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
S4 : 23화
슉슉, 슈슈슉!
성전기사단의 기간트들이 휘두르는 거대한 검과 헤머, 무기들이 허공을 갈랐다.
“크읏”
칠성이 인상을 구겼다.
적들의 공격이 점차 각을 좁혀오고 있었다.
아무리 칠성이 주문추적자를 이용해 회피를 하고 있다 해도, 이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칠성이 탑승한 어둠의 거인에는 이미 상당한 데미지가 쌓여 있는데다가,
상대들은 숫자가 무려 일곱, 일곱 개 방향의 공격이 불규칙하게 번갈아가며 들어온다.
무엇보다도, 상대들도 호구가 아니다.
‘회피력이 좋다면, 절대로 회피하지 못 할 공격을 하면 된다.’
이러한 미카엘 파일럿의 의지에 모두가 동감하고 있었고, 그들은 마치 체스에서 상대방 적장의 생존 가능한 경우의 수를 하나하나 제거 해 나가듯 어둠의 거인을 체계적으로 옥죄어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칠성에게도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의식 일체화 완료. 어둠의 거인을 통한 마법 발현이 가능합니다.>
‘좋아. 간다!!’
칠성이 이를 악문다. 승부처다.
“*다크 미사일*”
『*다크 미사일*』
콰아아아아-!
순식간에 어둠의 거인 머리 위에 세 개의 거대한 다크 미사일이 생겨났다.
“이게 – 무슨.”
“말도 안되는...!!”
칠성을 상대하는 7대 천사 기간트의 조종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들의 상식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어둠의 거인은 단순한 어둠속성의 기간트가 아니었다.
님프족의 기술의 정수가 적용된.
오로지 칠성만을 위한 비장의 병기.
온갖 이종족들이 마음을 합쳐 연합해 만들어낸 전무 후무의 병기다.
애초에 조종사의 의식이 골렘과 하나가 되는 의식 일체화 기술조차 어둠의 거인만이 가지고 있는 기능이었다.
다른 기간트 병기들은 조종사들이 조종석에서 각종 계기판을 보며 패들로 조종한다.
그리고 이런 의식 일체화 기술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
기간트를 통한 마법구현!
단순히 기간트를 탄 채로 마법을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둠의 거인 전신에 적용된 기술로 마법의 위력 또한 어마어마한 규모로 증폭된다.
그러니까, 제 아무리 고위마법마저도 버텨내는 기간트라도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가 된단 말 이다.
콰아아앙!!!
칠성이 발사한 다크미사일 세 개가 각기 다른 기간트들에 꽂혔다.
우리엘과 미카엘은 간신히 막아냈으나 레미엘이 당했다.
거대한 기간트 병기가 쓰러지고 그 충격으로 인해 대지가 폭격이라도 맞은 듯 치솟아 오른다.
-레미엘!
-레미엘!!
동료가 당하자 절규하는 7대천사의 이름을 이어받은 종단 기사들.
마법으로 기간트가 격추 되는 것 은 아예 상정조차 해두지 않은 경우다.
그것도 치명상으로 한방에 쓰러진다는 것 은.
-뭣들 하는 거야! 정신 똑바로 차려!
충분히 놀랄 만 한 상황이지만 놀랄 틈이 없다.
미카엘의 판단은 정확했다.
왜냐면, 지금 자신들 눈앞의 상대는, 아주 잠깐만이라도 틈을 주면-.
쾅! 쾅 콰쾅!!
-제...기랄.
미카엘이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그들이 레미엘이 쓰러진 충격으로 진영이 아주 잠시 흔들린 사이.
순식간에 세채의 기간트가 이리저리 부품 조각이 되어 허공에 휘날렸다.
허리가 잘린 녀석, 목이 날아간 녀석.
형체도 알아 볼 수 없게 사방으로 분해되어 버리는 녀석.
뇌속을 가득 채울 정도로 달리는 아드레날린 덕에,
미카엘의 눈에는 그 모든 풍경이 슬로우모션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 슬로우모션으로 흩뿌려지는 동료들의 잔해 속, 어둠의 거인이 천천한 걸음으로 걸어온다.
마치 공포영화의, 악마와도 같은 모습.
콰지직!!
순식간에 미카엘이 보고 있던, 기간트 외부 상황을 보여주는 모니터 패널이 부수어지며, 그 사이로 거대한 칼날이 파고들어 미카엘의 복부를 찌른다.
어둠의 거인의 팔목에 부착되어있던 클로의 검날이다.
“크윽!”
일반인 이었다면 클로가 일으키는 풍압만으로도 잘려서 죽었겠지만, 미카엘은 이름값이 아깝지 않게 복근으로 검 끝을 받아냈다.
내상으로 피를 조금 토한 게 전부다.
콰창!
부숴지는 조종석의 방호판.
자신의 목숨이 적의 손끝에 달린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카엘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째서, 어째서 이다지도 강한 것 이냐! 이건 사기잖아!! 너 같은 녀석이 존재 하는 게 말도 안 되잖아!!”
마나로 강화된 미카엘의 음성이 전장에 쩌렁쩌렁 퍼졌다.
“무협지 처럼 기연 같은 것이라도 얻은 것 이냐! 드래곤 하트라도 얻어서 씹어 먹었냔 말이다!”
그 목소리를 들은 어둠의 거인, 아니 칠성이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말 한다.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냐? 그저...』
조용한 눈으로 미카엘을 내려다본다.
『말도 안 되는 인생이었고, 그걸 이기고 살아낸 사람일 뿐 이다.』
“그럴...리가.”
미카엘이 조용히 중얼거린다.
핑~!
어둠의 거인의 클로가 마치 이쑤시개로 수박에서 수박씨를 발라내듯, 기간트에서 미카엘을 발라내어 던져 버린다.
“그런...가.”
허공에 휘날리는 미카엘.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서서히 의식을 잃는다.
승부는 기울었다.
칠성의 조종으로 어둠의 거인의 클로가 또 다른 기간트. 우리엘의 조종석을 뚫었다.
그런데.
“이야아아아앗!!!”
이미 칠성에게 자신이 당할 것을 예상 한 것 일까.
조종석에서 이미 몸을 피해있던 우리엘이, 자신이 탄 기간트의 조종석을 박살내고 있는 어둠의 거인의 팔을 타고 올랐다.
팔을 타고 달려 오르는 우리엘.
그리고 손에 들린 원형의 통.
투득! 투드득!
“으아아아!!”
허벅지의 근육이 파열되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우리엘은 개의치 않고 발걸음에 마나를 더욱 밀어 넣는다.
그야말로 생명을 다한 전력질주.
치식-철컹!
순식간에 어둠의 거인 조종석 밖에 부착되는 탄두.
“지옥에서 만나자.”
악인과 자살자는 지옥에 간다.
자신을 보고 있을 칠성을 향해 씨익 웃어 보인 우리엘이 기폭 버튼을 누른다.
꽈아앙!
무너져 내리는 어둠의거인.
칠성이 다급하게 자신의 몸에 쉴드를 전계하며 몸을 웅크린다.
* * *
타닥. 타닥.
후드득.
쓰러져 있는 어둠의 거인.
부수어진 조종석의 잔해 사이로, 웅크리고 있던 칠성이 몸을 일으킨다.
“크으으읏... 젠장 할.”
뻐근한 온몸을 비튼다.
빈틈이었다.
어둠의 거인이 제작된 세계에선 인간의 화기 제작 기술은 그야말로 형편없다.
중세시대를 간신히 벗어난 수준이랄까.
절대로 어둠의 거인의 기본 장갑을 뚫을 수 없는 수준이란 이야기다.
그렇다보니 어둠의 거인은 물리저항 보다는 방마 시스템의 설계에 훨씬 공을 들인 작품 이었다.
녀석들이 알고 한 건지 모르고 한 건지야 모르겠으나, 결과적으론 정확하게 의표를 찔렸다.
칠성이 여유 있게 몸을 푼다.
팔도 풀고 허리도 돌리고.
아예 체조라도 할 기세다.
자폭까지 불사하며 맹렬히 공격 해 오던 적들을 앞에 두고 여유를 부리는 것은 무언가 굉장한 자신감이 있어서가 아니다.
적들의 행동도 그렇고, 칠성이 보기에도 이 승부는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성전 기사단의 승리로.
“그래서, 이게 뭐냐?”
칠성이 자신의 머리 위에 떠 있는 태양 같은 빛의 구체를 가리키며 물었다.
칠성을 중심으로 한 황금의 마법진은 DMZ 전역을 넘어서까지 엄청난 규모로 뻗어있었다.
마법진을 펼친 것은 우리엘의 자폭으로, 칠성이 잠시 주문 추적자를 사용하지 못하게 된 그 짧은 틈 이었다.
12인의 홀리오더가 지나치게 몸을 사리나 싶더니, 이걸 준비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마법의 타게팅은 칠성의 영혼으로 맞추어 져 있다.
무슨 주문인진 모르겠지만 강대한 마나로 바닥에 새겨진 법진 덕에 주문 추적자로 간단하게 취소시킬 수 도 없다.
법진의 곳곳은 예의 500인의 소드마스터급 종단기사들이 지키고 서 있었다.
이것이 이들이 준비한 최후의 수단이었는지, 아니면 이전의 것 들이 모두 미끼일 뿐 인지야 모를 노릇이지만.
이들이 수 많은 희생을 지불하고 완성해 낸 이 마법은 아무리 칠성이라도 꼼짝없이 맞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게 뭐냐고.”
칠성이 머리위의 구체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보며 재차 묻는다.
제법 숙연한 현장의 분위기.
주변 사람들과 눈빛을 주고받던 기니예프.
홀리오더 기니예프가 칠성의 앞으로 차분히 걸어 나온다.
고작 일 미터 여 정도로 가까워진 두 사람의 거리.
“죄인을 즉결 처분하는...‘처형’ 의 법진 입니다.”
“처형?”
되묻는 칠성.
“발동되면, 죄인의 목숨을 순식간에 거두어가는 절대적 주술이지요. 제 아무리 방어 능력이나, 재생 능력이 뛰어난 자라도 소용없습니다.”
“흠, 죄인... 내가 죄인인 거 판단은 누가 하는데? 그거 순전히 네 멋 대로인 거 아니야?”
기니예프의 코앞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곤 노려보는 칠성.
“껄껄껄... ‘처형’ 은 홀리오더들 에게 전승되는 강신 판단의 주술... 누가 죄인인지는 신께서 직접 판단하십니다.”
한발 물러서며 웃는 기니예프.
“마지막 자비를 베풀죠, 지금이라도 순순히 투항 하시겠습니까?”
한쪽 눈썹을 낚시줄에 걸린 것처럼 끌어올려 보이며 묻는 기니예프.
“됐다. 니들한테 끌려가서 종교재판을 받느니, 차라리 신이니 뭐니 하는 양반을 믿어보지.”
팔짱을 끼며 쿨 하게 뱉는 칠성.
“껄껄껄... 그러시다면야.”
한발 물러나는 기니예프.
이어서 처형 마법이 발동된다.
발밑의 법진에서 뿜어져 올라오는 황금빛 마나의 역광에 휩싸이는 일대.
모든 사람들이 발밑에서 올라온 빛에 휩싸인다.
순식간에 전, 후, 사방을 가늠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빛에 휩싸인 DMZ.
자신을 향해 사방에서 덮쳐오는 거대한 금빛의 헤일.
칠성이 조용히 눈을 감는다.
영혼에 타게팅 된 마법.
무슨 짓을 해도 어차피 막아 낼 수 없다.
절대적 마력의 처형이 다가온다.
‘쩝, 뭐 조금 억울하긴 한데.’
한편으론 시원, 섭섭하다.
평생을 그놈의 예언 때문에 도망자로.
뭐, 일부 사실도 있지만 대부분의 오해로.
성기사들의 추격으로 쫒기고 쫒기다.
드디어 마감하는구나.
‘나쁘지는... 않은 인생 이었던 거 같긴 한데.’
턱을 긁적이는 칠성.
남겨질 사람들이 걱정 될 뿐 이다.
당연히 부모님께 미안하고, 가족에게, 친구에게...
그리고
‘한솜이...’
우습다.
기껏해야 알게 된 지 일 년도 안 된 사람이 이 마당에 떠오르네.
아마 펑펑 울 거 같다.
자기 때문이라고.
미련하게도.
...이랬으면 이 상황을 피할 수 있었을까, 저랬다면 이 죽음을 피할 수 있었을까.
인생의 주마등으로 복기 되는 삶의 파편들.
그 파편들을 바라보며 서서히 칠성의 의식이 느려져 간다.
콰슈우우우우웅-!!!
처형 마법이 성공리에 실행된다.
그리고...
“후후...후.”
대마왕 처단의 과업을 달성한 홀리오더 기니예프가 언 듯 섬짓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칠성이 서 있던 자리엔 이제 한 덩어리의 거대한 빛무리가 뭉쳐져 있을 뿐 이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칠성을 죽이기 위해 희생된 망자와,
칠성을 위한 기도가 기니예프를 시작으로 이어진다.
숙연한 분위기의 성전기사단.
그리고...
“...끝이야?”
어디선가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
기도를 이어가던 기니예프의 입술이 멈춘다.
서서히, 고개를 들어 올리는 기니예프.
설마. 그럴 리가!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빛의 구체,
창대한 빛을 뚫고,
마치 신화 속 존재처럼 창대한 빛 속에서 나타난 남자.
“할 거 다 했냐고.”
한손으론 귀를 후비며,
시큰둥하게 물어보는 남자.
칠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