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
S4 : 11화
“떠나는가?”
“예이.”
칠성이 다급하게 소크라테스의 집으로 돌아가 보자기에 짐을 마구 쑤셔 넣으며 챙기고 있을 때 소크라테스가 물어왔다.
“영감님이 떠나라면서요?”
칠성이 반문하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소크라테스.
어차피 그렇다, 인간이 다른 종족을 노예로 쓰는 흐름을 깨기는 쉽지 않을 것 이다.
칠성이 오지랖을 부릴 필요야 없다.
“그래. 한시바삐 떠나시게.”
쩝.
길을 떠나려던 칠성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툭 묻는다.
“같이 가실래요?”
노인네 여기 혼자 있으면 살아남기 힘들텐데.
“아닐세. 난 여기 있겠네.”
조용히 대답하는 소크라테스를 보던 칠성은 어깨를 한번 으쓱 하곤 자리를 뜬다.
“그래요 뭐, 사실만큼 사셨다 이거죠? 나중에 저승에서 뵙시다!”
“홀홀홀!”
쿨 하게 손짓 하며 떠나는 칠성.
꽈아앙!!
칠성이 현관문을 향해 나가려는 순간, 소크라테스 집의 현관이 폭발했다.
푸르르릉!
군마가 콧김을 뿜었다.
“네 녀석은... 인간이 아닌가?”
정확히는, 거대한 덩치의 기사가 역시나 거대한 덩치의 군마를 타고 통째로 문과 현관의 벽을 짓밟으며 등장했다.
무너진 벽 덕에 휑해진 현관 주변으로 말을 탄 기병들이 들이닥쳤다.
“저 녀석이 너희들의 대장 소크라테스냐?”
“크..크읏.”
거대한 덩치의 기사의 한 손엔 멱살을 잡힌 바슈족 청년, 심아인이 있었다.
“심아인?”
심아인의 상태는 매우 안 좋아보였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에 비실비실 곤죽이 된 상태였다.
쿵!
심아인을 한쪽 편으로 던진 인간 기사.
“흐음....”
옆의 그의 수행원 같은 병사에게 손을 내밀자 병사가 양피지 종이 무더기를 끈으로 묶어놓은 것을 넘겨준다.
그 무더기를 한 장씩 넘겨보던 인간기사의 손길이 멈춘다.
“역시 맞군. 내 눈썰미는 못 속여.”
부욱!
질긴 양피지를 너무나도 쉽게 찢어 칠성쪽으로 들어 보이는 기사.
“살려서나 시체로, 현상금 1500만 글먹. 흑마법사 김칠성.”
양피지에 새겨져 있는 것은 마법으로 칠성의 얼굴이 투사되어 있는 수배 전단지 이다.
얼굴까지 새겨져 있으니 발뺌하기도 힘들다.
“누군 진 몰라도 고놈 참~ 잘 생겼다!”
처음 보는 자신의 수배 전단지를 보며 씨익 웃어 보이는 칠성.
“특이사항... 멀린의 제자?”
기사가 전단지를 다시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웅성거리는 주변의 병사들.
“멀린님의 제자라고...?”
“대마법사 멀린?”
“그런데 흑마법사란 말이야?”
순식간에 패닉에 빠진 기병들.
인간 마법사의 아버지 멀린.
물론 칠성이 멀린의 제자라는 것 은 어처구니없는 오해였다.
칠성에게 스승이 있긴 했지만 칠성의 스승의 이름은 마카레나.
나름 차원소환도 성공 했으나 이렇다 할 전설적인 인물은 아니고, 그냥 흑마법사 였을 뿐 이다.
언제서 부턴가 칠성을 향해 붙은 소문 중 ‘멀린의 제자’ 라는 소문은 어디서에선가 붙어, 계속해서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 있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오해였지만.
“그렇다! 이 몸이 바로 대마법사 멀린의 수제자! 천재 흑마법사 김칠성!”
칠성 입장에서 딱히 적들에게 친절하게 오해를 풀어줄 필요까지야 없었다.
순식간에 폭탄이라도 터뜨린 듯 술렁거리며 소란해지는 병사들의 진영.
쟁쟁한 소드마스터들 조차도 두려움에 떨었다던 바로 그 대 마법사의 수제자!
그 이름 값 만으로도 오금이 저렸다.
나아가서 벌써부터 패배한 자신들의 몰골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네놈들의 몸뚱이를 들고 썩 도망간다면 뒤 쫒지는 않겠다!”
칠성의 협박에 당장 폭동이라도 일어날 듯 웅성대는 병사들.
군마들조차도 허둥대며 앞발을 들며 들썩거린다.
챙!
“쉬-이.”
덩치 큰 기사가 거대한 랜스를 한번 휘두르며 쉬 소리를 내자 귀신같이 조용해지는 병사들.
“대마법사 라는 것 은 스승의 이야기지. 한낱 걸인행색의 도망자인 네 녀석이. 스승의 이름을 팔며 겁박이라니 우습기 그지없구나!”
위엄어린 기사의 굵직한 목소리가 나무 마루를 울린다.
“그럼 웃던가~”
“뭐?”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따지는 칠성.
“뭐 웃지도 않으면서 우습기 그지없데. 정박아도 아니고.”
기묘하게 정곡을 찌르는 칠성의 공격에 급속도로 싸 늘 해 진 공기.
“저...저놈이!”
덩치 큰 기사가 노여움에 떨고, 주변의 병사들은 그 기사의 노여움에 불똥이라도 튈 까 덜덜 떨었다.
칭!
“장난은 그만두지, 죽여라!”
“하앗!”
기사의 랜스 끝이 칠성을 향함과 동시에 달려드는 기마병들.
쯧.
혀를 차는 칠성.
“응답하라 나의 심복들이여! *구울*!”
콰라라락!
마치 지진같이 일어나는 마룻바닥 사이로 비집고 뛰쳐나오는 여섯 구의 시체병사.
히이잉!!
칠성에게 달려들던 군마들이 시체병사들이 덤벼들자 기겁을 하며 앞발질을 하며 날뛰었다.
“뭣들하는 것 이냐!”
기사가 불호령 했지만 아무도 쉽게 칠성에게 접근하지 못 했다.
“으읏!”
그 난리 통에 낙마한 병사에게 달려드는 칠성.
“필살! 멀린~!”
소리를 지르며 덤벼드는 칠성.
멀린의 이름에 발발 떨며 흩어지는 주위 병사들.
“히. 히익!”
공포에 떨며 웅크리는 병사의 머리통에 칠성의 주먹이 강타한다.
“펀치!!”
까앙!
투구가 날아가 버릴 정도의 충격.
“펀치?!?!”
당황하는 병사들 사이를 전력 질주에 이은 테클로 빠져나가는 칠성.
마치 그라운드 홈런을 만들려 도루를 하는 타자 같은 모습.
혼란을 틈 타 밖으로 뛰쳐나온 칠성.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참혹한 관경.
“제길....”
불타고 있는 마을. 여기저기 부상자들로 가득하다.
반쯤 불타고 있는 건물들은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었고, 여기저기 시체인지, 부상자인지 분간 가지 않을 주민들의 몸뚱이가 널브러져 있었다.
따각.
뒤에서 예의 그 덩치 큰 기사가 붉은 군마를 끌고 칠성을 쫒아 왔다.
“니들은, 뭐 하는 새끼들이냐?”
칠성이 뒤편의 기사를 뒤 돌아 보지도 않은 채 묻는다.
“흠. 그게 죽기 전 소원 이라면 말 해 주지. 우린 페젤론 제국의 이종족 토벌부대다.”
“노예들을 다시 잡아가러 온 게... 아니었나?”
“제국에 노예로 봉사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주제를 아는 성실한 몸종들 뿐. 불손한 정신상태의 벌레들은 모두 죽일 뿐 이다.”
칠성이 슥 돌아선다.
“남자도, 여자도, 어린아이도... 양심은 없냐?”
“넌 벌레를 죽일 때 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가?”
“...무슨 근거로 저 사람들을 벌레라고 부르는 거야.”
“그야, 벌레같이 약하지 않은가.”
발끈하는 칠성.
“그럼 너보다 강한사람은, 널 아무렇게나 해도 괜찮다는 거지?”
칠성의 날카로운 눈빛.
그 눈빛의 저의를 알아챈 기사는 누구 너머에서 깔보는 시선으로 칠성을 훑는다.
“오만하군. 벌레.”
퉁!
칠성의 품속에서 튀어 오르는, 포도알 만한 마석.
까드득!
마석을 깨문 칠성의 온 몸을 마나가 휘감는다.
“죽어!!”
기사를 향해서 손을 펼쳐 뻗는 칠성.
슈-욱.
순식간에 다중의 멀티캐스팅으로 칠성의 주변에 생성되는 어둠의 총알들.
파파파팡!!
기사를 덮침과 동시에 폭발하는 어둠의 총알들.
“*스파크*!”
번쩍이는 마나의 줄기가 칠성의 손에서 뻗어가 기사를 덮친다.
카캉!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폭발.
“죽어!! 죽어!! 죽어!!!”
칠성이 악에 받친 소리를 지른다.
양손을 번갈아가며 상대방을 향해 뻗을 때 마다 어둠의 총알과 스파크가 번쩍인다.
“...후!”
시체 다져진 고기 정도밖에 남지 않았을 무렵.
마법을 난사하던 손을 멈추고 숨을 들이키는 칠성.
스윽-.
그때, 서서히.
마나의 폭풍이 일으킨 먼지구덩이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기사.
보석으로 만들어진 방패를 앞세운 기사.
티끌하나 다친 곧 없이 멀쩡해 보인다.
“과연. 이정도면 멀린의 제자라는 소문이 따라 붙을 법 도 하군. 어지간한 상대는 순식간에 고기절편이 되겠어.”
“젠장....”
이를 으득 악무는 칠성.
칠성이 마법을 배운 기간은 고작해야 10여년.
그것에 비해 발군의 기량이었으나, 여기까지 한계였다.
“내가 어지간한 상대가 아니라서 유감이군. 어지간한 기사들은 어지간한 마법사 앞에서 덜덜 떨기 마련이지만....”
랜스를 머리 너머 수직으로 치켜드는 기사.
“엄연히 클래스의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내 친히 죽여주는 걸 영광으로 알거라. 3류 마법사여. *가속(haste)*!”
피-잉.
둥둥둥!
기사의 머리위에서 생겼다 싶은 푸른빛의 마법진이 순식간에 기사의 몸통과 군마를 감싼다.
피히히히이이잉!
군마가 울부짖는다.
군마의 피부색이 붉은빛에서 밝게 빛나는 백색으로 물들어간다.
“핫!”
기합과 함께 칠성을 향해 뛰어드는 기사와 군마.
피슈-웅!
‘공간이동?’
이라고 생각 될 정도의 속도였다.
기사가 땅을 박참과 동시에.
기사와 군마가 잔영을 남기며 사라졌고,
약 30미터밖에 있던 칠성의 가슴팍에 랜스의 끄트머리가 파고 들어왔다.
꾸드드드득!
불길한 소리가 칠성의 가슴팍에서 터져 나왔다.
갈비뼈를 열어 제친 랜스의 감촉이 가슴 깊이 느껴졌다.
파앙!
칠성의 몸체가 마치 당구 큐대에 맞은 당구공처럼 쏘아져 나간다.
콰드드득!
바슈족이 거주하는 바윗돌로 세운 집의 벽에 처박히는 칠성.
바윗돌로 된 벽이 칠성과 부딪힌 충격으로 쩍쩍 금이 가며 부서져 일어난다.
“쿱!”
피를 토하는 칠성.
온몸을 덮친 믿기지 않는 수준의 충격.
단 일격.
“썩을....”
혀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제대로 움직이는 사지가 없다.
이렇게 죽는구나.
멀어져가는 칠성의 의식.
그 귓가로 이종족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져 온다.
어린아이를 보호하려던 엘프 여자가 인간 병사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로 끌려 다닌다.
몽둥이로 머리를 맞은 엘프 여자는 축 늘어진 채 말이 따각 대며 걸어 다니는 데로 짐짝처럼 끌려 다닐 뿐 이다.
‘억울해... 씨발.’
만화나 영화 같은 걸 보면 저런 새끼들이 정의의 심판을 받던데.
현실은 그런 거 없구나.
더러운 놈들은 계속해서 잘 살아갈 뿐 이다.
권선징악은 힘없는 청중들이 듣고 싶어 하는 동화 일 뿐이다.
족같...
칠성의 의식이 완전히 멀어진다.
* * *
시간을 조금 되돌려,
칠성의 소환자 이자 스승, 마카레나의 집에 성기사단이 들이닥친 바로 그 날.
“...씨, 젠장! 누가 고마워 할 거 같아?! 멍청한 영감아!!!”
칠성이 스스로를 리치로 변화시키는 금단의 주술을 사용한 마카레나를 남겨두고 홀로 도망친 직후.
“저 녀석을...!”
“어허! 말 했잖아. 너희들은 여기서 한발자국도 못 나간다고!”막아서는 마카레나, 그의 손끝이 서서히 어둠의 물결에 물든다.
“.....흠.”
달칵.
투구를 벗어 한쪽 겨드랑이에 끼는 한명의 성기사.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중년의 성기사다.
“...어쩌다 이렇게 되셨습니까.”
마카레나 영감에게 지긋이 묻는다.
“뭐가 말이냐.”
“청색의 탑에서 뵈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입니다... 세월은 이다지도 무섭군요. 대 마법사 멀린님 마저 이렇게 만들어 놓다니 말입니다.”
중년의 성기사의 말에 화들짝 놀라는, 그를 따라온 새끼 성기사들.
“멀린?!”
“그럴 리가! 잘못 보신 게 아닙니까?”
고개를 저어보이는 중년의 성기사.
“애초에 이름이 마카레나라니. 이상하다 생각했어야 하는데.”
“큭큭큭큭! 너무 오래전에 버린 이름이다. 들춰내서 뭣 하겠는가!”
기가 막힌 듯 웃는 마카레나 영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