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
S5 : 8화
고오오오-.
국제선이 있는 인천공항.
전 세계를 목적지로, 혹은 전 세계에서 한국을 목적지로 하는 비행기들이 드나드는 이곳.
말하자면 이곳에 거대한 비행기들이 굉음을 울리며 착륙하는 것도,
그 안에서 사람들이 내려오는 것도 당연히 흔한 관경이었다.
“이야...”
하지만 인천공항 활주로 청소를 맡고 있는 김대균은 입을 쩍 벌리곤 자신이 보는 관경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얼을 타고 있었다.
왜냐면 그의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
인천공항에 가득 들어찬 2, 30여기의 비행기.
그것들은 모두 개인과 수행원들을 태운 전용기였다.
정확하게는 미국 대통령을 위한 비행기인 에어포스-원을 비롯해, 각국 정상을 태운 비행기들이 인천공항에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착륙하고 있는 것 이었다.
김대균의 활주로 청소 역사 12년을 뒤돌아 봐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외국에서 귀빈이 오는 경우도 간혹 있기야 했으나.
활주롤르 가득 채운 이 비행기들이 전부!
가히 압도적인 관경,
세계 3차 대전이 일어났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시사에 나름 관심이 있는 김대균이 인터넷 신문이나 9시 뉴스에서나 보던 미국 대통령이 레드카펫을 밟고 내리고 있었다.
연이어서 다른 비행기에서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내리는 러시아의 대머리 총리.
그리고 등등, 다른 비행기에서 내리는 이 들도 어딘가에서 본 듯 인상이 익숙한 이 들 뿐 이었다.
“뭔 일이 있을래나...”
김대균이 청소차량을 활주로에 세워두고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리고 확실하게, 무슨 일이 있긴 했다.
대한민국 서울시.
강북의 UHD사옥.
회의실.
기다란 원형의 탁자에 각국 정상들이 의자마자 착석 해 있다.
“엣흠.”
불편한 듯 한 헛기침.
회의장에 들어서는 얼굴 중 에는 한국 대통령도 보인다.
김칠성의 인기 덕에 재선에 성공한 그는 여전히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칠성 입장에서도 자기가 대통령직을 맡지 않은 바에야, 필요할 때면 물신 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
반 허수아비 같은 대통령이 계속해서 있는 편이 편했다.
일종의 정치적 결탁, 윈- 윈 인 셈 이다.
다만 그의 심기가 조금 불편해 보이는 것 은,
그렇다고야 쳐도 김칠성이 정치계에 입문 한 것 자체가 자신이 장관으로 임명한 덕.
어디까지나 자신의 와일드 카드 정도로 생각해 두었던 칠성이.
이제는 대한민국은커녕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국제조직의 수장으로서.
아니 수장이 된 것 까지도 좋은데,
결과적으로 자신의 부하 삼으려 했던 칠성이 주최하는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미묘하게 꺼림직, 아니 질투가 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등장한 칠성. 그리고 보좌관들.
칠성이 회의를 주체하는 의장석에 자연스럽게 가 앉는다.
“갑자기 쳐들어들 오셔서 놀랐습니다. 혹시 제가 자유의 여신상의 횃불을 들고 온 것 때문에 세계 3차대전이 일어나는 건가 하고요.”
칠성의 농담에 회의장에 웃음소리가 퍼졌다.
“그런 문제는 전혀 아닙니다, 물론 뉴욕의 명물이 그 꼴이 되었으니 당황하긴 했지만요.”
웃음기를 머금은 미모의 미국 대통령이 답했다.
그리고 진행되는 회의.
당연히 이들이 모인 것은 칠성의 통 큰 기념품 수확 때문이 아니었다.
미국에서 발생한 그린도어에서 튀어나온 드래곤!
기존의 헌팅 장비와 스킬로는 대적할 수 없었던 스케일이 다른 몬스터.
칠성이 아니었다면 어느 정도 인명피해가 있었을지 알 수 없는 상황.
당연히 각국 모두가 대책을 위해 달려올 법 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건.
“조속한 도어헌터의 개발입니다.”
정상들의 결론 역시 이러했다.
칠성의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부분.
하지만 칠성이 주도하는 수호*헌터부 산하의 연구원들이 놀고 있는 것 도 아니고.
“그렇지 않아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아뇨, 그런 차원을 이야기 하는 것 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단호한 태도들.
이미 칠성을 제외한 각국 정상들은 어느 정도 이야기를 맞춘 것 같았다.
“지구에 있는 모든 지성들의 힘을 합칩시다.”
“협업을 하자 이 말씀이십니까?”
“네, 그것도 전 지구 적인.”
질문은 하는 것 은 칠성 혼잔데,
대답은 여기저기서 번갈아가며 나왔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독일 등등....
전 세계의 던전 테크놀러지 전문가들이 한국으로 몰려든다!
오리하르콘을 재료로 하는 완성형 버전의 도어 헌터는 이미 90%의 완성도를 가진 설계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도무지 완성되지 않는 나머지 10%,
그리고 제일 중요한 이 후반부 10%를
전 세계 지성의 협업으로 이루어 낸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칠성에게, 그리고 대한민국 수헌부에게 좀 억울한 부분이 있을 수 있었다.
도어 헌터는 어디까지나 수헌부 연구 결과의 산물이다.
국제기구인 UHD에 권리가 있는 것 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권리의 문제는....”
미 대통령이 다른 정상들과 눈치를 주고받았고,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미 대통령이 입을 땐다.
“당연히, 최초의 권리. 그리고 가장 큰 권리는 대한민국 수헌부가 가지는 것이 보장 될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저 완성된 제품의 사용권입니다. 적절한 가격만 책정 되고, 우리가 구입 할 수 있는 권리만 주신다면 만족합니다. 우린 그저 수헌부의 연구를 돕길 원하는 것입니다.”
호오.
이런 식 이라면 칠성에게 딱히 큰 손해 날 것 은 없었다. 금전적으로 억울하게 손해볼 일은 없어지는 데다가,
어려운 난관이었던 후반부 작업을 수월하게 해결 할 수 있게 되니 오히려 이득이라면 이득.
평소라면 이들도 이런 제안을 해 오지 않았을 것 이다.
뻔하게 손해나는,
아무런 댓가도 없이 남의 연구에 자신들의 정상급 연구 인력을 아낌없이 빌려주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만큼이나 이들이 지금 자신들이 처한 상황,
그러니까 신형 몬스터들의 존재를 위협적으로 생각한다는 증거였다.
‘물론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연구를 도와주는 데에 대한 유일한 댓가로, 완성품을 구매할 권리를 요청했다.
사실 이것도 부르는 가격도 엿장수 마음대로,
얼마든지 바가지를 씌울 수 있는 여지야 있었으나.
만약 수헌부가 100% 독자개발에 성공하고,
구매하는 권리조차 쉽게 내어주지 않았다면 더 심한 갑질도 가능 했으리라.
하지만 세계는 칠성의 판단에도 정말로 급박한 상황 이었고.
또 결국 사고 터지면 이런저런 이유로 도와주러 가야 할 게 뻔했으니 이쯤에서 못 이기는 척 호의를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다.
“좋습니다. 제안을 받아들이죠.”
모든 게 잘 해결됐다는 듯 밝은 얼굴로 반응하는 각국 정상들.
여기에 한 마디 덧붙이는 걸 잊지 않는 칠성.
“저한테 크게 빚 지시는 겁니다.”
물론 하나 마나 한 소리였다.
다만, 사실은 칠성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이 거래조건에, 마치 칠성이 한 발 크게 양보했다는 뉘앙스를 남겨두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야 나중에 딴 소리를 안 할 테니까.
“물론입니다.”
지체 없이 끄덕이는 미국 대통령.
이 회의를 기점으로 전 세계의 던전테크놀러지 전문가들은 물론, 물리학, 기하학 수학 등 각 분야의 무궁무진한 유명 전문가들이 도어헌터의 개발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전대미문의, 전 세계의 모든 지식인들의 콜라보레이션!
사상도, 국경도 모두 넘어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이렇게 모두가 힘을 합친 것 은 세계사를 다 뒤져 봐도 처음 이었다.
그들의 활약으로 쓸모없는 시행착오의 경우의 수는 극적으로 줄어들어 갔고, 도어헌터의 개발은 더욱더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이러는 와중에,
칠성에겐 개인적으로 기쁜 소식도 있었다.
* * *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칠성의 누나, 칠선의 결혼식이었다.
어떤 의미에선 놀라웠다.
칠선은 짝인 정현우는 칠선과 만난 지 고작 3개월 만에 청혼을 하더니,
이제 두 사람이 만난 지 6개월 즘 된 시점에 정말로 결혼식을 올리고 있는 것 이다.
한 고급 호텔에서 열린 결혼식.
칠성은 결혼 선언과 함께 입을 맞추는 누나와 정현우, 두 사람을 향해 박수를 치며 묘한 감회에 휩싸였다.
이 세상은 레벨업 된 도어로 위기다.
하지만 그런 위기 투성이 일면의 세상 속 에서 살아가느라 바쁜 칠성과 다르게, 또 한편에선 이렇게 또 다른 역사가 이루어져 간다.
물론 칠성 같은 사람들이 있는 덕에,
누나 같은 사람들의 일상도 지켜지는 것 이었지만,
막상 누나의 결혼식을 보고 있자니,
그리고 빛이 나는 백색의 옷을 입은 누나를 보자니.
무언가를 놓치고는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은 것이다.
‘좋아, 나도 나아가자.’
결심이 섰다.
칠성 자신이 이런 결혼식장에 서게 된다면,
백색의 옷을 입고 그 칠성의 옆에 서 있어야 하는,
있어 줬으면 하는 사람은 이미 머릿속에 그려졌다.
칠성의 환상 속 에서 금발의 미소가 환하게 반짝였다.
* * *
다시 환상이 아닌,
현실의 시간.
누나가 아마도 해외 유수의 관광지에서,
재벌 2세 매형과 함께 노닐고 있을 무렵.
칠성은 칙칙한 UHD 작전실에 틀어박혀 있었다.
눈앞에는 어지러이 주황빛의 홀로그램 자료들이 떠 있었다.
“조직의 이름은 포세이돈입니다.”
정확히는 각국의 정상들이 한국을 방문한 뒤로,
특히나 연구 분야에 종사하는 대한민국 수호*헌터부 사람들과 UHD간의 경계가 더욱 모호해 졌다.
UHD본부였음에도,
칠성의 앞에서 분석된 자료화면을 설명 해 주는 사람은 수호*헌터부에서부터, 아니 그 이전 헌터특별부 시절부터 안면이 깊은 장소장 이었다.
장소장이 UHD 안에서도 주요한 자리를 꿰 찬 것은,
물론 자격 있을 만 한 실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소위 친 김칠성 인사인 덕분 이었다.
‘말이 잘 통하니까.’
그저 별 이유 없었다.
칠성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나다.
그것이면 충분.
또 나름, 상당히 어려운 과학적 원리도 순식간에 칠성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 설명해 주거나, 칠성의 요구 방향도 군말 없이 적극 반영 해 주니 나름대로 이것도 뛰어난 능력 중 일부이기도 했다.
이런 느낌의 친 칠성 인사는 장소장 뿐 만이 아니었다.
지금 칠성의 눈 앞에 떠 있는 자료만 해도,
캐내서 정리한 사람은 다름 아닌 김규형 전 때 안면을 익혀 두었던 천재 해커 판춘봉이다.
판춘봉 역시나 칠성에는 못 미치나 평생 일을 안 하고 살아도 넉넉히 살 정도의 경제력을 갖춘 형편이었으다.
하지만, 뛰어난 검 솜씨를 갖춘 검사는 배가 부르다 해도 검이 녹슬도록 방치 해 두는 것을 견디지 못 한다.
그처럼 넷 상의 낭인인 판춘봉의 본능이 자신의 키보드가 마냥 놀고 있는 것을 견디지 못 한 것 이다.
더불어 김칠성의 지원과 판춘봉의 기술력으로 탄생했던 자체 발전형 A.I 형사 집단인 ‘익명의 사자들’ 중 무려 3기 의 A.I 가 UHD 에 자처해서 몸 담아주고 있었다.
자아가 생겨버린 인공지능들.
그들의 해킹 능력은 인간을 훌쩍 뛰어넘으나,
문자 그대로 자아가 생겨버렸기에 자신들 맘에 내키지 않는 명령을 듣는다던가 하는 일이 없다.
하지만 인연이 인연인 지라,
남모르게 칠성의 행보를 꾸준히 지켜봐왔던 그들,
고작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진 망령일 뿐인 그들조차도 감명 시킨 칠성의 행보.
그렇기에 칠성이 인류 수호의 뜻으로 설립한 UHD 에 선뜻 힘을 내어줄 것을 자처 한 것 이다.
물론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칠성과 판충봉을 비롯한 손에 꼽히는 사람들 정도 뿐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