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
S5 : 6화
광활한 아메리카 대륙.
그곳에 자리 잡은
꿈을 꾸면 이루어진다는 나라 미국.
그 중에서도 어쩐지,
사막의 냄새가 나는 캘리포니아.
그 캘리포니아 주의 서부 항만 도시.
낭만의 샌프란 시스코다.
샌프란시스코는 외국인들 에게도,
그리고 자국민들 에게도 훌륭한 관광지였다.
특히나 여기 피셔맨스워프(Fisherman's Wharf) 라고 불리는 일대는
그 지역 자체가 관광지였다.
지역 이름 자체가 ‘어부들의 선착지’, 관광지의 컨셉 자체도 바다와 어부들에 맞춰져 있다.
물론 풍미 깊은 해산물 요리들도.
길거리를 지나는 빨간색 2층 버스와 땅에 난 레일을 따라 달리는 전동차.
그 사이에 아기자기한 가게들.
대학교 2학년생인 지나와 줄리도 피셔맨스워프를 즐기느라 바빴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도시와 한가로운 분위기도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지나의 경우에는 생전 이렇게 먼 곳 까지 여행 와 본 것도 처음이었다.
한 해산물 레스토랑에서 게살 스프를 퍼 먹으며 수다를 떠는 두 사람.
“와 여기 맛 정말 좋다.”
“그럼 맛 이라도 좋아야지, 이 터무니없는 가격을 봐.”
“네 얼굴에 처바른 화장품 값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걸? 낄낄낄”
“어머 요 맹랑한 계집애 깔깔깔. 너처럼 장난감에 돈 허비하는 것 보다야 백배 낫지.”
“장난감이라니! 모욕적이야. 히어로들의 영웅적 모습을 담은 스테츄라고.”
지나는 히어로물 영화의 광팬이었다.
여자로서는 꽤나 드물게 말이다.
성인이 됐음에도, 아니 오히려 돼서 더 본격적으로
그녀의 방 안에는 히어로들의 모습을 본 뜻 스테츄.
일종의 피규어 비슷한 것들이 쌓여 갔다.
현실에는 없는 영웅들의 행적들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누구보다 멋진 일들을 해내면서, 쿨 하기까지!
서로의 낭비벽을 지적하며 깔깔 대며
사이좋은 두 사람.
그다음 나온 요리는 게살을 곁들인 파스타와 전복 구이.
이걸 먹고선 여행지의 낭만을 즐기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인근 클럽에 갈 예정이다.
그 둘이 인터넷 소셜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릴 사진을 찍고서 막 입맛을 다시며 식기를 들 때 였다.
달달달달....
묘하게, 식탁 위 냅킨에 두었던 수저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이상함을 느낀 지나가 수저를 들어 올리곤 한참이나 들여다본다.
“왜? 뭐가 잘못됐어?”
“어? 아니, 착각했나봐.”
줄리의 물음에 지나가 웃으며 답한 그 순간.
또 한 번의 진동이 울렸다.
이번에는 작은 규모가 아니었다.
가게 전체가 그 흔들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짤랑거리는 잔들, 웅성거리는 사람들.
갑작스러운 이변에 놀란 웨이터가 휘청거리기도 했다.
불안한 감정이 엄습했다.
샌프란시스코에는 과거에 큰 지진이 있었던 곳 이다.
지나는 짐을 다급하게 챙기거나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주고받는 사람들 사이로 몸을 들이밀고 창가로 다가갔다.
오래된 식당의 나무 차문 틀 사이로 보이는 바깥풍경.
역시나 간헐적인 진동을 느꼈는지 잔뜩 웅크린 거리의 사람들.
하지만 지나의 눈빛이 향한 것은 허공이었다.
“뭐야, 지나. 뭐가 보여?”
“저게....”
줄리 역시 지나를 따라 허공을 바라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허공을 가리킨 지나는 잽싸게 지갑에서 음식 값과 팁을 포함한 지폐 몇 장을 테이블에 뿌리듯 남긴 뒤 잽싸게 가게를 나섰다.
“지나!”
줄리의 부름에도 아랑곳 않고,
무언가에 홀린 듯 옆 건물의 검은색 철재 화재 비상계단을 타고 오른 지나.
옥상에 올라서서 손으로 챙을 만들곤 저 먼 곳을 바라본다.
“뭔데 그래!”
아무 말 없이 어딘가로 가는 지나를 뒤따라오느라 성이 났는지,
이제는 짜증을 부리는 줄리의 물음에,
조용히 꿈을 꾸는 듯 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지나.
“드래곤....”
“뭐라고?”
말이 안 돼지만, 그녀가 표현 할만한 단어론 그것 밖에 없었다.
아니면 정말로 거대한, 정말로 이상하게 생긴 새 든가.
하여간 그 이 세상에서 볼 수 있을리 없는 존재가 저 먼 상공에서, 천천히 날갯짓을 하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날갯짓을 한번 할 때 마다 떨리는 진동이 전해져 왔다.
그리고 드래곤과 이곳의 간격이 점차 줄어들수록 그 진동의 위력 또한 커지고 있었다.
줄어드는 간격에 비례해서 어느새 거대해진 몸뚱이는 코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아직도 한참은 멀리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이 정말 드래곤이던, 아니면 다른 무엇이든 간에 그녀의 본능이 말 하는 것 은 하나였다.
“도망쳐. 도망쳐야 돼.”
얼굴에서 핏기를 모두 따라내기라도 한 듯 창백한 입술을 움직여 지나가 도망쳐야 한다는 말을 뱉었을 때.
도시는 귓전을 때리는 사이렌 소리로 가득찼다.
전쟁시에나 들을 수 있는 위험을 알리는 소리였다.
순식간에 패닉상태에 빠진 관광지.
사람들은 이미 저 멀리서 날아오는 드래곤의 모습을 보고는 기겁하고 달린다.
하지만 다가오는 드래곤에 비해 그들의 발걸음은 가히없이 느리다.
달리고 있는 전동차에 몇몇 배낭을 맨 관광객들이 뛰어 매달린다.
이층 버스는 막아선 사람들 덕에 출발을 하지 못 하고 있다.
평화롭던 거리는 뛰어서 도망치는 관광객들과 상인들로 인산인해 아수라장이 된다.
압도적인 존재에 대한 공포.
아수라장 속 달리는 사람들 사이로,
단 한 사람.
누군가가 사람들의 사이를 역주행 해 걷고 있다.
드래곤이 날아오는 반대방향으로 달려 도망치기 바쁜 인파들 사이, 오히려 천천히 드래곤이 오는 방향으로 마중하듯 나가는 사람.
“이봐요, 위험해요!”
인파들 사이에 섞여 도망가던 지나가 자기도 모르게,
위험한 곳으로 걸어가고 있는 그 사람을 잡고서 말린다.
검은색 정장이 제법 잘 어울리는 남자,
그런데 동양인이다.
아니면 남미인? 동양인?
하여간 외국인이 분명하다.
분명 사태 파악을 하지 못 하고 자살에 가까운 행동을 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지나는 친절하게도 손짓 발짓을 곁들여 어서 도망가야 된다고 남자에게 일러준다.
데-인-져. 데인저!
위험하다고요!
가면 죽어! 도망가요!
하지만 요지부동인 남자.
“뭐해! 어서 가자!”
줄 리가 뒤처진 지나를 낚아채 가려는데,
그 외국인 남자가 입을 연다.
게다가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건 제법 유창한 영어다.
“도망칠 것 없어요, 그것 때문에 제가 여기 온 거니까요.”
마치, 수도가 고장 나 출장 온 배관공처럼 별 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 하며 말하는 남자.
“무...무슨 소리예요 그게.”
이 남자는 미친 게 틀림없어!
지나가 남자가 뱉은 황당한 대답에,
고민하는 찰나였다.
“지나!”
비명에 가까운 줄리의 목소리.
그리고 고개를 들어보자, 어느새 거대한 점보 비행선 같은 드래곤이, 지나의 머리 위를 향해서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콰아아아아!!
숨결만으로도 적의 목숨을 앗아간다는,
드래곤 브래스!
녹색빛의, 보기만 해도 불운하게 생긴 드래곤의 브래스가 드래곤의 아가리에서부터 마구잡이로 쏟아져 내렸다.
비명을 치며 도망치던 사람들도, 망연자실 죽음을 기다리던 사람들도 덮어버릴 듯한 브래스.
관광지 전역에 브래스를 흩뿌리며 다시금 날아오른 드래곤.
하지만,
폐허가 되었어야 마땅할 관광지는 멀쩡했다.
누군가가 펼쳐낸, 거대한 규모의 방어마법 덕분이었다.
기절하듯 눈을 감았던 지나가 실눈을 뜨자,
뭉게뭉게 사라지는 브래스의 여파 사이,
반짝반짝 거리는 후광 같은 역광을 등진 남자가 보인다.
어느새 검은 묵빛의 갑옷으로 전신을 감싸고 있는 남자.
마치 영화 속 히어로처럼 생경한 모습.
하지만 지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남자는 방금 전 자신이 도망가야 한다고 잡아끌었던 그 남자임을.
그리고, 방금 그 드래곤의 무자비한 공격도.
정말로 저 남자 말대로 저 남자가 막아 냈음을.
지나가 자신을 보는 것을 알고는 손 인사를 날리는 남자.
“저기, 이름이라도!”
곧 남자가 떠날 것을 직감한 지나가 다급하게 물었다.
“칠성. 제 이름은 김칠성 입니다.”
갑옷의 헬멧 뒤로 쓱 웃은 칠성.
목적지를 향해 텔레포트 주문을 읊는다.
번쩍이는 푸른빛과 함께 사라진 칠성.
“휴! 무슨 일 인진 모르겠지만 산 것 같네.”
아직도 두근대는 심장을 쥔 줄 리가 지나에게 다가온다.
“김칠성...”
칠성의 이름을 중얼거리는 지나.
“뭐라고?”“아까 그 남자 이름, 김칠성.”
“뭐 김칠성?”
지나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는 줄리.
“정말 김칠성이었단 말이야?”
“왜, 누군데 그래?”
“몰라? 무지 유명한 사람인데!”
미국 에서도 각종 뉴스, 인터넷, 잡지 등에 도배가 되었던 사람이다.
지나가 모른 다는 게 오히려 줄리 입장에선 충격이었다.
“멋있어...”
“뭐라고?”
지나가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리자,
줄리가 물었다.
줄리의 질문에 수줍은 비명소리 같은 것을 지르며 외치는 지나.
“너무 멋있어! 김칠성!”
싸인 이라도 받았어야 한다고 투덜거리는 지나.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며 혀를 쯧쯧 차는 줄리.
“병이 또 도졌구만.”
지나의 짐을 챙겨주고 일으켜 세운다.
서서히 걸어가는 두 사람.
* * *
슝!
칠성이 공간이동 마법으로 날아온 곳은 다름 아닌, 드래곤을 좇고 있는 미국 헌터포스의 군용헬기 안 이었다.
마나에 민감한 헌터들 이다 보니,
갑자기 자신들의 헬기 가운데에 갑자기 뜬금없이 나타난 강렬히 산화하는 마나와,
그 사이를 뚫고 나온 칠성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모두들 시겁을 하며 한차례 술렁거린다.
“아유, 안녕하세요?”
귀신같이 나타난 칠성이 능청스레 인사를 건 낸다.
“으휴, 너무 놀랐습니다!”
가슴을 쓰러 내리는 헌터.
지금 사태가 일어난 계략적인 상황을 전해듣는 칠성.
이 몬스터가 발견된 것 은 그린도어.
문제는, 한국의 헌특부 시절. 그리고 지금의 수헌부 시스템 하 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린도어를 담당하는 헌터들은 소위 ‘짐승의 문’ 으로 불리는 그린도어를 담당하는 만큼,
짐승과 곤충들에 대응하는 공략법과 공략 장비들을 들고 들어가는 것이 문제다.
여느 때처럼 나타난 그린도어를 파훼하기 위해 레이드 길에 오른 미국 헌터포스의 그린도어 전담팀.
그런데 숲과 들 배경 맵의 짐승과 곤충형태의 몬스터를 잡는 게 전문인 그들 앞에, 난데없이 거대한 비행형 몬스터가 나타났다.
게다가 전에 없이 강력한!
“흐음...”
칠성이 낮은 신음을 흘렸다.
예전에는 백이면 백,
나타나는 몬스터들의 원형은 지구의 동식물 이었다.
대게 지구에 원래 있던 동물이, 기묘한 모습의 키메라가 되어 덤비는 것이 보통, 그리고 상식.
그런데 최근에는 얼마 전 칠성이 깨 부쉈던 불꽃 슬라임도 그렇고.
이번의 드래곤 형태의 몬스터도 그렇고.
도무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형태의 몬스터들이 출몰하고 있는 것 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몰라도,
무언가가 크게 변하고 있었다.
기존 레이드 방식으로 대응 할 수 없는 상황이 점차 많아지고 있었다.
“방금 드래곤의 관광지 공격도 김칠성님이 막아 내신게 맞습니까?”
“네. 그렇죠 뭐.”
심심하게 대답하는 칠성.
“지금 뭐, 막 날뛰어도 되는 부근인가요?”
“예. 많은 실체화 몬스터가 그랬듯 이녀석의 목적지도 대도시 인 것 같습니다. 인구수가 적은 도시들을 거의 무시하다 시피 하고, 지금은 산을 넘어 갈 생각인거 같습니다. 격추시킨다면 지금이 적기인데....”
“방법이 없다 이 말이죠? 걱정 마세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칠성이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뭐, 한 두 번잡아 본 것도 아니니까.”
말이야 바른 말 이었다.
드래곤처럼 생긴 몬스터건,
아니면 진짜 드래곤이건 간에.
이미 저쪽 세상에 있을 때 두어번이나 잡아 봤으니까.
“예?”
칠성이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헌터에게
미소를 던지더니 번쩍, 마법으로 사라진다.
* * *
두둥!
“끼익?!”
창공을 날던 드래곤 형태의 몬스터.
그 앞을 거대한 기간트 병기, 어둠의 거인이 막아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