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
S4 : 1화
퉁!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온 칠성.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툭툭 털고 있다.
금방 샤워를 마친 모습인 듯 전라.
화장실 문 근처의 식탁 의자에 걸어둔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는데...
“씻었어?”
깜짝이야.
오독. 오독.
한 손에 단단한 과자인 프레츨 봉지를 들고 열심히 오독거리는 한솜이가 물었다.
전라에 가까운 칠성이 서 있는데도 한솜이는 부끄러워 하기는 커녕 이리저리 칠성의 몸을 구경하며 과자를 씹는 것 이다.
한솜이는 샤워를 마친 상황도 아닌 것 같건만,
만만치 않게 전라에 가까운 모습이다.
몸에 걸친 것 이라곤 귀여운 줄무늬 삼각팬티와 탱크톱 스타일의 나시티 뿐 이다.
“엉.”
“뭐하러 씻냐? 어차피 금방 더러워질 건데.”
“여자애가.”
못 하는 말이 없어!
능청스러운 한솜이의 말에 칠성이 질렸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장난으로 지은 가짜 표정.
“나랑 놀면 더러워질 텐데.”
그런 칠성의 모습을 보며, 자기가 생각해도 싸구려 포르노스러운 대사가 웃긴지 키득대며 칠성을 끌어당기는 한솜이.
두 사람의 상황을 요약하자면 간단했다.
그러니까, 직업적으로 따지자면 두 사람은 운동선수에 가까웠다.
서류 업무보다는 현장에서 뛰고 달린다.
몸이야 둘 다 누구 부럽지 않게 튼튼하다.
비슷한 예시로, 매 번 올림픽이 열릴 때 마다 사용되는 콘돔의 수가 어마어마하다는 소문과 비견해 보면 대충 가늠 해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채 다시 입지도 못 한 칠성의 셔츠가 다시 풀어헤쳐졌다.
쇼파에 앉은 칠성의 무릎에 올라타, 칠성과 마주보게 앉은 한솜이.
탄탄한 한솜이의 허벅지의 근육 라인이 꿈틀거린다.
역시, 기사는 기사.
그리 굵지 않은 허벅지 임에도 근육의 형태가 보인다.
츄릅 거리던 두 사람의 동작이 잠시 멎는다.
한솜이가 칠성의 셔츠 사이로 넣은 손가락으로, 가슴팍을 조심스레 쓸어보며 묻는다.
“물어봐도 돼?”
상처에 관한 이야기였다.
구릿빛 칠성의 몸.
그 가운데는 명치를 중심으로 커다란 십자가 형태의 흉터가 자리 잡고 있었다.
목 밑에서부터 시작되어, 상반신을 커다랗게 장식하고 있는 십자가 형태의 흉터는 피부색부터 좀 달랐다.
다른 피부에 비해 밝은 살색.
“응.”
칠성이 쿨 하게 답한다.
“아픈 건 아니지?”
한솜이의 손끝이 상처를 콕콕 눌러본다.
“어.”
“...어쩌다 이런 거야?”
정작 중요한, 한솜이의 질문에는 한참이나 뜸을 들이던 칠성.
“음!”
콱!
칠성의 양 손이 탄탄한 한솜이의 양쪽 엉덩이를 그러쥔다.
“야이!”
타박하면서 칠성을 가볍게 주먹으로 치던 한솜이.
이내 티격대던 두 사람이 다시 츄릅거리기 시작한다.
“내일 출근 하지?”
한솜이가 묻는다.
“응.”
“출근해서 뭐 해?”
한솜이의 질문에 곰곰이 생각하는 칠성.
* * *
“재미있는 거 없으면 죽는다.”
다음날, 대한민국 수호 헌터부 지하층 연구소.
칠성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자마자 보이는 장영실 소장에게 타박을 했다.
“하하하, 보시고 판단하시죠!”수헌부의 연구실이 칠성의 장난감을 만들어 주는 곳 은 아니 것만,
칠성의 이유 없는 타박에도 실실 웃으며 응대해주는 장영실 소장.
“어이 그래들, 일들 봐.”
장관인 칠성이 행차하자 각자 일을 하고 있던 연구 인력들이 저마다 찾아와 인사를 하기 바쁘다.
칠성이 한손을 들어 됐다는 표시로 휘저으며 대꾸하며 전진한다.
“여깁니다.”
칠성을 한편의 부스로 안내해 온 장영실 소장.
“흐음...”
장영실이 부스에서 꺼내 보여주는 것은 유리 상자.
초록색의 구슬 같은 것이 잔뜩 담겨있는 상자다.
매우 일정한 크기의 구슬은 주먹에 쏙 들어올 정도의 크기.
그것들 중 하나를 꺼내서 칠성의 앞에 내미는 장영실.
흐음.
그냥 구슬처럼 보이는 것은 잘 뜯어보면 마법 주문들이 적용 되어있는 아티펙트다.
여기까지 와서 장영실 소장이 구슬치기를 하자는 것 도 아닐테니, 당연한 소리지만 말이다.
구슬의 표면과 내부에 반짝 반짝 빛나는 나노 법진들이 칠성의 눈에 아른거린다.
“아! 그리고.”
칠성이 받아든 구슬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데, 영실이 다급하게 덧붙인다.
“이게 필요합니다.”
영실이 꺼내든 것은 붉은, 플라스틱 같은 것 으로 된 거 같은 카드다.
정확히는.
“사원증?”
사원증이다, 그것도 이미 칠성의 이름까지 찍혀있는.
--
대한민국 수호 헌터 부
김칠성 장관
--
수헌부의 멋드러진 로고까지.
거 참.
“장난 치냐?”
장관이 사원증을 메고 다닌단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아아아, 그게. 시스템적으로 어쩔 수 가 없습니다.”
칠성의 눈치를 심하게 보며 눈을 굴리는 영실.
“일종의 보안 시스템이거든요. 그 도구랑 사원증이랑...”
던전 테크놀러지가 적용된 사원증에 마나를 불어넣으면 연결 처리되어있는 장치들에 마나가 공급된다.
오래전부터 쓰이던 헌특부의 보안장치.
“쩝.”
그걸 모르지 않는 칠성,
이걸 뭐 라고 하기도 그렇고.
칠성이 머리를 긁적였다.
“장소장은 이런 거 안 쓰지 않았나?”
문 듯 의문이 든 칠성.
“네, 저는 편리성 위주로 생각했는데....”
장영실 소장의 변명이 점차 모기 소리만 해 진다.
사실은 이런 것 이었다.
장소장이 개발했던 대 헌터 무기, K-이그저스트.
자신이 만든 K-이그저스트 십 수 정이, 자신도 모르는 새에 반출 되었다.
거기다 그 총구의 끝이 육군에 의해 칠성에게 겨눠지기 까지 했었다.
그 사건은 칠성에겐 별 것 아니었지만,
장영실 소장에겐 너무나도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래서 두 번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할 것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모든 던전 테크놀러지들 장비들,
그리고 향후 개발될 장비들에 고도의 보안처리를 하기로 결심 한 것 이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죄인같이 시선으로 바닥을 긁는 장소장을 보며,
그 사실을, 장소장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눈치 챈 칠성.
“재빨리 진행 해.”
“넵!”
무심한 칠성의 말에 고개를 들고 바짝 웃는 장소장.
장소장이 들고 온 휴대용 디바이스에 칠성의 사원증이 들어갔다.
그리고 그 휴대용 디바이스의 패널에 찍혀지는 칠성의 엄지 지문.
“지문인식?”
“네. 이게 제일 편해요. 그러니까 실전에서.”
몇몇개의 등록절차가 지나고 다시 칠성의 손에 내밀어 진 초록색의 구슬.
“뭔데 이게.”
“그 가운데의 동그란 버튼 보이시죠?”
“음?”
구슬을 잠시 굴리며 살펴보니 과연, 동그란 버튼이 하나 있다. 구슬의 전체적인 색과 비슷해서 눈에 크게 튀진 않지만.
“누르세요 버튼.”
꾸욱.
지이이잉-.
구슬에서 일렬의 빛이 흘러나와 칠성의 지문을 읽어낸다, 그리고는.
팡!
구슬이 순식간에 펼쳐지더니, 마치 반쪽으로 갈라져 아가리를 벌린 거대한 팔찌 같은 형태로 변한다.
절반으로 나뉜 도너츠가 서로 간신히 붙어있는 듯한 형태.
“자, 제 팔목 즘에 대시고.”
드미는 영실의 팔목 부근에 도너츠의 한쪽면을 대는 칠성.
스륵-달칵.
이후엔 칠성이 손을 쓰지도 않았는데, 도너츠 형태의 팔찌가 알아서 움직이더니,
순식간에 팔찌가 장소장의 손목에 철컥 감겨버린다.
그렇게 감겨버린 형태는 마치 한쪽만 채워둔 수갑 같다. 혹은 지나치게 올드한 패션 센스의 거대한 통 비즈 팔찌 라던지.
“이렇게 되는 겁니다.”
영실이 자신의 손목에 감겨있는 것을 들어 올려 보이며 씨익 치아가 드러나도록 웃어 보인다.
라고는 하지만...
“그래서 이게 뭔데?”
칠성입장에서야 뚱 할 뿐 이다.
무슨, 휴대하기 편리한 변신 팔찌라도 개발 한 것 인가?
“아 구속구요 구속구! 수갑!”
“그게?”
아무리 봐도 어린애들 장난감 팔찌로 밖에 안 보이는데.
“최신 형태죠! 휴대하기 극도로 편리하고, 효과도 오히려 기존 것 보다 탁월해요! 거기에 사용자 보안까지!”
“흐음....”
“아니아니, 흐음이 아니라니까요! 엄청난 건데 이거. 제가 일반인이라서 그렇지, 마력을 산화시키는 양도 그 역대...그 어떤....”
자신의 팔목에 채워진 팔찌 같은 구속구를 마구 흔들어 보이며 얼마나 좋은 물건인지를 역설하던 장영실이, 비실비실 힘이 빠지는 것 같더니 이내 스르륵 바닥으로 주저앉아 잠이 든다.
“...야. 야!”
당황한 칠성.
마나는 생체 에너지, 미약하니 나마 지니고 있던 마나를 증발당한 장소장이 무기력증에 빠진 것 이다.
칠성은 무작정 장소장의 멱살을 잡고 뺨을 때린다.
장소장은 이제는 자면서 침까지 흘리고 있다.
“이거 어떻게 풀어 이거!”
당황한 나머지 장소장의 멱살을 두 손으로 잡고 허공으로 달랑달랑 들어 올린 채 연구소의 인력을 향해 소리치는 칠성.
“앗! 잠깐만요!”
그런 그들을 발견한 여자 연구원이 깜짝 놀라서 달려온다.
한참이나 장비 보관소를 뒤지던 여자가 간신히 무언가를 찾아온다.
“이거, 마스터키예요. 지문 인식 부분에 엄지를 쥐시고....”
칠성의 손에 열쇄 모양의, 하지만 열쇄는 아닌 기묘한 물건을 쥐어주는 차혜진.
달칵!
마침내 풀린 구속구.
“...하간 탁월하다니까요. 이거 하나면 어지간한 헌터는 일반인보다 못 한 수준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두 쪽이나 채울 필요도 없어요.”
수갑을 풀어주자 스르륵 부스스한 눈을 뜬 장소장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검지손가락을 치켜 세우곤 설명을 이어갔다.
“참나.”
그런 장소장의 모습이 기가 막힌 칠성.
“해서 이름은 도넛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펼쳐졌을 때 모양이 꼭 도넛 같으니까.”
그리고 이어진 다음 장소.
“여긴...?”
“음! 아직 미완이지만요.”
장소장이 천장에 메달려 있는 조정 장치의 패널을 조작했다. 그러자.
두쿠---웅.
연구실의 천장에서부터, 동그란 원통형의 철제 상자가 내려오기 시작한다.
“이거...”
스으응-.
이내 자동 기계장치에 의해 속살을 보이는 철제 케이스, 모습을 드러내는 내용물.
“보고 싶어 하실 거 같아 서요!”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기묘하게 생긴 갑옷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한눈에 보기에도 민첩 해 보이는 윤곽.
마치 영화속 슈퍼 히어로들이나 입을 것 같은 전투복.
그럼에도 익숙한, 조류가 연상되는 삼각의 안면부 방탄유리가 인상적인, 헬멧과 투구 중간 사이의 머리 방어구.
“마나 체인져지?”
“네, 마나 체인져 2호. 크로우입니다.”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찬찬히 갑옷을 뜯어보기 바쁜 칠성.
이전 마나 체인져는 쓸모 있기야 했지만, 디자인으로 치면 가히 로봇 찌빠 급 깡통 디자인 이었다.
그랬던 것이 이토록 세련된 디자인의 검은 갑주로 재탄생 했으니 감탄스러울 법 했다.
“조류 시리즌가 보네.”
“넵. 크크.”
회심의 미소를 짓는 장영실소장.
“작명 센스는 영 별로다.”
“윽, 맘에 안 드십니까?”
“흠 뭐... 괜찮은 것 같기도.”
주머니에 손을 꿴 채 어깨를 으쓱 해 보이는 칠성.
“잠시 만요! 비켜주세요!”
그 때, 뒤편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헐레벌떡 사람들을 헤집고 달려오는 사람은 칠성의 보좌관 성진이다.
“큰일 났습니다 장관님!!”
“무슨 일이야?”
“어서, 위로!”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따라오라고 손짓 하는 성진.
고개를 끄덕인 칠성이 뒤따라 나선다.
“완성되는 대로 보여 달라고.”
“옙!”
영실에게 인사를 남기고 떠나는 칠성.
상층으로 이어지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