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
S4 : 24화
바티칸 성전기사단의 최후의 보루.
신에게 죄인의 처분을 맡기는 ‘처형’ 마법.
그 마법의 중심 사이로,
어깨에 소울 콜렉터를 맨 칠성이 한손으론 귀를 파며
여유롭게 걸어 나오고 있었다.
“별 거 없네.”
어깨를 으쓱 하며 기니예프 앞에 선 칠성.
“뭔 진 몰라도, 신이라는 양반은 말이 좀 통하는 거 같네.”
칠성은 기니예프가 처형 마법이 신의 판단을 근거로 한다는 것을 기억해 내고 성질을 돋울 겸 해서 이렇게 던졌다.
“이제 우리 문제없는 거지?”
“저...그..그런.”
상상치도 못 한 의외의 상황.
기가 막힌 듯 더듬더듬 말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 하는 홀리오더 기니예프.
처형 마법은 간단한 논리로 움직인다.
죽어 마땅한 죄인을, 어떠한 조건을 불문하고도 완전히 죽여 없앤다.
반대로 말하면, 이 마법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은.
죄인이 아니란 소리다.
“그래~ 뭐 오해였다는 거 아니야.”
칠성이 기니예프의 어깨는 쥐고 웃으며 물었다.
채앵! 챙!
여기저기서 검집에서 검을 발 검 하는 쇳소리가 울린다.
예의 500인의 종단기사가 칠성과 기니예프를 둘러싼다.
“그래, 너희가 오해하고 잘못 한 거 맞지?”
종단기사들이 그러던가 말든가, 신경도 쓰지 않고
칠성이 기니예프의 어깨를 쓸면서 물었다.
“그렇...지요.”
죄인도 아닌 사람을 전력을 다해 죽이려고 했다.
사실이라면 명백한 실수다.
방금의 처형 마법에 조작은 없었다.
자신이 확인했다.
그렇다면 정말로 신이 판단하기에 칠성은 죄인이 아니라는 말...
오히려.
‘티끌의 상처도 없이 걸어 나온 것 은...’
죄에 비례하는 대가를 지불해야하는 처형 마법.
이 마법은 흔히 ‘심판의 날’ 에 처해질 처형의 순간을 당겨오는 마법이다.
세상을 멸망시킬, 아니 어지간한 중죄인이라면 사형.
아니라고 해도 인간은 살아가다보면 지은 죄가 있기 마련.
이렇게도 멀쩡하게 걸어 나왔다는 것은....
‘오히려 선인.’
이라는 말이 된다.
한치의 죄를 짓지 않은 선인.
아니면 죄업을 넘어설 만큼의 선업을 쌓은 선인.
어느 쪽이든 간에....
“그렇습니다. 저희가 큰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정중하게 한 쪽 무릎을 꿇으며 사과하는 기니예프.
“기니예프님?!”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종단 기사들.
칠성을 향해 치켜들었던 검날들이 우물쭈물하며 갈길을 모른다.
‘당황스럽겠지.’
기니예프 역시도. 이러한 결과가 이해는 가지 않는다.
하지만, 처형의 결과를 의심한다는 것은 신을 의심한다는 이야기.
“죄송합니다. 김칠성님. 저희가 너무 옹졸한 시야로....”
정중한 마음으로 칠성에게 사죄를 올리는데...
“그렇지? 잘못했지! 잘못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말을 끊어먹고 다그치듯 묻는 칠성.
“그것이... 진실한 마음으로 사죄를 하고....”
“아니지! 아니지!”
“예...?”
기니예프의 어깨를 툭툭 치는 칠성.
“잘못하면 맞아야지.”
“...예?”
잘 못 들었습니다?
마치 갈굼 당하는 이등병처럼,
그런 말이 라도 붙이고 싶은 듯 보이는 기니예프의 얼굴.
“잘못을 했으면 맞아야지~”
만면에 사악한 미소를 띄우며,
주먹의 관절을 뚜두둑 푸는 칠성.
꼴깍.
묘하게 긴장한 표정의 종단 기사들이 식은땀을 흘린다.
* * *
빠각!
“꺄울~”
칠성이 멱살을 쥐고 양편으로 찰싹찰싹 폭풍 싸대기를 치던 종단기사 한명의 턱에 어퍼컷을 먹인다.
주먹에 맞고 허공으로 올라간 기사는 그대로 예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저 멀리 쓰러져 쌓여있는 종단기사들 위로 떨어진다.
“후아!!”
스트레스 제대로 풀렸다.
손을 탁탁 턴 칠성.
“기묘하네?”
분명 장기간의 전투로, 뱃속 끝까지의 마나가 고갈되었어야 맞는 거 같은데.
저 이름도 찝찝한 처형 마법 속에 들어갔다 나온 뒤로 오히려 몸에서 활기가 넘친다.
‘신의 축복이라도 되나.’
쩝.
내가 한 고생이 얼만데 이정도 거슬러 받은 건가.
손해 받은 장사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칠성.
저 멀리 보이는 쓰러져있는 스트레스 해소용 500인의 샌드백.
칠성이 떠나려는 거 같으니까 꿈틀꿈틀 거리며 일어나는 게 보인다.
새끼들. 엄살이었네.
한바탕 더 해줄까 하다가 그냥 만다.
아니 심지어, 비장하게 지옥에서 만나네 마네 하면서 자폭 공격을 한 녀석 까지도 들것에 실려 가긴 했지만 목숨은 붙어있었다.
이 새끼들이랑 엮이면 꼭 이렇게 된다.
성질나게.
홀리오더들은 딱 봐도 중늙은이 들이라,
아무리 능력자라곤 해도 뭔가 찝찝해서 패진 않았다.
물론 그럼 회개를 하지 못 하실 테니 원산폭격 자세로 바닥에 머리를 박아 놨다.
12명의 홀리오더가 사이도 좋게 얼차려를 받고 있는 풍경.
“야, 나 간다?”
기니예프의 머리를 툭!
치곤, 자캣을 접어 한손에 걸어 어깨에 걸친 채 남한 쪽으로 걸어 나가는 칠성.
“사, 살펴가십쇼!”
기니예프가 균형을 잃곤 바닥에 풀썩 쓰러져 칠성의 등 뒤에 대고 인사를 올린다.
그대로 뒤도 안 보고 걸어 나가는 칠성.
칠성이 점점 멀어지자 쓰러져있던 어둠의 거인도 형체가 흐릿해 지더니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지, 지금이라도 추격조를 붙여 놓을 까요 기니예프님?”
잽싸게 누군가가 기니예프의 옆으로 와서 귓가에 속삭인다.
유유히 빠져나가는 칠성을 보며 안절부절 못 하는 성기사.
“아니요. 저도 이해는 가지 않지만....”
천천히 멀어져가는 칠성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는 기니예프.
“신께서.. 저 남자가 살기를 원하십니다.”
* * *
“비켜! 나 가야돼!”
“진정하세요!”
“아 누나!”
DMZ의 남쪽, 칠성의 명령으로 후퇴하던 헌터들과 뒤얽혀 있는 건 뒤늦게 쫓아 온 한솜이였다.
아는 얼굴들을 발견해서 반가워했던 것 도 잠시.
그런데 칠성이 보이지 않았다.
칠성은 어디 있냐는 질문에 누구 하나 시원하게 대답 해 주는 사람이 없자 한솜이가 다그쳐 물었고,
갑작스럽게 등장한 성전 기사단의 전력에 칠성만을 남겨두고 모두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것 이다.
그리고 자기 혼자서라도 칠성이 있는 곳으로 가겠다는 한솜이를 말리는 실랑이가 시작 된 것 이었다.
“어 워워워!”
헌터들이 휘청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어찌나 힘이 센지 열 댓 명의 헌터가 얽히고도 한솜이가 한번 씩 힘을 줄 때 마다 무리가 들썩 들썩 거렸다.
“누나! 알잖아. 우리가 낄 스케일이 아니야!”
막무가내로 칠성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가려는 한솜이를 막는 헌터들.
그중에는 당연히 김태홍도 있었다.
“너는 뭐 했어! 넌 왜 멀쩡히 여기있구! 네가 제자라면서 이 새끼야!”
평소라면 절대로 욕지기를 입에 올리지 않을 성품의 한솜이였지만,
이번엔 쌍시옷 소리를 뱉으며 김태홍의 정강이를 발로 찼다.
“누나!”
“팀장님, 잠시 진정하시고.”
옆에서 지우혁이 손을 보태며 거들었다.
“지우혁씨. 친구라면서요? 적들 손아귀에 친구 버리고 오는 게 친구에요?”
한솜이를 말리려다 괜히 본전도 못 찾았다.
일침을 맞은 지우혁이 쓰라린 듯 입을 꾹 다물었다.
“비켜!”
덜컥!
“팀장님!”
“아이고!”
다시 실랑이를 벌이는 한솜이와 사람들.
그러던 와중, 한솜이의 반항 아닌 반항이 갑자기, 숨 죽은 듯 멈춘다.
저 너머 어딘가를 보는 한솜이.
이상하다 싶은 사람들이 뒤 돌아보자 저 멀리, 초목 사이에서 걸어오고 있는 남자.
“이건 또 무슨 난리들이야?”
한솜이와 뒤얽혀 있는 헌터들을 보며 핀잔을 주는 칠성.
자연스럽게.
한솜이를 위한 길을 터주는 헌터들.
“칠성씨!”
한솜이가 달려 나간다.
칠성의 품에 안기는 한솜이.
“어이쿠! 야. 네가 여기 왜 있냐? 내가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어 안 했어?”
달려온 한솜이를 받아낸 칠성이 한솜이의 머리를 손으로 헝클어뜨리며 묻는다.
“나는, 나 때문에... 잘못 됐을까봐. 나는 그런것도 모르고. 내가 괜히 부추켜가지구....”
울먹이는 한솜이.
“참내! 별꼴이네. 자기가 하라 그래놓곤.”
칠성이 받아주기는커녕 받아치자 이제는 대성통곡 하며 우는 한솜이.
“앞으로... 앞으로 내가 꼭 곁에 있을게. 흑.
이 세상 사람들 다 칠성씨 적으로 돌려도... 나는 옆에 있을 거야.”
울먹 울먹 거리며 말을 이어가는 한솜이.
“울지 마. 앞으로도. 이렇게 잠깐 안 보일 순 있어도.”
한솜이를 쓰다듬던 칠성.
한솜이의 어깨를 잡고 눈을 바라본다.
“이렇게. 다시 나타날 태니까.”
진심이다.
불사 좋다는 게 뭔가.
떨리는 한솜이의 동공.
“흐에에엥!”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추한 소리로 울어버린다.
이 남자, 오늘따라 왜 이리 어른 같으냔 말 이다.
칠성 역시도, 자신과 한솜이를 열심히 구경하는 헌터들에게는 곤란하단 표정을 지어보이면서도, 품에 안겨 우는 한솜이를 쓰다듬어 준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자기들 끼리 떠드는 헌터들.
“한솜이 팀장님 많이 변하셨어. 그지?”
“왜 그런 말 있잖아요.”
“어떤 말?”
“사랑은 움직이는 거라고.”
“뭐?”
“아닌감... 아니면 어때. 자기들이 좋다는데.”
“쩝. 그래.”
팔짱을 끼고 묘하게, 부러운 듯.
보기 좋은 듯. 서로 부둥켜안은 한솜이와 김칠성을 구경하는 두 헌터.
“좋~을 때다.”
* * *
[중국의 휴전선언에 이어. 대한민국의 요구로,
중국이 무력으로 점령했던 지역의 반환이 이루어진다는 소식입니다. 이어서....]
앵커의 멘트가 이어지던 뉴스 화면.
이내 뉴스의 자료화면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면 커다란 대 회의장.
마치 스포츠 경기장처럼 반원의 형태로 구축 되어있는 회의장.
목제 테이블에 앉아있는 수 십 명의 무언가를 대표하는 사람들.
그리고 장내엔 그보다 더 많은 수의 보좌관들.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람들 앞에는 자신들이 상징하는 단체를 상징하는 심벌깃발들이 놓여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캐나다, 영국, 독일, 일본, 브라질... 그리고 UN.
수많은 국적의 사람들.
다급하게 짜여진 일정 덕 분에 일국의 수상부터 장차관 급 까지 다양하다.
어수선한 장내.
이상한 점은.
이 초국적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는 장소가,
다름 아닌 한국 국회의사당 이란 점이다.
그리고 의사당 가운데 발언대에 서는 인물.
“다급한 일정이었는데, 다들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성이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포르투갈어 ....
칠성이 말을 함과 동시에, 각국의 통역관들이 빠르게 칠성의 말을 옮긴다.
“중국의 헌터를 이용한 무력 국지도발을 계기로, 계획되었던 일이.
사실 제 공상과도 같았던 허무맹랑한 일이.
각국 각계각층 여러분의 적극적 협조로 그 형태가 완성되었고.
오늘 이제, 본격적인 설립 선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차분하게 선언문을 읽는 칠성.
“소개드립니다. 전쟁, 살인 등. 심각한 수준의 헌터 범죄에 대응하는 초국적 연합체.”
칠성이 한쪽 손을 들어 올리자,
칠성의 등 뒤 천장에서부터 거대한 깃발이 펼쳐진다.
둥글고 푸른 지구를, 형상화 된 이순신 장군이 지키고 선 모습의 심벌.
“초국적 헌터 연합체. UHD (Universal Hunter Defense)입니다.”
각국의 외신 기자들이 웅성거린다.
수도 없는 플래시 라이트 들이 터진다.
“UHD의 주요 전력은 한국의 헌터 연합.”
칠성이 말을 하며 장내에 앉아있던 한국 헌터 연합을 손으로 가리키자,
한솜이를 필두로 한 수 십여 명의 헌터들이 잠시 일어난다.
“미국의 헌터 포스”
미국의 국방 차관을 비롯한 헌터들이 기립한다.
“각국의 국가 공인 헌터 분들을 포함한 군대들. 그리고.”
장내의 한편을 손으로 가리키며 살짝 빛나는 칠성의 눈빛. 피식 웃는다.
“바티칸 성전 기사단 여러분.”
언론 기자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극으로 치닫는다.
속세의 일에는 절대로 개입하지 않겠다던 그 바티칸이?
국회의사당 밖에선, 어둠의 거인과 바티칸의 기간트 병기.
7천사 들이 어둠의 거인을 중심으로 국회의사당을 호위하듯 열을 맞추어 서 있었고.
기간트 병기를 멀리서나마 구경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과,
헬기까지 동원해 촬영하는 언론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다시 의사당 안.
말 없이 조용히 일어난 기니예프를 필두로 한 12인의 홀리오더들.
“우린 UHD 의장님인 김칠성 님 에게 큰 빚을 졌고, 좋은 일을 벌이신단 소리를 듣고 우리의 빚을 갚을 기회라고 생각했기에 힘을 보태기로 결정했습니다.”
담담하게 소감을 말하는 기니예프.
프래스들의 웅성거리는 수선은 멈추지 않았다.
아무리 평화를 위한 조직이라지만,
명실공이.
지구 최강의 전력을 보유한 집단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말하며 주먹을 들어 올리는 칠성.
“평화를 위하여!”
딱히 계획되었던 멘트나 동작이 아니다, 즉석에서 나온 애드리브.
평화를 위하여!
그런데, 누가 시킨 것 도 아닌데, 하나, 둘 따라하더니 장내의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주먹을 치켜들어 화답한다.
이어지는 박수 세례.
박수를 치는 무리 사이에서 박수를 치고 있던 한솜이와,
칠성의 눈빛이 마주친다.
서로를 보며 웃어 보이는 두 사람.
한 명쯤 나의 편이 되어 주면 좋겠다.
설사 다른 모든 사람들의 적이 된다 해도.
/S4 - 퍼블릭 에너미 完
...그리고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