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
S5 : 3화
광활한 눈밭 위.
야생 동물도 추위에 설설 기는 와중에,
점잖은 복식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어 있었다.
예의 칠성과, G9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선진국 각국의 정상들과 경호원들이다.
원래라면 경호 일정에 없는 곳에 날아오는 것은 불가한 일 이었지만, 세계 최고의 경호원인 김칠성이 함께하는 데야 모두들 이견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기묘한 기운을 내뿜는 일렁이는 검은색 구체와, 그 앞에 서 있는 거대한, 높이만 5미터 정도 되는 거대한 문.
해양 몬스터를 품고 있는 도어.
피셔맨 도어가 서 있었다.
“/러시아에선 보통이죠.”
난민들처럼 달달달 떨며 보디가드들의 자캣을 받아 입고 있는 다른 정상들과 다르게.
남들과 다를 것 없는 검은 정장 그대로 한 벌 만 입고도 혹한의 추위 사이에서 정말로 별 것 아니라는 듯 으쓱 해 보이는 러시아 총리.
칠성과 각국 정상들, 보디가드들을 포함한 일행이 텔레포트로 순식간에 도착 한 곳은 문자 그대로 설원이란 표현이 잘 어울리는 곳.
이곳에서 추위를 이기지 못 한 나폴레옹의 군대가 퇴각 한 것 일까 하는 의심이 드는 곳 이었다.
보이는 것 이라고는 눈과 산, 그리고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 나무 들 밖에 없었다.
“제가 러시아 날씨를 잘 몰랐군요. 죄송합니다.”
어느새 갑옷을 소환 해제 하곤 자신의 재킷을 벗어 미국 대통령의 어깨에 둘러준 칠성이 앞으로 나섰다.
“원래 이런 도어가 생겨나면 몬스터를 퇴치 할 수 있는 헌터들을 도어 안으로 보내 몬스터를 토벌하는 것 이 여태까지 우리가 해 왔던 방식입니다.”
찬찬히 사람들의 앞에 서며 설명을 이어가는 칠성.
성진을 향해 눈짓하자 성진이 잽싸게 커다란 007 가방같이 생긴 철제 케이스를 가져온다.
칠성의 앞에 놓여진 케이스를 칠성이 몇 가지 보안 절차를 거쳐 열자 나온 것은 장갑.
장갑처럼 생긴 물건이었다.
검은색 길죽한 특수소재 장갑에 금속의 쇠붙이들이 장식되어 있다.
두꺼운 기계장치들이 팔목부근에 굵직하게 달려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기계장치와 연결된 호스같은 것이 바닥에 둔 정육면체의 엔진 같은 것에 연결되어 있었다.
흡사 청소기에 장갑이 달리면 이런 느낌일까.
전혀 처음보는 물건의 등장.
호기심어린 시선을 보내는 정상들.
“크~ 여러분에게 오늘 소개 해 드릴 물건.”
마치 유치원 생 어린아이들에게 신기한 물건을 소개하듯 으스대는 칠성.
자신의 손길에 따라서 마치 먹이를 좇는 금붕어들처럼 왔다갔다하는 눈빛을 즐긴다.
디디딩!
칠성이 장비를 끼지 않은 다른 손의 검지를 슬쩍 휘두르자 사람들을 둘러싼 커다란 결계가 2중, 3중으로 생겨난다.
만일을 위한 조치다.
어리둥절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주변으로 생겨난 마법의 결계를 둘러본다.
신기할 법 도 하다.
결계를 구사하는 마법사는 꽤 많았지만.
이렇게 손짓 한 번에 거대한 다중결계를 별일 아니라는 듯 치는 마법사는 적어도 지구상에선 김칠성 뿐 일 테니까.
“대한민국 수헌부의 연구인력. 바티칸의 기술공유로 마침내 완성된 꿈의 장비...”
장갑 같은 장비를 낀 칠성이 도어가 있는 방향을 향해 손을 쭉 뻗었다.
슈아아아앙!!
그리고, 일어난 일.
칠성이 낀 장갑이 번쩍 빛나나 싶더니,
장갑이 마치 진공청소기라도 된 양 어마무시한 소음을 내며 무언가를 도어로부터 빨아들였다.
장치가 발동함과 동시에 무언가에 홀리듯 일렁거리는 피셔맨 도어.
치리리링-.
구경하고있던 정상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칠성이 차고 장갑같이 생긴 장비와 연결된 기계장치 위에 마련된 트레이엔 조금씩 조금씩,
햇빛이 부숴져 반짝이는 투명한 빛깔의 마석이 제조되어 쌓이고 있었다.
번쩍!
다음순간 눈앞에 입을 벌리고 으르렁 대고 있던 피셔맨 도어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취이이익-.
단지, 장비를 착용한 칠성의 손 안에 무언가 조류의 알처럼 생긴, 붉은 표면이 울퉁불퉁 한 단단한 돌덩이 같은 것만이 남아있을 뿐 이었다.
에그.
계란처럼 생겼기에 일단은 그런 이름을 붙인 것 이었다.
칠성이 특수 케이스에 방금 만들어진 따끈따끈한 에그를 밀어 넣고 밀봉한다.
멍하게 침이 흐를 기세로 입을 벌리고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해 다시금 장갑을 펼쳐 보이는 칠성.
“다시 한 번 소개드립니다. 꿈의 장비. 일루전 일리미네이트 테스크 킬러. (Illusion Eliminate Task Killer). 속칭 ‘도어 헌터’입니다.”
“/세상에...”
미국 대통령이 숨을 들이켰다.
10년.
무려 10년이었다.
선진국, 후진국을 막론하고 여기저기서 원인도 모른 채.
갑작스레 어느 날 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도어.
그리고 몬스터들.
그에 대응하느라 발버둥 친, 지금도 발버둥 치고 있는 인류는 어마어마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었다.
도어로 명명된 미지의 물건은 비단 금전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거두어가기도 했다.
마치 그에 응대하듯 나타난 헌터들이 없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비참한 모습이었겠지만 말이다.
헌터들의 등장과 처리 시스템의 정리,
헌터 육성 기관 등에서 전문적으로 육성된 헌터들.
그리고 던전 테크놀러지의 연구로 이제 초기와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정적으로 대응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이따금씩 한번 레벨업 된 몬스터가 실체화 되어 도시를 습격하는 일 등이, 지구 레벨의 관점으로 보면 상당히 빈번하게 있는 일 이었고.
여전히 수도 없는 비용과 목숨을, 뜬금없이 나타난 천적인 몬스터에게 바치고 있는 게 현재 그들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고작 손짓 한번으로 이 모든 것을 종식 시키는 기적!
얼었던 분위기에 불이 붙은 것 은 다음순간 이었다.
어떻게 된 것 이냐, 무슨 일이 일어난 것 이냐.
모든 도어를 없앨 수 있는 물건이냐.
등등 목에 핏대를 올리며 질문 공세를 해오는 정상들의 열기가, 얼어붙은 시베리아 눈벌판 위를 뜨겁게 달구었다.
정말로 억만금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물건.
만약 지금 차고 있는 사람이 김칠성이 아니었다면, 누군가 이미 저 장비를 차고 있던 사람의 팔뚝 째 잘라 훔쳐가도 이상하진 않은 물건이었다.
“아니요. 아직 상용화는 멀었습니다.”
사람들을 달래는 칠성.
이 장비, 아티펙트의 발상은 사실 단순했다.
칠성이 평소 자주 쓰던 마석 정제술.
그 정제술을 던전 테크놀러지 기반의 공학적으로 재해석해, ‘도어’ 까지도 마석으로 정제해 버리는 물건이 탄생 한 것 이다.
도어를 이루고 있는 구성물질의 대부분이 사실은 마나라는 점에서 착안 한 것 이다.
그리고 상용화는 실제로 어려운 것 이 맞았다.
기술적인 문제도 그렇고,
비용적인 문제도 그렇고,
무엇보다 한번 발동 할 때 들어가는 마나의 양이 문제였다.
발동 되는데 들어가는 마나의 양이 어마무시 한 것은 둘 째 치고,
문이 완전히 사라져 에그가 될 때 까지 발동을 유지해야하는 양은 상상을 초월한 수치였다.
칠성이야 원체 인간을 초월한 마나 운용량을 가지고 있으니 버텨내지만,
만약 장비가 도중에 멈춘다던가,
문이 에그가 되기 전에 과정이 멈춘다던가 하면 무슨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형편이었다.
그렇기에 인류의 골칫거리를 한큐에 없애 줄 이 꿈의 장비는,
사실상 현재로선 칠성만이 쓸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래서 계속해서 연구, 개발을 위한 자금이 필요한데 말이죠...”
이것이 칠성의 본론이었다.
칠성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각국 정상들이 서로 손을 들며 서로 투자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씨익.
칠성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역사를 바꿀 수준의 꿈의 장비.
이를 위한 범국가적 투자자들.
어마어마한 양의 연구비가 모일 것 이다.
물론 연구비는 대부분 연구에 쓰일 것 이다.
‘수수료만 좀 챙기고.’
간사하게 양 손바닥을 비비는 칠성.
대부분은 말 이다.
* * *
각국 정상들이 칠성을 따라 시베리아로 날아간 사이.
미 국방성, 미 헌터 포스는 패닉에 빠져 있었다.
“/전혀 없었단 말인가?”
“/네. 전혀.”
칠성이 텔레포트 할 것 이란 건 사전에 들어둔 정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이런 걸 말 하는 것 이라곤 생각하지 못 했다.
“/그럼, 사용자가 작정하고 숨기면 우리가 알아낼 방법이 있긴 한가?”
“/...예, 두려운 사실이지만 지금으로선 없습니다.”
미국 보안의 정점.
펜타곤 내부의 비밀 파티장.
그곳에 오직 자신의 비서가 전해준 위치정보 만을 가지고 공간을 뛰어넘어 공간이동 해 온 김칠성.
수 천 대의 미군이 보유한 레이더와,
역시 수 천 대의 마나 탐지기는 울리지도 않았다.
만약 이들에게,
한 손으로 순식간에 도어를 없애버릴 수 있는 기술과,
김칠성의 텔레포트 중 위험한 기술이 무었이냐 물어본다면 이들은 일만의 고민도 없이 텔레포트를 고를 것 이다.
이건 기술적 혁명이었다.
이것을 악용한 어떠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신이시여....”
헌터포스를 관리하고 있는 미군의 간부는 굳은 입과 긴장된 눈빛으로 화면을 노려다 보고 있을 뿐 이었다.
자기가 원하는 공간에 어디든지 존재 할 수 있다.
어디에나 갈 수 있고 어디에도 없을 수 있다.
신의 탄생이었다.
* * *
“결혼 해 주세요!”
멀끔한 베이지색 양복.
다른데도 아니고 아스팔트 바닥.
그 바닥위에 무릎을 꿇고선 손에는 반지가 담겨있는 케이스를 내미는 남자.
언 듯 느끼해보이기 쉬운 엘레강스한 웨이브 펌의 염색 머리가 잘 어울리는 남자의 이름은 정현우였다.
그리고 그의 고백을 받고있는 행운의 주인공은.
“칠선씨!”
“네에?!”
다름 아닌 김칠성의 누나.
김칠선 이었다.
별 문제 없이,
그대로 다니던 회사를 계속 다니고 있던 김칠선.
사실 직장 내에는 그녀를 호시탐탐 엿보는 남자들이 있기야 있었으나,
정도현을 토마토로 보내 버리던 때의 김칠선과.
김칠선의 어마무시한 동생의 위용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남자들은 진즉에 식겁을 하고 대시 해 볼 생각 자체를 고이 접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칠선의 마음에도 딱히 드는 남자가 있었던 것 은 아니었지만 말 이다.
하여간 드라마 등에서 흔히 나오는 사내연애의 로맨스는 평생 없겠구나 싶었다.
이 골 때리는 신입이 들어오기 전 까지는.
로맨스는 의외의 장소와 상황에서 꽃피었다.
자신의 두 눈으로 칠성을 영접해 보지 못 한 정현우의 어리석음도 분명 도움이 되기야 했으리라.
김칠성은 누가 뭐래도 제정신인 남자라면 절대로 갖고 싶지 않은 처남 이었으니까.
어쨌든 칠선은 이 고작 25살 된 철없는 철부지 신입을 거두다? 싶이 했고, 이 철없는 신입의 끊임없는 애정공세에 철옹성 같던 칠선의 장벽도 스르륵 어느새 무너졌던 것 이다.
바쁜 회사 생활, 남들의 시선을 피해 슬금슬금 연애를 즐기는 스릴감도 있었다.
그러기를 고작, 3개월.
“너무 이르지 않아요?!”
칠선이 펄쩍 뛰었다.
“아니, 저. 그게....”정현우가 눈을 굴렸다.
역시 본인 생각에도 너무 이르다 싶은가?
하지만 이대로 물러서면 정현우가 아니지.
“사랑에 이른 게 어디 있어요!”
저돌적인 눈동자.
심쿵!
“좋아요!”
그러곤 좋아서 팔짝팔짝 뛰는 두 사람.
원래 사랑이 덧씌워 지면 덧없는 헛소리라도 그럴싸 해 보이기 마련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겐 계획이있다.
정현우에게도 아주 체계적인 계획이 있다.
우선은 그 옹골차게 험하다는 처남부터 공략해 들어가고, 순식간에 칠선의 부모님의 마음을 훔친다.
그렇다.
인간은 계획하는 존재.
누구나 계획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쫙!
한 레스토랑,
김칠성이 뿌린 물컵의 물이 뺨을 치듯 정현우의 얼굴을 강타한다.
여태까지 계속 그래왔다.
모두들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김칠성을 만나기 전 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