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무집행 흑마법사-124화 (124/145)

# 124

S5 : 18화

칠성은 그저.

방황 중 이었다.

쉬이이이익-!

공간과 공간을 뛰어넘으며.

세계 각지의 명소들 위에서 발밑의 사람들을 내려다 보는 것 이 전부였다.

중국의 공자상 머리 위에 올라가기도 하고,

브라질의 예수상 팔에 걸터앉기도 하고.

어느 등대 위에 서서 해변의 사람들을 내려다보거나,

해가 완전히 진,

조명 불빛에 의지해 연습중인 치어리더들을

널따란 축구 경기장의 어두운 한 편에 앉아서 구경하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낚시터에 앉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그들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전능한 신이라도 된 듯 역사적 명소 위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보기도 했다.

방황을 하기엔 텔레포트라는 능력은 정말로 유용했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 하고 있는 유일한 생각.

‘내가 이럴 가치가...있는 가?’

갑작스레 찾아온 회의감.

위기의 순간, 자신은 모든 것을 걸 기세로 다가오는 위협을 물리칠 준비에 여념이 없었는데,

그 사이 사람들은 자신에게 고까운 프레임을 씌워 마녀 사냥을 시도했다.

무언가를 기대하고 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나락 같은 실망감이 느껴졌다.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그런 칠성이,

씻지도 않고 단벌로 전 세계를 누비어 폐인 같이 변한 몰골로,

스웨덴 공원의 한 벤치에서 와플을 씹을 무렵이었다.

“어!”

누군가가 지른 소리에 고개를 든 칠성.

보아하니 아이가 풍선을 놓친 것 같았다.

간단하게, 아이가 놓친 풍선을 벤치를 밟고 풀쩍 뛰어올라 잡은 칠성.

풍선의 그림자에서 뻗어 나온 보이드 에게서 약간의 도움도 받은 것 이었다.

그림같이 풍선을 허공에서 낚아 채 착지한 김칠성.

“자.”

풍선을 놓친 꼬마에게 풍선을 내미는 칠성.

망설이더니 받아드는 꼬마.

“고맙습니다.”

“그래 착하다.”

다시 벤치에 앉은 칠성.

근처에선 금속 탐지기를 든 사람이 공원 여기저기를 누비고 있는 것 이 보인다.

아마도 도어, 방주의 씨앗인 에그를 찾는 작업을 하는 중 이리라.

아마도 지금 칠성이 힘이 빠져 있는 이 시각 에도,

지구의 누군가는 다가올 재앙을 위해 필사적으로 준비 중인 것 일 것 이다.

“휴.”

한숨을 내쉬는 칠성.

“아저씨.”

그런 칠성에게 들려오는 목소리.

고개를 들려보니 아까 그 꼬마다.

칠성이 날아가는 풍선을 잡아주었던 꼬마.

“이거 먹어요.”

꼬마가 내미는 것 은 청록빛의 젤리다.

사과향의 젤리.

“너 먹지.”

“내꺼도 있어요.”

고사하는 칠성에게 자신의 것을 보여주는 꼬마.

풍선을 든 꼬마가 자연스럽게 칠성이 앉은 벤치의 옆에 기어올라 앉는다.

그리고는 젤리를 까먹는 꼬마.

그런 꼬마를 물끄러미 보던 칠성.

꼬마가 준 젤리를 입안에 까 넣는다.

달다.

꼬마가 자신이 준 젤리를 먹는 칠성을 보며, 이갈이를 하느라 앞니 두 개가 없는 이를 드러내 보이며 환하게 웃는다.

우스꽝스럽게 빠진 치아 덕분에 마치 바보 삼룡이 같은 모습인데, 뭐가 좋은지 싱글벙글 웃는 꼬마.

그 모습을 보곤 피식 웃는 칠성.

그것은 아주 작은 선의의 오감.

하지만 여기서 마음이 안정된다.

다시, 인류를 구해낼 용기를.

미움 받고도 원망하지 않을 자신을.

늘 그래왔듯.

눈앞에 닥쳐올 위기를 쳐내는 삶으로 돌아갈 용기가 샘솟았다.

칠성이 문 듯 벤치에서 벌떡 일어났다.

겉모습은 전혀 변한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생기 없는 폐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세계를 구해낼 영웅을 다시 일으키는 데는,

거창한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이름 모를 꼬맹이와의 작은 교감이면 충분했다.

구해 내 줄게.

‘너희들이 살아갈 세계를.’

칠성의 몸이 순식간에 아지랑이처럼 나타난 묵빛의 갑옷에 휩싸인다.

검은 망토가 펄럭인다.

칠성과 함께 있던 아이가 턱을 딱 벌리고 칠성을 바라본다.

“우아아아....”

반짝이는 눈동자.

마치 변신 로봇을 눈앞에서 본 듯한 표정이 된다.

허공에 떠오른 칠성이 손 인사를 던진다.

콰슝!

마주 흔들어주는 꼬맹이의 손 인사를 받은 칠성이 대기를 찢으며 저 멀리 날아간다.

* * *

푸른 별 지구.

인류가 살아가는 꿈의 별.

우주에서 바라본다면 아름다운 파란색 구슬 같은 그 행성의 위.

그 행성의 표면을 돌연 짙은 검은빛의 마나가 훑고 지나간다.

지구의 표면 위로 자그마한 콩알 같은 검은 것 들이 따문따문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내 그 개수를 셀 수도 없이 증식하는 검은색 반점들.

전 세계에 순식간에 나타난 만 여 개의 도어.

도어 안의 키메라 몬스터들이 모두 실체화 되어 인류 학살 기계로 돌변하기까지 앞으로 3시간.

약 5천만년의 인류 역사.

문명의 존폐의 승부 결정이 단 3시간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대한민국 강북의 UHD 본부.

번쩍!

타각. 타각. 타각.

전략실에 한줄기 섬광과 함께 등장한 김칠성.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두쿵!

『2:57:55』

앞쪽의 거대한 모니터엔 도어의 몬스터들이 전원 실체화 몬스터가 되어 이 세상에 튀어나올 시간에 대한 카운트다운이 이뤄지고 있었다.

옆에 집계되고 있는 총 도어의 숫자는 종전 1만 여개에서 단 3분 만에 9천개 단위로 떨어졌다.

전 세계의 헌터들이 도어 헌터로 맹활약 하고 있는 덕분이었다.

이대로라면, 그러니까 정말 모든 도어가 개화하는데 3시간이 걸린다면 인류는 아무런 걱정이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 세상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리는 일은 없다.

칠성이 처음 헌특부에 취직 해, 헌터 일을 시작했을 때 만 하더라도 모든 도어의 개화시간.

즉 도어 안의 몬스터가 각성해 더욱더 강력하고 거대한 모습으로 현실에 튀어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

평균 3시간 이상이었다.

많게는 6시간, 8시간이 지나야 개화될만한 던전들도 있었고.

대부분의 던전은 3시간 이전엔 미동도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경향이 급변했다.

원래부터 조금씩 줄어들고 있던 개화시간은,

이제 천차만별이 되어 단 몇 십분 만에도 실체화 몬스터가 튀어나오곤 했다.

미군에 키메라 드래곤이 실체화 몬스터가 되었던 것 도 비슷한 맥락이다.

예정되어있던 시간보다 훨씬 빠른 개화였던 것 이다.

그리하여, UHD에서 추산한.

‘모든’ 던전이 개화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3시간.

하지만 그 이내에도 얼마든지 던전 개화와 실체화 몬스터가 사람들을 덮치는 일이 일어 날 수 있었다.

철컥!

칠성이 장소장으로 부터 건네받은 디스플레이를 갑옷 위의 왼팔에 장착했다.

“비상 출동 요청이 오는 곳 중, 위험도가 높은 순의 장소부터 뜨도록 배치 한 거예요.”

“좋아. 이거면 되겠어.”

UHD로 긴급 출동 요청이 오면,

칠성 팔에 연결된 디스플레이로 해당 위치의 명칭과 좌표 등의 상세한 정보를 띄워주는 기계다.

순간이동으로 활약 할 수 있는 칠성의 능력을 최대한 극대화 해 활용할 수 있도록, 장소장이 미리 연구해 준비 해 둔 물건이었다.

피핑!

그리고 칠성이 착용한 디스플레이에 주홍빛 글씨로 가장 윗 상단에 뜨는 위치.

방금 긴급 출동 요청을 한 지역,

그리고 UHD에서 현재 지구상에 가장 위험한 곳 이라고 판단한 이 지역.

그리고 지금 당장 출동해야만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사료된 이 지역.

단걸음에 달려가도 모자랄 지역인데,

단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칠성의 발목을 잠시 잡고있었다.

칠성에게는 별로 좋은 추억이 있는 곳 은 아니었다.

“대표님!”

호출을 받았음에도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는 칠성을 재촉하는 장소장.

“그래.”

눈빛을 번뜩인 칠성.

마나체인저2 - 크로우의 헬멧을 다시금 고쳐 쓴다.

내키지 않지만 걸음을 재촉한다.

칠성이 향한 곳.

한때 김칠성을 그토록 밀어냈으나,

지금은 전 세계 누구보다 원하고 있는 그곳.

미국, 뉴욕!

* * *

콰르르르륵-!

차라리 눈을 의심하고 싶은 지경이었다.

도시의 한산한 외곽 지역에서,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로 본능적으로 뛰어 온 몬스터.

너무나도 빠른 도어의 개화시간 덕 분에,

다른 지역의 도어를 처리하고 있던 미국의 헌터포스 대원들은 미처 손 써 보지도 못 했던 것 이다.

그리하여 나타난 실체화 몬스터,

어마무식하게 거대한 덩치.

기어코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맨손으로 쥐어 잡고 기어오르고 있는 것 은, 거대한 고릴라 형태의 몬스터.

“키와아아앙!!”

반은 생물체, 반은 기계 같은 그 괴 생명체가 아찔한 울음을 내뱉었다.

흔히 뉴욕 배경의 괴수 영화.

킹콩이 생각나는 한 장명이었다.

영화와 다른 점이라면 비대한 기계 덩이 몸을 그가 기어오르려는 빌딩이 견디지 못 한 다는 점.

또 한 가지.

감성적이었던 영화 속 몬스터와 달리,

이 키메라는 오로지 인류의 살육을 위해 디자인 되었다는 점!

“키왕!!”

“꺄아아아악!!”

차도는 마비되었고,

서로 밟고 밟히며 도망가느라 바쁜 사람들.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뱉은 녀석이 발밑의 인간들을 손으로 한 움큼 퍼 올려 입가에 쳐 넣고, 아스팔트 조각들과 함께 우걱우걱 씹어 먹으며 전진했다.

마치 심심풀이 아몬드라도 씹는 듯한 모습.

콰드득!

녀석이 옆의 작은 3층 건물을 한손으로 뽑아선,

저 멀리 도망가는 인간의 무리를 향해 던진다.

슈왕!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막힌 골목 위로 3층 건물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번쩍!

하지만 거기까지.

슈우우웅-.

목숨의 절명을 예감하고 잔뜩 움츠러들었던 사람들이 조심스레 머리 위로 시선을 향하자 보이는 것.

태양을 등지고, 3층 건물을 잡아 낸 채 허공에 떠 있는, 묵빛 전신 갑옷을 입고 있는 김칠성.

아이러니 하게도,

그런 칠성에게 목숨을 구제받은 이들.

그들 손에 들려있던 피켓이 힘을 잃고 바닥을 향한다.

그들은 바로 그 누구보다 칠성을 이 세상에서 지우고 싶어 했던,

타도 김칠성의 시위대 무리였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자신을 없애고 싶어하던 사람들을 온 몸을 구해 던진 칠성.

조용히 빌딩을 한편에 내려놓고,

아무 말 없이 묵묵히... 향하려...다가.

“봤냐?! 새키들아! 나 없으면 니들은 방금 어?! 한순간에 그냥 아주!”

허공에 떠서, 지금 아주 매우 폼 났었는데 스스로 폼을 깎아먹으며 시위대에게 실컷 면박을 주는 김칠성.

“아주 니네 케챱됐어. 알어? 두유노우 케챱?”

뭐, 양키들이니 케챱은 알겠지.

얼이 빠진 시위대를 내버려 두고 목표물인 몬스터에게로 날아가는 칠성.

“크왕왕왕아아앙!!”

칠성을 알아본 건지,

음파로 주변의 건물이 휘어지도록 절규하는 기계 킹콩.

물론, 이런 추억을 자극하는 몬스터라니,

칠성도 놀아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지만.

“형이 존나 바빠.”

[마나 전환, 백마나.]

청마법의 비행 마법으로 날아가던 칠성,

순식간에 허공에서 숙련된 무투가들의 꼬장꼬장한 기운의 파장의 마나로 전신의 마나가 뒤바뀐다.

그리고 허공에서부터 자세를 잡은 칠성.

“*청룡 열열각*!!”

파치융!!

순식간에 쏘아진 칠성몸뚱이가 날아 차기를 하는 자세 그대로 킹콩의 입 속으로 날아 들어간다.

콰아아앙!!

그리고는 킹콩의 뒷통수를 와장창 부수며 튀어나오는 칠성.

쿠르르르르륵-.

생기를 잃고 까뒤집어진 킹콩의 두 눈.

서서히 몸뚱이가 무너져 내린다.

“다음은 어디냐.”

중얼거리며 손목의 패널을 확인하는 칠성.

붉은 글씨로 반짝이는 지명.

중국, 자금성.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