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무집행 흑마법사-87화 (87/145)

# 87

S4 : 6화

란돌프가 과거의 동료들을 배신한 이유는 간단했다.

바슈족의 안녕과 평화를 위하여!

오로지 그것을 대의로 달려온 남자였다.

바슈족은 엄밀히 따지면 인간과 다른 종족이었으나, 겉모습은 그저 덩치가 크고 좀 더 터프해 보이는 야성적 인간.

과거엔 인간이 바슈족을 노예로 삼았으나.

인간의 왕은 바슈족을 회유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완전히 동등한 존재로서.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것은 바슈족의 리더인 란돌프가 그토록 원하던 꿈 이었다.

과거에 진한 인연이 있는 동료들을 팔아넘길 만 한 빛나는 꿈.

페젤론은 이미 제도적으로 바슈족들을 받아들일 준비까지 완비해 두고 있었다.

페젤론이 이종족 정벌과 사냥을 시작하면, 바슈족을 제외한 나머지 이종족들은 인간과 바슈족의 노예가 될 터였지만.

“양심에 가책은 없다. 영원한 동료도. 영원한 적도 없는 법이 아니던가.”

“목숨을 오가던 전선의 전우들을 다 팔아먹어도 말이지? 네가 누구보다도 잘 사람들 약점을 찔러서?”

칠성이 씹어뱉어내듯 추궁한다.

“...부질없는 기사도로 쓸데없는 소모전을 벌일 필요는 없잖나.”

“그래서, 네놈새끼가 파악한 내 약점은 뭔데?”

칠성의 물음에 고개를 천천히 젓는 란돌프.

팔을 걷어 올린 란돌프가 자신의 오른쪽 팔에 잔뜩 마나를 불어넣는다.

꾸드드득-.

주먹 쥔 손과 팔에 힘줄이 솟아오른다.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까지 널 남겨둔 것 이다.”

콰아앙!!

란돌프의 주먹이 왕성의 바닥에 꽂힌다.

칠성과 란돌프를 포함한 범위 바닥의 바닥재에 쩍쩍 금이간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콰르르르릉---!

마치 부실공사라도 된 양, 왕성의 바닥이 그대로 폭삭 주저앉는다.

“크읏!”

칠성이 간신히 균형을 잡는다.

2층, 3층.

지하로 꺼져버린 바닥.

쿠웅!

균형을 잡은 칠성이 눈을 든 순간.

위이잉-.

칠성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

지하 3층으로 떨어진 칠성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성기사들, 그리고 그 위 지하 2층, 1층 이었을 곳에 대기하고, 이쪽을 향해 포위하고 있는 병력들.

쿵!!

쿵!!

그르르르릉-.

부숴져버린 천장 위로 보이는,

고개를 내밀어 아래쪽을 보고 있는 초거대 골렘의 빛나는 눈.

“그래서 네놈을 마지막까지 남겨 둔 것 이다. 우리의 모든 전력을 모아 네놈을 죽이기 위해서!”

란돌프가 목에 핏대를 올렸다.

“약점? 상관없다! 압도적인 전력으로 뭉개 버린다면!”

왕성 자체가, 칠성 하나를 죽이기 위한 하나의 거대한 함정이었던 것 이다.

누가 보아도 압도적인 전력 차.

하지만 동요하기는커녕, 거진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칠성의 눈빛.

기쁨도, 슬픔도, 분노조차도...

아무런 변화도 느껴지지 않는 눈동자.

누구보다도 감정적인 칠성의 그런 반응에, 공격을 명령하지도 않고, 의아한 표정으로 칠성을 살피는 란돌프.

칠성은 그저 조용히, 소울콜렉터를 들어올린다.

“다 떠든 거 맞지? 시작한다.”

태양이 어둠에 물든다.

* * *

그 뒤로 한동안 칠성의 행보는 파괴와 죽음으로 이어진다.

은둔지,

마을 광장의 넓은 바위 평상.

“꺄악!!”

일찍이 일을 나가던 바슈족 여인이 비명을 지른다.

피칠갑 된 그들 족장의 머리가, 평상위에 올려져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사이코 연쇄살인마가 저지른 살해 현장 같이,

족장의 피로, 화려하게 돌 위에 휘갈겨 써져있는 문장.

[배신은 달고, 그 대가는 쓰다.]

오체분시 된 란돌프의 시체는 바슈족에게로 배달되었다.

인간에 대한 희망을 저버린 칠성은 페젤론 제국의 72맹주를 고작 일주일 만에 모두 살해한다.

제국의 황제가 될 만한 인물들을 모두 죽여 버린 것 이다.

이 충격적인 사건 이후 페젤론 제국은 누구도 황제가 되지 않으려 하는 무無황제 시대가 백년 넘게 이어진다.

왕이 되려는 자는 모조리 죽이는 대마왕의 존재는 이어서 무정부 시대를 불러왔다.

강제적으로 야생의 상태로 돌아간 인간들의 사회 체계는 이전과 같이 하나의 종족 전체를 노예화 하는 거대한 힘은 쓰지 못 했다.

그리고 그 약화된 틈을 타, 이종족이 인간을 노예로 부리는 사건들도 생겨났다.

이쪽 세상에 완전히 환멸 한 칠성은,

완전이 은둔 한 체, 고향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준비를 해가던 와중, 백여년의 세월 간 끝끝내 추적해 온 인간 성기사단의 차원 추방 주문으로 추방당한다.

그리고 돌아온 지구.

그 뒤엔 모두가 알다시피,

돌아오자마자 달팽이 괴수에게 뒤통수를 맞고,

차원의 장난으로 가족들과 재회하게 되고.

괴수와 헌터의 세상에서 헌터가 되어 활약하며,

안희운 장관과 연금술사 김규형,

지옥에서 올라온 메피스토,

그리고...

* * *

현재.

불타오르고 있는 모스크바.

군대의 습격이 아닌, 마치 거대한 자연재해라도 입은 듯 한 모습.

폭풍이나 지진, 헤일이라도 지나 간 듯.

건물이었을 것들의 잔해는 여기저기 널려져 있고,

생명의 냄새라곤 어디에서도 맡을 수 없다.

기자 회견장,

군 장성들이 입는 정복을 차려입은 러시아 총리가 엄격한 표정으로 선언문을 읽어나간다.

“/중국군의 침공 양상은 섬멸전의 양상을 띄고 있다. 모스크바 현지의 군인은 물론이고, 민간인 조차도 생존자를 찾기 힘든 상황이다.”

평소 카리스마 넘치기로 유명한 그 조차도, 긴장된 표정이 역력하다.

떠듬 떠듬한 움직임으로 손에 든 선언문과 기자들을 번갈아 주시하는 총리.

“/...여자나 어린아이조차도 생존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설사 정쟁이라 해도 파렴치한 행동이다. 이에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으며.”

긴장한 음색으로 문서를 읽어가던 총리.

문 듯, 동작을 멈춘다.

그러고는 문서를 몇 번에 걸쳐 접어 집어넣더니,

연대 (발표자용 테이블) 를 양 손으로 잡고

조금 전과는 다르게 강경한 목소리로,

분명하고도 매서운 눈빛을 번뜩인다.

“/앞으로 12시간 내 국제연맹의 대처나, 중국의 확고하고도 면밀한 사태 처리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우리군은 중국의 22개 주요도시를 향해 핵미사일을 발사할 것을 공표하는 바이다.”

여기저기서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린다.

회견장에 모여 있던 수많은 각국의 기자들의 카메라에서 플래시가 터진다.

마치 헤일이라도 넘쳐오는 듯,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점차 드높아진다.

여기저기서 질문 발표를 요청하는 기자들의 아우성.

총리의 경호원으로 보이는 이 들은 총리에게 어서 장소이동을 할 것을 종용하며 그를 둘러싼다.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총리가 검지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러시아어로 이어오던 발표, 하지만 이 말 만큼은 분명하게 세계에 전하고 싶은 것 인지.

자신을 감싼 경호원들을 간신히 뚫고 마이크에 입을 대고,

영어로 마지막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THIS MEANS WAR. (이건 전쟁이다.)”

그런 총리의 모습 위로 포개지는 뉴스화면.

총리의 사진이 자료화면이 되어 화면 한편에 장식되고, 앵커의 멘트가 이어진다.

[러시아 총리가 유감을 표명하며 핵미사일 발사를 예고 한 가운데. 중국군의 남하가 확실시 되면서 피난 행렬로 도로는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어서, 평소 재미난 촌철살인의 멘트로 많은 시청자에게 즐거움을 주기로 유명했던 남자 앵커가,

역시나 작가가 적어 주었을 리 없는 즉석 애드립 멘트를 시작했다.

[저희는 최후까지, 방송국을 지키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평소 실실 웃기만 하던 그의 눈가가 이미 촉촉하다.

[우리가 티브이 화면에서 없어진다는 것은, 시청자 여러분의 일상이 없어진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소식이 들어오면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목이 메는지, 침을 삼킨 아나운서가 말을 잇는다.

[부디 살아남으십시오.]

대한민국 수호헌터부의 1층 로비.

“...예고된 재앙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둥글게 모여 있는 헌터들 사이의, 짐을 쌓아 만든 간이 무대에 올라선 것은 다름 아닌 태홍이었다.

“여러분이 나서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수헌부 장관님도 헌터들 더러 대피하라고 했으니까요.”

여기저기서 쓴 웃음을 짓는 헌터들이 보였다.

실제로 칠성은 전쟁이 공표되기 전에 이미 수호헌터부 전원에게 장기 휴가를 발급했다.

전쟁이 공표될 무렵엔 자동으로 대피명령이 떨어졌다.

김칠성이 도망갔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들을 대표하는 김칠성이 사라진 상황, 더 이상 미련을 가질 것 도 없었다.

쨉싸게 본인들의 안위를 챙기면 될 뿐.

그래서 그들도 해산하려는 무렵, 김태홍의 문자를 받게 된 것 이다.

‘전쟁 통에 피난을 가지 않을 정도로 멍청하신 분들은 모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국방부의 동원령이 떨어지기도 전 이었다.

하지만 고작 이 형편없는 문자에,

한숨을 푹 내 쉰 수 십 명의 헌터가 김태홍의 바람대로 몰려 든 것 이다.

“...그러나, 가만히 있을 수도 없습니다.”

태홍이 그렇게 모여준 이들을 한번씩 둘러보며 눈을 마주친다.

“일본의 군함을 순식간에 초토화시킨 녀석들입니다. 현대화기가 통하지 않는 게 분명합니다. 국군이 지금 중국군을 막아줄 것 이란 것은 망상입니다.”

사실이었다.

거기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일본의 함대를 전멸시킨데 동원 된 헌터는 겨우 열댓명.

이건 일반적인 전쟁양상이라고 볼 수 없다.

일본군의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 이 맞다.

“여기 모인 분 들은 모두 알고 계실 겁니다. 무장한 헌터들을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라는 것을요.”

애초에 현대화기로 잡기 힘든 몬스터를 퇴치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가 그들이었다.

그런 몬스터와 가장 유사한 몸을 가지고 있는 헌터.

그런 헌터를 잡기 위해선 헌터만이 유일한 정답.

“철부지 같은 생각일지 모릅니다. 아마 누구도 안 알아 줄 겁니다.”

김태홍이 작은 무대, 아니 짐 더미에서 내려와,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을 찬찬히 보며 느린 걸음으로 한바퀴 돈다.

“그런데..., 멍청한 생각인걸 아는데도, 가만히 있진 못 하겠습니다.”

김태홍이 걸음을 멈췄다.

할말을 심사숙고 해서 고르는 듯,

고개를 떨구고 한참이나 그러고 있던 태홍.

마침내 작은 한숨, 아니 긴장과 함께 숨을 몰아 내쉬며 고개를 든다.

“...해서 전 혼자서라도 갈 생각입니다.”

진지한 눈빛의 김태홍이 말을 이어간다.

“저와 함께 하실 분, 있습니까?”

비장한 눈빛의 태홍.

“무립니다 김태홍씨. 가지 말아요.”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반응이었다.

“미군이 곧 온다지 않습니까? 어차피 그렇게만 되면...”

여기저기서 테클이 걸려온다.

“너무 멍청한 생각이예요.”

거의 동시다발적인 비판과 각자 떠드는 헌터들.

술렁거리는 장내.

그리고.

“자자! ~ 그래서, 다들 안 갈 거야?”

걸걸한 목소리의 헌터가 사람들의 주목을 끈다.

“그런 거 다들 알고서도 모인 거잖아요, 정말로 그런 생각이면 여긴 왜 모여 있어요?”

옆에서 보고 있던 여자 헌터 하나도 거든다.

“아니 그래도, 전쟁터로 달려가자는 건 좀....”

소심한 인상의 헌터가 흘러내린 안경을 쓸어 올리며 말 한다.

“거! 다들 못 믿어서 모인 거 아니요. 그렇지 않아? 미군. 그래 막아 주겠지 중국군. 서울 시민들, 수도권 시민들, 수백 수 천 명, 아니 몇 만 명! 다 죽어 넘어지고 나서!”

걸걸한 목소리의 헌터가 다시금 사람들에게 일갈한다.

“방법은요, 김태홍씨 뭐 뾰족한 방법은 있어요?”

그 와중에, 누군가가 물었다.

김태홍 에게 몰린 시선.

“...뾰족한 방법은 없습니다. 그저 우리 헌터 제압용 장비, 아티펙트들 등 가지고... DMZ 방어전선으로 가, 국군을 도울 생각입니다.”

김태홍의 소심한 답변.

그걸 들은 걸걸한 목소리의 헌터가 모두에게 묻는다.

“김태홍씨는 그렇다는데, 나머진 어떡할 거요? 태홍씨. 태홍씨는 어쨌든지 가겠다 이거지?”

“...네, 그 정도 결심도 없이 여러분을 모은 건 아니니까요. 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도망치면 평생 후회 할 것 이란 것을요.”

김태홍이 모두를 둘러보더니 침을 삼킨다.

“...모두가 도망쳐도 저 만은 끝까지 남겠습니다. 이런 저와 함께 하실 분, 계십니까?”

김태홍의 말을 끝으로 수 십 명의 헌터가 입을 다문 가운데, 누군가가 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짝.

그리고 그것을 기점으로,

마치 장작더미에 아주 작은 불씨가 던져진 듯,

서서히 홀로 꺼져갈 것 같던 박수소리에, 누군가가 또다른 박수를 보탠다.

점차 커져가는 박수소리.

이내 막을 수 없는 분위기로 가득 차는 수헌부 로비.

김태홍을 둘러싼 수십명의 헌터가 환호한다.

“와아아아!!”

광기에 휩싸인 그들, 가운데 태홍이 주먹을 치켜든다.

대한민국 수호 헌터부.

대 중국군 방어전선이 결성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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