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
S4 : 7화
[너 어디냐?]
전화기 너머로 지우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우혁의 전화를 받은 시각, 칠성은 이미 부산에 있었다.
“광주.”
트렁크에서 짐을 내리는 중 이었다.
“좀 있음 제주도.”
쿵!
트렁크 문을 닫는 칠성.
“아유, 제주도는 또 오랜만 이네.”
“이게 다 아들 잘 둔 덕이죠. 호호.”
피난민 이라기보다는 관광객 차림의 칠성 부모님들.
[재주도 좋네.]
“넌 어디야?”
지우혁에게 되물어보는 칠성.
[서울. 김태홍이랑 수헌부 사람들이랑, 국군 방어선에 가기로 했어.]
지우혁의 말에 충격을 받은 듯, 움직이던 동작을 멈춘 칠성.
“분명히 말 하는데, 나 안 간다?”
꾹 꾹 눌러 담아 말하는 칠성.
[알어.]
담담하게 들려오는 지우혁의 목소리.
그래, 선택은 선택.
지우혁이 아무리 친구라지만 무엇을 할 것 까지 칠성이 정할 수 는 없다.
지우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칠성이 있다면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든든하겠지만.
의리를 위해 전쟁터에 나가달라는 말은 억지니까.
친구니까 친구의 선택을 존중해 준다.
김칠성이 왜 그러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고 있었지만 말 이다.
어찌되었건 친구의 선택을 믿어준다.
두 사람은 그 정도 신뢰의 관계였다.
“그래. 몸조심 하고.”
그렇기 때문에, 설사 무모한 결정이라고 해도 지우혁이 내린 결정이라면, 칠성 역시도 그에 대해선 따지지 않는다.
[그래.]
담담한 목소리.
전화를 끊는다.
칠성은 차로 부모님들과 누나를 챙긴 뒤, 잽싸게 서울을 빠져나와 과천시 경찰의 협조를 받아 헬기를 탔다.
당연히 경찰의 헬기는 칠성의 장난감이 아니다.
하지만 경찰조차 이제는 수호헌터부에 속해있었기 때문에, 수헌부 장관인 칠성이 경찰의 협조를 받아내는 것 이야 숨 쉬는 것보다도 간단했다.
역시나, 마력보다 강력한 권력의 힘 이었다.
그리고 도착한 광주,
칠성과 가족들은 광주 수호헌터부의 협조를 받아 수헌부 헬기로 제주도로 향하기로 한 것 이다.
옵션으로 낀 한솜이도.
“아가씨 가족들은 괜찮아요?”“아, 네. 부모님은 외국에 계세요.”
“아 그래? 외국 어디?”
“독일 뮌헨에요.”
가족들이 칠성의 의도에 맞추어 주는 것 일까.
아니면 칠성이라는 든든한 존재 덕 분 일까.
온 나라가 혼란과 공포에 휩싸인 지금에도, 칠성의 부모님, 그리고 한솜이는 천하 태평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우리 칠성이랑은 어떤 사이예요?”
칠성의 어머니가 넌지시, 마치 장난기 많은 10대 소녀라도 된 듯 한솜이에게 소곤소곤 묻는다.
“네? 아. 저... 그게...”
시원하게 말은 못 하고 몸을 베베 꼬며 칠성쪽을 힐끔 보는 한솜이.
“아유 엄마도, 뭘 묻냐? 보나마나 뻔하지. 애인 아니야 애인.”
칠성의 누나 칠선이 끼어들어 거든다.
“그래? 맞지? 그런 거지?”
“네. 네에...”
그게 별 거라고, 옆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얼굴이 상기되는 한솜이.
“엉, 며느리감 1호.”
그러고 있는 걸 본 칠성이 무심하게 툭 던진다.
“어유! 어디서 이런 참한 아가씨를 데려왔어?”
“세상에. 칠성이 애인이라고? 아니 저런 놈이 뭐가 좋다고.”
“아 아버지,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해!”
“저 녀석이 뭐 애인 안 해주면 큰일 난다고 공갈 협박한건 아니지 아가씨?”
“저 아저씨가 진짜!”
하하하 깔깔깔 하는 웃음소리가 퍼진다.
“준비 됐습니다. 장관님! 식구 분들, 타시죠.”
수헌부의 헬기 조종사가 말한다.
헬기에 짐을 싣는 칠성과 식구들.
그 사이, 칠성의 누나가 묘한 눈빛으로 칠성을 관찰 하더니, 칠성의 팔을 붙잡고 한쪽으로 슬쩍 빼 낸다.
“따라와.”
“아 왜. 뭔데?”
불만스럽게 툴툴 거리는 칠성을 가족들 안 보이는 코너 까지 빼온 칠선.
칠성의 눈을 노려보며 말 한다.
“너. 또 엉뚱한 생각 하는 거 아니지?”
뜬구름 잡는 듯한 대화.
“무슨 소리야.”
칠성이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너. 또 우리만 안전한데로 보내 놓고. 넌 제일 위험한데로 기어 들어갈 생각 하고 있는 거 아니냔 말이야.”
칠성의 양 어깨를 잡고 째려보는 누나의 눈망울이 그렁그렁 하다.
그럴 법도 하다.
여태까지 몇 번이나 그랬으니까.
칠선이 오해를 할 만 도하다.
하지만 칠성 입장에선 그때들과, 지금은 엄밀하게 다른 사항이다.
그전 사건들 이야, 다른 지구인들 입장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칠성의 실력과 감각으론 그렇게까지 큰일들이 아니었다.
감정의 오감은 별개로 두고,
아무리 강한 상대라고 해 봐야 칠성에겐 강적으로 느껴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이번의 적은 칠성에게도 미지의 대상이었다.
거기다 중국군을 상대하면서 전력을 다한다면, 필시 몰려올 성기사들 까지 상대해야 한다.
이런 엄청난 부담감을 가지고, 무엇을 걸어야 하는지 모르는 전투 속으로 자신이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해봐야 생기는 것도 없는데.
“전혀 아니야. 걱정 마.”
그래서 칠성은 진심으로 쿨하게 이렇게 말 할 수 있었다.
정말로 진심이니까.
“진심이야?”
“진심.”
그런데,
“그런데 표정이 왜 그러고 있냐고.”
칠성의 누나가 불안해했던 이유.
“뭔 소리 하는지 모르겠는데.”
모르겠다고 하는 말과는 다르게,
칠성은 은연중 알고 있었다.
마음이 편하진 않다.
개입하지 않기로야 했지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머릿속으로 대충 그려지는 데야 마음이 마냥 편하긴 힘들었다.
그렇다고 결정을 번복하진 않는다.
“칠성아!”
“...걱정하지 마. 나한텐 그 어떤 거 보다 가족들이 소중해. 가족들 다시 못 보게 될지도 모르는 짓은 절대로 안 해.”
성기사들 과의 전쟁에서 지기라도 한 다면,
아니. 최악의 경우. 이긴다고 쳐도...
지면 죽는 것 이고,
이기면 국제적 범죄자가 된다.
또다시 도망자가 되는 것 이다.
그것도 세계로부터 숨어야하는 끔찍한 도망자.
그런 짓은 벌이지 않는다.
“...응.”
진지한 칠성의 말에 납득하는 칠선.
더 이상 따지지 않기로 한다.
* * *
헬기에 짐까지 이것저것 실으려니 한 대로 가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칠성과 가족들, 그리고 한솜이는 헬기 두 대에 나눠 타기로 했다.
칠성의 부모님과 누나가 하나에, 그리고 한솜이와 김칠성이 다른 하나에.
투구투구투구--.
프로펠러가 특유의 소음을 일으켰고, 헬기의 몸체가 대지를 박차고 허공으로 뛰어오른다.
순식간에 높아지는 시야.
도시가 발아래 로 깔리는 상승감.
“꺄~”
한솜이가 기분 좋은 비명을 지른다.
그런 한솜이를 보며 퍼쓱 웃는 김칠성.
헬기가 도시를 저 먼 발아래 두고 나아갈 무렵이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나쁜 일 뿐 이었어요? 좋은 일은 없었어?”
한솜이의 말에 창 밖 너머 발밑 풍경을 구경하던 칠성이 한솜이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뭐가.”
“600년 이었다면서요. 정말 그렇게 나쁜 사람, 나쁜 일들 뿐 이었어?”
“그거보다, 내 말이 다 믿기긴 해?”
칠성이 한솜이에게 지난 일들을 조금 털어 놓은 것 은 거의 홧김에 일어난 일 이었다.
아무에게도 말 하지 않아서 갑갑해서 일까.
아니, 그것도 그렇지만 결국은 그 김태홍놈이 성질을 벅벅 긁어 논 탓 이다.
하간 가족에게도 미처 못 한 말들이니, 속이야 시원하긴 한데.
이 아가씨, 어쩐지 반응이 너무 싱겁다.
“아니? 별로.”
그렇게 말 하고는 셀쭉하게 웃는 한솜이.
“잘 모르겠어. 그래도 궁금해.”
“왜, 600살 넘게 먹은 중노인네 라니까 이상해?”
“..음. 그건 별로 관계없는데?”
“그래?”
손을 모아 아래로 기지개를 펴며 어깨를 으쓱 해 보이는 한솜이.
“좀 이상하기야 해도. 칠성씨는 칠성씨잖아요?”
받아 칠 말을 잃고 멍하게, 한솜이를 잠시 바라보던 칠성.
‘진짜 특이한 여자야.’
씩 웃으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어느새 포개어 잡고 있는 두 사람의 손.
“좋은 일 이라...”
중얼거리며 기억을 더듬듯, 허공을 헤매는 칠성의 눈.
“...별로 없었던 거 같은데.”
* * *
약 600년전.
칠성이 마카레나에 의해 판브르크 대륙에 소환되었다.
처음에는 원래대로 되돌려 놓으라며 고래고래 소리쳤지만, 시간이 한참이나 지나자 어느 정도 참고 사는 것에 타협을 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약 20년 뒤.
“커~ 겁나 멀어.”
한적한 시골길,
품에는 식료품을 잔뜩 안아 들고,
툴툴거리는 칠성이 언덕을 올라오고 있었다.
칠성의 스승은 그와 칠성의 새로운 거처를 인간들의 마을 근처에 잡았다.
그건, 문자 그대로 근처란 말이다.
가장 한적한 인간의 마을에서도 15km 정도나 떨어진 외딴 집 이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들짐승이 무서워서라도 살지 않을 지역.
하여간 먹을거리를 사 온 칠성.
끼기기긱-.
외딴 통나무집의 문을 연다.
“나왔어 영....”
하지만 칠성의 일상적인 인사는 끝까지 이어지지 못 했다.
칠성이 들고 온 식료품을 담은 봉투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내용물을 뱉어낸다.
“감...?”
철컥.
칠성을 소환한 소환자이자 이제는 스승, 마카레나 영감과 대치중 인 것은 밝게 빛나는 백은의 갑옷을 빛내고 있는 자들이 동시에 칠성쪽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성기사단이다.
“성...기사?”
“저 녀석도 한 패다! 잡아라!”
멍하니 반사적으로 중얼거리는 칠성.
그런 칠성을 향해 칼을 치켜드는 성기사.
집안은 이미 엉망이 되어있었고, 집안을 초토화 시키며 마카레나 영감을 둘러싼 다섯명의 성기사.
이 제국에서 흑마법사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즉결 심판의 대상이었다.
잘 숨어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찾아 낸 것 이다.
“도망, 도망쳐라 칠성아!!”
비명 같은 소리를 지르는 마카레나.
“도, 도망을 왜 쳐! 이런 자식들 따위”
덜덜 떨면서도 팔을 걷어붙이는 칠성.
“시끄러! 도망쳐라 꼬맹이!”
“그치만!”
“뭐해 저 녀석을 잡아!”
“너희는 여기서 한발자국도 못 가!”
성기사단을 지팡이로 막아 선 마카레나.
“*영혼계약 : 리치*”
콰카카칵-!
그러고는 몰려드는 어둠의 기운.
“...왜! 어째서!”
마카레나에게 소리치는 칠성.
자신의 영혼을 계약해, 자신 스스로가 지옥의 일꾼, 리치가 되는 주술.
리치로 스스로가 탈변함과 동시에 눈앞의 적들의 목숨을 거둔다.
일순간, 어마어마한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로 탈바꿈 되지만,
한번 탈변한 술자는 다시는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 한다.
“빨리 도망가... 도망가서!”
성기사들을 막아선 와중에 칠성을 돌아 본 마카레나,
씨익 웃으며 못생긴 금이빨을 드러낸다.
“살아남아라. 꼬맹아.”
“...씨, 젠장! 누가 고마워 할 거 같아?! 멍청한 영감아!!!”
이제 돌이킬 수 없다.
칠성은 잽싸게 달려서 통나무집을 떠난다.
“저 녀석을...!”
“어허! 말 했잖아. 너희들은 여기서 한발자국도 못 나간다고!”막아서는 마카레나, 그의 손끝이 서서히 어둠의 물결에 물든다.
“젠장! 젠장! 젠장!!!”
통나무집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숲속.
밀려들어올 성기사들을 의식해 몸을 피하던 칠성.
아름드리나무에 머리를 연거푸 처박고 있다.
“젠장!”
새된 목소리로 비명 같은 욕설을 내뱉는다.
그래, 재수 없는 노인네였다.
말도 안 돼는 이유로 자신을 외딴 세계로 데려온, 그리고 돌려놓지도 못 하는 멍청한 영감.
하지만 20년의 세월.
시작이야 괴상한 인연이었으나,
지구에서 살았던 세월만큼이나 함께 살았던, 일종의 가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