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
S4 : 12화 <4권끝>
“하, 하지만 멀린 님은 죽은 게 아니었습니까?”
“어, 어쩌다가 흑마법사가!”
혼란스러워 하는 새끼 성기사들.
멀린 이라 하면, 최초로 마법에 체계를 가져온,
최초이자 최고의 이론 마법사.
그로 하여 마법의 힘을 인간들에게 보급한 장본인.
인간들의 영웅.
그에 반해 흑마법사는 성기사들 로서 죽여야 할 1순위의 제거대상. 이 세상의 전복을 꿈꾸는 미치광이 무리들.
그 아득한 괴리감에 아찔해진 것 이다.
“저자는... 이종족인 바슈족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
절대로 있어서는 안될 금단의 사랑.
그 금기의 선을 넘어버린 것 이다.
“하, 하지만... 고작 그 정도로.”
이종족 노예와 관계를 갖는 특이 취향의 귀족들 이야기는 은연중 들어본 적이 있다.
그러한 사실로 명예가 실추되었다고 해서, 대 마법사라는 지위를 얻은 사람이 자취를 감추고 은둔한다는 것 은 말이 되지 않는다.
“...거기까지만 했으면 괜찮았겠지. 저자는 그 이종족 처녀와 결혼을 하려고 했다.”
“그..그럴 수가!”
깜짝 놀라는 성기사들.
“...그것도 대 신전에서 말이다.”
결혼은 본디 신성한 것.
신의 앞에서 영혼의 동반자를 맹세하는 행위.
그 신성한 의식을 이종족 벌레와의 장난으로 모욕한 것.
“홀리오더님들의 만장일치로 사형이 결정된 것도 당연하지.”
철컥.
나름의 예를 마친 중년의 성기사가 다시 투구를 갖춰 쓴다.
“당신은 더러운 이종족 처녀 때문에 제국을 배신한 거야!”
악에 받친 성기사.
“함부로 말 하지 마라.”
쿠구구구구-.
번쩍이는 위엄 있는 눈빛.
새끼 성기사들이 침을 꿀꺽 삼킨다.
찰나의 순간, 대 마법사 멀린으로 돌아간 듯한
마카레나 영감이 말 했다.
“...내 긴 인생, 그토록 아름다운 여인은 제인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니까.”
중년의 성기사가 칼을 빼어든다.
“...그래서 결국 잡힌 놈들 중 이종족 벌레는 즉결 처형. 멀린은 그간의 공적을 이유로 다시는 마법을 쓰지 못 하게끔 마나 샘을 완전 파괴 후 추방했다.”
“클클클클...”
“덕분에 제국에서 가장 밀어주던, ‘슈퍼 마도사 개발’ 연구를 집도하던 푸른탑의 수장에서 도망자로. 그리고 여느 미치광이들처럼 흑마법을 연구해 이 세상을 끝장 낼 마왕을 소환하려다... 꼴을 보니 실패 한 것 같군.”
칼을 치켜든 성기사.
“클클클클... 다 맞는 말 이다만. 소환은 성공했다.”
“뭐라고?”
마카레나의 폭탄선언에 흔들리는 분위기.
그렇다면 지금 이 땅에, 마왕이라도 소환 되어 있다는 소리인가?
“헛소리!”
“아니, 이것만큼은 확신 할 수 있다.”
단호한 표정의 마카레나.
그의 기억은 몇 년 전 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칠성이 소환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
칠성과 함께 시장에 갔을 때의 일이다.
그들이 시장을 보고 있을 무렵, 어딘가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빵을 훔치던 엘프 꼬맹이가 그야말로 개 패듯 몽둥이로 매질을 당하고 있었다.
이곳에선 상식인 풍경.
아마도 저 꼬맹이 역시 어딘가의 도망 노예 일 터.
저렇게 심하게 매질을 당하면 곧 죽을 터지만, 어쩔 수 없다.
관심을 끄고 지나가려던 마카레나를 불러 세운 건 칠성이었다.
이세계의 이종족을 노예로 삼는 관습에 대해 설명해준 마카레나.
이유를 묻는 칠성에게 설명을 해 줄 무렵이었다.
“생긴 게 조금 다르다고 노예로 삼는다고? 영감은 그딴 게 납득이 되?!”
“뭐...뭣?!”
거의 멱살을 잡을 기세로 버럭 소리를 지르는 칠성.
이종족에 대한 차별 덕분에 상처받고,
이까짓 세상 다 망해버리라며 마왕 소환에 관해 연구하던 그 조차도 생각도 하지 못 했던 발상.
애초에, 다름으로 차별하는 것이 납득이 되는가?
벙찐 마카레나를 두고 꼬맹이 엘프를 구하기 위해 씩씩 거리며 앞뒤 안 가리고 달려가는 칠성.
그 등 뒤를 보며 마카레나 영감,
아니 대 마법사 였던 멀린은 생각했던 것 이다.
‘무언가가 바뀌겠구나.’
그것은 직감에 가까운 것 이었다.
잘못된 세상을 없애기 위한 자신의 소환은 성공했다고.
“...슈퍼 마도사 프로젝트도. 너희는 실패했다지?”
까득, 까득 까드드득...
이제 뼈다귀를 드러내 보이는 손등을 관찰하던 멀린이 중얼거리듯 물었다.
“...무슨 소리냐.”
반문하는 성기사.
“다행이야. 너희에게 넘겨주기엔 아까운 힘 이었으니까.”
씨익 웃는 멀린.
어둠이 그의 형체를 삼킨다.
* * *
다시,
천년왕국.
덩치가 산만한 거구의 기사와 대결 끝에 쓰러져 있는 칠성.
꿈틀!
칠성의 머리 정수리 부분에서부터 꿈틀대던 마나의 흐름이 점차 몸을 타고 내려온다.
두근!
영원히 식어버렸던 것 같은 심장이 움찔 거린다.
두근!
나뭇가지처럼 메말랐던 손가락이 까닥 거린다.
이제 온몸을 휘감는 어둠의 마나.
둥!
칠성의 두 눈이 떠진다.
“영가아아아암!!!”
매마른 비명을 질러대는 칠성.
콰드드득!!!
끔찍한 소리와 함께 칠성의 부러졌던 갈비뼈가 제자리로 돌아간다.
“내 몸에!!”
꾸드드득!!
전신이 기괴한 절규를 내지르며 마나의 흐름과 함께 원래대로 되돌아가기 시작한다.
“무슨 짓을 한 거야!!”
어느새 벌떡 일어나 있는 칠성.
온몸을 강제로 쥐어짠 듯한 마나가 전신을 휘감고 있다.
“씨...벌.”
불타는 폐허 속.
번뜩 떠진 칠성의 두 눈이 등대같이 밝은 빛을 내뿜고 있다.
전신은 보랏빛의 마나를 갑옷처럼 휘감아 입고 있다.
“...헉!”
본능적으로, 알 수 없을 정도의 허기를 느끼며.
다급하게 짐 속에 꿍쳐 놓았던 마석의 무더기를 마구잡이로 씹어 삼키는 칠성.
와국! 와국!
두 볼이 터질 듯 처넣는 마석.
올라오는 마기.
“읍!”
순식간에, 마치 음식물을 토해내듯 순수한 마나의 덩어리를 토해내는 칠성.
콰카캉!!
토해낸 마나가 닿는 곳 마다 폭발을 일으킨다.
“...썩을.”
입가를 쓱 닦는 칠성.
마치 온 몸을 흐르는 마나의 통로가 500배는 넓어진 듯한 이상한 기분이었다.
심장은 미친 듯한 속도로 뛰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숨이 가쁘지 않았다.
마치그것이 원래 뛰어야 하는 속도라도 되는 것 마냥.
마치 계속해서 헛돌던 톱니바퀴가 우연한 충격으로 제대로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한 것 같은 기분.
몸속에서 뛰는 듯한 엔진.
그리고 이 모든 게 마카레나 영감이 자신의 몸에 했던 장난들 때문이란 걸 칠성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통제가 되지 않는 10톤 트럭을 탄 운전수처럼, 손을 덜덜 떠는 칠성.
주먹을 꽉 쥐어서 손의 떨림을 멈춘다.
손가락 하나를 뻗어 목젖 근처에 대는 칠성.
“어디 있냐!! 빨간 말 타고 다니는 날으는 돼지야!!”
쩌렁쩌렁 천지를 사자후처럼 울리는 칠성의 목소리.
그 돼지 근처에 있던 병사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돼지의 안색을 살폈다.
“흐음!”
점프와 함께 날아오르는 군마.
쿵!
순식간에 칠성의 앞에 도착한 거구의 기사.
“유언은 그것뿐인가?”
“돼지새끼 말 졸라 많어!”
상대의 심리전에 휘말리지 않는 것을 교육받은 기사임에도 불구하고, 이마의 핏줄이 튀어나온 기사.
“난 돼지가 아니라 듬직하게 생긴 거다!! *가속(Haste)*!!”
순식간에 초속으로 덤벼드는 기사.
하지만,
콰아아앙!!
마치 전차에 치이기라도 한 듯,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던 기사가 저 멀리 튕겨져 나가며 널브러진다.
그가 타고 있던 군마 역시 눈을 까뒤집고 기절했다.
종잇장처럼 구겨진 상반신 갑옷.
“뭐, 뭐야?!?!”
당황하는 기사.
“무, 무슨 수작을 부린 거냐!”
기사의 비명 같은 물음에, 그저 오른손을 슥 올려 보이는 칠성.
칠성은 그저, 한 손으로 쳐냈을 뿐 이다.
“그 방패는 안 깨지는 거 맞지?”
넌지시 기사의 빛나는 보석 방패에 대해 묻는 칠성.
“다, 당연하지! 어떠한 물리적, 마법적 충격에도 절대로 파괴되지 않는 금속인...”
“시험 해 보자.”
“뭐?”자부심 가득한 설명을 늘어놓던 기사의 안색이 굳는다.
“...해서 그렇게 됐고요, 힘 좀 빌려 주십쇼 우주의 영감님들. *다크 미사일*.”
그러곤 한 손을 치켜 든 채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엄청나게 성의 없는 마법 캐스팅을 대충 읊는 칠성.
“무...무슨 농담을.”
아무리 그래도 말이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범위라는 게 있다.
아무리 마법에 대해 문외한인 기사가 봐도
초고위 마법 중 하나인 다크 미사일을 저렇게 성의 없는 캐스팅으로 만들어 내는 건 불가능 한...
파지지지직! 파치치치칙!!
걸 현실로 만들어내는 칠성이었다.
붉은 스파크와 함께 칠성의 머리위에 생겨나는 검은색 어둠의 기둥.
마나가 모자란 건지, 고작 칠성의 팔뚝 크기의 물건이지만 그 형태는 틀림없는 다크 미사일.
“...제기랄.”
피쓩!
기사의 낮은 욕지기를 끝으로 칠성의 다크 미사일이 기사를 향해 날아간다.
콰꽈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천지를 뒤흔드는 폭발.
탱그랑!
탱 탱...
부서진 보석 방패의 잔재들이 폭발을 타고 허공으로 치솟았다가 칠성의 주변으로 떨어진다.
찬찬히 폭발한 기사를 뒤로 하고 걸어가는 칠성.
현실은 만화가 아니다.
영화도 아니다.
기적을 바라는 것은 어리석다.
하지만 기적이란, 어리석은 짓을 하는 사람에게만 가끔 찾아오는 행운이 아니던가.
어느새 몸을 휘감던 마나의 갑옷도 사라지고,
다시 평범한 인간으로 되돌아와 터덜터덜 걸어가는 칠성.
“김칠...성?”
“인간 꼬맹이?”
그런 칠성의 모습에, 몰래 숨어서 몸을 피하고 있던 주민들이 머리를 드밀고 나타난다.
의아한 시선으로, 혹은 때때로 존경의 시선을 보내오는 천년왕국의 주민들.
그들을 발견한 칠성.
서서히 한손을 옆구리에, 다른 손은 주먹을 쥔 채 들어올린다.
“봤냐?!?!”
승리의 포즈.
“이야아앗!!”
칠성의 활약으로 적장이 쓰러지자.
몸을 사리고 있던 바슈족과 엘프족의 군대가 순식간에 전투적으로 나머지 병사들에게 달려들어 제압한다.
* * *
“크...크읏.”
마을 천년왕국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한 병사가 낑낑 거리며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로 간신히 기어 올라와 마을을 내려다본다.
“제기랄...이종족 벌레들한테 당하다니....”
고통에 이를 악무는 병사의 투구 사이로 그의 머리에서 흘러내린 피 한줄기가 보인다.
“부대장님이 말한 만일이 지금을 말하는 거 겠지....”
허리춤에 메여있던 둥근 아티펙트를 꺼내드는 병사.
만일을 위해 그들이 지나는 천년왕국 곳곳에 설치 해 둔 폭탄에 원격 장치로 연결되어있는 아티펙트다.
“홀리오더의 가호가 함께하길!”
신의 대리인인 홀리오더.
그 홀리오더를 통해서만 받을 수 있는 신의 축복.
신의 축복을 비는 그들만의 인사를 던지고,
병사가 둥근 아티펙트의 중앙에 엄지손가락을 올리고 꾹 눌러 아티펙트를 발동시킨다.
삐----잉!
붉은 빛이 아티펙트 중앙에서부터 퍼져나간다.
삐---
콰카앙!!
쾅! 쾅! 콰쾅!
“죽어라! 죽어! 크하하하하!!”
여기저기 혀가 시뻘건 불꽃을 피어 올리는 천년왕국을 바라보던 병사.
“켁! 켈록...쿨럭....”
사례가 들린 지 한참을 켈록 거리더니 숨을 거둔다.
* * *
쾅! 콰쾅!
“뭐야?!”
천년왕국 내부.
C단조의 비명음이 여기저기서 울린다.
패닉에 빠진 주민들.
여기저기서 랜덤하게 터지기 시작한 폭탄 덕 분에 어디로도 대피하지 못 하고 우왕 좌왕 하는 사이.
“어어어!”
누군가가 지른 소리에 칠성이 시선을 재빨리 옮기자 커다란 바슈족 집채가 폭발의 충격에 휘말려 쓰러지고 있다.
그리고 그 밑에 있는 것은 나이트엘프족의 여왕이다.
“쳇!”
혼자 잘난 척은 다 하더니!
우왕좌왕 흩어지는 사람들 사이, 칠성이 여왕을 구하기 위해 무너지는 벽을 향해 덤벼든다.
“어어어어어!”
“꺄악!”
주변의 비명소리.
칠성의 점프와 함께 벽이 무너져 쓰러지며 칠성과 여왕을 덮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