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무집행 흑마법사-94화 (94/145)

# 94

S4 : 13화

“하악...학....”

패닉을 거쳐 거친 숨을 몰아쉬는 나이트엘프의 여왕.

헤니완.

다행히 무너지는 벽을 기적적으로 벗어난 그녀는 주저앉은 채 자신을 구해준 구원자를 바라본다.

폭발이 잠잠해지고, 술렁거리며 주변으로 모여든 사람들.

바닥에 헤니완을 밀친 자세 그대로 엎드려 있던 칠성.

엎드린 자세 그대로 고개를 바딱 들어 헤니완에게 묻는다.

“괜찮아?!”

“나...나는 괜찮다.”

떨리는 눈빛으로 칠성을 바라보는 헤니완.

“그대...그대는 괜찮은 것 인가? 아프지 않은가?”

도도한 헤니완의 눈가에 눈물까지 맺힌다.

그런 헤니완의 모습에 피식 웃어 보인 칠성.

“뒤지게 아파아!!!”

칠성의 비명이 울려 퍼진다.

헤니완을 구하고자 달려들었던 칠성.

그런 칠성의 두 다리가, 빠르게 덮친 벽 덕분에 잘려져 나가있다.

* * *

“크으으읏!!”

경련하며 떠는 칠성.

실내, 열 댓 개의 촛불들로 불을 밝힌 서재의 테이블을 수술대 삼아 올라가 있는 칠성,

그 다리를 조심스러운 손길로 수술하고 있는 것 은 이마에 일一자 주름이 간 중년의 님프족 의사.

안경 너머로 날카롭게 눈빛을 빛내며, 한편에 펼쳐둔 의료서적과 칠성의 상태를 비교해가며 한참이나 수술이 이어진다.

땀범벅이 되는 의사.

“자, 조금 더 들이키게.”

조심스럽게 수술을 진행하던 님프족 의사가 작은 주전자에 담긴 물을 칠성에게 먹였다.

아편을 달여 넣은 마나 엘릭서.

“크...”

덕분에 점차 의식이 흐릿해지던 칠성은 잠에 빠져든다.

수술이 종료된다.

“수술은 잘 됐습니다. 큰 지장은 없을 것 같습니다.”

칠성을 침실로 옮겨놓은 뒤, 나이트 엘프 여왕 헤니완에게 수술경과를 알려주는 님프족 의사.

“그런가. 천만 다행이네.”

수술의 결과를 기다리며 복도에서 서성이던 헤니완.

그제 서야 가슴을 쓰러 내린다.

“내 큰 빚을 졌네.”

헤니완이 의사의 손을 잡으며 말 한다.

“아닙니다. 여왕님. 우리의 은인을 불구로 만들 순 없기에, 무리를 해서 신경 접합 수술을 진행했는데. 다행히도 김칠성님의 초인적인 회복력이 버텨 낸 겁니다.”

칠성이 잠들어있는 쪽 방으로 눈길을 주는 의사.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다리나 목숨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할 상황이 왔겠지요.”

“그러한가...”

인사를 꾸벅 올리고 사라지는 님프족 의사.

“상황도 확인 했으니, 이만 돌아가시지요.”

여왕의 곁에 있던 엘시아가 재촉한다.

“정말, 이상한 인간이야.”

“너무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수술도 잘 되었다지 않습니까.”

“...아니, 생각 해 보거라. 저 인간이. 자신의 두 다리가 멀쩡히 수술 될 줄 알았겠느냐?”

님프족의 장기는 영혼 공학 기술이다.

앞뒤를 차치하고, 이 세상 모든 기술 중 가장 손끝의 감각이 중요한 기술이다.

그런 귀한 님프족의 의사가 대기하고 있지 않았다면, 혹은 김칠성이 이상할 정도의 회복력을 얻지 못 했다면 꼼짝없이 두 다리를 잃을 판국이었다.

조용히 칠성의 방을 바라보는 헤니완.

“이 세상에...”

떼려던 말문을 닫고, 앞장 서 자신의 처소로 향하는 헤니완.

‘...나이트 엘프를 위해 자신의 다리를 바치는 인간이 있단 말이냐?’

뒷말은 조용히 속으로 삼키는 헤니완 이었다.

* * *

몇 일 뒤.

몸을 거의 완전히 회복한 칠성은 누군가의 호출을 받고 복구공사가 한창인 엘프들의 거주지로 향했다.

양 편에 커다란 푸른잎 나무를 두르고 곡선의 자태를 뽐내는 엘프들이 짓는 형식의 집.

끼이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칠성을 맞아준 것은 조금 의외의 상황이었다.

“뭣들 하는 것이여...?”

마치 왕이 행차하기라도 한 듯.

칠성의 등장과 동시에 한족 무릎을 꿇고 예를 올리는 사천왕의 맴버들.

“정말 고맙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은혜를 입었습니다!”

저마다 한 마디씩 하는 사천왕들.

거 참.

칠성이 민망함에 뒤통수를 긁는다.

“됐으니까 다 들 일어나.”

칠성이 일어나라는 손동작을 하며 재촉하자 그제 서야 하나 둘 씩 일어난다.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길카터가 씩 웃으며 말 한다.

“놈들을 거의 혼자서 다 막았다고. 제법인데?”

란돌프가 커다란 손바닥으로 칠성의 등판을 치며 말 한다.

그리고 그 도도하던 엘시아 조차.

“네가 아니었다면, 또 다시 많은 걸 잃을 뻔 했다.”

하곤 고개를 꾸벅여 보인다.

마을을 지켜낸 사건을 계기로, 칠성은 천년왕국의 주요 전력으로 인정받았다.

그리해서 사천왕들과 합을 같이 하며, 힘을 보태게 되었다.

“...그럼, 예언속의 사천왕이 아니란 말이야?”

“...정확히는 모른다.”

고개를 젓는 길카터.

“우린 신의 부름이나 신비로운 기운 같은 것으로 뭉친 게 아니다.”

“언제까지고, 예언속의 사천왕을 기다리다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천왕이 되어버린 거야.”

길카터와 엘시아의 설명이 이어진다.

일종의 커밍아웃.

이들을 꼼짝없이 예언속의 사천왕으로 믿고 있는 많은 이종족 들이 알고 있는 내용과는 다른 내용이다.

전설이나 신화가 아니다.

이들은 스스로 이종족 해방을 위해 일어난 투사들이었을 뿐 이다.

그리고 하필 운명같이 네 명이 된 이들.

이들이 예언속의 사천왕의 이름을 빌린 것 일 뿐 이었다.

기적이 없다면, 만들어 내기 위해서.

“그리고 이런 건, 떠들고 다니지 않아줬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길카터.

고개를 끄덕이는 칠성.

대충 무슨 소린지 알겠다.

어쩌면 지금, 많은 이종족들이 분투하며 자유를 찾고자 움직이는 것은.

극단적으로 말 해, 예언속의 사천왕이 실존하기 때문일지 몰랐다.

만약 그들이 믿는 사천왕이.

사실은 스스로들도 예언속의 존재라고는 생각 안 하는, 예컨대 신화 속 인물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 이란 걸 안다면...

무언가가 꺾일지 몰랐다.

“알았어. 걱정하지 마라.”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칠성.

촤라라락-.

테이블 위에 펼쳐지는 커다란 양피지 지도.

“지금 우리의 위치는 여기다.”

길카터가 작전 브리핑을 시작한다.

사천왕은 아주 오래전부터 페젤론 왕궁을 칠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뭐?”

칠성 생각에는 얼척이 없는 계획이었다.

터무니없다.

고작 도망친 노예들 몇몇으로 왕성을 친다고?

“우리의 천년왕국은 이곳과...이곳. 그리고 이곳....”

“천년왕국이 하나가 아니야?”

칠성의 질문에 사천왕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답 해 준다.

“총 열 두 군데가 있다. 규모가 상당히 큰 곳도 있고.”

“뭐야...? 아니 대체, 인간들한테서 도망친 이종족들이 몇 명이나 되는데?”

“...약 10만명 정도다.”

“...허!”

미처 생각지도 못 한 규모다.

그렇다면, 왕성을 친다는 것도 농담이 아니라...

“그 중, 병력으로 동원 할 만 한 건 1만 명이 조금 안 되는 수준. 페젤론 왕국과 정면으로 부딪힌다면 이것도 적은 숫자지만. 우리도 생각이 있다.”

길카터가 거기까지 말 했을 때, 칠성이 알아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예 붙잡힌 노예가 가장 많은 곳을 친다. 내부의 이종족들과 힘을 합칠 생각을 하면서 말 이지.”

길카터가 동조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 우리가 뚫기 가장 힘든 곳은 왕성이겠지만. 반대로 거주민 중 노예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도 왕성이다.”

알 만 했다.

어떤 나라든지 간에 왕성엔 소위 ‘잘사는’ 사람들이 살기 마련이다.

고관대작들부터 대상인들 까지.

그들의 몇 안 되는 식구들 보다 그들이 부리는 노예가 갑절로 많은 집이 흔할 것 이다.

그리고 그 노예들은 이종족들로 채워져 있을 것 이고.

“만약 평소 같은 상황이었으면, 쉽게 반란군에 힘을 보탤 생각을 못 할지 도 모르겠지만....”

칠성이 그렇게 말 하며 고개를 들어 사천왕들을 쓱 쳐다봤다.

“예언 속 영웅들이 함께 한다면야. 힘을 보탤 수밖에 없겠지.”

아무리 절박한 상황이라도, 설사 살아남는다 해도, 실패한다면 미래를 장담 할 수 없는 전쟁에 노예들이 적극적으로 같이 싸워 주리란 보장은 없다.

승리의 보증수표.

예언속의 승리를 들고 온 사천왕이라도 함께 하지 않은 바 에야 말이다.

“...이게 또 이렇게 되네.”

팔짱을 낀 채 끄덕끄덕.

기가 막힌 상황을 곱씹어 보는 칠성.

전설속의 사천왕을 현실로 가져온 이들 덕에.

언젠가 모든 종족이 구원 받을 것 이란 허황되어 보이는 예언은 이제 실제로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천왕과 칠성의 작전회의가 있은 뒤로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사천왕은 전쟁의 준비에 바빴다.

칠성은 거구의 기사와 대결 중 발견한 자신의 새로운 힘에 적응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칠성이 자신의 손바닥을 멍하니 들여다봤다.

주변엔 표적으로 쓰인 통나무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마법사의 강함을 측정하는 가장 큰 기준들 중 두 가지.

마나 샘, 그리고 마나 수용량.

이 중 얼마나 많은 마나를 한 번에 품고, 사용 할 수 있냐를 결정하는 수용량 부분이 그야말로 말이 안 될 정도로 커져 있었다.

예컨대 음식으로 따지자면 위장이 순식간에 일반인보다 500배 정도나 커져버린 느낌이었다.

보통의 마법사가 주변에 마나가 있어도 수용량의 한계에 부딪혀 사용을 못 한 다면,

칠성의 경우엔 그야말로 마나가 없어서 못 채워 넣는 지경이었다.

같은 마법이라도 큰 마나의 운용으로 이뤄내면 그 차원이 달라진다.

이런 수준의 마나를 운용 할 수 있다면 구지 복잡한 마법을 배울 필요조차 없었다.

물량으로 승부하면 장사가 없을 테니까.

“흠.”

가벼운 발차기를 날려보는 칠성.

칠성의 다리도 완전 회복된 지 오래였다.

마나를 기반으로 한 엄청난 재생능력.

칠성의 새로운 능력 중 하나였다.

보통 많은 마나를 품을수록 신체가 강대해진다고 하지만.

그건 이런 수준의 의미가 아니었다.

칠성의 경우엔 풍족한 마나만 있다면 어지간한 부상은 자기가 알아서 원상복구 해 버리는 지경이다.

그리고 다가온 결전의 그날.

작전의 결행일을 하루 앞 둔 날 이었다.

“길, 길카터님?!”

천년왕국의 입구를 지키던, 님프 보초병이 소리를 질렀다.

“의사!! 의사!!!”

소리를 지른 님프 보초병의 목소리에 몰려든 보초병들이 덩달아 소리를 지르며 의사를 찾는 등 난리가 난다.

“어서... 사천왕에게... 나를!”

온몸엔 생채기, 엑스칼리버에 간신히 의지해서 한걸음 한 걸음 힘겹게 내딛어 온.

피에 푹 절은 길카터가 머리에서 흐르는 핏줄기에 찌푸린 눈을 간신히 뜨며 중얼거렸다.

보초병들이 풀썩 쓰러지는 길카터를 부축한다.

그리하여 모이게 된 사천왕.

“녀석들이... 우리 계획을...알고.”

“됐어! 상황은 알겠으니까 말을 아껴!”

수술대 위에 누워 시름시름, 시들어가듯 말을 이어가는 길카터의 손을 꽉 쥔 엘시아.

“제기랄, 육시할 놈들이!”

란돌프가 이를 갈았다.

길카터는 엘프족들이 모여 있는 또 다른 서쪽의 천년왕국에서 군사를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피투성이가 되어 나타났다.

어떠한 경로에선지, 사천왕의 계획을 눈치 챈 건지, 아니면 오랜 추격 작업 중 겹친 우연인지.

페젤론 국의 토벌대가 서쪽의 천년왕국을 기습 한 것 이다.

수 백 여명의 인간 병사가 마을을 초토화 시켰고,

길카터는 간신히 소식을 알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만을 건져 도망친 것이 한계였다.

“어떡해야 하지?”

누군가의 물음에, 란돌프가 주먹의 마디를 우드득 꺾으며 말 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우리 실력을 보여줘야지.”

란돌프의 안광이 번뜩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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