던 칠성.
두 눈이 반짝인다.
“이거 재밌어!!”
“예?!”
장난기가 발동했다.
기진맥진한 성진이 깜짝 놀라 반문할 때, 이미 칠성은 창문에 몸을 내밀더니 리무진을 타고 올라 리무진 천정 위에 두 발로 당당하게 섰다.
고오오오오-.
모두가 귀신같이 숨을 죽였다.
방금까지 왁자지껄하던 분위기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고요한 분위기.
땡그래진 사람들의 눈.
칠성의 입술에 집중된 수천명의 시선!
고양된 분위기.
무엇이라도 당장 터질 것 같은 이 순간!
칠성은 잠시 눈을 감고 고민했다.
당신은, 당신을 하늘처럼 떠받드는 종교가 생겨난다면 무엇을 해 볼 것 인가?
조금 말이 안 되는 가정이지만,
지금 칠성에겐 당장 눈앞의 현실이었다.
수도 없는 고민.
아이고, 그러고 보니 이거 회사 근처라 또 직원들이 보게 될 지도 모르겠는데?
녹화당하면 또 전 세계 사람들이 돌려 볼 테고.
각고의 머릿속 수 싸움 끝에.
칠성의 결정이 끝났다.
스윽.
칠성의 한손이 주먹을 쥐고 하늘을 향해 치켜 올려졌다.
그리고 다음순간.
“너의 말이 그냥 나는 웃긴다.”
그 긴 고민은, 선곡에 대한 고민이었다.
칠성이 고른 이 노래가 나왔던 것은,
아마도 칠성이 초등학교 시절 즈음 이었다.
티브이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털털하고 당당한,
하지만 시대의 섹시 아이콘이었던 여 가수가 냈던 앨범.
까무잡잡한 피부가 인상적이었던 그녀의 당당함이 그대로 담긴 노래.
이 노래가 어린 칠성에겐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가사도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언제였나.
고등학생 때 쯤 그 오래된 노래를 다시 찾아 듣게 된 것을 계기로 칠성이 수도 없이 반복 해 듣게 된 노래 중 하나 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수도 없는 길을 겪고 난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그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처음엔 조용히 홀로 울려 퍼지던 칠성의 음성.
하지만 이내 이 노래를 아는 사람들 중 누군가가 그들이 가지고 있던 대형 스피커에 자신의 스마트폰을 연결해 이 노래의 원곡 반주를 틀었다.
그 뒤 부터는 광란의 도가니였다.
천천히 굴러가는 리무진 위를 무대 삼아 어설프니나마 춤까지 흉내내 가며 노래를 부르는 칠성을 수 천 명의 사람들이 아우성 하며 모두가 따라 하기 시작했다!
안 따라 할 리가 없었다.
엄연히 종교 집회였다.
신 본인이 참석한!!
근처에서 일어난 일대 소란에,
수헌부 직원과 헌터들도 고개를 빼꼼 내밀고 그 관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밖으로 나와서 구경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중에는 한솜이도 끼어 있었다.
정말로 이상한 상황을 정말 신기하게도 즐기고 있는 칠성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한솜이.
“이야! 우리 장관님 잘한다!”
“와하하!”
칠성과 수 천 명이 거의 이십여년 전 여가수의 안무와 노래를 따라하는 관경을 재미나게 보는 헌터들.
잠깐의 웃음.
공습을 준비하기 위해 잔뜩 긴장했던 어깨가 녹아내리는 느낌이다.
“쉬지 않고 난 계속 달려가. 겁내지 말고 나를 따라와”
처음에는 그저 웃음이었다.
그런데 노래가 계속 될수록.
마력으로 울려 퍼지는 칠성의 목소리가 담고 있는 가사가 헌터들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칠성의 의도된 선곡일까?
기묘하게도.
지금 현 상황과 가사가 슥 들어맞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칠성은 정말 끝도 없이 달려가는 존재였다.
도저히 믿을 수 가 없을 정도로.
그런 그를 따라가야 하는 헌터들에겐 너무나도 겁나는 일 투성이였다.
이 상황에서 칠성을 믿지 못 한다면 조금도 나아갈 수 없을 것 이다.
자신의 목숨이 5주 남았다면, 제 정신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은 크게 많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을 따라가야 옳은지 고민할 시간조차 없었다.
세태에 휩쓸려 인생을 낭비하는 것 은 아닐까?
수확선을 막을 수 있다는, 가능성 낮은 도박에....
가족들과 마지막 정리 할 수 있는 시간을 빼앗기기만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는 헌터들도 적지 않았다.
“누구보다 나를 더 믿는 걸. 못이기는 척 나를 따라와.”
못 이기는 척 따라와라.
그렇게 말하는 칠성의 눈은 어느새 자신을 구경나온 헌터들을 향하고 있었고.
그 눈빛은 어느 때보다 진중했다.
노래 소절이 지나가는 0.1 초 간의 짧은 틈.
칠성을 지켜보던 헌터들의 눈빛도 반짝였다.
끄덕.
마치 섬광같이. 무언가가 전달되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이어진 노래가 모두 끝나고,
다시 리무진으로 쏙 들어온 칠성.
리무진은 가볍게 속도에 박차를 가해 수헌부 건물 주차장 속으로 들어갔다.
“아이고, 정말 못 말리겠습니다.”
별 일 없어서 천만 다행이다.
역시 모시기엔 내 목숨이 아홉 개라도 모자란 장관이다.
라고생각하며 이마의 땀을 훔치는 성진.
“그 노래가 참 좋아. 그지?”
그런 성진과는 딴판으로,
남아있던 미지근해진 커피를 들이키며 방금 있었던 일을 곱씹어 보는 칠성.
은은한 미소가 얼굴에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