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
S4 : 3화
“왜 그랬어요 근데?”도로를 달리는 차 안.
한솜이가 칠성에게 넌지시 묻는다.
“그게 다 ~ 경험에서 나온 참 조언이야.”
잽싸게 눈으로 도로 상황을 확인하는 칠성.
바아앙-!
칠성의 차가 지나가자 지진하듯 울리는 아스팔트.
풋사과 색의 머슬카는 속도위반이란 개념을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리기라도 한 듯 도로를 질주한다.
“그게 다~~ 과도한 오지랖에서 나오는 발상이거든. 정신 차려야지 그 놈도.”
“그래..요?”
그렇게 되묻는 한솜이는, 웃는 표정이었지만 무언가 생기를 잃은 표정. 실망한 듯한 표정이다.
“우리 그냥 어디 가서 즐기다 오자고.”
그렇게 말 하고 한솜이를 잠시 바라보던 칠성.
모든 걸 버리고 도망가는 게 마음에 걸리는 것 인지,
어쩐지 의기소침해 져 있는 한솜이에게서 시선을 돌려 앞을 바라본다.
“나도 다~ 해 봤어.”
한강이 눈에 들어온다.
외곽 순환도로로 접어든 차가 도로를 가르고 달려간다.
* * *
녹음이 무성한 숲.
험준한 산 속,
짙게 깔린 안개,
그 안개 속에, 너무나도 키가 큰 관목들의 사이에, 숨겨지듯 조용히 숨 쉬고 있는 오래된 성이 하나 보인다.
생기가 없어 보이는 성은 목조와 석조가 혼용된 형태. 굳이 어느 나라 성이냐고 묻는다면 유럽식에 가깝다.
고풍스러운 내부, 왕이라도 부럽지 않을 우아하고도 멋진 인테리어.
이곳에서 대 흑마법사 이자 대마왕.
200년 전의 칠성이 눈을 뜬다.
“크~으.”
칠성이 눈을 뜨자 마자 호들갑을 떠는 무언가.
“일어, 일어나셨다!”
키라고 해 봐야 일반 성인 남자의 허리춤 까지도 오지 않을 소인족, 빼쪽한 귀가 인상적인 님프족의 남자가 칠성의 기침소리를 듣고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다다단딴 다다다다란-.
어디선가 클래식 음악이 연주되기 시작한다.
칠성의 문 밖 복도에서부터 열리는 무대.
님프의 재촉에 마치 고목처럼 잠들어있던 엘프들이 부스스 일어나 눈에서 초록색의 안광을 뿜으며 연주를 시작 한 것 이다.
각자 손에 들려져 있던 현악기를 다루는 엘프들.
반 쯤 나무인 듯, 반 쯤 사람인 듯한 그들이 손을 바삐 움직이며 아름다운 선율을 빚어낸다.
스으윽-.
그리고 부드럽게 붉은 카페트를 가르고 달려가는 황금의 수레.
작은 인력거 비슷한 디자인의 수레위엔 푹신한 금빛으로 수놓아 진 붉은 빛의 쇼파가 얹어져 있다.
“이렇게 해 보세요!”
“아 진짜~”
님프 족 집사가 부산스럽게 움직인다.
자연스럽게 칠성의 몸이 인력거 위로 옮겨가고, 눈 뜨기도 귀찮아하는 칠성을 실은 인력거가 성내를 달려가기 시작한다.
트득, 트드드득...
연주를 하던 우드 엘프들도 수레가 움직이자 따라서 일어나 서서히 쫓아오며 연주를 계속한다.
딱!
칠성이 인력거 위에 누운 채 로 손을 들어 손가락을 퉁기자, 우드엘프들 연주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변했다.
클래식의 그것이 아닌 경쾌한 리듬을 타기 시작하는 선율.
“꼭 그러셔야 겠습니까?”
짧은 다리로 바동거리며 인력거를 끌던 님프가 불만을 터뜨렸다.
“시꺼~”
칠성의 무심한 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천상의 선율.
“치얼업 베이베! 치얼업 베이베! 좀 더 힘을 내애!”
아름다운 엘프의 목소리가 성내부를 울린다.
자연과 노래를 사랑하는 종족의, 타락한 왕 마저도 눈물 흘리게 만들었다는 감동적인 호소력 있는 목소리!
“친구를 만나느라 샤샤샤!”
가 이런 식 으로 낭비되고 있었다.
“잘 한다~!”
반쯤 시체같이 늘어져 있는 칠성을 꼬꼬마 님프들이 씻겨 주고, 반 강제로 커다란 식당의 의자에 앉혀지자.
앞에는 진수성찬이 차려진다.
“하아아아~~!”
도무지 의욕이 안 나는지 커다란 구운 칠면조다리를 손에 든 칠성이 식탁에 고개를 처박고 신음한다.
“그냥 좀 더 자면 안 되냐?”
“안되죠! 김칠성님의 건강을 수호하는 것 이야 말로 님프족이 당연히 해야 할 보은이라고요!”
옆에선 호들갑을 떨며 황금으로 된 동상을 닦고 있는 님프족 집사.
동상이라기 보단 황금으로 조각 되어 있는 김칠성의 얼굴이다.
“음?”
기분이 이상해.
칠성이 갑자기 고개를 번뜩 들더니 눈을 가늘게 뜬다.
“...무슨 일 이세요?”
별 것 아닌 동작 이었것만, 집사 님프가 화들짝 놀란다.
누구에게 대어도 지지 않을 정도로 게으른 김칠성이 저럴 때는, 무언가를 감지했기 때이기 때문이다.
끼익!
아니나 다를까, 벌떡 일어나는 칠성.
타타탓!
“김칠성님!”
빠르게 밖으로 튀어나가는 칠성.
짧은 두 다리로 종종 뛰어 뒤따르는 집사.
칠성이 당도한 곳은 칠성의 방.
한쪽 벽의 벽돌을 짚고 칠성이 주문을 외우자, 벽면 전체가 마법진으로 번쩍 빛이 난다.
쿠구구구-.
그리고 열리는 거대한 벽.
“가, 같이 가요!”
다급하게 종종걸음으로 뛰어오는 집사.
간신히 칠성과 함께 비밀의 방으로 들어온다.
그들이 들어간 곳은 한 눈에도 탁 트였다는 인상이 들 정도로 넓은 서재.
벽면도, 계단도, 기둥도, 각종 가구들도, 동상들도, 모두 책을 꼽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있는, 공간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책장인 신비한 곳.
수 천, 수 만 권의 책들 사이를 달려가는 칠성.
서재 내부의 나무 계단을 타고 내려가자 있는 벽난로, 주변에는 수많은 법진이 새겨져 있고, 커다랗게 타오르는 양초들.
그 가운데는 벽난로 위에는 하얀 빛을 내는 나무로 깎아 둔 목조상 네 개가 있다.
약 60cm 높이정도의 자그마한 목조상들.
늠름한 모습의 사천왕을 각자 멋들어지게 조각해둔 모습.
그 중, 나이트 엘프 이자 암살자로 명성을 떨친 칠성의 동료.
사천왕 중 한명 ‘생명의 적’ 나이트 엘프 엘시아의 목조상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파칙! 파지직!
실금이 가기 시작하는 목조상.
칠성의 귓가에는 이미 아까 전 식당에서부터 속삭이는 듯한 혼란스러운 엘시아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계속해서 들리고 있었다.
엘시아의 목조상을 손으로 잡는 칠성.
“엘시아?”
마치 전화를 하듯, 목조상을 바라보며 엘시아의 이름을 부르자 들려오는 상념.
<칠성! 지금 당장... 지금 당장 와 줘!>
분명하게 들려오는 엘시아의 목소리.
퍼엉!!
바로 그때, 엘시아의 목조상 자리 왼 쪽 편에 자리하고 있던.
바슈족의 리더이자 사천왕 중 한명,
주먹 하나로 대륙군을 멸망시켰다고 전해지는
무투가. 란돌프의 목조상이, 내부에서 폭탄이 터지기라도 한 듯 백색 잔흔을 퍼뜨리며 터져 나가버렸다.
충격으로 물드는 칠성의 눈동자.
“알았어!”
엘시아의 목조상에 대고 상념을 전한 칠성.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
“라...란돌프 님은요?”
칠성을 불안한 눈으로 올려다보는 님프족 집사.
그는 목조상이 폭발 해 버리는 것 이, 붕괴되어 부서져 버리는 것 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다.
“쉽게 당할 놈들은 아니야.”
조금 전까지 반쯤 죽어 있어, 주변의 사람들이 챙겨주지 않으면 게을러서 죽어버리지 않을까 의심 가던 사람이라곤 믿을 수 없게,
날카로운 눈빛이 칠성의 눈동자에 스쳤다.
* * *
칠성이 빠른 발걸음으로 뛰어 밖으로 향한다.
당도한 곳은 지하층.
어두운 통로, 갑옷을 입고 있는 수많은 기사들이 칠성이 지날 통로 양 편을 가득 메우고 있다.
빛나는 철제의 풀 프레임 갑옷들의 중장 방어구를 입은 그들이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있다가 칠성이 다가오니 갈그닥 거리며 깨어난다.
인간의 느낌이 아니다.
워낙 빈틈없이 갑옷을 잘 챙겨 입혀 둬서 스쳐지나가는 눈에는 사람으로 착각 할 법 하지만.
마력으로 움직이는 뼈 무더기.
스켈레톤 병사들이다.
“혼자 갈게.”
칠성이 조용히 한쪽 손을 슥 들며 따라오지 말라는 수신호를 하자 따라 나서려던 뼈 무더기 기사들이 걸음을 멈추고 제 자리에 가서 선다.
찰그가각.
그러곤 칠성에게 검을 세워 올려 보여 예를 올린다.
출전하는 기사에 대한 예 이다.
칠성은 지하에 있던 골렘에 올라탄다.
둥그런 구체 형태의 몸체,
뒤편엔 마치 사람이 올라타기 쉽도록 조각 되어져 있는 듯한 탑승부.
골렘이다.
칠성이 골렘의 탑승부에 올라타 탑승부에 보이는 마석에 손을 얹고 주문을 읊는다.
징-지이잉.
파칭!
이내 칠성의 손 끝에서부터 시작된 마력의 불빛이 골렘의 전신을 폭죽처럼 한 바퀴 훑더니, 잠들어 있던 골렘의 두 눈에 번쩍이는 빛이 들어온다.
구----웅.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듯 하품 같은 공명음을 지른 골렘이 바닥을 떨쳐 일어난다.
마치 짐승 같은 네 발의 골렘.
전체적으로 경차 크기 정도의 골렘이 발을 구르기 시작한다.
“이럇!”
투구두두두두두!!!
골렘이 발을 재게 움직인다.
빠르게 움직이는 발이 마치 바퀴라도 된 양 대지를 박차고 달려 나간다.
콰르르륵!
칠성을 태운 골렘이 순식간에 지하층을 벗어나 성문 밖으로 달려 나간다.
마차라던가, 그런 것과 비교하기엔
너무 빨라 기괴하고 섬뜩 해 보이는 속도.
순식간에 안개가 내린 산 속을 주파한다.
* * *
다크 엘프 엘시아는 500살이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 치면 20대 정도 밖에 안 되는 외모 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은둔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왜냐면, 다크 엘프의 밝은 미래에 자신 같은 죄인은 차지할 자리가 없다고 스스로 여겼기 때문이다.
종족이라기엔 너무나도 소수인, 그녀를 제외한 나머지 다크엘프 30여명은 오크와 엘프, 그리고 님프 들이 만든.
서서히 국가의 형태를 갖추어 가려 노력하고 있는 집단 거주지에 함께 살고 있었다.
“치잇.”
엘시아가 혀를 찼다.
인간의 화살에 당한 팔뚝의 상처가 쓰라렸다.작은 그녀만의 산채에 인간들의 군대가 처 들어온 것은 이상할 게 있는 사항은 아니었다.
해왔던 일 들이 있으니까.
다만 왜 하필 지금인지!
그녀 자신의 목숨이야 이미 오래전 전쟁터에서 내버린 몸.
걱정하는 것은 자신의 목숨이 아니다.
극구 오지 말라고 했지만, 그녀의 자식은 손자를 데리고 그녀를 끄덕 지게 찾아오곤 했다.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만약 자신이 여기서 당하면,
혹시라도 손자에게 해가 갈 까.
그것이 두려운 것 이다.
구구구국-.
하지만 버티는 것 도 잠시,
상처를 입고 숨어있는 그녀의 눈에.
그녀의 산채를 포위한 수 십 명의 인간 병사들이 커다란 화포를 그녀 산채 방향으로 끌고 온 것이 보인다.
화포라기엔 너무나도 큰 구경의 괴물 같은 물건.
산채를 통째로 날려버릴 셈 이다.
정면 대결을 계속 피하고 있었지만 어쩔 수 가 없다.
이미 인간들의 기묘한, 처음 보는 독에 당한 몸은 제대로 움직여 주질 않는다.
그녀가 단검을 그러쥐었다.
화포가 발사되는 그 순간.
적들이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하는,
방심하는 바로 그 찰나의 순간.
빗장을 부숨과 동시에 튀어나가, 적들과 싸울 생각이다.
되던 안 되던, 이곳이 승부처.
“여기까진가.”
치이이이익-.
운명의 카운트다운처럼, 화포의 점화구가 타들어간다.
화포가 불을 뿜는다.
천지가 진동한다.
콰아앙!!!
슈르르르르륵-.
누군가의 손바닥 위에서, 방금 발사된 화포의 포탄이 빙글빙글, 농구공이라도 된 것 마냥 돌아가고 있다.
“뭐.”
“뭐야?!”
인간군의 병사들은 믿겨지지 않는, 중간에 편집당해 버린 폭격의 과정에 벙쪄 눈을 끔뻑이고 있다.
반가운 얼굴에, 빗장을 부수고 나와 병사들에게 달려들던 발걸음을 멈춘 엘시아의 만면에 미소가 번진다.
“칠성!”“엉 늦었다.”
4족보행 골렘 위에서 당당히, 마치 피구공이라도 잡아 챈 양 의기 양양하고 당연하다는 듯,
폭발하기 직전의 포탄을 손바닥 위에서 돌리고 있는 칠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