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무집행 흑마법사-89화 (89/145)

# 89

S4 : 8화

그런 일이 있고도 수 십 년 뒤.

판브르크 대륙의 남쪽사막.

쨍-.

빛나는 햇살아래,

사막의 모래가 반사하는 열기 덕분에 현기증 같은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곳 들 사이.

“헥...헥...날...죽여...라.”

검고 칙칙한, 로브를 껴입은 칠성이 커다란 나뭇가지 하나를 지팡이 삼고 간신히 한걸음씩 전진하고 있었다.

간단하게 묘사해서 피골이 상접.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게 아니라, 지금 죽어있는 상태라고 해도 믿을 법 한 몰골이었다.

털퍽.

칠성이 바닥에 얼굴을 처박으며 쓰러진다.

까칠한 것이 아닌 부드러운 모레의 감촉이 얼굴에 느껴졌다.

‘죽고 싶다. 썩을.’

새로 정착했던 마을에서도 흑마법사란 사실이 들통 났다.

앞 뒤 안보고 도망쳐 추적에서 벗어난 건 다행이었지만.

앞 뒤 안 보고 도망친 게 문제였다.

‘그때 그 새끼들이 안 따라오는 게 이상하다 싶었는데.’

강을 건너 도망칠 때 까지만 해도 쫒아오던 병력들이 귀신같이 멈춰 선 것 이다.

그리고 강 너머에서부터 귀신같이 이어진 끝도 없는 사막.

병졸들은 아마 칠성이 이쪽으로 도망치면 분명히 죽을 것 이라고 생각 한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고 이미 정체가 들통 난 도시로 돌아가는 도박을 할 수 도 없다.

미친 짓 이지만 맨몸으로 이 사막을 건너는 수밖엔.

그게 이미 사흘 전 이었다.

마카레나 영감에게 받은 시술들로 이미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몸 이긴 했지만,

이제는 정말로 한계다.

쓰러진 기세 그대로 바닥에 누워있는 칠성.

얼굴을 잔뜩 찌푸린 칠성이 로브가 만들어내는 그림자에 의지해서 잠시 눈을 감은 무렵 이었다.

탈팍.

저 멀리 어디선가, 소리가 났다.

칠성의 귀가 꿈틀거린다.

번쩍.

칠성의 눈이 떠졌다.

분명히, 사람 소리다.

고개를 든 칠성.

저 멀리, 작은 검은 점들 같은 사람들의 무리가 보인다.

벌떡 일어난다.

‘사막을 건너는 행상인들?’

아니, 뭐든 간에 좋다!

물, 물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얻을 수 없다면 뭐, 뺏기라도 한다면!

“크헬헬헬.”

탓탓탓탓!

칠성이 마지막 남은 힘을 모두 짜 내 달리기 시작한다.

어떤 사람이던 좋다 이거다!

탓...

사막을 건너는 무리에 거의 근접 했을 때.

칠성의 발걸음이 갑작스레 느려진다.

어떤 사람이던 좋다 이거다.

그런데....

“인간이다!”

챙!

우악스럽게 생긴 바슈족 남성이 회색빛 로브에서부터 검을 빼내어 들었다.

...사람이 아니네?

바슈족 청년의 옆에 있던 엘프도 칼을 뽑아든다.

치잉!

금속음들과 함께 시퍼런 이를 드러내며 뽑아지는 칼들, 순식간에 십 수 명의 이종족 청년들이 칠성을 둘러싼 형태가 된다.

반사적으로 항복이라는 듯 양 손을 들어 보이는 칠성.

“넌 뭐냐!”

처음의 바슈족 남성이 그르렁 대며 묻는다.

대치상황이 계속된다.

“아니... 나...는....”

쿵!

칠성의 몸이 털퍽 쓰러진다.

모레 바닥에 박은 머리가 웅웅 울린다.

한계점이다.

칠성의 정신은 어떻게 이들에게 빈틈을 만들어 반격할지, 어떤 마법으로 이 철부지 이종족들을 조련할지 계산중 이었지만.

사흘간 물 한 모금 없이 사막을 건넌 몸이 칠성을 바닥에 내팽겨 쳤다.

‘젠장....’

의식이 흐릿해 질 무렵이었다.

“이거 먹어.”

“응..?”

간신히 고개를 든 칠성.

한 엘프족 꼬마가 칠성을 향해 빵을 내밀고 있다.

“콘! 무슨 짓 이야!”

저 멀리서 바슈족 청년이 소리를 지르는 게 들린다.

“물...물은...없니?”

꼬마를 향해 그렇게 중얼거리듯 물은 칠성.

깨꼬닥.

의식을 잃는다.

* * *

와국! 와국!

칠성이 정신없이 빵을 씹어 삼킨다.

탈탈.

물고 빨던 수통의 물은 다 먹었나보다.

혀끝에 대고 탈탈 터는 수통의 주둥이에서 물방울 두어 개 만이 떨어져 내린다.

“더 없어?!”

버럭 소리 지르는 칠성.

“허, 뻔뻔하긴!”

바슈족 청년이 질렸다는 듯 표정을 구긴다.

“귀중한 식량을 나누어 준 것을 일생의 은혜로 생각해라.”

“음. 뭐 그건 좋긴한데.”

빵가루가 묻은 엄지를 빠는 칠성.

“그럼 가자.”

“뭐?”팽팽하게 당겨지는 밧줄.

칠성을 묶은 밧줄을 바슈족 청년이 잡아당기자 앉아있던 칠성이 강제로 기상한다.

“참 나, 나 매너 있는 사람이긴 한데. 이건 좀 아닌 거 같다.”

빵을 준 사람들을 도륙할 안하무인은 아니지만, 전쟁 포로 같은 몰골도 좀 아니지 않은가?

“이까짓 거야.”

우둑둑....지잉.

몸을 꿈틀거리는 칠성.

밧줄에서 황금빛 빛이 잠시 일어난다.

몸에 힘을 넣어 밧줄을 끊으려던 칠성의 동작이 멎는다.

칠성의 표정이 의아하게 물들어간다.

“어, 어라?”

“뜻대로 안 되지? 네놈이 마법사 란건 진즉에 알고 있다.”

“이, 이거 풀어줘. 어이!”

칠성의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그대로 밧줄을 잡아끄는 바슈족 청년.

꼼짝없이 칠성의 몸뚱이가 비틀거리며 끌려간다.

그리고 서서히 움직이는 이종족의 행렬.

수 십 명의 엘프와 바슈족이 혼용된 희한한 집단.

“네 녀석의 처분은 차후에 결정하겠다. 인간.”

“이런 미친!”

칠성이 발버둥을 쳐 보지만 어지간 짓을 해 봐도 소용이 없다.

결국 포기하고 끌려가는 칠성.

뭐, 어차피 사막에서 죽을 꼴 이었는데.

이 녀석들이 안전한 곳 까지 옮겨주면 좋지 않은 가.

먹을 걸 주는걸 봐서 죽일 생각도 없는 것 같고.

해가 져 차가워진 사막,

새하얀 달빛만이 내리쬐는 가운데.

계속되는 행진.

“그래, 우린 인간들의 노예였다.”

그르렁 대는 바슈족 청년.

노예 생활을 하던 그들은 도망쳐 떠도는 중이었다고 한다.

“사천왕을 찾기만 하면, 이 생활도 청산이다.”

이종족을 대표하는 4인의 용사.

흔히 사천왕으로 불리는 무리.

“천년왕국에 들어가기만 하면 우리도...”

“천년왕국?”

바슈족 청년의 혼잣말에 가까운 설명에 칠성이 물었다.

“사천왕이 만든, 모든 종족이 평등한 왕국 이래요!”

칠성의 옆에서 걷고 있던 엘프족 소녀가 신이 나서 말 했다.

“어떤 종족이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다, 깨끗한 강이 흐르고 과실이 가득한 곳이라고 했어요!”

“그으래...?”

시큰둥하게 대꾸하는 칠성.

그래, 꽤나. 시시한 전설을 믿고 있구만.

‘사는 게 힘드니까 그렇겠지만.’

천년왕국도 그렇고, 사천왕의 존재 여부조차도

칠성은 처음 듣는 것 은 물론이고, 진위가 의심스러웠다.

노예들이 만들어낸 판타지 내지 신앙.

‘젠장, 잘못 걸렸네.’

눈이 뒤집어지는 칠성.

언젠가 사천왕이란 사람들이 자신들을 구하러 올 것 이란 꿈같은 이야기!

살기 힘드니까 그런 전설에 의지하는 것 까지도 좋다.

하지만 그런 꿈같은 이야기를 믿고 도망치다니, 말도 안 돼는 짓 이다.

이대로라면 이 녀석들은 평생 사막이나 어디 대륙을 떠돌다가 전멸할 것 이다.

거기다.

‘난 이런 녀석들한테 끌려 다니고 있단 말이지.’

적당한 도시나 마을이 나타나면 필사적으로 도망쳐야지. 하는 계획이 뒤틀리는 순간이었다.

이런 목적 없는 발걸음에 함께 하다가 굶어 죽기는 싫다.

일단은 몸을 좀 회복 하고, 빈틈을....

“거짓말이라고 생각 하는 거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엘프족 소녀가 칠성에게

묻는다.

“아니, 뭐... 그게. 글쎄....”

어물쩍 거리는 칠성의 말에 소녀의 표정이 굳는다.

“너무 간편한 생각 아니야? 언젠가 누가 와서 구해줄 것 이니, 도착하기만 하면 행복해지는 왕국이니 하는 발상은....”

자기도 모르게 말문이 트인 칠성, 거침없이 자기 생각을 내뱉는다.

“알어, 현실이 고달프니까 그런 거라도 있어야 살겠지. 그런데 조금만 생각 해 봐. 너도 머리라는 게 장식은 아니잖아? 이게 얼마나 황당한....”

계속해서 이어지는 칠성의 일침, 엘프족 소녀의 눈망울이 그렁거리나 싶은 순간.

“너!”

콰악.

칠성의 몸이 공중에 뜬다.

칠성의 멱살을 잡은 바슈족 청년이 이글이글 불타는 눈매로 칠성을 노려본다.

“말 함부로 하지 마라.”

“아, 아니, 나는 마법사잖아. 그냥 논리적으로 봤을 때....”

멱살이 잡혀 들린 채 로도 살아있는 칠성의 입.

“네 녀석이 믿든 안 믿든, 우리에겐 오래도록 내려온 예언이다. 사천왕과 메시아에 대한 이야기는!”

버럭 소리 지르는 바슈족 청년.

“쿨럭, 이것 좀 놓고...”

“오빠! 죽겠어!”

서서히 숨이 막혀 새파랗게 질려가는 칠성의 얼굴, 보다 못 한 엘프족 소녀가 바슈족 청년에게 매달리자 그제야 놓아준다.

털퍽.

“켈록, 켈록.”

“말조심해라 인간.”

마른기침을 내뱉는 칠성을 내버려두고 걸어가는 바슈족 청년.

“에이 씨, 젠장.”

침을 투 뱉고는, 팽팽히 당겨진 밧줄에 의지해 다시 일어나려는 칠성.

그때였다.

휘리릭!

“컥!”

앞서가던 엘프 청년이 순식간에 자신의 목을 붙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목에 칭칭 감긴 것은 짐승 등을 사냥할 때 나 쓰는 볼라. 단단한 줄의 양쪽에 무게 추를 달아둔 물건.

“저기다! 잡아라!”

히이잉!

어디선가 악쓰는 소리와 함께 군마 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인간들이다!”

엘프족 청년이 칼을 빼들며 소리 질렀다.

“다들 당황하지말고! 대형을 유지해!”

바슈족 청년이 목청을 높였다.

멀리선 군마를 탄 인간족 기사들이 무거워 보이는 중갑옷으로 완전 무장을 한 채 말을 달려 오고 있었다.

탈캉!

“크으!”

칠성은 고개를 수그렸다.

순식간에 부딪힌 이종족 노예 무리와 인간 기사들의 무리.

하지만 그것은 격돌이라기보다는 학살에 가까운 풍경이었다.

이종족의 청년들도 검으로 무장하고 있는 이 들이 많았지만, 그것이 무술을 갈고 닦은 기사들과의 차이를 줄여주진 않는다.

퍽!

도망가던 엘프 소녀의 뒤통수가 말 탄 기사가 휘두른 둔기에 의해 가격되고,

엘프 소녀는 마치 짚으로 만든 인형처럼 힘없이 차가운 사막의 바닥에 매다 꽂힌다.

여기저기서 비명과 절규가 난자한다.

“조심들 해라! 노예들이 죽어버리면 우리는 헛고생 하는 거니까!”

검은 구불구불한 콧수염을 기른 인간 기사가 부하들을 향해 외친다.

“젠장!”

칠성이 낮게 신음한다.

저 멀리, 칠성에게 빵을 건네어 주기도 했던 엘프족 소년이 짐승처럼 목에 밧줄이 걸린 채, 인간 기사에게 들어 올려지는 것 이 보인다.

타탁! 타닥!

칠성이 열심히 손목을 움직여 밧줄에 흠집을 내고 있었다.

칠성의 손이 꼭 쥐고 있는 것은 엘프 족 소녀의 머리장신구였다.

나름 뾰족한 부분이 밧줄을 끊어내고 있었지만 너무 느리다.

비명이 울려 퍼지는 사막에 뜨거운 피 가 뿌려진다.

크게 다치고 정신을 잃은 엘프들의 목에 밧줄을 묶는 인간 기사들.

칠성을 괴롭히던 바슈족 청년도 정신을 잃고 바닥에 널부러진다.

희망은 없다.

“젠장!”

탓, 탓.

탓.

그 순간, 밧줄이 끊어졌다.

“썩을!”

죽은 듯이 누워있던 칠성, 잽싸게 일어난다.

그런데 그 때 였다.

“너...희들은 뭐냐?”

쿠-웅.

갑작스레 그 난장판에 나타난 두 명의 실루엣.

“물러나라. 인간.”

그 중 한명이 일어나려는 칠성의 어깨를 잡고 누른다.

“쳐라!”

“히야아앗!”

덤벼드는 인간 기사.

“아니, 이거 좀 놔 봐!”

“숙여!”

칠성의 말을 무시하고, 칠성을 바닥에 밀어 붙이는 괴력의 남자.

다음순간.

콰카앙!!

커다란 창을 빼어들고 이쪽으로 향하던, 말을 탄 인간 기사가 순식간에 말과 함께 저 멀리 내팽겨 쳐진다.

우드득.

그리고 몸을 풀었다는 듯 팔을 돌려 보이는, 검은 실루엣 중 한명인 커다란 덩치의 바슈족 남자.

일순간 충격에 휩싸여 행동이 멈춘 인간 기사들.

“뭣, 뭣들 하는 거냐! 어서 저 녀석...”

명령을 내리던 콧수염의 말이 멈췄다.

그 대신 목에 느껴진 살벌한 감각을 따라 돌아가는 콧수염의 눈동자.

“한마디라도 더 내 맘에 안 드는 소리를 뱉었다간 목이 날아갈 것 이다.”

어느새, 그의 말 뒤에 함께 타고 있는 젊은 나이트엘프 여성이 콧수염의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

어느새 다친 이종족들을 돌보고 있는 님프족 여성과, 검을 빼어든 엘프족 검사까지.

그들의 모습을 확인한, 아까 칠성과 말다툼을 했던 엘프족 소녀의 눈동자가 떨렸다.

“삭풍이 돌아올 때 구원자가 오리라.”

빛나는 검을 빼어든 엘프족 검사가 조용히 읊조렸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아는 문장이었다.

엘프족 검사의 말에, 현장의 이종족들의 표정이 멍해진다.

“저 사람들은...설마. 진짜?”

이제는 울먹 거리는라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엘프족 소녀.

얼굴은 이미 눈물과 콧물로 범벅되어 있다.

“그때가 되면 일어나리라.”

사람들을 돌보던 님프족 사제가 조용히 말을 보탠다.

“네 명의 천왕이. 이거 좀 안하면 안 되나? 창피하게 시리.”

아까 인간 기사를 일격에 날려버린, 유난히 덩치가 큰 바슈족 청년이 머쓱하게 뒷목을 긁으며 말한다.

구원자들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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