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
S4 : 20화
《본디 정령은 계약자에게 받은 마나에 상응하는 힘 만을 빌려준다.》
“너...?”
《더 큰 힘을 빌려줄 때는 더 큰 마나를 받아낸다. 그것이 스스로는 마나를 만들어내지 못 하는 정령의 생활방식. 인간들이 좋아하는 말로. 비즈니스.》
울렁거리는 대지.
칠성의 그림자가 대지를 물들이며 쭉쭉 뻗어나간다.
“이..이건 또 뭐야!”
“잠, 잠깐 잠깐!”
허둥대며 크기를 넓히는 칠성의 그림자에서 발을 떼고 도망가는 주변의 사람들.
《계약자에게 받은 것 이상의 힘을 빌려주는 멍청한 짓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절대로 손해 보는 짓은 하지 않는다.》
쿠구구구구구구-.
그리고 다음순간, 넓어진 그림자에서 점차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거대한 형체.
“보이드...”
그 오랜 세월을 살아 온 칠성에게 조차 너무나도 의외의 전계.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것은,
어둠의 거인 과 엇비슷한 체구의 괴인.
뾰족한 머리 끝.
상반신은 마치 근육질의 남자.
이어지는 손가락 끝은 송곳처럼 날카롭다.
하반신은 존재하지 않는 듯, 귀신인 듯 다리도, 뭐도 없이 바닥의 그림자에 쭉 연결되어있을 뿐 이다.
전신이 공허한 그림자를 보듯 실루엣 같은 존재.
물리학법칙을 무시하고 홀로 당당히 서 있는 그림자.
얼굴이 없이 매끈한,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
정중앙에 서서히 눈 뜨는,
거대한 보랏빛으로 창연히 빛나는 커다란 눈.
오로지 무력만으로 그림자 정령들을 평정하고 지난 500년간 왕좌를 지켜온, 모든 그림자들의 군주.
보이드의 현신이었다.
《다만, 계약자가 아니라 친구라면...》
칠성을 향하는 보이드의 눈.
《조금 진심으로 도와줘도 상관없겠지.》
새끼, 사람 감동시키고 있어.
칠성의 만면이 뻐근한 미소로 물든다.
보이드에게서 눈을 뗀 칠성이 몰려오는 중국군을 향한다.
“함 해 보자 썩을!”
양손으로 소울콜렉터를 그러쥔 칠성의 눈빛이 빛난다.
* * *
쿵-
쿵-.
한국군의 방어전선을 향해 돌격하는 거대한 실체화 몬스터들.
그리고 그사이에 전차를 타고 따라 붙고 있는 중국군.
“/전방에 거대한 미확인 물체!”
“/내 눈으로 보고 있다. 멍청이 자식!”
김칠성이 소환해 낸 어둠의 거인, 그리고 칠성에게 힘을 보태주는 보이드.
자신들의 어지간한 실체화 몬스터보다도 큰 거구 두 체의 등장에 동요하는 중국군.
너무나도 뻔한 브리핑에 욕지기를 내뱉는 중국군 사령관.
“/무슨 술수를 쓰는 거지. 소국 오랑캐 놈들!”
들여다보고 있던 쌍안경에서 눈을 떼는 사령관.
“/이렇게 된 이상 처음부터 전력으로 간다! 화염무극무쌍 준비!”
“/하지만 그건 아메리카놈들을 쓸어버리는데 써야 한다는 작전입니다!”
사령관의 말에 반박하는 병사.
“/시키는 대로 해! 어벙한 자식! 내 판단을 의심하는 거야?!”
“/아, 아닙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화염무극무쌍 준비!”
“/예!”
중국군의 비밀병기. 화염무극무쌍.
함포 하나당 열대명의 마법사가 달라붙어 이뤄내는 체인캐스팅이 구동원리.
화염계 고위 마법, 인페르노를 실행 할 수 있는 아티펙트였다.
중국군이 몰고 오는 전차는 그냥 일반적인 전차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운데 포실 부분을 거대한 아티펙트로 치환한 전차들이 섞여있었다.
순식간에 백여명의 마법사가 각장 배정된 화염무극 아티펙트들에 달라붙는다.
중국에서 인민들을 상대로 지난 6개월간 추출해서 만든 엘릭서 수 십 통이 들어가는 장전.
그야말로 일격 필살!
원래 작전에 비해 한참이나 시기상조 였지만,
아무것도 모름에도 불구하고 중국군 사령관의 판단은 매우 정확했다.
이건 군인으로서 받은 교육의 성과가 아니다.
그저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칠성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미지의 공포감!
그게 그에게 과감한 작전 변경을 지시하게 만들었다.
기---이---잉
화염무극에 들러붙은 마법사들에 의해 아티펙트가 서서히 밝은 빛을 품기 시작한다.
“/목표는 전방 한국군 전체. 뜨거운 맛을 보여줘라. 일제 발사!”
중국군 사령관이 목청을 높인다.
* * *
콰아아아아-!
한국군의 방어선.
“저게 뭐야!”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중국의 몬스터 군단이 진격해오고 있는 방향의 하늘이 붉은 화염의 덩어리들로 물들었다.
마치 태양 아홉 덩이가 허공을 물들이는 것 같은 풍경이었다.
전대미문의 병기의 공격에 사람들을 당황했지만 칠성은 한눈에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인페르노!’
아마도 중국군의 던전 테크놀러지가 고위마법까지 섭렵한 것 같았다.
명중 당하기만 하면 무조건 엄청난 피해.
파해법이라고 한다면 청마법 계열 마법사의 반대 속성의 고위마법 시전.
아니면 시전하기 전에 디스펠.
혹은, 아주 특이한 경우로.
그러니까 정식 파해법으로 넣기엔 얼토당토 않은 황당한 방법, 예외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희귀한 케이스로.
“*주문 추적자*”
핑-!
칠성의 주황색 동공이 번쩍이며 순식간에 지진 하듯 매우 빠른 속도로 이리저리 움직이며 적의 마법의 마나 구조를 스캔하기 시작했다.
슥-.
겉에서 보기엔, 그저 칠성이 허공을 향해 검지 손가락을 뻗어 긋는다. 그저 그 뿐.
훅-!
“엇...”
“어라?”
고작 그 뿐인데, 패닉에 빠져 허둥대던 사람들 머리위로 떨어지던 적군의 고위마법은 자취도 없이 사라진다.
아주 특이한 케이스로,
이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영혼병기들 중 하나.
주문 추적자가 있는 마법사라면 적의 투사형 마법은 그게 아무리 고위 마법이라 해도 금세 무위로 돌릴 수 있다.
주문 추적자가 분석해서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마법의 구조, 그것을 아주 약간 흐트러뜨리기만 하면 된다.
“시전 하느라 고생했겠지만.”
남이 만들어 둔 걸 망치는 건 간단한 법이니까.
마법이란 마나의 덩어리를 원하는 대로 재 조합 해둔 결과물.
해체된 마나가 한국군 진영으로 쏟아져 내리는걸 주문 추적자의 눈으로 그대로 보던 칠성.
“아~ 이거 아까운데.”
마나는 기화성 에너지. 그냥두면 사라진다.
갈무리해서 마석화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기야 하겠지만.
오히려 이렇게 순도 높은 마나라면 이 상태에서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마침내 한국군 진영에 뿌려지는 순도 높은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
마나의 흐름이 직관적으로 보이고, 느껴지는 칠성에게는 마치 하늘에서 퍼붓는 소나기처럼 느껴진다.
“어떻게 써야 잘 썼다고 소문이 날까?”
턱을 긁적이는 칠성.
눈을 번쩍 뜬다.
“정했다.”
칠성의 입이 짧은 캐스팅을 읊는다.
이 상황에도 적절하고.
최고 효율의.
무엇보다 상황과 장소에도 적절한 마법!
“*망령의 군대*”
촉촉하게 마나로 젖어든,
한국군이 딛고 선 DMZ의 잔디사이로, 알 수 없는 기운들이 스윽 올라온다.
마치 유령같이 스멀스멀 일어나던 기운은 이내 서서히 사람의 형태를 갖추어 간다.
먼저 얼굴들이 생겨나고 뒤이어 얼굴에 달린 기다란 꼬리가 서서히 사람의 몸체 형태로 변해간다.
사람의 모습이 되자 이후에는 위에 덧씌워진 마나들이 그들의 전투모가 되고, 군복이 된다.
처음에 나타난 것은 6*25 참전 용사들로 보이는 사람들.
이어서 연기처럼 스산한 공기를 뚫고, 말을 탄 장군들도 등장한다.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몸마저 던졌던 영웅들이, 수 십 년, 혹은 수 백 년의 공백을 뚫고 칠성의 부름에 응답 해 준 것 이다.
“흐, 흐이익!”
“귀, 귀신!?”
온갖 기묘한 몬스터들을 대면하는 게 일상임에도 불구하고, 우왕좌왕 하는 헌터들.
국군역시 마찬가지.
마나의 영향으로 구체화된 영혼들이 일반인들의 눈에까지 보이는 것 이다.
갑자기 아무것도 없던 자신의 옆에 뜬금없이 말을 탄 유령 장군이 나타나거나 하니 놀랄 수밖에.
“호들갑 떨지들 마라! 우리 도와주겠다고 힘들게 오신 분들이니까.”
칠성이 목청껏 병사들을 안심시킨다.
<보시게, 내가 생전에 북벌을 해야 한다 하지 않았나!>
<시방 어느 시절 야그를 하는 것 이여. 노망났나? 크헐헐헐.>
<중공군 놈들이 또 쳐들어온 거 아입니꺼.>
군단으로 일어선 영혼들이 떠드는 상념이 칠성의 귓가로 들어왔다.
<어이 우리 부른 장군 양반. 명령 안 한당가?>
장군. 장군이라.
그럼 좀 옛날 스타일로 가 볼까?
“전군!!”
칠성이 소울콜렉터를 중국군 쪽으로 치켜들며 외쳤다.
“돌격하라!”
“와아아아악!!”
수천의 망령과 헌터들, 국군이 외치는 기합이 평화로운 DMZ의 푸른 들판을 울렸다.
바람처럼 내달리는 망령의 군단.
쾅!!
쿠우웅!!
육중한 몸을 움직여 한발 한발 엄청난 복폭으로 전진하는 어둠의 거인. 그리고 보이드.
피슝!
그리고 그 사이, 누구보다도 앞서서 달려가는 칠성.
드디어 중국군과의 대 충돌이 일어난다.
* * *
“/저, 저게 뭣...!”
중국군의 간부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말을 탄 반투명한 청색빛의 장군이 자신들의 진영을 말 그대로 유령처럼 유영하듯 통과하며 넘어왔다.
이번 침공을 위해 만든 특수 전차역시 가볍게 장갑을 뚫고 그 속에 말을 탄 채 달려들어 온 유령 장군이 중국 간부를 덮쳤다.
쿠웅!!!
밖에서는 김칠성이 거대화한 몬스터를 향해 지옥검. 소울콜렉터를 휘두르고 있었다.
“키에에에에엑!!”
쿵!
칠성을 짖 밟아 터뜨리기 위해 발을 구르는 몬스터의 발길질을 피하고, 그 발을 타고 오르는 칠성.
성-겅!
다리를 스치는 소울콜렉터.
샤아아아아악-.
갈무리되어 진공 청소기같은 칠성의 검으로 빨려 들어가는 몬스터 체내의 마나.
그리고 영혼.
순식간에 거대한 몬스터의 한쪽다리가 녹슨 시멘트 같이 탈변 한다.
“꾸이에에에엑!”
비명을 지르는 몬스터.
딩-!
칠성의 소울콜렉터의 검신에 음각으로 패여 있던 룬문자 중 하나가 붉은색 기운으로 충전되듯 차올라 빛을 낸다.
“기에엑!”
옆에서 칠성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고 덤벼드는 악어의 주둥이를 닮은 몬스터의 날카로운 이빨.
콰아아앙!!
“끼룩.”
어둠의 거인의 주먹이 그대로 몬스터의 주둥이를 바닥까지 꽂아 넣는다.
쿵!
쓰러진 몬스터 뒤에서 어둠의 거인과 똑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는 칠성.
콰지직!
거대한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려던 몬스터를 꼬챙이 같은 손가락으로 짖이겨 버리는 그림자 군주 보이드의 현신.
순식간에 중국군이 준비한 비장의 병기.
실체화 된 거대 몬스터들의 삼분의 일이 무너져 내린다.
“/어째서... 우리가 분명 위 일 텐데! 어째서 코딱지 만 한 나라의 놈들이 이다지도 강한 것 이냐!”
절규하는 중국군의 사령관.
카앙!
그때, 전차의 천장이 마치 탄산음료 캔을 따듯 가볍게 따진다.
털썩.
가볍게 천장에서 떨어져 착지한 남자.
“/저 새끼!”
“/움직이지 마라!”
놀란 중국군 병사들이 권총을 꺼내 겨누어도 개의치 않고 사령관에게로 향하는 남자.
타타탕!
보다 못한 중국군 병사들이 권총을 갈긴다.
툭. 투툭.
힘없이 찌그러져 떨어지는 총알들.
“/...흣.”
“/저...저런 괴물이.”
막을 생각조차 없다는 듯한 남자.
잠시 멈춰선 남자가 슥, 자신에게 권총을 쏜 주변의 중국 병사들에게 눈길을 주자 모두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얼어붙는다.
“다 했어?”
철컹.
남자가 자신의 장검을 중국군 사령관의 목덜미로 가져간다.
“강할 만하니까 강하지 새꺄.”
적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말 하는 남자.
칠성이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냐?”
“/크읏....”
칠성의 말에 눈을 찌푸리는 간부.
양 손을 펼쳐 들어 올려 보이며 고개를 떨군다.
“/이길 수가 없군... 항복이다.”
“/자, 장군님!”
“/아. 안됩니다!”
비명을 지르는 병사들.
“보기보단 똑똑 하네?”
칠성이 씩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