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무집행 흑마법사-90화 (90/145)

# 90

S4 : 9화

“우와아아아...”

길카터가 숲 풀 속에 걸려있던 눈속임 마법을 해제하자 노예 탈주민들이 ‘천년 왕국’ 이라고 부르던 장소가 드러났다.

탄성을 지르는 주민들.

인간의 추격대를 처리한 뒤 이종족 탈주민들은 사천왕의 안내를 받아 천년 왕국으로 인도되었다.

“...생각보다 시시한데.”

물론 칠성도 함께.

“인간! 말조심하라고 했을 텐데.”

“윽.”

목에 붕대를 감고도, 지친 기색도 없이 칠성을 묶은 밧줄을 끌고 여기까지 온 바슈족 청년이 밧줄을 당겼다.

“아니, 도망 안 친 다니까! 뭐하는 짓이야 이게. 안 풀어?!”

“어허,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밧줄을 끊은 놈이 누군데. 그렇게 쉽게 믿을 성 싶으냐?”

“참 나! 뭣도 모르면서!”

바슈족 청년이야 있는 사실 그대로를 말한 것 뿐 이지만, 칠성 입장에서야 억울했다.

혼자 도망가자는 게 아니라, 나름 상황을 타개 해 볼 생각을 했었던 건데.

서로 으르렁대는 칠성과 바슈족 청년.

하지만 바슈족 청년의 심경을 거슬렀을지 언정, 과연 칠성의 말 대로 천년 왕국이라고 불리는 것 치곤 상당히 소박한 마을 이었다.

그래, 왕국 보다는 마을이라고 부르는 게 알맞을 만 한 규모.

나름 잘 정돈된 아기자기한 집들이 들어서 있었고, 엘프족과 바슈족, 님프족의 주거양식이 혼용된 다채로운 풍경 이었다.

나무와 일체 시 되어있는 목조 주택은 엘프의 그것,

바닥에 커다란 바윗돌을 깎아 만든 건물은 바슈족의 것.

빛나는 벽돌로 지은 것 은 님프족들의 집.

마을에는 강이 하나 흐르고 있었고 먹을 게 모자라 보이는 동네는 아니었다.

“길카터님이 돌아오셨다!”

짐을 이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던 엘프족 주민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몰려든 주민들.

“이리로 오세요!”

“허기지시죠?”

여기저기서 내밀어지는 친절한 손길들.

오랜 여정에 지친 이종족 도망자들의 어깨가 풀어진다.

정말 이례적인 풍경이었다.

“이리 주세요!”

지친 엘프족의 짐을 쫄쫄쫄 다가온 님프들이 받아주고,

“이건 수술을 해야겠는데요.”

부러진 바슈족의 다리를 엘프족 의원들이 진찰해 준다.

절대로 흔한 풍경은 아니었다.

종족의 경계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넘어지는 것 이 아니다.

이종족 간은 경계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곳에서는 전혀 아닌 듯 했지만.

인간에 대한 적대시로 만들어진 장소이기에, 오히려 종족간 대통합이 이뤄진 분위기였다. 물론 인간 빼고.

“호옴...”

그런 모습들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칠성.

“봐요, 내 말이 맞았죠?”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는, 칠성과 말다툼을 했었던 엘프족 소녀가 말을 걸어왔다.

“여기 오니까, 모두가 행복해 하잖아요.”

어딜 둘러보아도 과연, 모두들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들 뿐 이다.

깨끗한 강과 끝도 없는 과실은 모르겠지만.

“흥! 어쩌다 운이 좋았던 것뿐이야.”

좋게 좋게 대답해 줄 법도 하것만, 괜히 까칠하게 쏘아붙이는 칠성.

“못됐어! 베!”

“저게!”

묶여있는 칠성을 놔두고 메롱 해 보이며 도망가는 엘프족 소녀.

‘어쨌건 사막 한가운데에서 굶어죽는 일은 면했구만.’

쩝, 입맛을 다시는 칠성.

모두가 행복한 가운데,

남은 것은 ...

“이 녀석의 처분을 결정하겠다.”

칠성의 처분 문제였다.

마을사람들이 서서히 몰려들었다.

‘흠, 여기 붙어있는 것도 나쁘진 않은데...’

칠성은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계산을 재 보았다.

어차피 주변 성 들엔 흑마법사 칠성에 대한 수배령, 경계령이 내렸을 터 였다.

그렇다면 그 경계가 풀어지기 위해 단 몇 달 정도 만 이라도 외딴 곳에 은둔 하는 게 올바른 선택이었다.

‘먹을 것도 나름 풍족해 보이고.’

소문대로의 천년왕국 같은 건 아니지만, 칠성 입 하나 거들 정도는 충분 해 보였다.

나쁘지 않아.

물론 칠성에 대한 처분이 안 좋게 내려질 경우, 여기서도 도망치는 시나리오를 짜야했지만.

‘저 덩치정도는 쉽게 따돌릴 수 있겠지, 문제는 님프 사제의 마법 수준인데....’

이렇게 칠성이 여러모로 머리를 굴리는 사이-.

타탁, 타닥...

칠성의 앞에는 캠프파이어 같은 커다란 모닥불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칠성의 표정이 삐뚤해 졌다.

‘여차 하면 화형식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뭐야.’

“우리 호수의 엘프족은, 사람들이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알 수 있다. 들어본 적 있나?”

칠성의 앞에 선 것은 길카터였다.

마치 옛날이야기를 듣듯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이 칠성과 길카터를 구경했다.

호수의 엘프들. 들어본 적 있다.

엘프가 진실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이야기도.

“그, 그런 게 진짜란 말이야?”

“물론이다. 거짓을 말하는 눈은 붉은 사막처럼 타오르고, 진실을 말하는 눈은 호수같이 청명하게 빛이 나지.”

칠성의 말에, 당연한 일반상식을 전하는 양 담담하게 말 하는 길카터.

‘거짓말 탐지기 같은 건가?’

칠성이 침을 꼴깍 삼켰다.

“자. 내 눈을 보고 내 질문에 답해라.”

마치 공개청문회, 길카터가 칠성을 지긋이 내려다본다.

꽁꽁 묶인 채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있던 칠성이 시선을 피하다가 마지못해 길카터의 눈을 바라본다.

그리고 시작된 질문 공세, 스타트는 뜬금없는 공격이었다.

“인간들이 기습 해 왔을 때. 네 녀석이 밧줄을 푼 이유는 인간들을 돕기 위함이란 게 사실이냐?”

“뭐?”

기습 질문을 받은 칠성이 등 뒤로 째려보는 시선을 던졌다.

칠성과 눈이 마주친, 목에 붕대를 칭칭 감은 바슈족 청년이 딴전을 피우며 휘파람을 분다.

저 녀석이 꼰지른 게 틀림 없구만.

“아니야!”

칠성이 억울하다는 듯 길카터를 보며 말 했다.

“...진실.”

무심하게 칠성을 내려다보던 길카터가 조용히 말했다.

“뭐?”

“정말?”

웅성웅성 거리는 청중들.

“좋아. 그렇다면 그게 우리를 위함이었나?”

길카터가 잽싸게 다음질문을 던진다.

피식 웃는 칠성.

“물론이다.”

자신만만.

‘이거 뭐, 껌 이구만?’

사실이야 사실이니까.

“거짓.”

길카터가 무덤덤하게 뱉었다.

“뭐?”

아니 저 선무당 같은 자식이 뭐 라는 거야!

발끈한 칠성.

하지만 이내 등 뒤에서 느껴지는 살벌한 시선들에 분노조절이 잘 되는 칠성이었다.

챙!

파삭.

“다시 묻지, 그렇다면 왜 인간이 아닌 우리를 도우려고 했나? 무엇을 위해서?”

길카터가 허리춤에서 뽑은 칼이 칠성의 코앞의 바닥에 푹 꽂혀 들어간다.

핑~ 아찔한 칼날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칠성의 앞머리가 조금 잘린다.

“윽.”

쏟아지는 부담스러운 시선들.

“휴.”

한숨을 내쉰 칠성이, 졌다는 듯 실토하기 시작한다.

“그래. 나를 위해서였다.”

“진실.”

무심하게 답하는 길카터.

이젠 시키지 않아도 말을 이어가는 칠성.

“네놈들은 눈치 채지 못 했겠지만, 녀석들은 단순히 노예 토벌꾼이 아니었어.”

이어지는 칠성의 말에 술렁거리는 청중들.

“녀석들 갑옷의 가슴 파츠에는 초록색 모양의 방패 문양이 붙어있었지. 페젤론 제국 동쪽 성, 팔란티어 기병대의 소속을 상징하는 문장이다.”

자신 만만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행동 이유의 근거를 밝히는 칠성.

“언제 그런걸....”

그 한참 뒤쪽에서 바슈족 청년이 놀라움에 입을 멍하니 벌렸다.

“확실하지 않지만 난 팔란티어에 이미 수배전단이 붙었을 확률이 높아. 내겐 하등 녀석들을 도울 이유가 없지.”

“...진실. 수배 전단의 이유는?”

길카터의 질문에 잠시 망설이던 칠성.

“...뭘 당연한 걸 묻냐. 범죄자다.”

“범죄...”

“세상에....”

술렁거리는 청중들.

그리고, 땅에 박아 넣었던 칼을 다시 뽑아드는 길카터.

이번엔 칠성의 목줄에 칼이 대어진다.

“거짓.”

순식간에 숨죽인 듯 조용해지는 사람들.

“후우...좋아.”

숨을 돌린 칠성.

이 대답만큼은 피하려고 했는데.

결심이 선 듯,

길카터의 눈을 바라본다.

“흑마법사다.”

칠성에게서 눈을 떼는 길카터.

칠성 역시 고개를 숙이며 눈을 질끈 감는다.

이 세상에선 어디를 가던 흑마법사는 즉결 처형해야 할 범죄자 였다. 예외는 없다.

‘젠장.’

머릿속으로는 어떻게 이곳을 탈출할지 계획을 더듬어 보면서 말이다.

항마 속성의 밧줄.

이거야 묶여있는 척 해주고 있는 것 이다.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

투드득.

그 증거로 이미 밧줄의 안쪽은 조금씩 끊어져 가고 있었다.

예의 머리핀의 파편 조각을 꽉 쥐고 있는 칠성의 손가락 끝 에 핏물이 맺혔다.

밧줄을 품과 동시에 인질을 잡자.

그렇게 이를 갈고 있을 때 였다.

챙!

길카터의 검이 허공을 가르나 싶더니,

칠성을 묶고 있던 밧줄이 조각조각 나 흘러내렸다.

“흠, 흑마법사 라는 말은 진실. 쫒기는 것도 진실. 그렇다면 페젤론의 첩자는 아니란 말이겠지.”

“뭐?!”

자유롭게 풀려난 양 팔을 보며, 놀란 눈으로 되묻는 칠성.

칠성의 밧줄을 풀어준 뒤, 사람들을 향해 말 하는 길카터.

“어떤가 여러분. 천년 왕국은 ‘모든’ 종족이 어울리는 사회가 아니던가?”

길카터의 이어지는 설득에 웅성거리는 청중들.

“그래요! 맞습니다!”

“옳소!”

길카터를 추종하는 무리로 보이는 엘프 청년 몇몇이 주먹을 들어 보이며 지지했다.

점차 여론이 칠성 쪽으로 기우는 가운데...

“그래서 지금, 인간을 받아주자 이 말입니까?”

어디선가 울려 퍼지는 노기 어린 여성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기점으로, 목소리의 주인공을 위해 갈라져 길을 만드는 사람들의 무리.

천천히 걸어 나오는 품위 어린 걸음걸이.

헤진 비단옷을 입은 나이트 엘프다.

“왕녀님...”

그녀의 모습을 보고 탄식하듯 중얼거리는 길카터.

“길카터. 당신의 이상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감히! 감히 그런 불손한 생각을 할 수 있죠?”

순식간에 경앙되는 분위기.

“인간들이 우리에게 한 짓을 벌써 잊으셨습니까?”

왕녀의 눈에서 불꽃이 튄다.

그녀를 보좌하듯 양편으로 늘어선 나이트 엘프의 무리는 물론, 인간 자체에 대해 깊은 근원적 분노를 가지고 있는 다수의 이종족들이 그녀의 편에 섰다.

“내 고향 백성들의 시체가 아직 식지도 않았습니다!!”

피를 토하는 듯한 그녀의 일갈에 흔들리는 청중.

“옳소!”

“죽여라!”

“죽여!”

순식간에 칠성을 죽이라는 연호로 이어진다.

“왕녀님.”길카터를 포함한 일부 사람들이 그들에 맞선다.

“천년왕국이 의미 없는 피로 물들게 할 순 없습니다.”

담담하게 눌러 말하는 길카터.

불타는 눈빛.

그를 지긋이 마주보던 나이트엘프 여왕이 씹어 뱉는다.

“... 그 모든 게 연극이라는 걸 모르진 않으실 텐데요. 역할에 너무 취하신 게 아닙니까?”

독설을 뱉으며 가늘어지는 여왕의 눈.

“엘시아!”

“예!”

쒸융!

여왕의 명령과 동시에, 마치 밤하늘의 유성 같은 움직임으로 순식간에 칠성을 향해 쏘아져 나가는, 사천왕 중 한명이자 나이트엘프 암살자 엘시아.

깨어진 고드름같이 날카로운 그녀의 검신이 빛을 낸다.

파앙!

“큿.”

칠성의 코앞에서 멈춰서는, 송곳과도 같은 단검의 끝.

살짝 찔린 칠성의 미간에서 피가 흐른다.

낮게 신음을 흘리는 칠성.

“아가씨는 너무 행동파야!”

웅웅 울리는 낮은 음성으로 나무라는 남자.

꾸드득-.

엘시아의 검에 손바닥이 뚫린 채, 칠성에게 찔러 들어가는 그녀의 손을 붙잡아 낸 것은,

역시 사천왕이자 유난히 커다란 덩치의 바슈족.

란돌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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