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무집행 흑마법사-95화 (95/145)

# 95

S4 : 14화

다각다각다각다각-

칠성과 사천왕을 앞세운 천년왕국의 병력이 서쪽의 천년왕국 엘프 들을 돕기 위해 이동하고 있었다.

각지에서 거사를 위해 모여들었던 병력의 규모는 엘프족과 바슈족을 아우러 창과 활을 든 보병 천 여 명, 후방 지원의 님프족 부대.

그리고...

“엘프 샌님들 보다야 우리가 낫지!”

“카하하하하!”

석궁과 당나귀로 무장한 드워프 기병대가 천여명.

도합 4천에 다다르는 대규모의 병력이었다.

부상자인 길카터는 본진에 남았다.

길카터의 정보에 의하면 서쪽 천년왕국을 침공한 인간군의 병력 규모는 고작 300여명 수준.

압도적인 것을 한참 넘어있는 병력 차이 였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서쪽 천년왕국.

“시작하자고!”

목표한 마을이 가까워지자 드워프 기병대의 선두에 섰던, 밧줄 같은 검은 수염이 인상적인 드워프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목소리가 뒤편의 드워프 들에게 까지 돌림노래처럼 전달되었고, 이내 드워프들이 당나귀에서 풀쩍 뛰어내렸다.

캉! 캉!

그리고 이어지는 망치질.

그들이 각자 당나귀에 싣고 달려온 원통형의 금속, 바퀴. 나무를 깎아 만든 대 등의 부품을 순식간에 조립해 내었다.

“이거....”

칠성이 구레나룻을 긁으며 드워프들이 펼쳐 놓은 것을 보며 감탄했다.

이쪽으로 소환되기 이전, 게임 같은 곳에서 드워프라는 종족을 본적 있다.

거의 공통된 특징은 손재주가 좋다는 것.

실제로도 그러했다.

“이거 설마?”

“응? 인간! 이런 거 처음 보지?”

걸걸한 목소리로 웃던 드워프가 어깨를 펴곤 자신들의 발명품을 손으로 퉁퉁 두드렸다.

그들이 준비 해 온, 방금 조립한 것은 대포였다.

“인간들은 이게 뭔지 꿈도 못 꾸고 있을 걸!”

확실히 맞는 소리였다.

아직 페젤론제국으로 대표되는 이쪽 세계의 인간들은 냉병기 시대를 살고 있었다.

즉, 화약을 사용하는 병기 이전의 시대란 말 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이 드워프들이 화약을 이용한 폭탄 같은 것 도 아니고, 완성된 화포를 들고 온 것 이었다.

시대를 초월한 기술력.

거사가 정말 마냥 농담 같은 이야기가 아니란 것 이다.

그리고 드디어 입성한 서쪽 천년왕국...

“뭐지...?”

칠성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마을을 살폈다.

침공을 당했다는 것 치곤 너무나도 조용했다.

마치, 그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유령 마을 같은 풍경이었다.

선두를 맡은 사천왕들도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바로 그때, 정찰을 맡았던 님프족 두 명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있습니다! 마을 중앙에 떡 하니요!”

“가자!”

“저기 그, 그런데....”

“무슨 일 인데?”

말을 전하던 님프족 정찰병 두 명이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얼굴이 창백해진다.

* * *

“...흠.”

칠성과 사천왕을 태운 말들이 서쪽 마을 중앙 공터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섰다.

“가관이군.”

“비열한 새끼들!”

엘시아가 악문 이를 드러낸다.

저마다 한마디씩 거드는 사천왕들.

마을 중앙 공터에 위치한 제법 커다란 집이 인간 군대의 근거지 인 거 같았다.

안팎의 사람들을 도합 해 봐야 고작 20여명 정도?

아무리 둘러보아도 다른 병력은 보이지 않는다.

이 마을에 있는 인간 군대라곤 고작 그 정도 수준.

사천왕이 이를 가는 데 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인간들이 본진 삼고 있는 그 집, 굵은 말뚝들로 방책 같은 것을 세워둔 인간들.

그리고 그 말뚝들로 만든 울타리엔...

“살아있는 건 맞나?”

“글쎄...”

이 서쪽 천년왕국의 주민들 이라고 생각되는,

천명도 넘어 보이는 숫자의 엘프들이 각자 굵은 말뚝에 전신이 묶여있었다.

인질들로 만들어 낸 방어전선 이자 방벽 이었다.

“포격은 무리겠네.”

칠성이 중얼거렸다.

“그럼 뭐 어떤가.”

“그렇지!”

엘시아의 말에 칠성이 맞장구 쳤다.

어떤 상황이던, 그리고 무슨 이유에서건 간에 고작 저정도 병력이라면 숨 쉬듯이 제압 가능한 아군들이 있다.

“함정은 없습니다!”

님프족 정찰병이 알렸다.

“가자!”

다그닥 다그닥!

칠성과 사천왕을 필두로 수천의 병력이 마을의 중앙공터를 향해 달려간다.

순식간에 인간들의 근거지를 둘러싼 이종족의 군대.

목책에 묶여있던 엘프들을 풀어주는 사람들.

“너희들은 포위 됐다! 저항을 포기하고 투항해라!”

마나로 강화된 칠성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집.

“밀고 들어가자고!”

성질이 급한 란돌프가 말에서 내려 팔을 스트레칭 하며 문으로 다가가는 순간.

끼-익.

통나무집의 문이 슬쩍 열렸다.

“아. 오셨습니까?”

백금으로 만들어진 갑옷을 입고 있는 청년의 성기사.

자신들을 향해 순식간에 밀려들어온 수천의 병력.

자신들의 인질이 구출되고, 이종족의 군대로 포위가 된 상황인데도 뻔뻔할 정도로 침착한 남자.

“뭐 하는 자식이야? 꿇지 못 해?!”

그런 남자를 밀쳐내며 집안으로 들어가는 란돌프와 일부 병력들.

깡그랑!

가장 먼저 자처해서 나왔던 청년 성기사가 자신의 검을 칠성의 발치 까지 검 집 채로 던져버린다.

“꿇던, 서던. 별 상관없지 않습니까? 제가 이 상황에서 뭘 하겠습니까?”

의심스러운 눈빛을 던지는 칠성.

그리고 이어서 통나무집에서 연행되어 나오는 인간 군들.

아니, 정확히는 이 종족 군의 압박에 통나무집에서 밀려나온 병사들, 그리고 그들 사이에 흰 옷을 입은 네 명의 노인.

“이, 이 자식들! 이분들이 누군지나 아느냐!”

“무엄하구나!”

병사들은 심각한 숫적 열세애도 불구하고, 그 네 명의 노인들을 지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해 무장을 포기하지 않고 땀을 뻘뻘 흘리며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설마...?”

“뭐가?”

엘시아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칠성이 물어왔지만 대답할 정신은 없었다.

그녀의 생각이 맞다면, 절대로 고작 수 십 여명의 경호 병력으로 적지에 있을 사람들이 아니었다.

“창을 이리 내!”

산만한 덩치의 란돌프가 위협해도, 온 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며 투구사이로 비오듯 땀을 흘리면서 까지도 떨리는 창을 꼭 쥐고 있는 인간 병사.

“이, 이 짐승 놈 들! 이분들은 페젤론 제국의 홀리오더 님들 이시다!!”

“홀리오더!”

엘시아가 탄식을 내뱉었다.

“뭐야. 그게 도대체 뭔데 그래?”

칠성이 엘시아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일종의 인간족 종교지도자.”

2미터가 넘는, 인간으로선 불가능한 근육질의 이종족 격투가, 란돌프가 하는 겁박의 두려움조차도 이겨내는 것.

그것은 신앙이었다.

“그리고 성속성 계열의 대 마법사.”

언제나 달빛같이 차가웠던 엘시아의 목소리에 두려움이 젖어 들었다.

“도망, 도망치세요!!”

목책에 묶여있던 여자 엘프 하나가, 드워프가 입에서 재갈을 풀어주자 비명 같은 소리를 내 질렀다.

“이정도면 수확이 괜찮은 것 같습니다. 배르도닐님.”

네 명의 홀리오더 중 앞서있던 홀리오더를 향해 말하는 성기사 청년.

“클클클. 그래요.”

그리고 그때였다.

슥-.

네 명 의 홀리오더가 각자 네 방향으로 손을 들어올렸다.

스-응.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마치 신기루처럼 나타나는 저 먼 곳에 숨어있던 인간군.

“히야아아아!!”

수 천, 아니 수만은 될법한 페젤론 제국의 병력과 성기사들이 순식간에 이종족 군대를 둘러싼다.

그들이 내지른 함성이 파도처럼 울린 공기 덕에 실제로 피부로 떨림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칫!”

인간군을 둘러보며 혀를 차는 칠성.

좆됐네 이거.

철컥.

“다시 소개드리죠. 전 페젤론 국 성기사 군단장. 길리엄이라고 합니다.”

어느새 자신의 검을 되찾아 허리에 찬 길리엄이 쓱 웃어 보이며 말 했다.

당했다.

“대가리 졸라 굴리셨네.”

칠성이 환하게 웃었다.

“그렇죠, 보통 저렇게 많은 병력을 마법으로 숨길 만큼 마나를 낭비할 멍청이는 없으니까요.”

받아치는 길리엄.

“그대가 김칠성 이겠군요.”

“응? 나를 알아?”

“그럼요. 현상금이 3천만 글먹으로 오르셨습니다.”

“에이 짜네. 좀 더 쓰시지.”

길리엄이 칠성을 알게 된 것은 구지 수배 전단지를 보고서만이 아니었다.

‘저런 비실해 보이는 자식이 뭐 길래...’

홀리오더들의 입에서 김칠성이 오르내렸기 때문이다.

“투항은 하지 않으시겠죠?”

길리엄의 제안.

사천왕들과 눈빛을 주고받는 칠성.

“전-혀!”

칠성의 외침과 동시에 이종족 군대의 병력들이 사방을 향해 활시위와 포를 장전한다.

당장이라도 전쟁이 터질 것 같은 바로 그 직전의 순간.

“길리엄.”

홀리오더 배르도닐이 길리엄을 나직이 부른다.

응답하고 배르도닐에게 다가간 길리엄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이는 배르도닐.

“...진심이십니까?”

“그럴 가치가 있습니다.”

내키지 않는 듯,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길리엄.

“김칠성!”“뭐냐.”

목소리를 높이는 길리엄.

“이종족과 어울려 인간을 저버린 그대의 죄는 크나, 자애로우신 홀리오더 님들께 서 신의 뜻으로 널 용서하기로 결정하셨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 한 길리엄의 폭탄발언.

“무슨 소리야 그게?”

여기저기서 술렁거리는 이종족군대의 사람들.

“말 그대로다! 잘못된 길을 갔더라 해도 너 역시도 신의 자제! 지금이라도 회개한다면 더 이상 죄를 묻지 않겠다!”

“지랄하네, 아무것도 안 한 사람 흑마법사라고 잡아다 죽이려고 혈안이 되 있던 새끼들이 누군데?”

칠성이 받아치자 길리엄이 홀리오더에게서 받아든 양피지를 펼쳐든다.

어쩐지 그걸 펼쳐보이는 길리엄의 인상이, 분해 죽겠다는 듯 한 느낌이다.

눈의 흰자에 핏줄마저 튀어나온다.

“네 녀석에게는 여기, 홀리오더님 들이 발급한 면죄부가 발급되어 있다!!”

목에 핏대를 세우는 길리엄.

저 한 장의 얄팍한 문서가 어떠한 무게감을 지니는지 알고 있는 수없는 이종족 군대의 사람들.

그리고 너머서 인간족들 까지도 패닉에 가까운 웅성거림에 빠져든다.

면죄부.

페젤론의 정신적 지주이자.

사실상 모든 것과 마찬가지인 종교의 명실 상부한 최고위층, 지도자. 홀리오더들이 발급하는 증서.

“네가 홀리오더님들의 요청대로 회개하기만 한 다면. 이 면죄부는 즉시 적용된다. 그렇게 된다면.”

길리엄, 그리고 수 없는 현장의 사람들이 침을 꿀꺽 삼킨다.

홀리오더 배르도닐이 길리엄의 등 뒤에서 쓱 얕은 미소를 짓는다.

“대 페젤론 제국이 존재하는 한! 이 세상 그 어떠한 존재도 널 죄인취급하지 못 할 것 이다!”

씩씩대며 악에 받친 소리를 내지른 길리엄.

그 말 대로다.

홀리오더가 발급,

의미상으론 신이 지정한 면죄인.

면죄부가 적용된 사람은 그 어떠한 짓을 해도 죄인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그를 죄인으로 취급하는 것은 신을 배반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페젤론의 병력은 물론 성기사들 에게도 당연히 적용되는 사항이었다.

즉, 면죄부만 적용된다면 칠성은 평생 그 어떠한 것에도 쫒길 일 이 없다.

“그...그게 진짜야?”

멍하게 얼이 빠져서 되묻는 칠성.

그토록.

원해왔던 것 이다.

지구에서부터 원치 않는 방식으로 소환된 이쪽 세계에서, 흑마법사가 소환한 존재라는.

또 자신 자체가 흑마법사라는 원죄로 인해 떠돌았던 수 없는 세월들.

기간으로만 수 십년.

이미 지구에서 살았던 17년 인생을 훌쩍 넘는 삶 동안 떠돌이 도망자로 살아왔다.

하루하루 그저 버티고 이악물고 도망치며.

그것이 설사 눈앞에 보이는 불타는 사막이라도 주저할 겨를이 없던 나날들.

저것만 있으면 그 모든 것들이 한결의 악몽처럼 막 내린다.

페젤론 제국은 강대한 제국이다.

이종족들이 제 아무리 힘을 규합해서 거사를 치루어 봐야 이들의 성공여부는 미지수 일 뿐.

페젤론이라는 우산을 쓰고 평안한 나날을 보내는.

꿈에도 그려보지 못 한 평화가 칠성을 향해 신기루의 오아시스처럼, 파도 위 처녀처럼 웃으며 하이얀 손을 흔들며 손짓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