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
S4 : 4화
“김칠성?”
“그...그렇다면 저자가!”
칠성의 등장,
그리고 칠성을 부르는 엘시아.
혼란에 빠진 인간 병사들.
패닉에 빠진 병사들 사이로 실핏줄이 터진 충혈된 눈으로 칼을 빼든 병사들의 지휘관.
칠성 쪽으로 칼을 치켜든다.
“저자가 우리의 주적 김칠성... 마왕이다!!!”
지휘관의 일갈.
숨을 삼키며 놀라는 병사들.
책속에서나, 어린 시절 이야기로나, 할머니 할아버지를 통해서나 전해 들었던, 옛날이야기 속에나 등장하던-
“지, 지, 진짭니까 지휘관님?!”
지휘관의 명령을 착실하고 신속히 이행해야 할 부관이 얼빠진 소리를 내뱉었다.
그 꼴을 보니 이마에 핏줄이 불뚝 솟는 지휘관.
지휘관 자신 역시도 알 수 없다.
애당초 ‘마왕 김칠성의 사천왕 중 한명인 엘시아를 토벌하라’ 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만 해도, 또 어디 죄 없는 나이트 엘프 하나를 잡아다 희생양으로 삼겠거니.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연이어 등장한 칠성의 존재.
마왕이란 건 그저 과장된 신화가 아니었나?!
“전군- 대형을 갖춰라!!”
지휘관의 목줄에 핏대가 섰다.
인간의 군대가 대형을 갖춘다.
“한 판 해보자는 거 맞지?”
그들을 둘러보던 칠성이 손에서 아직도 맹렬한 기세로 핑글핑글 돌고 있던 포탄을 대충 인간군의 진영 아무대나로 던졌다.
휘리릭!
허공을 가르고 날아가는 포탄
“어..어?어?어?!?!”
칠성의 행동에 깜짝 놀란 병사들이 흩어진다.
콰카카아아앙!!!
싯뻘것게 일어나는 폭발.
“끄아아악!!”
“지휘관님!”
순식간에 수 십 명의 병사들이 치고 있던 진영의 삼분의 일 가량이 거대한 폭발과 함께 와해되었다.
성의 옹성에 가뿐하게 거대한 구멍을 뚫을만한 포탄의 폭발.
자신들의 무기가 자신들의 진영에서 폭발하자 혼비백산한 병사들.
“대마왕을 제압하라!!”
놀란 말에서 떨어진 지휘관이 진흙탕 물을 뒤집어쓰고 쓰러진 상태에서 칼만을 간신히 들어 올리며 악을 지른다.
스르르륵-.
조용히.
지휘관의 얼굴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표정이 굳은 지휘관, 서서히 공포스러운 표정으로 위를 올려다본다.
두웅-.
눈에서 빛을 뿜는, 칠성이 타고 다니는 4족 보행 골렘이다.
“뭐, 재주되면 해 보시던가.”
그 위에서 칠성이 지휘관을 내려다본다.
“히...히익. 마왕.”
칠성과 눈이 마주친 인간 병사들의 지휘관.
귀신이라도 본 듯한 안색이다.
자신의 바짓가랑이가 축축해 지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숙여 진흙탕에 처박는다.
* * *
“어디 가는 거야?”
“움직여야 해. 란돌프가 납치당했다는 거 같아.”
“뭐라고?”
“이쪽이야.”
포로로 잡아둔 인간군 병사들을 묶어두고, 갑작스럽게 어딘가로 향하는 엘시아를 따라가는 칠성.
그녀가 당도한 곳은 산채 뒤편의 숲속.
낙엽들을 걷어내자 바닥에 숨겨져 있던 나무문이 드러난다.
끼익- 털걱.
나무문을 열어 제치자 벽돌로 되어있는 벽면들과 아래로 향하는 사다리가 나온다.
엘시아가 가벼운 몸놀림으로 사다리를 미끄러지듯 타고 내려가고 칠성이 뒤를 따른다.
어둡고 축축한 공간.
간신히 밝혀둔 불빛 두어 개가 전부인 지하 공간.
가죽 모피 위에 인간보단 커다란 덩치, 근육질의 몸. 짐승같이 널찍한 턱과 뾰족한 송곳니.
인간과 유사하지만 인간은 아닌 이형의 종족,
부상을 입은 바슈족 청년이 누워있다.
“좀 괜찮니?”
“네..네에... 엘시아님...”
숨을 헐떡이는 바슈족 청년.
허리춤에 검상을 입은 듯 엮어놓은 붕대에서 피가 배겨 나오고, 숨이 가쁘다.
“이 녀석이 내 거처로 찾아 왔길래, 숨겨주자 마자 페젤론 군 같은 녀석들이 들이닥친 거야.”
페젤론은 판브르크 대륙을 지배하는 인간들의 왕국.
사천왕의 등장 이전까지만 해도 이 세상에서 절대적이었던 이름이다.
“란돌프가 납치됐다고? 자세하게 말 해봐.”
칠성이 바슈족 청년에게 묻자, 무언가 놀란 듯 칠성의 얼굴을 살피는 바슈족 청년.
“혹시... 김칠성 님?”
“그래.”
“아후!”
칠성의 쿨한 대답에 감명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끔뻑이는 바슈족 청년.
“처음 뵙는 것은 처음... 아니 그러니까.”
“그래, 그래. 감동은 나중에 하고. 지금은 용건만 말 해.”
감상에 빠지는 것 도 좋지만 지금은 란돌프의 목숨이 촌각에 달려있다.
신목으로 불리는 세피로스로 만든 아바타 조각상이 부숴져 버렸다는 것 은 좋은 징조가 아니다.
바슈족들이 살고 있던 마을.
세상에서 숨어있던 그 마을을 지키고 있던 바슈족의 리더이자 칠성과 함께한 사천왕 중 한명인 무투가 란돌프.
란돌프는 마을의 촌장이 되어 평화로운 여생을 보내던 와중이었지만, 잠시 바슈족의 축제인 미사절에 쓸 재료를 사기위해 인간들의 마을에 들렀다가, 페젤론 군의 추격이 붙었다는 모양이다.
그리하여 페젤론군에 납치된 란돌프.
이 바슈족 청년은 사건 당시 란돌프와 함께 있었고, 간신히 도망쳐 란돌프가 언급해준 산을 전부 뒤지다 싶이 해 엘시아의 거처를 찾아냈단다.
칠성은 엘시아의 산채로 향했다.
그녀가 가지고 있던 목조 조각상 중, 김칠성의 조각상 옆에 있는 길카터의 조각상을 손으로 잡았다.
“길카터.”
칠성의 전언이 쏘아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길카터의 상념이 들려왔다.
<늦는구만-.>
느긋한 길카터.
“...벌써냐?”
칠성이 묻는다.
안 좋은 예감이 스친다.
<그러게, 손님들이 성격이 급하시네.>
* * *
같은 시각, 길카터의 처소.
엘프들의 땅을 침입한 인간 병사들은 결국 길카터의 처소를 찾아냈다.
길카터의 처소 앞, 잘려진 아름드리 나무의 밑둥을 의자 삼아 앉아있는 길카터.
그리고 길카터 앞의 호수.
그 호수와 길카터을 한데 묶어 포위하듯 선 인간족, 정확히는 페젤론의 병사들.
“타락한 영웅이여-. 죗값을 받으라.”
노쇠한 엘프족 검사, 한 때 사천왕으로 명성을 떨쳤던 길카터가 그 말을 듣고는 퍼쓱 웃었다.
“노예 투기장의 영웅. 누가 되고 싶다고 말이나 했다고....”
혼자 쓰게 중얼거리는 길카터.
“긴 이야기는 필요 없겠지? 젊은이들.”
길카터가 세월로 인해 주름진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벌떡 일어나는 길카터.
하지만, 패기 좋게 일어난 그의 행동과는 다르게, 그는 이제 그저 힘 없는 엘프족 노인으로 보인다.
‘검으로 산을 베어냈다’ 라는 신화적인 이야기는 꿈속의 이야기였던 것처럼.
노쇠한 그가 의지하고 있는 것은 고작해야 은색의 지팡이 하나 뿐.
그렇기에 길카터를 잡기위해 파견된 병사들의 눈빛은 의아해진다.
“노인, 힘 빼지 말고 함께 가지.”
“노인네 다치면 큰 일 나지...”
저들끼리 떠들며 넌지시 항복을 권하는 병사들.
나름의 자비를 베푸는 것 이다.
“덤벼.”
그런 그들의 자비와는 상관없이.
은색의 지팡이를 앞세우며 덤비라며 도발적인 손동작을 하는 길카터.
히이힝!
그때, 백마를 탄 기사 한명이 길카터에게 외친다.
“길카터 옹! 그대가 과거 소드마스터를 뛰어넘은 입신의 경지에 이르른 검사로 이름을 날렸다는 것은 잘 아는 바이오.”
늠름하고 젊은 기사.
이 병사들의 지휘관이다.
“하지만 그대는 이제 노쇠한 노장일 뿐! 그깟 지팡이 하나로 무얼 어쩐단 말이요?”
자신감이 넘치는 말투다.
“그대 비록 죄인이긴 하나 새로운 황제께선 자비로우신 분이오. 지금이라도 속죄의 죗값을 치룬 다면, 내 최고의 배려가 있을 것 이라 약속하오.”
“...속죄라.”
그 말을 듣고 있던 길카터가 자조적인 웃음을 띄우며 묻는다.
“내가 죄인이라도 된다는 말 이냐?”
병사들의 싸늘해 지는 시선.
“너희는 모두 장님뿐이구나. 젊은 녀석들이면 세상이 변할까 했더니. 그대로야. 눈이 삐었어.”
은빛의 지팡이를 크게 저으며 병사들을 가리키는 길카터.
“나는 죄인이 아니며.”
이내 멈춘 지팡이. 지팡이의 손잡이를 비트는 길카터.
“이건 지팡이가 아니다.”
스르르륵-.
마치 신기루같이, 형태가 변해가는 지팡이.
“저...저건!”
여기저기서 경악한 병사들의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길카터가 들고 있는 것은 더 이상 은색의 노인용 지팡이가 아니었다.
질기고 단단한 가죽 검집에 봉인이라도 하듯 꽁꽁 노줄로 묶어둔 검.
검의 손잡이 위 가드엔 중심을 포함한 5개의 보석.
“어...어째서 저게!”
“버림받은 게 아니었나?!”
비명 같은 소리를 지르는 병사들.
“저..저것이,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맞는 가 부관..?”
조심스럽게 자신의 부관에게 의견을 묻는, 젊은 지휘관.
지휘관이 조심스럽게 입을 뗀다.
“듣던 대로의 모습... 어찌된 영문인진 모르겠지만 맞는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신이 말을 하면서도 믿겨지지 않는 듯 일그러지는 표정.
“전설의 검. 엑스칼리버 입니다!”
순식간에 혼란스럽게 일렁이는 분위기.
단숨에 힘없는 노인에서 전설속의 검신으로 변한 듯한 길카터의 아우라.
“고작 검 하나를 보고 흔들리는 너희들의 마음... 그 만큼이나 너희는 부질없이 약한 것 이다!”
마치 생쥐를 향해 호통치는 사자의 기세.
길카터의 눈매가 맹렬히 번뜩인다.
“하, 하지만... 타락한 영웅은 엑스칼리버에게 버림받았다고 들었는데! 네 이놈! 훔쳐간 검으로 검의 주인의 후속들에게 호통을 치다니!”
이것이 페젤론 왕국 내에서 정설이었다.
숨죽은 분위기.
길카터가 갑자기 호탕하게 웃기 시작한다.
어찌나 재미나게 웃는지 허리를 꺾고 온 천지가 울리게 웃는다.
“엑스 칼리버는.. 승리를 약속 해 주는 마법의 검 같은 게 아니다.”
길카터의 말에 술렁이는 병사들.
“순진하기는! 인간의 왕 에게 호수의 요정이 건네어 준 마법검...?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줄까?”
언제인지도 모를 과거.
깊은 숲 속.
아름다운 호수가 매력적인 엘프들의 서식지.
청명한 호수 덕에 ‘호수의 엘프’ 라고 불리는 엘프들이 사는 곳.
바로 그 아름다운 호수가....
“뒤져라! 녀석들의 똥구멍 속이라도 파헤쳐서 찾아내!”
붉디 붉은 피로 물들고 있었다.
버려진 엘프들의 조각난 시체가 호수위에 둥둥 떴다.
여기저기서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엘프들.
바로 그때, 호통을 친 인간의 왕 에게, 갑옷에 피칠겁을 한 병사 하나가 무언가를 가져와 바친다.
“이, 이것이 바로-.”
황홀한 눈으로 병사가 건넨 검을 받아드는 인간의 왕.
“크흐흐흐흐흐...됐어. 됐다.”
그의 손이 핏물이 든, 검에 장식된 다섯 개의 보석위를 쓰다듬는다.
탐욕에 물든 눈빛이 빛난다.
챙!
칼을 뽑아드는 인간의 왕.
“보아라! 약속된 승리의 검. 엑스칼리버가 나의 손에 들어왔다!”
“와아악!!”
인간의 병사들이 함성을 질렀다.
“앞으로 우리의 길은 오로지 승리 뿐 이다!!”
중얼거리듯,
이야기를 내뱉은 길카터의 입술이 조용히 닫히고.
숨이 가쁜 듯 숨을 들이킨다.
“호수의 요정이 건네주었다는 동화와, 내 이야기 중. 어느 게 마음에 드는가?”
“그럴...리가.”
얼이 빠져있는 병사들.
그사이 지휘관이 칼을 길카터에게 치켜든다.
“간악한 속임수에 현혹되지 마라! 타락한 영웅, 아니 이종족 범죄자의 목을 베어라!”
“와아악!!”
병사들이 함성과 함께 길카터에게 덤벼든다.
“그래. 인간이 변할 리가 있나.”
쓰게 웃는 길카터.
채-앵.
엑스칼리버를 검집에서 뽑아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