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
S5 : 14화
이변이 있었던 것은 오스트레일리아였다.
오스트리아 중심부의 사막지역.
저 멀리 에어즈락이 보이는 부근이었다.
갑작스레 나타난 음울한 에너지를 뿜는 구체와 그 앞의 도어.
처음에는 그저 평범한 또 다른 도어 중 하나라고 판단했다.
던전이 등장한 지 채 한 시간이 되기 전에 도착한 호주의 헌터들.
군복과 선글라스가 인상적인 그들,
헬기에서 내림과 동시에 도어를 제거 할 준비를 했다.
한국 정부가 만들었다는 속칭 ‘도어 헌터’.
이 편리한 아티펙트가 생긴 뒤론 도어 제거는 그들에게 더 이상 한번 한번이 목숨을 거는 모험이 아니었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서 그들 역시 본격적인 몬스터 레이드 장비로 무장하고야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절차상의 이유일 뿐 마음에는 이미 여유가 꿈틀댔다.
“빨리 끝내고 돌아가서 맥주나 한 잔 하자고”
“그거 좋지. 오늘 크리켓 어느 팀이랬지?”
“쉐인네.”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가 오갔다.
최근 몇 주 도어들에게 그랬듯,
주변지역을 육안으로 살펴본 뒤 호주 헌터 레이드 팀 중 팀장에 해당하는 사람이 손에 도어 헌터를 착용했다.
슈와압!
도어의 형태가 일렁거리며,
도어헌터가 도어의 마나를 한참 빨아들일 무렵이었다.
번쩍!
콰카아아앙!!
마치 거대한 섬광탄이 터지기라도 한 듯 일렁이던 도어가 눈부신 백색광을 발하며 폭발했다.
생각도 하지 못 했던 사태.
순식간에 초토화가 된 도어가 있던 지역의 주변.
그리고 그 가운데에 유유히 서 있는 한명의 마족.
도어 헌터에 당하기 직전,
도어를 직접 가르고 튀어나온 마족.
“흐음...”
찬찬히 주변을 살펴본다.
의식을 잃은 듯 중상을 입은 헌터들이 주변에 쓰러져 있다.
“재미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있군.”
“크...크읏.”
그 중 한명에게 천천히 걸어간 마족.
도어 헌터에 관심을 보인다.
성겅!
“끄아악!”
순식간에 피를 뿜는 헌터의 팔.
고통에 몸부림치는 헌터.
“흐음.”
도어 헌터를 찬 팔뚝을 통째로 잘라서 들어 올린 마족이 이리저리 도어 헌터를 살펴본다.
“이런 물건을 어디서 얻은 것 이냐?”
“크...크윽....”
마족이 묻지만 대답대신 품안의 장치를 찾아 다급하게 누르는 팔이 잘린 헌터.
흰색 작은 무전기에 붉은 버튼이 달려있는 모양세의 물건.
비상시에만 누르도록 되어있는 수신기다.
이 수신기의 버튼을 누른다는 것은 레이드 사고가 발생했음을 뜻 한다.
“어디서 얻었냐고 물었다.”
재촉하는 마족.
[알파! 무슨 일 인가. 상황 보고하라.]
“여기는 알파, A13 지역 레이드 작업 중....”
하지만 무시하고 무전기 너머로 상황을 설명하느라 목에 핏대를 올리는 헌터.
촥!
순식간에 잘린 목, 몸과 분리되는 헌터의 머리통.
“예의라는 걸 모르는 종족이구나.”
헌터의 무례함에 치를 떠는 마족.
허무하게 져버린 목숨이지만,
헌터의 투철한 정신의 사고신고 덕분에 인근에서 몰려든 호주 헌터들의 활약으로 마족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많은 부상자를 내고 잡은 마족.
하지만 이 마족의 처분을 두고 고민한 호주의 헌터들이 UHD 쪽에 연락을 취한 것 이다.
* * *
그리하여 현재.
번쩍!
호주의 헌터본부 헬기 착륙장.
푸른빛 마나의 불빛과 함께 공간을 찢고 등장한 칠성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갑옷을 해제하며 걷기 시작했다.
신기루 같이 갑옷, 크로우가 사라지고 정장 차림이 되어 걷는 칠성.
칠성을 기다리고 있던 호주의 헌터들이 경례를 붙이며 칠성에게 붙어 안내했다.
“정말로 마족이란 겁니까?”
“예. 맞습니다.”
호주 헌터가 칠성의 물음에 대답했다.
“난전 끝에 간신히 사로잡긴 했는데, 우린 마족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으니까요. UHD, 김칠성 님에게 연락을 드린 겁니다.”
“잘 하셨습니다.”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갑자기 난데없이, 도어에서 마족이 튀어나왔다?
그것도 하필이면 도어 헌터를 사용하는 도중에?
헌터 본부 안쪽으로 들어가자, 삼엄한 헌터들의 경비 속에 철제 의자에 묶여있는 사람이 보였다.
어찌나 철저하게 구속구들로 묶여있던지, 온 몸은 구속구로 덮혀 있다 시피 했고.
입에는 투견들에게 씌울듯 하게 생긴 철제 재갈까지 물려져 있었다.
그야말로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들어 둔 것.
하지만 보랏빛 피부, 뾰족한 귀.
모로 봐도 마족임은 확실 해 보였다.
“하... 이걸 어쩐다.”
진짜 마족이잖아.
곤란하다는 듯 혀를 차는 칠성.
콰자작!
칠성이 마족의 입에 묶여있던 재갈을 뜯어낸다.
“아, 아니 그러시면!”
기겁하는 주변의 헌터들.
마족의 입까지 봉인 해 둔 것은,
마족이 행여나 입으로 주문을 읊어 마법을 쓸 까 두려워서 였다.
그런데 그 재갈을 뜯어내면 무슨 일이 있을지 두려워 하는 것 이다.
기-잉.
마족을 내려다보는 칠성.
칠성의 눈이 주홍빛으로 일렁인다.
주문 포식자의 흔적이다.
“허튼 짓은 꿈도 꾸지 말고.”
하지만 그런 재갈보다도 훨씬 효과적인 것 이 있었다.
주문을 못 쓰게 하는 것 이 아니라,
애시 당초 쓸 마음을 못 먹게 하는 것.
더군다나 영혼 병기인 주문 포식자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마법사는 그 존재 자체가 위협적이다.
간단하게 실력을 은연중 과시 해 콧대를 누른 것 이다.
“...흥!”
다른 종족도 아니고, 마족이 이를 모를 리가 없다.
콧방귀를 뀌면서도, 아까까지 독기서린 눈빛이 아닌 한풀 꺾인 표정이 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여차하면 헌터들을 쓰러뜨리고 도주 하려는 마음가짐을, 칠성의 주문추적자를 확인하고 고쳐먹은 것 이다.
입장 상황이 조금 정리 된 듯 하자,
한 숨 돌린 칠성이 심문을 시작한다.
“네 녀석은 뭐냐? 어떻게 도어를 통해서 온 거지?”
“도어? ‘방주’ 말이냐?”
자기가 말 하고 이상하다는 듯 되묻는 마족.
“당연히 방주를 통해서 드나들 수 있지. 내가 방주의 관리자 인데.”
별 것 아니라는 듯 툭 내뱉는 마족.
“뭐라고..?”
갑자기 공기가 싸 해지는 본부 내부.
헌터들 모두 서로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여태까지 원인을 알 수 없는 현상이었던 도어.
그런데, 관리자가 있다?
“관리자? 그럼 네녀석이 도어. 아니 방주를 만드는 녀석이냐?”
삽시간에 수 십 가지의 생각과 의심들이 스치는 칠성의 머릿속.
하지만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물어보는 칠성.
“뭐...뭐라고? 크크크크큭!!”
칠성의 질문을 듣더니 갑자기 재미난 소리를 들었다는 듯 웃기 시작하는 마족.
“네 녀석이 방주를 만들어서 지구로 보내는 거. 그래서 관리자라는 소리를 하는 게 아니냐?”
이를 으득 갈며 재차 물어보는 칠성.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구나! 아무것도 몰라!”
크하하핫!
마족이 이제는 박장대소를 했다.
섬뜩한 웃음소리가 쩌렁 쩌렁 울린다.
“좋아... 좋오하....”
어찌나 심하게 웃었는지.
눈물이 맺히게 웃고도 한참이나 지나도 웃음이 그치지 않는 마족.
간신히 진정이 됐나 싶으면 다시 웃음을 터뜨린다.
“좋아... 재미있는 걸 알려주지.”
“재미있는 거?”
씨익, 빼쭉한 이빨이 다 드러나도록 웃는 마족.
“이 세상의 비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뒤로 이어진 마족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도어, 이들이 부르는 이름으론 ‘방주’.
몬스터를 품은 이 이차원의 공간,
시간이 지나면 초월한 형태의 몬스터를 뱉어내는 이 방주는 불가사의한 현상이 아닌,
이들이 사용하는 전쟁 무기였다.
이들이 정복 하고, 멸망시키고 싶은 문명을 가장 빠르게 멸망시킬 수 있는 저 비용 고 효율의 병기.
“크크크크크큭...!! 그런데 기가 막힌 거지. 기막혀!”
그런데 지구의 인간들은 오히려 이들이 만들어 낸 몬스터 키메라 속에 들어있던 기술력들을 자기들의 방식으로 해석 해, 자신들의 무기를 만들어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다.
거기다 도어 헌터의 개발로 아예 방주가 채 제대로 개화하기도 전에 없애버리다니.
최근에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기에, 관리자인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정찰을 온 것 이라 했다.
“...왜 하필 지구지?”
칠성은 묻지 않을 수 가 없었다.
이 마족의 말대로라면 이들이 타 차원에 정벌 활동을 벌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란 소리였다.
그리고 수 많은 차원이 있다는 소리.
그런데 왜 하필 지구인가.
“...무한한 가능성!”
마족이 눈을 번뜩였다.
“지구는 마나의 양식장이다. 네 녀석도 마법사라면, 고지능 생명체 일수록 마나 운용량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 은 알고 있겠지?”
“.....”
“바로 그거야! 이토록....”
황홀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마족.
“행성 전체가 고지능 생명체로 가득한 곳은 잘 없어! 보통은 덩치 크고 힘 센 저지능 종족이 지배하는 곳이 많지.”
킬킬 대며 웃는 마족.
“처음에 지구에 축척되어있는 마나의 양은 형편없었어. 그래서 우리가 방주를 통해 너희들의 마나를 자극 한 것이다.”
의문이 해결되는 순간.
10여년전.
갑자기 등장한 도어. 아니 방주들.
그리고 마치 그에 대응하듯 나타난 마나 이용 가능자. 헌터들.
그것은 실제로, 방주에 탑재 되어있는 마나 각성 기능의 영향이었던 것 이다.
그렇게 각성한 헌터들이 자신들의 기술들을 이용한 장비로 방주 속 키메라들을 학살 하는 것은 계산 외 였지만.
그런 식 으로, 전 지구의 인간들을 마나가 가득 들어찬 마나 베터리로 만든다.
그리고 최후에는.
“우리가 모두 수확한다...!”
방안의 헌터들이 움찔했다.
수확.
이라는 말을 썼지만, 그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 지구의 인간들을, 몽땅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말 이냐?”
칠성이, 무겁게 잘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떼 물었다.
그런 칠성을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올려다보는 마족.
“그럼, 마나를 수확하는 데 다른 방법이라도 있느냐?”
너무나도 당연하게, 인류를 전멸 시키겠다는 말을 뱉는 마족.
상상도 못 한 스케일의 폭탄선언,
무거운 침묵이 감도는 호주 헌터 본부.
‘수확 절차’ 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지구에 그들이 심어둔 모든 도어가 활성화 되어 개방된다.
“심어둔...? 그게 무슨 소리냐.”
“말 그대로다. 방주는 우리가 수 십 년 전 이미 이곳에 잔뜩 심어둔 ‘씨앗’ 에 서 튀어나오는 거지.”
순간 칠성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
도어 헌터를 사용하면 나타나는 의문의 알같이 생긴구체.
칠성과 연구진 들이 ‘에그’ 라고 불리고 있는 그것!
그것이 만약 도어의 원형이라면?
무언가 착착 아귀가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면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 등장할 ‘수확선’.”
그들이 만들어낸 그 어떤 것 보다 강력한 병기인 수확선이 지구 표면을 모두 쓸어버린다.
“내가 왜, 이런 것 들을 술술술 알려주는 지 알아...?”
말을 이어 가던 마족 관리자가 눈썹을 팔八 자로 구기며 비웃었다.
“니들은 저어얼..대로. 살아남을 수 가 없어....”
킬킬 거리며 웃는 관리자.
“너무 미개해....”
“수준이 너무나도 다른 거야. 네 녀석이 판브르크 대륙의 마왕이라고 해도 말이야...”
“...뭐?”
날 알고 있다고?
놀란 얼굴의 칠성.
재밌어 죽겠다는 듯 큭큭 대던 관리자가 웃음을 뚝 멈춘다.
“수확 절차가 시작되면, 모든 방주들이 활성화 된 지 정확히 5주 뒤에 수확선이 차원의 문을 열고 등장한다. 그리고, 수확 절차는 나 같은 관리자가 보낸 신호가 도착하면 시작되지.”
거기까지 말 한 관리자의 몸이 서서히 붉은 빛에 물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신호는...”
구우우우우웅-!
갑자기 일렁이는 공간.
“지금.”
파앙!!!
붉은 빛으로 달아오르던 관리자의 몸뚱이가 순식간에 붉은 광선에 잡아먹힌다.
방 한 가운데서 폭격이라도 터진 듯 주변의 헌터들이 나뒹군다.
호주 헌터 본부의 건물이 붕괴한다.
콰르르르륵!!
마족이 터져나가며 내뿜은 붉은 광선이 호주 헌터본부의 천장을 뚫고 저 먼 하늘로 올라간다.
관리자의 폭발로 엉망진창이 된 호주 헌터본부.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난다.
“후우...후.”
한 번 에 너무나도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심장은 두근거린다.
뒤죽박죽인 머릿속을 이고,
칠성의 눈동자가 답을 구하듯 뚫려있는 천장 사이의 하늘을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