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무집행 흑마법사-97화 (97/145)

# 97

S4 : 16화

쉬이잉-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듯한 감각으로 눈을 뜬 건 나이트엘프족의 암살자, 사천왕 중 한명인 엘시아였다.

“!”

몽롱한 실눈을 떠 의식을 더듬던 그녀가 돌연 벌떡! 일어났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그녀가 눈을 감기 전, 의식이 멀어지기 전 직전의 기억은 쓰러져 가던 동료들과, 비명을 지르는 인간들이 뒤섞인 아수라장.

눈앞에서 무언가가 번쩍이더니 순식간에 지면에 처박혀 서서히 죽어가던 그녀였다.

그런데 놀랍도록 가뿐한 몸.

부상이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자신의 몸을 더듬어보는 엘시아.

그녀가 벌떡 일어난 이유 역시 마찬가지였다.

피를 흘리며 쓰러져가던 동료들의 상태 역시 마찬가지다.

여기저기 앉아서, 혹은 자신의 몸을 더듬어 보는 이종족 군단의 사람 한명 한명은 이 상황이 꿈같이 느껴지는 양 멍 한 표정이다. 엘시아처럼.

바닥에는 아직도 인간 병사들이 쓰러져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앞 뒤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에 엘시아의 동공이 갈 곳을 잃고 불안하게 두리번거릴 무렵이었다.

“김칠성??!”

어디선가 비명 같은 외침이 들려왔다.

꿈꾸듯 멍하니 있던 이종족들이 그 외침에 순식간에 몰려든다.

“정신 차려! 정신 차리라고!”

“제기랄,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엘시아 역시 재빠르게 인파를 헤집고 들어간다.

“어쩌다, 어쩌다 이런 꼴이!”

엘시아가 발견한 칠성의 몰골은 가관이었다.

무언지 알 수도 없을 흉기로 헤집어진 듯 보이는 상반신.

상처가 너무 커다래서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아니, 오히려 칠성이기에 간신히 목숨이 붙어있는 수준이었다.

잔뜩 일그러진 표정.

온몸에서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칠성.

콰드듯.

그런 칠성의 손이 아무것도 없는 바닥의 흙을 쥐어 짜내듯 긁으며 무언가를 쥐려 노력하고 있었다.

* * *

딩-.딩딩-.

님프족이 개발한 의료용 아티펙트들에 불이 들어갔다.

칠성을 수술실로 옮겨둔 이종족들.

“제기랄! 드워프였으면 저까짓 상처 햄 한 덩이 먹으면 다 나았을 텐데!”

수술실 밖에서 칠성의 피가 흥건한 손으로 괜시리 자기 성질을 못 이겨 벽을 주먹으로 쿵! 친 드워프가 말했다.

“샌님들은 뭣 하는 거요?”

드워프가 수술실 앞 한편에서 눈을 감은 채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는 엘프들을 향해 따졌다.

“저건 기도라는 거다.”

어느새 다가온 바슈족의 리더. 란돌프가 드워프에게 알려준다.

“아. 그거 알지. 그런데 그거 알어? 신은 없다고!”

드워프가 기도나 하고 있는 것이 갑갑하다는 듯 양 손바닥으로 가슴을 퉁퉁 친다.

“독립 매개변수와 종속 매개변수가...하간 신 같은 건 없단 말이야! 쓸모없는 양반들아! 젠장 할!”

쿵!

돌연 드워프가 바닥에 이마를 찧는다.

그러고는 어딘가로 달려 나가는 드워프.

그런 드워프의 뒷모습을 슬쩍 아무 말 없이 처다 보는 엘프와 바슈, 나이트엘프, 님프족 들...

비가 내리는 밖.

건물에서 자기 분에 못 이겨 뛰쳐나온 드워프가 폭포수 같은 비를 맞으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이! 신이라는 양반! 만약에 있다면 저 김칠성이라는 친구 살려내. 알겠어?!”

비가 쏟아지는 하늘을 향해 삿대질 하는 드워프.

“만약 죽으면 이 드워프 족장 토르의 이름을 걸고 내가 네 녀석 머리를 뭉개놓을 거니까!”

하늘을 향해 표호 하는 드워프.

수술실 안.

수술대 위에는 칠성이.

저번에 다친 칠성의 다리를 붙여놓았던 님프의사가 칠성을 살피고 있다.

주변에는 의료보조를 하기 위한 님프족들이 바쁘게 뛰어다닌다.

“환자의 살고자 하는 의지가 아주 강합니다.”

이제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 하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칠성.

하지만 그 와중에도 완전히 정신을 놓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렵습니다. 버티고 있는 게 한계입니다.”

님프족 의사가 헤니완에게 말 하며 고개를 저었다.

사태는 심각했다.

어떻게 손 쓸 방도가 없다는 게 맞았다.

칠성의 괴물 같은 회복력도 한계점에 부딪힌 것 같았다.

여기저기서 님프들이 고이는 피를 굳지 않게 빼 주고, 남아있는 조직을 꿰매는 등 분투 하고 있었지만, 아주 약간의 생명을 연장 할 뿐 답은 없었다.

그런 칠성의 상태를 보며, 자기 자신도 감정의 폭풍 덕에 가쁜 숨을 몰아쉬던 헤니완이 엘시아를 불렀다.

“엘시아.”

“안 됩니다!”

떨리는 목소리.

엘시아가 제발저린 도둑처럼 기겁하며 학을 땠다.

헤니완은 아무런 명령조차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엘시아 역시 무언가 생각하고 있던 바가 있던 터 였다.

그리고 그건 절대로 하면 안 되는 금기의 것 이었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를 불경하게 생각하던 차.

안된다고 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다시 칠성을 들여다보는 헤니완.

* * *

일전에,

인간들이 천년왕국에 침입하고.

무너지는 벽으로부터 헤니완을 구했던 칠성이 크게 다쳤을 때.

수술을 마친 뒤 요양을 하고 있던 칠성을 찾아갔을 때 의 일이다.

“할 말 이라도 있어?”

애써서 찾아 와 놓고는, 아무런 말도 없이 서 있던 헤니완에게 칠성이 물었다.

“어째서 날 도와 준거냐!”

불같이 화를 내는 헤니완.

헤니완을 구하려다 두 다리가 잘렸었던 칠성.

하지만 그런 칠성에게 순순히 감사하기엔, 인간에대한 그녀의 분노가 너무나도 컸다.

인간들 덕에 그녀의 왕국은 몰락했다.

그녀가 여왕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는 것도, 왕이었던 그녀의 부모가 죽어버렸기 때문에.

생존자중 왕녀였던 그녀가 그저 과분한 직책을 물려 맡은 것 일 뿐 이었다.

최후의 전쟁.

인간들은 나이트 엘프들의 생명과도 같은, 그들의 산을 아우르는 ‘신맥’을 오염시켰다.

원래는 나이트엘프들에게 생명력을 북돋아 주며, 심지어 그들을 완전히 늙지 않게 만들어주는 신맥.

인간들에 의해 고의적으로 오염된 신맥의 기운을 받은 대다수의 나이트엘프들은 알 수 없는 존재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마치 좀비나 구울 처럼 제정신을 차리지 못 하고 동족을 살해하고 잡아먹으며, 위대한 지성대신 짐승의 본능으로만 움직이는 괴물이 되어버린 수많은 나이트엘프들.

왕국은 순식간에 괴멸되었고, 늘 사랑받던 자애로운 왕은 물같이 밀려들어오는 수많은 나이트엘프 백성들에게 뜯어 먹혔다.

오로지 그녀와 왕의 호위였던 엘시아와 몇몇 나이트엘프 만이 간신히 얼마 되지 않는 오염되지 않은 신맥을 챙겨 탈출 한 것이다.

그리하여 평생을 인간을 증오하는데 쓰겠다고 맹새했던 그녀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그녀의 목숨을 구하는 인간이 나타난단 말인가.

‘어째서 날도와 준 거냐’

그러한, 그녀조차 정체를 알기 힘든 분노가 응집되어 튀어나온 말 이었던 것 이다.

썩을. 감사 인사라도 하러 온 줄 알았더니.

칠성은 칠성대로 뚜껑이 열렸다.

그래서 헤니완에게 버럭 소리 질렀다.

“다치면 아프잖아 바보야!!”

“뭐..뭐라고?”

깜짝 놀라 눈꺼풀에 경련이 일어나는 헤니완.

* * *

다시 현재.

“많이... 아파 보이는구나.”

쓴 표정으로 칠성을 바라보던 헤니완.

“그걸 쓰자. 엘시아.”

“안됩..안됩니다 그건...”

“엘시아.”

“아무리 여왕님이라도 잘못된 판단은 막아낼 것 입니다!”

“엘시아야.”

“그건 왕국을... 그건!”

이들이 말 하는 것은, 멸망한 왕국에서 그들이 간신히 가지고 도망쳐 온 그것.

아직 오염이 되지 않았던 신맥의 응축액.

작지만 터를 잘 잡기만 하면 산 하나정도는 덮을 수 있는 양 이었다.

그리해서 그것을 시작으로.

다시금 나이트엘프 왕국의 부활을 시킬.

아니, 나이트 엘프 왕국이 부활한다면 그들의 앞으로 살아갈 터전을 만들어 낼. 소중한 보물이었다.

비록 그것이 아무리 꿈 같은 이야기라 할 지라도.

그것은 그들 희망의 상징과 같은 것 이었다.

한편, 그것의 근원은 엄청난 생명력.

환자에게 쓴다면 무조건 도움이 되리라.

하지만 신맥을 이 자리에서 사용 한다는 것 은...

“지난 천년간, 우리를 사람처럼 대해준 인간. 처음이잖아.”

엘시아의 눈을 바라보는 헤니완.

헤니완의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이런 사람 하나 살릴 수 없는 왕국 같은 거. 의미 없어.”

그렁그렁한 헤니완의 눈에서 눈물이 한줄기 흘러내렸다.

“여왕님....”

어린 시절 헤니완은 늘 밝은 분위기의 아이였다.

인간과의 전쟁이 시작되고 나서.

그리고 왕국이 멸망하고 나서 헤니완은.

도도한 것이 아닌 냉철하고 무감각한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어떠한 일이 발생해도 아무런 감정 표현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심장이 굳어버렸던 그녀가 칠성이 오고 난 뒤로 점차 변화하고 있었다.

그런 헤니완의 눈물이다.

“네. 준비하겠습니다.”

엘시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 * *

쿵!나이트 엘프족 남자 몇몇이 날라온 물건이 수술실 바닥에 놓였다.

“이게...이게 도대체 뭡니까?”

칠성의 상황을 돌보던 님프족 의사가 나이트엘프들이 가져 온 것을 보고 의아하게 물었다.

높이가 1미터 정도 되는, 한아름 보다 조금 작은 정도의 원통형 케이스.

나이트엘프 청년이 통을 감싸고 있던 검은색 천을 벗겨내자 내부를 살필 수 있는 유리와 금속으로 만들어진 듯 보이는 원통형의 케이스다.

검은색 천을 벗겨냄과 동시에 창연한 보랏빛이 케이스에서 뻗어 나와 방안을 가득 채운다.

“나이트 엘프족의 보물. 신맥입니다.”

헤니완이 담담하게 대답한다.

“이, 이게 말입니까...? 신맥은 모두 더렵혀졌다는 이야기만 들었습니다만....”

“네. 이게 마지막 신맥입니다.”

“...괜찮으신겁니까?”

“네.”

고개를 끄덕이는 헤니완.

수술이 시작된다.

칠성의 혈맥의 확장을 유도하는 주사를 놓고, 혈관과 직접 연결한 호스들로 신맥을 밀어 넣으며. 압력이 조절되도록 기계장치로 다른 쪽에선 칠성의 피를 빼 낸다.

녹아내린 심장을 대신해 펌핑 되는 기계.

“이게 될지...”

초조한 표정의 의사.

환자의 몸에 강제로 이 신맥이라는 의문의.

하지만 바로 그 전설속의 나이트엘프 왕국 여왕이 보증하는.

생명의 근원이라는 액체를 밀어 넣는다.

정착시킨다. 심어버린다.

이론상이야 가능하지만 이게 환자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한치 앞도 예측 할 수 없다.

“설사 된다고 해도... 이미 인간이 아닐 터 인데.”

중얼거리는 의사.

말 그대로였다.

어떠한 마나, 에너지라도 흡수해버릴 것 같은 칠성의 이상한 몸.

그리고 사실은 나이트엘프들 조차도 그 출처를 잘 모르는 미지의 생명수 신맥.

애초에 나이트엘프와 호수 엘프들의 조상은 같은 종족이었다.

신맥에 노출되어 그 모습이 완전히 변해 버린 게 지금의 나이트 엘프들.

노출되기만 해도 그 정도의 물건.

직접 밀어 넣는다면 칠성은 살아남는다 해도 무언가가 다른 존재가 될 공산이 높았다.

인간도 아니고. 마족도 아닌 제 3의 무언가.

하지만.

‘그냥 두어도 죽는다.’

이런 자신의 의학 상식을 정면 거부하는 시술을 하게 만든 것은 그만큼 절박한 상황 때문 이었다.

물론 같은 자리에 있던 다른 이들은 의사가 이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고 있었지만.

그의 입장에선 환자가 죽기 이전 해 보는 도박 같은 것 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 것을 신념으로 하는 그 였다.

근거 없는 치료는 죄악이니까.

이제 칠성의 몸에, 투명한 관을 따라서 신맥이 약동하며 칠성의 몸속으로 향하고 있었다.

‘신이시여...’

의사가 남모르게 허공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덜컥!

수술대가 요동쳤다.

신맥이 칠성 몸의 혈관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취시이이익!!

무언가 불길한 소음과 함께 칠성의 장기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샤아악-.

“됐다. 효과가 있어요!”

의사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의 눈에 실시간으로 재생되어가는 칠성의 몸뚱이가 보였다.

마치 한참 막혀있던 댐이 무너져 내리듯, 순식간에 살이 차오르는 칠성의 신체.

무너졌던 허파가 다시 제 모습을 찾고, 안에 공기가 채워 들어간다.

그리고.

“으아아아아!!!”

갑자기 목소리가 트여 소리를 지르는 칠성.

놀란 주변의 사람들.

벌컥!

깜짝 놀란 엘시아가 신맥이 담겨있는 케이스를 바라본다.

“빨아들이고 있어....”

마치 칠성이 몸에 연결된 관으로 신맥을 들이키듯,

병나발을 부는 듯한 기세로 통안에 가득차 있던 신맥이 벌컥 벌컥 사라지고 있었다.

엘시아가 침을 꼴깍 삼켰다.

“으아아아아!!”

칠성의 온몸이 창연한 보랏빛 불꽃으로 타들어갔다.

번쩍!

온 방안이 밝은 백색광으로 가득 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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