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
S5 : 9화
“조직의 이름은 포세이돈, 기관에 등록되지 않은 무허가 헌터들로 이루어진 폭력조직입니다.”
“흠...쯧.”
장영실 소장의 설명을 듣고 있던 칠성이 혀를 찼다.
“손대는 범위도 광범위 합니다. 장관님이 잡아내신 것처럼 큰돈을 받고 요인 암살이나 처리를 부탁 받기도 하는 모양이고, 여러 가지 불법적인 물품에도 손 대고 있는 듯합니다.”
장영실의 설명이 술술 이어진다.
“그런데 이런 녀석들을 왜 그냥 두고 있었던 거야?”
“최근에 나타난 신생 조직이기도 하고, 조직원 대부분이 마나 이용 가능 능력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보니 FBI 등 에서도 그 실체는 어느 정도 가늠하고 있었지만 엄두를 못 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어쩔 수 가 없는 일이다.
마나의 이용과 헌터의 등장은 인류사의 역사로 보자면 증기기관의 발견이나 총기의 개발에 준하는 혁명적 발전이었다.
신흥 범죄 조직에 뻑 하면 총알을 맞고도 죽지 않는 녀석들이 잔뜩 있는 마당이라면, 기존의 시스템에 속한 기관들이 손 댈 엄두를 못 낼 법도 하다.
언제나 그렇다,
문제가 먼저 터지고. 그 뒤에야 수습책이 나온다.
다행이 이번에 터진 이 문제의 조직,
포세이돈에 대한 수습책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헌터를 이용한 분쟁과 중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조직.
UHD가 말이다.
대한민국의 수호*헌터부,
그리고 미국 헌터 포스를 비롯한 각국의 헌터 무력 집단에서도 A 등급 이상의 능력자들이 차출되어 UHD 의 요원이 되어 활동 중 이었다.
칠성이 이 포세이돈 이란 조직과 얽히게 된 것은 우연에 가까운 일 이었지만.
막상 얽히고 보니 UHD 차원에서도 처리해야 할 적 이다.
이렇게 된다면 망설임은 없다.
“이런 녀석들 오래 두면 안 돼, 비슷한 발상을 하는 새끼들도 꼭 있을 거란 말이야.”
“그렇죠.”
“당장 일망타진할 계획 마련하고, 요원들 투입해서 순식간에 쓸어버리자고. CIA 랑 인터폴 등엔 내가 직접 공조 요청 해둘 테니까.”
지금 상황에서 칠성의 말을 안 들을 조직이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전 세계가 도어와 몬스터의 위협에 힘을 합쳐 싸우기도 바쁜 이때에,
이런 위험한 분란의 덩어리 녀석들을 그냥 둘 수야 없었다.
칠성이 칼을 빼 든 이상 포세이돈 이란 조직의 앞날 역시 풍전등화가 된 셈 이다.
월드 클래스의 수사기관들과의 공조,
그리고 수헌부 시절부터 발전시킨 UHD 의 대 헌터 전투법.
여차하며 적어도 지구에선 이길 상대가 없는 칠성까지 대기하고 있으니 말 이다.
“네. 즉시 진행하겠습니다.”
이쪽 일은 이렇게 진행 될 것 이다.
먼저 포세이돈을 먼지 한 톨 안남을 정도로 철저하게 족친 뒤에,
녀석들과 반월 제약과의 관계를 밝힌다.
그리곤 반월 제약에게 정현우 납치 교사 등의 혐의를 물어 뼛속까지 탈탈 턴다.
물론, 그것만 털면 서운하니 서운하지 않도록 그간에 기업 운영에 찜찜한 부분이 없는지 국세청 등을 동원해 싸그리 털어줄 것 이다.
휴대폰을 살펴보며 그렇게 생각하는 칠성.
반월 제약은 칠성과 태양 제약의 자제가 처남 매형 관계가 되는 것을 꺼림칙하게 여겨서 미리 어깃장을 놓으려 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아이러니 하게도,
사실은 그들이 가만히 만 있었다면 아무 일도 없을 뻔 했는데, 그들의 그 어깃장.
즉 칠성의 매형 될 정현우를 납치했었던 무리수 덕분에 정말로 칠성에게 탈탈 털리게 생긴 것 이다.
이쪽일은 이렇게 진행하기로 하고,
다른 쪽 일의 진행을 위해 휴대폰을 뒤지던 칠성.
이내 휴대폰 전화번호부 에서 누군가의 전화번호를 검색해 내선 전화를 건다.
어떤 의미에선 먼저 연락하기 꺼려지지만,
지금 칠성이 하려는 일을 이 세상에서 가장 잘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다.
[오랜만이네요 칠성씨!]
청아한 여자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다.
“그렇네요, 오랜만이네.”
한숨을 푹 쉬며 대답하는 칠성.
* * *
같은 날,
칠성과 같은 헌특부 3팀 출신이자,
칠성으로부터 흑마법을 전수받은 제자.
김태홍은 시내 번화가에서 얼마 전 사귀게 된 여자 친구와 데이트 중 이었다.
“오빠 운동도 했어?”
“장난 아니지~”
태홍의 팔짱을 낀 늘씬한 여자가 태홍의 복부를 더듬으며 말 했다.
여자친구 라고 해 봐야 고작 이틀전에 클럽에서 만난 여자다.
칠성이야 신경도 안 쓰고 있는 부분이겠지만,
UHD 의 요원으로서 요원 증을 가지고 있는 태홍은 그것만으로도 엄청나게 어필 가능했다.
UHD 요원증은 이미 성공한 인생의 증명서 같은 것 이었으니까.
게다가 헌터들은 대부분,
얼굴은 몰라도 몸들은 좋다.
게다가 무슨, 007 시리즈에서 나 튀어 나올 것 같은 명칭. ‘요원’.
그 형형할 수 없는 시크한 멋짐.
절대적 킹카의 이미지가 UHD 요원들에게 덧씌워진 것 이다.
그리고 김태홍은 그것을 실컷 이용하고, 즐기는 중 이었고.
거의 일주일마다 여자가 바뀐다 해도 과언은 아닌 삶을 살고 있는 중 이었다.
그것이 좋은 인생인가 에 대한 판단은 둘째 치고 말이다.
“어라?”
그런 김태홍에게,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보였다.
“왜 그래 오빠?”
의아하게 김태홍의 얼굴을 살피며 묻는 여자.
하지만 넋이 나간 김태홍은 대답조차 하지 못 한다.
“저저저저....!”놀란 태홍은 잽싸게 여자와 팔짱을 풀더니 앞쪽의 가게 입간판에 몸을 숨겼다.
“뭔데 그래 오빠?”
너무나도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김태홍을 따라와 물어보는 여자.
“쉿! 조용히 해.”
여자에게 조용히 윽박지르고 입간판 뒤로 슬며서 눈을 내미는 태홍.
그런 태홍의 눈에 보이는 것.
칠성의 뒷모습.
그리고 칠성과 마치 연인처럼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있는 어떤 여자.
뒷모습만 봐도 한솜이는 아니다.
‘뭐야 대체!’
칠성은 자신과 같은 부류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단 것 인가.
물론 칠성이 어떤 연애관을 가지고 있던지,
혹은 여자관계가 얼마나 복잡 하던 지는 김태홍과 하등 아무 관계가 없었다.
김칠성의 현제 연인이 김태홍과도 오래 알고 지낸 한솜이가 아니었다면 말 이다!
그렇게 시작된 김태홍의 미행.
“잠깐만, 저 여자...”
분명히 본 적 있는 여자다.
그것도 과거에 몇 번이나.
심지어 가끔은 신문이나 뉴스에서도.
칠성을 향해 밝게 웃어 보이는 여자.
친근한 팔짱까지.
둘이 보통 사이임은 아님이 틀림없다.
무엇보다도.
“호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특급호텔로 걸어 들어가는 두 사람.
김태홍의 미행은 거기서 끊기게 되었다.
두 젊은 남녀가 팔짱을 낀 채 하하 호호 웃으며 호텔로 걸어들어 간다.
이건 김태홍이 딱히 꼰대라서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보아도 비슷한 결론을 도출 해 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 누나 불쌍해서 어떡하냐...”
허망하게 칠성이 사라진 뒤 허공을 보고 중얼거리는 김태홍.
* * *
같은 시각,
특급호텔 안으로 들어선 칠성.
칠성의 옆에 팔짱을 끼고 연신 친한 척을 하고 있는 것 은 다름 아닌 김주희 였다.
칠성이 지하철에서 자살하던 김주희를 구해준 것을 계기로 얽히기 시작한 두 사람.
김주희의 유혹도 있었으나 결과적으론 잘 안 된 조금 어색한 관계.
“제가 미리 말 해서, 제 눈에 들었던 모델들 확보 해 두라고 했어요.”
싱글싱글 웃으며 말하는 김주희.
김주희는 김칠성과 애매모호한 관계이기도 했으나,
그녀는 또한 세계적 패션 브랜드의 리더이기도 했다.
두 사람이 향한 곳은 특급호텔 지하에 있는 JH 귀금속 매장.
JH의 매장이지만 JH의 물건만이 아닌 전 세계 패션 브랜드들의 모든 귀금속을 다루는 특이한 매장이었다.
칠성이 김주희에게 아주 중요한 일에 쓸 귀금속의 구매를 도와줄 것을 부탁 한 것 이다.
연락하기 꺼림직 한 상대였지만,
이 일을 세상에서 가장 잘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도 미안한 마음이 없는 것 은 아니었다.
“고마워 진짜.”
“아뇨, 별 말씀을! 말 했잖아요. 어디까지나 칠성씨는 제 생명의 은인이니까, 이정도 일이라면 얼마든지요.”
하지만 은연중 씁쓸한 빛이 비추는 김주희의 얼굴.
극진한 환대를 받으며 들어선 귀금속 매장.
그들이 매니저의 안내와 함께 보게 된 것은 마치 천사가 내려앉은 듯 아름다운 빛을 내는 유려한 디자인의 반지였다.
“엄청 신경 써서 고른 거예요, 클래식한 유럽풍 디자인인데 유행도 안 탈 녀석이죠. 요녀석을 보면 세상 그 어떤 여자라도 좋다고 대답 할 수밖에 없을 걸요?”
씩 웃으며 마치 자랑스러운 자신의 새끼를 자랑하듯 말 하는 김주희.
유럽풍이니, 클래식이니는 못 알아듣겠지만.
확실히 패션에 문외한 이라고 할 수 있는 칠성이 보아도 한눈에 시선을 빼앗길 만큼 아름답기 그지없는 반지였다.
“진짜 예쁘네.”
“그죠? 뭐. 제가 받을게 아니라는 게 좀 씁쓸하지만.”
“...미안.”
“킥킥킥, 농담 이예요 농담!”
그러고는 킬킬 거리며 웃는 김주희.
“좋아, 이 녀석으로 하겠어. 가격은? 얼마야?”
김주희에게 묻는 칠성.
“애누리 없이 관세 포함 4000만원이요.”
역시, 좋은 것은 가격도 꽤 하는군.
칠성이 가진 자산 규모로야 보면 그야말로 껌 값 이었지만 막상 반지 하나에 4천만원 이라니 눈이 살짝 커지는 칠성.
“그래? 그럼...”
칠성이 지갑에서 블랙카드를 꺼내려 하는 것을 김주희가 손사래 치며 말렸다.
“아니예요, 제 선물이예요.”
“뭐?”
“그냥요, 내가 미안한 일도 있었고.”
으쓱, 해 보이는 김주희.
“자요 자. 여기.”
오히려 자신이 민망한 지,
매니저를 재촉해 품질 보증서니,
케이스니 뭐니를 챙겨주는 김주희.
케이스 속의 반지가 칠성의 손 위에서 빛이 난다.
‘좋아, 이거면 되겠어.’
뿌듯하게 반지를 챙기는 칠성.
김주희에게 도움을 구한 것은 탁월한 선택 인 것 같다.
“고마워, 큰 빚을 졌다.”
“아녜요! 두 사람.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어. 진심이야.”
무언가 짠하게 웃는 김주희.
* * *
시간이 흐르고,
미국의 한 대형 강당.
it 관련 대기업들의 신제품 프리젠테이션 장소로 유명한 이곳,
하지만 오늘 이곳을 가득 메운 참석자들은 it 관련 업계 사람들이 아니었다.
각국의 던전 테크놀러지,
그리고 헌터 비즈니스 밑 기관에 연관된 사람들 이었다.
이곳에서 이루어 질 것은 신제품의 발표.
저마다 신분증을 제시하고 스테프들의 안내를 받아서 입장하는 사람들.
대규모의 행사인 만큼 수선스러운 분위기다.
수 백명의 참석자 들은 모두가 저마다 자기 분야에서 큰 손으로 불리는 사람들 이었다.
무엇보다도 VIP 석엔 미국 대통령까지 앉아 있었다.
관련자 뿐 아니라 외신 등 각국의 언론들도 참여한 게 보인다.
커다란 카메라로 고화질 송출되는 영상은 집에서 누구든지 고화질의 인터넷 동영상으로 실시간 감상이 가능했다.
아직 행사가 시작하기도 전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서 몰려든 인터넷 방문객들로 실시간 방송의 시청자는 60만명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만큼이나 이번 발표회가 사람들에게 큰 의미를 가진단 소리.
약속되어 있던 시간이 되자 어두워진 실내,
밝은 스포트라이트 빛줄기가 비추어지고,
무대 한편에서 칠성이 천천히 걸어 나온다.
칠성을 따라가며 비추는 스포트라이트.
칠성의 복장은 검은색 터틀넥 티셔츠에 청바지, 운동화 의 단촐한 차림.
평소에는 끼지도 않는 둥그런 테 의 안경까지 끼고 있었다.
예전에 유명했던 한 IT 기업의 CEO를 흉내낸 복장이었다.
이를 알아본 몇몇 사람들은 웃음 지었다.
그 기업의 CEO의 발표가 이 세상에 혁신을 가져다 주었듯.
칠성이 오늘 가져온 물건 역시 이 세상에 새로운 혁명이 될 것 이다.
칠성의 손에 들려있는 장갑 형태의 물건.
도어 속에 들어가지 않고도 손쉽게 몬스터를 토벌 할 수 있는 물건.
완성된 버전의 ‘도어 헌터’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