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
S4 : 2화
띵!
대한민국 수호 헌터부의 사옥, 일반 직원들의 사무실이 있는 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일단 가셔서 보시면 압니다!”
엘리베이터가 열림과 동시에 박차고 나오는 칠성의 발걸음, 뒤따르는 성진에게 상황을 물어봐도 오리무중이다.
그리고 유리문으로 되어 있는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 코너를 도는 순간.
“서프라이즈~~!”
사람들이 소리 지르는 소리와 함께 칠성의 머리 위로 종이 꽃가루가 뿌려진다.
“축하드려요 장관님!!”
제법 넓은 사무실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사람들.
수호헌터부 직원들이다.
레이드를 오가며 자주 보았던 헌터들부터, 칠성의 눈에는 잘 익지 않은 직원들 까지.
백 여 명이 넘는 사람이 가득 들어차 있다.
“뭐야 이거.”
“하하하하!”
시시껄렁하다는 듯, 면박에 가까운 칠성의 반응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오히려 웃으며 왁자지껄 해 지는 사람들.
“봐, 장관님 이런 거 안 좋아하신다니까!”
배를 잡고 웃는 무리 중엔 한솜이도 끼어 있다.
“너는 애가!”
“감쪽같이 속였지?”
입을 가리며 깔깔 거리는 한솜이.
“좀 놀아 줘요. 자기 땜에 사람들이 모여서 준비 한 건데.”
“알았어 알았어.”
뭐, 워낙에 급박한 일들을 많이 겪다 보니.
큰일이 났다는 소리에 깜짝 놀라긴 했지만 이런 게 썩 싫은 것 은 아니다.
펑!
누군가가 샴페인을 터뜨리고, 저 멀리서 커다란 사각형의 크림 케이크가 서너명의 사람들 손에 들려 칠성 쪽으로 배달되어 온다.
“해피버스데이 투유~”
자연스럽게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이 십 여개의 초들, 생일을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초콜릿으로 적혀져 있다.
“후!”
“와아악~!”
칠성이 그저 촛불을 불어서 끄기만 했을 뿐 인데 좋아서 자지러진다.
“무슨 소원 빌었어?”
한솜이가 칠성의 귓가에 속삭인다.
“비밀.”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축하파티가 잠시간 이어질 무렵.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다급한 발걸음.
“장관님, 큰일 났습니다!”
땀에 흠뻑 젖은 체 숨을 헐떡이는 장영실 소장이다.
* * *
다시 수호헌터부 지하의 연구실.
“이게 뭘 의미하는 건데?”
칠성이 팔짱을 꿴 손으로 매만지며 물었다.
칠성의 눈앞에는 연구실에서 중요한 사항을 함께 모니터링 하기 위해 설치해 둔 대형 모니터 스크린이 있었다.
화면 위에는 청록색의 정보로 표시된 지형지도와, 그 위에 표시되어있는 MMP(밀리마나포인트) 의 분포표, 즉 어디서 마나활동이 활성화 되어있는지 보여주는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대규모의 마나 충돌이 있었다는 소리입니다. 문 안이 아닌 현실에서요.”
장영실 소장이 땀을 훔치며 말을 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지간해선 있을 리 가 없는 규모의 충돌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이와 비슷한 충돌이 있었던 건 김칠성과 메피스토의 전투 뿐 이었다.
소위 말하는 ‘인간계’에서 필요할 리가 없는 규모였다.
“문제는 지금 이 지역이...”
그때였다.
“관련보도 나와요 소장님!”
“2번에 틀어봐 빨리!”
연구진 중 한명이 소리 질렀고, 장영실 소장의 명령에 따라 또 다른 한 편에 있던 커다란 스크린에 티브이 뉴스 화면이 연결되었다.
헬기에서 찍은 듯 흔들리는 화면, 그 안에는 폐허라고 밖에 표현이 안 되는 장면이 잡혀있다.
연기를 피어 올리며 타들어가는 거대한 군선들.
몇 조각으로 쪼개져 가라앉고 있는 전함들.
그리고 기름과 피로 넘실대는 바다.
부들거리며 떨리는 카메라가 거대한 방패를 든, 번들거리는 근육질 스킨헤드의 남자를 잡는다.
[일본과 중국의 오랜 영토분쟁이 있던 동중국 해양의 댜이위다오에서 일본군과 중국군의 무력충돌이 있었습니다.]
모니터에 집중하고 있던 수 십 명의 연구실 인파가 순식간에 숨을 들이키며 헤일처럼 술렁거린다.
안그래도 긴장하고 있던 터 였다.
바로 오늘 아침, 중국이 일본의 정찰함을 침몰 시켰다는 뉴스보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되는 거야 이게?”
[일본이 군함을 댜이위다오 연해에 배치시킨데 이어, 중국이 이에 무력으로 대응한 것으로 파악 중 입니다.]
“미친 새끼들.”
칠성이 씹어뱉듯 중얼거렸다.
이내 화면에 커다란 방패를 든 민머리의 근육질 남자가 클로즈 업 된다.
[중국은 이 과정에서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사나이’ 로 유명한 금강불괴의 헌터, 정질을 필두로 한 헌터부대를 동원한 것으로 알려져 또 다른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금강불괴 정질. 들어본 이름이다.
티브이 속에선 소위 헌터 전문가라는 사람이 패널로 나와 뉴스 아나운서와 대화를 이어간다.
헌터가 단순히 문안의 몬스터를 처치하는 역할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사용 될 수 있다는 것.
이쪽분야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가능성이었고, 시간문제인 공포였지만.
헌터를 단순히 몬스터를 사냥하기에 최적화 된 사냥꾼 정도로 알고 있던 일반인들에게는 그 자체가 생소한 개념이었다.
장영실 소장이 이를 으득 갈았다.
낭패감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일반인들과 다르게, 헌터에 관한 이론을 조금만 공부해도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유전자 하나하나가 미지의 에너지인 마나와 영합, 현대 화기가 제대로 통하지 않는 몬스터.
그리고 그 몬스터와 가장 유사한 신체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헌터였다.
그들이 몬스터와 다른 유일한 사실은, 인간에게 위해가 되는 몬스터를 사냥한다는 것 뿐 이었다.
영실은 순간, 그렇게까지 생각한 자기 자신에게 놀라서 흠칫 하며 김칠성 쪽을 바라보았다.
죄스러운 감정이 들었던 것 이다.
“예 대통령님.”
하지만 칠성은 그런 장영실 소장의 생각은 안중에도 없었고, 사태를 파악하는데 여념 없었다.
대통령과 국방장관에게 차례로 전화를 돌려 얻은 정보는 대략 이랬다.
중국과 일본의 동중국해 문제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독도문제 만큼이나 오래된 문제였고,
이번에 국제 재판소가 동중국해의 섬 중 하나인 댜이위다오가 일본의 소유라고 손을 들어주었다는 것 이다.
그런데, 그것을 빌미로 일본이 정찰함을 댜이위다오로 보냈다.
문제는 중국의 경고를 무시한 정찰함을 중국이 포격으로 침몰시켜 버렸고, 이에 발끈한 일본이 함대를 보내어 댜이위다오를 무력으로 점거하려 했다.
그리고 벌어진 것이 지금의 참상.
“12명이요...?”
[그렇다고 합니다.]
크고 작은 전함 15대로 이루어진 함대를 순식간에 수장시켜 버린 것은 12명의 군인.
물으나 마나 헌터였다.
그것도 상당한 수준의.
으드득.
칠성이 이를 갈았다.
이 진상이 일반에 공개되면 사람들은 공포에 빠질 것 이다.
일반적 상식에 위배되는 무엇.
더군다나 일전의 칠성과 같이 무언가를 지켜주는 형태가 아니라,
무언가를 파괴하는 형태.
이건 무언가를 변화 시킬 것 이다.
무언가 거대한 흐름을!
헌터 포스를 비롯한 미군이 동아시아를 향해 출발한 것 은 두 시간 전.
[보통상황이 아닙니다.]
대통령의 찹작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티브이에선 아나운서가 호들갑을 떨었다.
[속보입니다! 러시아의 총리가 강한 유감을 표하며, 전 병력의 소집 명령과 함께, 베이징 등 중국의 대도시들에 대한 핵 조준을 선포했습니다.]
“뭐야?!”
귀가 아플 정도로 술렁거리는 사람들.
티브이 화면에선 무참한 폐허로 변한 러시아의 도시, 블라디 보스토크에 무너진 건물들과 시체들이 보였다.
한손을 치켜든 레닌 동상이 허리가 잘리어 바닥에 나뒹구는 것이 보인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되는 상황입니까?”
칠성의 물음에 담담한 목소리의 대통령이 대답한다.
[전쟁입니다.]
* * *
수헌부, 지하주차장.
“이, 이래도 되는 거야?”
한솜이가 호들갑을 떤다.
“그럼, 당연히 되지. 안될 게 뭐야?”
차에 짐을 싣는 것은 칠성이다.
칠성의 손에 의해 트렁크에 실리는 것은, 칠성이 수헌부 사무실에 보관 해 두었던 초고압축 마석들과 몇몇 아티펙트 장비들.
쿵!
트렁크를 닫고 보면 차는 커다란 스포츠카.
흔히 미국에선 머슬카라고 불리는 녀석,
눈이 시릴 정도로 새파란 풋사과 색의 닷지다.
칠성이 차가 없어 불편을 겪어보고 나서 장만한 녀석이다.
아무 때나 지붕 위를 뛰고, 날아다니기는 좀 그러니까.
“너희 부모님은 외국에 있다고 했지?”
“응, 뮌헨에.”
독일인가.
“거기나 갈까?”
짭짤하게 구운 소시지에 맥주나 한잔. 캬~
칠성은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한솜이를 보조석에 태우곤 운전대를 잡았다.
전 세계적 세계대전이 발발할 지도 모르는 다급한 순간.
칠성의 선택은.
“도맹이다!”
바아앙!
지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결정.
닷지가 주차장 바닥을 박차고 나간다.
쾅! 끼이이익-.
하지만 얼마가지 못 해, 코너에서 튀어나온 무언가 때문에 다급히 브레이크를 밟아야했다.
허공에서 튀어나와, 칠성의 차의 앞머리를 잡고 메달 린 것 은 저 멀리서부터 달려온 태홍.
재수 없는 주홍빛 머리가 흩날린다.
“뭐하는 거야 새끼야!”
덜컹!
머리끝까지 화가 난 칠성.
문을 부숴버릴 기세로 내려선 태홍의 멱살을 콱 그러쥔다.
“어디가십니까!”
태홍이 단호한 눈빛을 빛내며 말 한다.
책망하는 눈빛.
진지하게 태홍의 눈을 바라보던 칠성.
한 숨 고르고는.
“차 다 망가졌잖아 새끼야!!!”
그대로 멱살을 쥔 채 윽박지르는 칠성.
정말 아닌 게 아니고, 멋드러진 칠성의 차 본네트(보닛) 위엔 태홍의 양 손바닥 자국이 아로새겨 져 있었으며, 앞면에 가해진 충격에 앞 유리엔 실금까지 한줄 가 있었다.
“미친 새끼 진짜! 내가 시간이 없어서 그냥 가는데...!”
“어디가십니까! 전쟁이 난다는데요, 나라가 위험하다는 데요!”멱살을 놓고 다시 운전석에 타려는 칠성을 붙잡는 태홍의 말.
“야, 이젠 나 더러 전쟁까지 막아달라고?”
그 말에 멈춰선 칠성.
불만을 터뜨리며 슥 돌아선다.“그것도 세계대전으로 번질 거 같은 전쟁을? 니들 나한테 너무 하는 거 아니냐?”
태홍의 가슴팍을 손가락으로 쿡 미는 칠성.
“그래도 형님 아니면 누가 막아요! 결국 하실 거잖아요! 일 더 커지기 전에 빨리 대책을 마련하자고요!”
“뭐? 안 해!”
“형님?!?”
앞의 사람이 소리를 지르든가 말든가.
무심하게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파는 칠성.
“무리해서 도와줘 봐야, 인간들은 은혜라는 걸 몰라.”
다, 경험에서 나오는 소리다.
장영실 소장의 분석 결과.
현제 중국의 군대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높은 마나 에너지’를 내뿜고 있었다.
그건 칠성이 메피스토전에서 활약할 때 내뿜은 것을 훨씬 상회하는 숫자였다.
말인 즉, 그 이상의 활약을 해도 승부처는 불분명하다.
리미트 해제를 위해 성기사들의 족쇄를 끊고, 지구상의 모든 성기사들을 적으로 돌려야 함은 덤 이었다.
가히 어마어마한 부담감. 칠성이 질 필요는 없다.
그냥 적당히 잘 먹고 잘 사는 평범한 인생을 원한 것 인데 말이다.
만약 중국군이 그대로 북한을 돌파해 한국땅을 향해 돌진해 온다면, 4시간 정도면 평양에 당도할 테고, 그래도 6시간 이내에 미국군과 충돌하게 될 터 였다.
그러면 미국군이 그 뒤는 알아서 해 줄 터.
미국군 없이 한국땅을 중국군이 밟을 만한 시간을 길어야 세시간.
굳이 칠성이 목숨과 인생을 걸고 도박을 해 가며 끼어들 이유가 없는 판 이었다.
역시나,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다시 차에 타는 칠성.
빠아아아앙!!!
칠성이 크랙션을 마구잡이로 눌러 제끼자,
그제서야 버티고 서 있던 태홍이 못 이기는 척 옆으로 비켰다.
“너도 오바하지 말고, 피난이나 가. 좀 있으면 차 막힌다 너?”
태홍에게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을 던진다.
대한민국의 전쟁이 확정되는 순간, 그리고 그것이 일반에 공표되는 순간. 수도 없는 피난민들에 의해 인산인해가 되어 버릴 것 일 테니.
피난을 간다면 지금이 최적의 타이밍이 맞았다.
부우웅!
칠성이 모는 차가 지하주차장 통로를 따라 시원하게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 그런 뒷모습을 노려보고 선 태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