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무집행 흑마법사-125화 (125/145)

# 125

S5 : 19화

아시아의 용.

아시아 대륙의 동쪽 한편을 크게 차지하고 있는 나라, 중국.

동양인들에겐 흔히 ‘대륙’ 이라고 불리는 이곳,

나라의 이름도 몇 번이나 바뀌었고, 얽힌 역사도 많고.

그래서 역사에, 혹은 없어진 왕조들이 남겨둔 유적지도 워낙에 많다.

그 중에서 2028년인 지금까지도 많은 관광객들이 꾸준히 찾아오는 명소 중 하나.

중국,

베이징,

자금성.

본래 원나라 왕조가 세웠던 대도의 황성이 있던 자리,

이종족인 원나라를 몰아내고 명나라를 세운 홍무제가 지시해 지은 성.

이민족들로부터 나라를 되찾은 역사적 의미 덕 분인지, 이 성은 그야말로 역대 최고의 인력과 재료들을 쏟아 부은 성.

그 유명한 천안문도 이 자금성의 내성 남문이다.

부지의 넓이만 약 22만평의 광활한 공간,

금빛의 기와지붕들이 햇빛아래 창연히 빛내는 와중이었다.

쿠오와아아아아-.

어디에선가부터 날아온,

거대한 기차 같은 길죽한 그림자가 자금성의 북쪽 끄트머리부터 드리우기 시작했다.

이미 정체불명의 그것에 대한 소식을 듣고 도망치던 와중이었던 관광객들과 현지 주민들,

관광지에서 꼬치에 구운 떡을 팔던 아주머니가 허공을 향해 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게중에는 하늘에 지나가는 그것을 보며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 까지.

도망가는 사람들과 기도하는 사람들이 어우러진 이상한 관경.

그 관경을 만들어 내고 있는 주인공은

베이징의 북쪽, 하이퉈산에서 나타난 창공의 문에서 튀어나온 실체화 몬스터였다.

유달리 거대한 몸체,

자금성의 절반에 해당하는 길이.

하늘을 유영하고 있는 몬스터는 사람을 해친다거나 하는 기색도 없이 차분히 허공을 천천히 나는 중 이었다.

물론 실제 속도가 느린 것 은 아니었지만, 워낙에 거대한 덩치다 보니 마치 슬로우 모션으로 느리게 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최근에 나타난 키메라 몬스터들이 그렇듯,

이 몬스터 또한 기존에 지구에 있는 현실 속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비슷한 모습이 있다면 신화 속 에 있는 존재.

중국인들이 신성시 하는 영물 중 하나.

청룡.

영문 없이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던 청룡,

그 앞에 날아드는 콩알 만 한 무언가.

쐐애애애액!

“오!”

묵빛의 갑옷, 크로우를 입은 채 검은 망토를 펄럭이며 날아 온 칠성.

근처까지 텔레포트를 한 뒤, 청룡을 발견하곤 날아 온 것 이었다.

청룡이 눈앞에 나타난 칠성을 보곤 제자리의 허공에 멈추어 섰다.

“이야, 그림 되네.”

칠성의 말 대로였다.

지극히 동양,

중국 대륙의 정취가 느껴지는 자금성 위 허공에 똬리를 튼 청룡.

유명한 동양화 속 한 폭의 풍경 같은 모습이었다.

“흠. 얌전하네.”

칠성을 신기하다는 듯이 관찰만 하고 있는 청룡.

칠성의 입장에선 신기할 따름이었다.

애초에 이 문, 방주 속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은 거의가 인간에 대한 순수한 공격 본능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어디에서 발현된 문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라고 해도,

실체화된 몬스터가 인구밀도가 높은 대도시로 날아드는 것도 최대한 많은 인간을 공격하고자 하는 그들의 본성에 부합한 습성이었던 것 이다.

그런데 이렇게 주변에 관광객이며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마치 아무런 생각도 없다는 양 평화롭게 허공을 유영하고 있는 청룡이 칠성의 눈에는 이상 할 수 밖에.

“뭐, 얌전한건 고맙긴 한데. 착한 애 라도 별수 없지.”

칠성이 그런 말을 하며 마법을 캐스팅하려는 와중이었다.

- 이름이 무엇이냐.

“응?”

칠성의 머릿속에 전해지는 전언.

뭐지?

의문을 가진 칠성.

자신을 골똘히 바라보고 있는 청룡과 눈이 마주친다.

뭐야, 설마 몬스터...가?

몬스터가 말을 건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 상황.

영물을 모델로 해서 다른 것인가?

입을 쩍 벌리고 기험하던 칠성이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답했다.

“흠. 김칠성이다. 왜?”

피식 웃은 칠성이 캐스팅을 더 빨리하기 시작했다.

“살고 싶어서 수 쓰나본데 그런 잔머리 안 먹힌다. 형이 바빠.”

어떻게 되먹은 건지야 모르겠지만,

이제 몬스터도 머리를 쓰는 고만.

열심히 머리 굴려서 시간 끄는 것 이야 기특하다만.

빠르게 정리하고 다음 장소에 가 봐야 한다.

칠성이 지금 뛰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지도 모르니까.

마치 호수를 뚫어보듯 한 눈빛으로 칠성을 찬찬히 내려다보던 청룡.

- 네가 필요 없어지면 버릴 간사한 인간들이다. 너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느냐?

차분한 목소리로 울리는 청룡의 전언.

청룡을 없애버리려던 칠성의 손길이 멈춘다.

“흠....”

아차, 싶었다.

이런 질문을 던져 올 줄이야.

청룡의 말이야 사실이었다.

인간은, 물론 칠성도 인간이기야 했으나.

덧없이 간악하고 자기 편의적 존재다.

필요가 없어지면?

그때까지 기다릴 것 도 없었다.

그 누구보다 칠성이 필요한 상황에도,

오히려 누구보다 그들을 도우려고 했던 칠성을 의심하는 이들이다.

♬ 이 세상에 에누리 없는 장사가 어딧어 ♪

선의를 베풀어주면 의심부터 하는 게 인간이다.

권선징악은 그야말로 판타지 소설 속의 이야기,

현실은 권악징선의 세계관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 필요하다.

‘그래서’ 로 끝내기엔 안타까운 심정.

“...나는 인간을 믿어.”

칠성이 나직이, 하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 했다.

청룡의 눈을 보고, 아스라한 미소를 지으면서.

많은 일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청룡은 한참이나 칠성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그 눈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했다.

칠성의 대답이, 본심으로 한 말이라곤 믿겨지지 않는단 듯이.

두 인간 외 생물의 눈싸움이 이어지다가.

- 그런가.

청룡이 먼저 눈을 감았다.

많은 의미를 포함한 짧막한 전언.

‘아직도 그런 미련한 인간이 있는가.’

이런 말은 속으로 삼키면서 말이다.

지극히 미련한 길이지만,

미련한 길을 걷는 자 만이 기적을 만들어 내는 법.

“이제 시작 할까?”

칠성이 자신의 오른쪽 손바닥위에서 라이트닝 마법의 덩어리를 작은 공처럼 굴리며 말 했다.

응축된 벼락의 기운이 번쩍번쩍 스파크와 함께 빛을 내 뿜고 있었다.

어느새 그들의 대결을 위한 무대처럼, 사방에서 몰려든 먹구름이 그림자를 드리웠다.

- 그러도록 하지.

고개를 끄덕인 청룡, 그리고 칠성.

두 인간 외의 존재가 격돌 했다.

“캬오오옹!”

“하앗!”

구름 위로 치솟은 두 인간 외 존재가 격전을 벌였다.

쿠르르릉-!

구름 밑에 있는 사람들 입장에선 구름 너머로 무언가 번쩍! 벼락같은 빛을 내며 굉음을 일으키는 것만이 보였다.

그리고 잠시 뒤....

청룡은 자연계 마법들과 강력한 이빨, 몸체로 분전했으나 칠성의 상대는 되지 못 했다.

청룡이 눈을 흰자위만 보이도록 까득 뒤집으며 머리가 뒤로 넘어갔다.

그 순간, 청룡의 몸체가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그리곤.

쩌저저저적-!

청룡의 갈퀴가 있는 목 뒷부분에서부터 금이 쭉 쭉 가더니 빛과 함께 겉을 감싸고 있던 허물이 벗겨졌다.

허물을 벗어낸 청룡은 청아하고 아리따웠다.

맑은 기운이 감도는 청룡은 더 이상 괴이한 키메라의 모습이 아니었다.

청룡이 빠져나온, 괴기한 이빨이 온 몸 곳곳에 자라난 모습의 허물은 잿빛으로 물들며 서서히 하늘하늘 땅 위로 떨어져 내린다.

입에는 종전까진 볼 수 없었던 번쩍이는 여의주를 물고 저 먼 하늘을 향해 똬리를 틀며 올라가는 청룡.

더 이상 몬스터라고 보기엔 어려웠다.

칠성이 올라가는 청룡을 향해 손을 가볍게 흔들어 주었다.

쿠웅!

청룡의 허물이 자금성 위로 부딪히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별 일이 다 있구만.”

청룡과의 여운 있는 만남 뒤 칠성은 다시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팔목의 디스플레이에선 쉴 새 없는 지원요청의 메시지가 갱신되고 있었다.

칠성 역시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했다.

번쩍!

푸른 빛 마나의 폭풍과 함께 칠성이 사라진다.

번쩍!

부산에 나타난 선글라스를 쓴 거대한 사이클롭스.

번쩍!

스페인에 나타난 거대한 골렘.

이라크에 나타난 머리가 9개 달린 히드라.

대만에 나타난 불타는 판다.

페루 슬라임

몽골 전격의 오우거

일본 코볼트 삼대장.

가나

네덜란드

노르웨이

바레인

스리랑카

수단

...

그리고

모든 도어 완전 개화까지

[ 1 : 48 : 57 ]

달칵.

UHD 작전실,

번쩍이던 패널이 정지했다.

“...끝인가.”

전 지구 전역에 나타난 도어들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장영실 소장이 카운트 다운을 중지했기 때문이다.

지구에 심어져 있던 모든 도어의 씨앗이 동시 개화하는, 지구 전 인류의 멸망을 기도하는 ‘수확’ 절차 중 첫 번째.

모든 방주(도어) 의 개화가 고작 1시간 12분 만에 모두 제압되었다.

10년간에 걸친, 의문의 물체 ‘도어’

그리고 ‘몬스터’ 그리고 그에 대응했던,

‘헌터’를 필두로 한 처절한 인간들의 저항.

마치 새로 등장한 포식자와 같은 이형의 존재들과 끝도 없는 싸움을 이어가던 순간순간.

많은 이들의 목숨이 버려지고,

하루하루를 불안에 떨며 살아야 했던 수많은 날 들 속의 수 없는 사람들.

그 모든 게.

“끝났다.”

장영실 소장이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 입을 뻐끔거렸다.

작전실 안의 수많은 UHD 직원들 역시,

지금 자신들의 눈앞에 벌어진 상황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었지만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때였다.

번쩍!

바닥에 스스슥 그려지는 마법진.

푸른 불빛과 함께 반가운 모습이 등장했다.

한껏 허름해진 복장.

묵빛의 갑옷은 어느새 잿빛으로 바래있었다.

스스스슥-.

뚜벅, 뚜벅

칠성이 한걸음 걸어 올 때 마다 점차 그 형체가 흐릿해 지더니 사라져 버리는 갑옷.

“끝난 거 맞지?”

장소장한테 어깨를 으쓱 하며 묻는 칠성.

“그...그런 거 같은데요.”

장소장이 자신 없는 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흠~”

패널을 한번 훑어보던 칠성.

“전 채널 연결해.”

그러고는 마이크를 잡는 칠성.

장영실 소장이 칠성의 명령에 따라 UHD 요원과 직원 전원이 듣고 있는 채널로 칠성의 마이크를 연결한다.

“아. 아.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칠성의 목소리는 마이크를 통해 전세계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던 UHD 요원들의, 그리고 UHD 회원국의 헌터들 통신기 속으로도 들어갔다.

[ 여러분 덕에... 뭐 또 제 덕에. ]

황량한 절벽가에 걸터 앉아있던 UHD 요원들이 귓속으로 들려오는 칠성의 음성에 집중한다.

다른 곳,

[ 1차 대공습을 무사히 막아냈습니다. ]

눈에 띌 정도로 기울어진 에펠탑을 바라보던 유럽 연합국의 헌터들이 콧물을 닦으며 칠성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 우리에게 남은 전쟁이 있지만. 오늘은 가족들에게로 돌아가십시오. ]

[ 오늘부터 일주일간 휴가를 드리겠습니다. 가서 가족들에게 사랑한다고 전하십시오. ]

그간 용서하지 못 했던 부모님에게 찾아간 김태홍.

멀끔한 정장에 한손엔 네모난 선물세트를 든 모습이다.

아무렇지 않게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태홍을 보고 할 말을 잃은 부모님들.

서로 부둥켜안는 태홍의 가족들.

[ 가족이 없다면 사랑하는 사람들, 고마운 사람들을 찾아가세요. ]

자신이 나온 바티칸 헌터 스쿨의 수녀님을 찾아간 한솜이.

한솜이를 발견한 수녀님이 늙은 얼굴의 주름을 자글자글 잡으며 밝게 미소 짓는다.

[ 이 세상 사람들을 다 지켜야 한다는 건 허망한 말 입니다.]

[가서, 여러분이 무엇을 지키고 있는 건 질 확인하십시오. ]

집으로 돌아온 김민수 팀장.

한손에는 커다란 곰인형을 들고 있다.

딸 예린이가 아빠를 보고 달려 나오고, 김민수 팀장이 웃으며 예린이를 안아 든다.

[ 남은 전쟁, 우리의 손에 달린 건 기껏해야 인류 역사의 존망입니다. ]

[ 개인의 행복에 비하면 별 것 아니죠. ]

지우혁이 ‘노숙자 영감’ 으로 부르던 취룡 하원준은

여전히 노숙자 차림으로 한강변이다.

그가 걸터앉은 것은 다름 아닌 한강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실체화 몬스터, 몬스터는 목숨이 끊어진지 오래로 보인다.

뿅, 소리와 함께 지우혁이 감사의 표시로 가져다 주었던 고급 와인을 들이키는 하원준.

이내 표정이 썩더니 들고 있던 와인병의 라벨을 확인한다.

맛이 마음에 안 드는 기색이지만 다시 입을 가져다 대는 하원준.

[ 그리고 오늘은 오늘의 승리를 즐깁시다. 십년 만 이니까요. ]

마이크에 대고 말을 이어가던 UHD 작전실 안의 칠성.

작전실 안 백 여명의 직원 모두가 칠성을 집중해서 보고 있다.

“뭐 해? 즐기자니까?”

“예아!!”

누군가가 샴페인을 터뜨린다.

그것을 신호탄으로 흥겨운 리듬의 음악이 UHD 본부에 가득 들어찬다.

환호하는 사람들.

정체를 알 수 없는 마계의 이종족들과의 첫 번째 전쟁의 승리를 자축한다.

프랑스에서 에펠탑을 지켜보고 있던 유럽연합의 헌터들도 맥주 캔을 부딪히며 웃는다.

전 세계 곳곳에서,

방금 전 까지 목숨을 걸고 싸웠던 헌터들이 축제의 분위기에 물든다.

얼마 가지 않아 모든 것을 건 예견된 전쟁이 다시 시작될 상황,

이런 타이밍에 자축을 하고 휴가를 주다니,

언 듯 보면 말이 안 되는 처사이지만 모두가 진심으로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내는 것 이 바로 칠성이 가진 진정한 카리스마였다.

떨지 않아도 된다.

이것은 자신감의 확인이자,

그들이 지켜낼 세계가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확인이었다.

모두가 전쟁터 속 작은 짬에 기뻐하며, 전장을 해쳐온 전우들과의 우정을 다지는 한 때.

마족의 방주 관리자가 예고한 차원의 문과 ‘수확선’ 의 등장할 날짜까지.

앞으로

5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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