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
S4 : 21화
칠성이 항복을 받아내고,
그 뒤로 중국군은 순식간에 제압되었다.
중국군은 헌터와 비헌터군 모두 투항하였고, 그들이 동원한 거대화 된 실체화 몬스터들은 무답무용으로 폐기되었다.
시간이 지나자 망령의 군단은 자연스럽게 사라져 잠들었다.
콰르르륵-!
칠성의 검이 마지막 거대 몬스터를 쓰러뜨렸다.
무너지는 몬스터. 그리고
띵-!
몬스터에게서부터 빨려 들어가는 에너지.
칠성의 검, 소울콜렉터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 룬문자 중 마지막 글자가 마저 채워졌다.
“호오. 풀차지는 정말로 오랜만인데.”
소울콜렉터의 최대충전.
막대한 양의 마나가 들어가니 만큼, 최대한도 까지 채워질 일이 잘 없다.
최대한도까지 채워진다고 해도, 딱히 큰 쓸모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소울콜렉터의 ‘본주’를 소환 할 수 있다.
본주라고 해야 할까, 망령이라고 해야 할 까.
마법 검은 한 인간의 집요한 의지를 형상화 하는 것 이다.
모든 마법검엔 소위 말하는 ‘본주’ 즉, 마법검이 탄생하는데 기여를 한 원래 주인이 있다.
그리고 그 첫 주인의 성향대로 검의 능력이 전해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보통,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원래 주인을 소환하는 검은 드문데, 이 양반은 어찌나 욕심쟁이인지 검의 특수기능으로 본인이 튀어나온다.
따지자면, 이미 죽은지가 오래 된 망령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뭐, 그렇다고 그 소환된 본주가 엄청나게 강하면 또 모를까.
그 본주도 그다지 크게 쓸모는 없는 욕심장이 돼지 같은 양반 일 뿐 이지만.
그리고 그 때 였다.
쒸이이이이잉-!!
저 멀리서.
희한한 형태의 제트기들이 DMZ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십 여대의 제트기들, 저 멀리서 여기저기서 모인 듯한 전투형 헬기들도 뒤 쫒아 오고 있었다.
아군인지 적군인지, 웅성대는 한국군과 사람들.
하지만 그 의문은, 적어도 칠성에겐 오래가지 않았다.
피-슉!
<으...음.>
어디선가 날아온 창연한 백색빛의 창이 보이드의 가슴팍에 꽂혔다.
성기사단의 공격이다.
“보이드?!”
다급히 보이드를 부르는 칠성.
느린 동작으로 적을 살피는 보이드.
하지만 적을 채 파악하기도 전에, 수십개의 거대한 빛의 창이 보이드의 가슴팍을 관통한다.
팅! 팅!
몇몇개는 어둠의 거인을 향하기도 하지만,
어둠의 거인에 명중된 창들은 두꺼운 철갑을 향해 당겨진 화살처럼 볼품없이 튕겨져 나간다.
퍼퍼퍼펑!
이내 폭발하는 빛의 창들.
버텨내며 적을 살피는 보이드.
“보이드! 무리하지 마.”
칠성이 보이드를 다그쳤다.
급작스러운 상황에 술렁거리는 주변 사람들.
단순 소환상태와 현신 상태는 명백하게 다르다.
정령 소환 상태에선 아무리 큰 데미지를 입고 돌아가도,
술자의 마나 손해밖에 손해 날 것 이 없다.
하지만 현신한 상태의 정령은.
물론 그 만큼이나 강력하긴 하지만, 데미지를 입을 경우 본체에 그 데미지가 누적된다.
<알겠다.>
칠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보이드가 펑! 소리와 함께 사라진다.
다시 평소처럼 칠성의 그림자에서 조그만 한 보랏빛 눈을 뜨는 보이드.
“새끼들, 늦장 부리는 거 보소.”
몸을 푸는 칠성.
칠성의 뒷목에 흐르는 식은 땀.
긴장과, 적에 대한 기대감에 의해 치솟는 아드레날린.
씨익 웃는 칠성.
쿠유우우우웅-.
날아오면서부터 빛의 창을 보이드에게 흩뿌린 제트기가 허공에서 선회하며 멈추더니 수직으로 강하한다.
하나같이 황금색으로 도색이 되어 있는 미래형 제트기들.
“이...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야?”
“뭐하는 놈들이야 이건!”
“미군인가?”
웅성대는 헌터들.
한국군과 중국군, 그리고 김칠성을 순식간에 포위한 바티칸의 병력.
그 중 하나의 제트기에서 천천히 내리는 갑옷을 입은 성기사.
“새끼들아. 왜 이렇게 늦냐? 벌써 세상 다 멸망 하고도 남았겠다.”
칠성이 비웃었지만 아무 동요가 없다.
묵묵히, 자신이 준비해온 두루말이 종이를 펼친다.
“흐음!”
마나를 끌어올리며 숨을 들이키는 성기사.
“지금 이시각 부로. 우리 바티칸 성전 기사단은 인류 존망을 위협하는 마왕 김칠성에 대한 처형을 집행한다!”
쩌렁 쩌렁 울리는 성기사의 목소리.
“뭐, 뭐라고...?”
순식간에 폭탄이 터지듯 패닉에 빠진 수호헌터부 헌터와 제압팀 인원들.
그리고 국군.
그들의 상관, 장관이자. 히어로가 인류 존망을 위협하는 마왕이라니!
모두들 놀란 눈으로 칠성에게 주목한다.
쏟아지는 시선.
칠성은 그 눈빛들에서 하나의 메시지를 느낄 수 있었다.
‘제발 아니라고 해 줘!’
라는 메시지.
자기들이 칠성을 지켜주겠다는 듯 결연한 눈빛.
그들을 흐뭇한 미소로 돌아보던 칠성.
“응~ 맞는데?”
툭 뱉는다.
“형!!”
“아니 그럴 리가!”
“제기랄!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그에 대한 대답은 없이 칼을 뽑아든 칠성.
“안 바꿔 줘, 나 마왕 맞으니까 꺼지라고 잔챙이들아.”
어깨에 검신을 대 누이곤 삐딱하게 짝다리를 짚었다.
귀찮다는 듯한 눈빛으로 자신을 따르는 헌터들에게 꺼지라며 손짓하는 칠성.
웅성대며 갑론을박 하는 헌터들.
“왜, 이참에 니들도 다 죽여줄까?!”
눈빛을 번득이며 버럭 소리를 지르는 칠성.
콰악 뿜어지는 살기.
“제...제길.”
그런 칠성의 모습에 턱을 떨던 헌터들.
“처, 철수한다!”
김팀장의 명령과 함께 하나둘 철수하기 시작하는 헌터들과 국군.
포로로 잡힌 중국군 역시 마찬가지.
그들이 싸그리 물러나고 나자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칠성과 바티칸 성전 기사단의 대치.
칠성을 둘러싼, 지금도 헬기로 어딘가에서 부터 날라져 오는, 어느새 수 백 여명으로 불어나 있는 성전 기사단의 병력.
“흠~”
자신을 둘러싼 병력들을 보며 무언가를 계산 해 보듯 눈을 굴리는 칠성.
처형을 하겠다는 녀석들 치고, 왜 이리 간을 보는거지?
‘이 새끼들, 왜 이렇게 여유롭지?’
* * *
같은 시각, 수헌부 지하 연구실.
“고장이 난 게 틀림없어.”
눈을 가늘게 뜬 장소장이 중얼거렸다.
“...이거 대체 누가 만든 거예요?”
의심스럽다는 듯 살피는 차혜진.
“아니, 추정 값의 로직은 완벽해. 완전검증 된 거라고.”
“그렇지만, 중국군 전체의 마나가 300억 MMP 라면서요.”
“그렇지.”
“그런데 뭐가 잘못되지 않았고 서야....”
멍하게, 모니터의 빛을 받아 빛나는 차혜진과 장영실 소장의 안경.
모니터에 떠 있는 것은.
여러 곳 에서 순식간에 DMZ 인근으로 모여든 마나의 흐름.
그 총합의 추산 양.
“4000억....”
약 4000억 MMP.
족쇄를 해제하고 본 실력을 끌어올린,
칠성의 마나량 500억 MMP 의 8배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 * *
징- 징- 지잉-.
하나하나 빛을 뿜어내는 법진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 빛의 정령들.
수 십 명의 바티칸 소속 정령술사들이 불러내는 정령들!
예의 광염의 군주 아후라마즈다도 끼어있다.
정령은 정령으로 싸우게 하는 것 이 최고의 방법이나.
“무리지?”
칠성이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묻는다.
<아니다. 할 수 있다. 맡겨다오.>
문제없다는 듯 눈을 부라리지만, 무리임이 틀림없다.
방금 본체에 커다란 데미지를 입었다.
물론 칠성의 마나를 베이스로 하면, 정령 입장에선 일대 다수의 상황이라도 못 이기리란 보장은 없는 싸움이었으나.
때 마침 다른 수단이 있는데 구지 무리 할 필요야 없지.
“살다보니까 이 양반이 도움이 될 때가 있네.”
칠성이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듯 눈썹을 八자로 만들며 어깨를 으쓱 한다.
칠성이 내려다보고 있는 것 은 칠성의 손에 들려있는 마법검. 소울 콜렉터.
마법검은, 생전 주인의 성향에 따라 독특한 능력을 갖게 된다.
예컨대 의지의 마법검 베레트랑.
아가씨를 지키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를 가졌던 기사.
그가 죽어가면서 까지 발휘했던 엄청난 의지.
생애 내내 불가능에 도전하며 의지로 모든 것을 극복했던 그의 유지를 이어받은 검.
그 검이 대 마법사의 손에서 재탄생 한 것이, 마법검 베레트랑.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강력해지는 검 이었다.
소울 콜렉터 역시 다른 마법 검들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맥락이다.
소울 콜렉터의 주인은 마나, 그리고 힘에 대한 탐욕이 남다른 인물 이었다.
딱히 그를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끝없이 강한 마력을 추구 할 뿐.
결국 그의 유지를 이어 만들어진 검.
소울콜렉터는 그가 생전 부린 힘과 마나에 대한 욕심의 상징 그 자체였다.
상대방의 마나를 빼앗는다. 때로는 영혼마저도.
게다가 그렇게 빼앗은 마나와 영혼으로 발동 시킬 수 있는 특수 기능 역시 가관이다.
멋드러진 무언가가 아니라, 마나로 구체화된 본인이 튀어나온다.
“나와라. *마나 포식자*”
파칙! 파치치칙!
소울콜렉터의 검신이 붉은 스파크로 물들더니 이내 붉은 빛으로 들어차 있던 룬문자의 빛들이 하나하나 빠져나가며, 방출된 에너지가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낸다.
처음엔 얼굴이 생기나 싶더니, 이내 스파크들이 몸체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얼굴이고 몸통이고, 모두 흐리멍덩한 느낌이다.
너무나도 오랜 세월, 이미 자아고 뭐고 상실되어.
오로지 욕망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시작은 분명 인간이었을 것이나 이제는 마치 전격으로 이루어진 요괴 같아 보이는 모습.
이자의 본명도 아는 사람이 없다.
그저 ‘마나 포식자’ 라는, 누군가가 지어준 이름으로 불릴 뿐.
그리고 이 반투명한, 붉은 전격으로 이루어진 양반은 이름값을 톡톡히 제대로 한다.
스-윽, 허공에 반쯤 둥둥 떠선, 칠성을 돌아보는 마나포식자.
“에비! 저기야 저기. 저기 맛 나는 거 많다.”
식겁하며 바티칸의 정령들을 가리키는 칠성.
흠칫 놀라는 빛의 정령들과 바티칸 정령사들.
크카카카!
기묘한 웃음을 터뜨리며 정령들에게로 날아가는 마나 포식자.
깜짝 놀라는 아후라 마즈다를 포함한 정령들.
이리저리 재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빠르게 날아 도망치는 정령들 중 하나가 마나 포식자에게 발목을 잡힌다.
잡은 발목부터 정령을 뜯어먹는 마나 포식자.
소환된 정령이 머금은 것은 순수한 마나 그 자체.
그야말로 마나 포식자에게는 뷔페다.
와작! 와작! 와작!
게걸스럽게 정령 하나를 뜯어먹은 포식자.
피슉!
그의 등 뒤에서부터 찌른 빛의 검이 가슴팍에 튀어나온다.
동료가 당하는 것을 보다 못해 반격한 아후라 마즈다다.
뭐, 아후라 마즈다는 어딘가 에선 신으로 모셔질 정도로 굉장한 정령왕이다.
이 세계의 시작과 끝에 서 있다고 전해질 정도로.
거기다 바티칸 정령사들이 비장의 마나를 바쳐 소환했을 테니, 지금 상태는 어떠한 상대와 싸워도지지 않을 터 였다.
다만,
씨익-.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 보이며 웃는 마나 포식자.
지금은 상대가, 상성이 너무 나빴다.
흠칫 놀라는 아후라 마즈다.
재빠른 빛의 검술로 마나 포식자에게 상처를 입힌다.
하지만 자신이 상처 입는 것 조차 개의치 않고 막무가내로 얽혀드는 마나 포식자.
이내 붙잡힌 아후라 마즈다의 손목부터 뜯어 먹힌다.
콰드득!
아후라 마즈다를 집어 삼키곤 만족스러운 듯 입가의 마나를 닦아 먹는 마나 포식자.
“어허... 어찌 이런 일이.”
늙디 늙은, 화려한 백색 옷을 차려입은 홀리오더 한명이 탄복한다.
마나포식자, 그 생김새부터 행동까지 만악 그 자체.
그 포악한 몰골을 볼수록 김칠성을 빠르게 죽여야 한다는 일념이 불타오를 뿐이다.
어느새 마나 포식자에 의해 마나를 탈탈 털리고 전부 역소환 된 정령들.
“히,히이익!”
정령사 몇 명의 마나까지 탈탈 털어먹은 뒤,
주변의 맛나는 마나는 다 먹었다고 생각했는지,
끄어억 하는 트름을 내뱉은 마나 포식자가 쉭!
하고 자신이 원래 잠들어 있던 세계로 돌아가 버린다.
“하간 도움이 안 돼.”
머리를 긁적이는 칠성.
마나 포식자는 소환자의 의지에 따라 같이 싸워준다거나,
전술적으로 함께 한다거나 그런 게 전혀 없다.
그저 본능에 따라 움직이며, 역소환 타이밍도 제 멋대로다.
절대로 길들여지지 않는 짐승과도 같다.
뭐, 이번경우엔 제법 유용하게 써 먹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