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
S3 : 34화
국방 선진화 사업.
아마 이 번지르르 하고 돈 아까운 보여주기 식 장비들을 도입 한 건 2020 년 즈음 이었을 것 이다.
‘스마트 막사’ 역시 그 중 하나였다.
접으면 작은 소형차 정도로 변하는 막사는 펼치면 60평대의 이국적인 분위기의 천막이 되었다.
물론 훌륭한 장비.
보여주기 식 이란 말은 일반 병사들은 써보지도 못하는 장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천막 안으로 인도되어 들어온 칠성과 성진, 한솜이. 심지어 헬기 조종사.
막사 안에는 완벽한 조명장치 까지 되어있었고,
칠성을 데려오라 지시 한 참모총장은 멋드러진 이동식 테이블 위에 자리를 깔고 있었다.
“이야... 잘도 해놓고 계시네.”
칠성이 막사의 내부를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오시는군요. 기다렸습니다.”
참모총장이 칠성을 맞이했다.
“혹시라도 오해하지 마세요. 헬기의 출발을 말린 건 여러분의 안위를 위해서 였습니다.”
“왜, 당신들이 추락시키면 우리 안위가 문제 생기니까?”
“허허허허. 농담도.”
“저도 농담이고요, 통신시설 장애 때문에 직접 왔습니다. 서울 조준 해제하세요.”
칠성이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갔다.
“서울시내 점거하던 불온 세력은 모두 제압한지 오래입니다. 대통령님도 구출 했고요.”
“그렇습니까?”
참모총장이 놀랍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런데 하나도 놀란 표정이 아니다.
“...무슨 속셈이시죠?”
칠성이 씹어 뱉듯 묻자, 대답은 안 하고 되물어오는 총장.
“그런데 그 악마 놈들이, 어디서 어떤 경로로 이쪽으로 오게 된 건지는 아십니까?”
“...글쎄요. 그건 왜?”
악마들이 아바타도 아닌, 본체가 넘어 온 점은 수상하긴 했다. 분명히 공조한 인간 세력이 있다는 것.
하지만 국군이 그걸 궁금해 할 입장인가?
오히려 악마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다면 궁금할 리가 없는 질문인데.
“...그보다도. 상황 끝났다는데 왜 계속 서울 조준 하시는 거죠?”
대답이 없는 참모총장.
되물은 칠성이 문 듯, 주머니에 손을 꼽은 채로 주변을 둘러본다.
긴장한 듯 칠성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 병사들.
악마들이 모두 제압되었다는 소식에도 놀라기는커녕, 별 관심 없는 듯 보이는 참모총장.
그리고 뜬금없이 악마들이 넘어 온 경로를 묻는다.
칠성의 머릿속에서 조합되던 의심이 확신이 된다.
“악마들이 설친 뒤에 꼭 증거라도 지우려는 것처럼 서울을 날려버리겠다고 하질 않나... 왜냐고 물으니 뭐 못 싼 개처럼 안절부절 못하질 않나....”
막사 안을 칼날 같은 긴장감이 훑고 지나간다.
모두가 느끼고 있다.
칠성이 무슨 말을 하려 하는지.
병사 몇몇이 침을 꼴깍 삼킨다.
“설마...”
한솜이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가늘게 떠진 칠성의 눈.
“악마 소환한 거, 니들이지?”
비웃는 표정.
마치 현악기의 줄이 끊어지기 직전의 떨림.
딱!
참모총장은 칠성의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 그저 위로 쳐든 손가락을 퉁겼다.
쾅.쿠르륵-.
그와 동시에 막사의 벽들이 해체 되었다.
해체된 벽들 너머에서 대기하고 있던 무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막사를 중심으로 수백, 수천의 보병이 펼쳐진 꽃잎과도 같이 중심의 막사를 포위하고 있었다.
막사, 정확히는 칠성과 일행을 향해 조준하고 있는 수 도 없는 군인들.
“이야~ 저건 언제 빼돌려 갔데?”
사이사이, 수헌부의 장비인 K-이그저스트도 보인다.
“그래, 저것만 있으면 어지간한 헌터들은 시름시름 앓는 중환자나 다름없게 된다지?”
칠성이나 한솜이가 헌터임에도 불구하고 자신 있게 총구를 들이 댄 것.
자신들이 이길 수 있다는 나름의 계산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렇지. 누구 부하들이 만든 건데? 어지간한 헌터는 저거 몇 발이면 힘 못 쓰지.”
“그래... 나도 악의는 없다만. 여기서 죽어줘야겠다.”
“그런데 니들 눈엔 내가, 어지간~해 보이냐?”
“뭐?”
이미 칠성과 상당한 거리를 벌린 참모총장이 되물었다.
“허허허... 실성을 하셨군. 장관님. 지금 이상황에서 본인이 무얼....”
“나 방금, 한 시간 전 쯤? 유성으로 사람 하나 치였는데 말야.”
“뭐...?”
참모총장의 안색이 변했다.
“니들이 감당 못 했던 메피스토. 수헌부가 떼로 가서 잡았을 거 같냐? 나 혼자 잡았어.”
“무슨 소리를....”
순간 참모총장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메피스토의 공포스러운 이미지.
그런 일이 가능 할 리가 없다.
그런 말 도 안 되는 놈을 사람 혼자서?
정말로, 정말로 그런 게 가능 하다면....
“한마디로 니들 X됐다고.”
피식 웃은 칠성이 씹어내듯 뱉는다.
문자 그대로,
수도 없는 적에 둘러싸인 김칠성.
수도 없는 총구와 박격포, 중화기와 로켓들이 칠성을 향한다.
“시작하자 씹쌔들아.”
* * *
김칠성과 육군의 무력충돌이 있은 지 2일 뒤.
방송국 사옥의 복도.
“이제 전부 말이 되는 거 같아요.”
박지민이 아차 싶은 표정으로 말을 뱉고,
시선은 허공을 헤맨다.
박지민과 박인규가 보고 있는 복도 에 설치된 TV 화면 속엔 뉴스가 보도되고 있다.
국방부가, 무력 충돌을 일으키고 병사들을 살해한 김칠성을 구속기소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전 후 사정을 파악한 박지민과 박인규의 눈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보였다.
박지민의 말을 받아 박인규가 말한다.
“그러니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데.
이번상대는 김칠성이다~ 이거 아니야.”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지 김칠성이 육군이 악마군대의 소환과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김칠성이 자신들의 치부를 알게 된 것을 두려워한 육군이 김칠성의 입을 막기 위해 충돌했다.
하지만 범죄자로 알려진 것은 칠성.
김칠성은 모함 당했다.
“안되겠어요, 오늘 풀어요.”
“지민아.”
지민의 손목을 잡는 박인규.
“말 했잖아. 봐, 그 잘난 김칠성도 잡혔어. 남에 부서 장관까지 모함해서 처넣는 녀석들이야. 어떡하잔 거야. 더군다나 그게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는 보증도-.”
“그래도.”
줄줄이 이어지는 박인규의 말을 끊는 지민.
“할 수 있는 건 해야죠.”
단호한 대답에 할 말을 잃은 박인규.
“선배도 하고 싶잖아요. 기자니까.”
말없이 지민을 바라보던 박인규.
지민의 눈을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끄덕인다.
“하자.”
* * *
[키륵...한국...육군... 슈퍼 병사... 우리의 힘으로... 자신들의 군대 강하게 만들려고 했다...]
국장실의 tv 화면을 통해 재생되는 악마 인터뷰 영상.
지민과 박인규가 찍었던 임프의 모습이 또렷하게 들어가있는 테잎이다.
“하아....”
조창완 국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이마에 손을 짚었다.
다 조용해져 가는 마당에, 뭐 이런 엄청난 걸 찍어왔어?
하는 눈빛으로 지민과 박인규를 노려보는 국장.
국장 데스크 주변엔 지민과 박인규, 그리고 그들과 함께 들어온 선후배 기자들이 있다.
모두의 시선이 국장에게 모인다.
국장이 한숨을 푹 내쉬고 말을 잇는다.
“누가 살아남을지를 모른다고. 잘 못 가면 우리만 죽어.”
조국장은 너무나도 당연한 걱정을 하는 중 이었다.
수헌부의 장관조차 모함이 가능한 세력, 조직.
자칫 잘못, 대한민국 국방부를 적으로 둘 수 도 있는 상황이다.
“원래부터 그랬잖아!”
그런 국장에게 대드는 지민.
승자 입맛대로 가는 세상이다.
“이 나라 역사는 살아남은 놈들 맘대로 였잖아. 선배나 나나 그거 하려고 기자 된 거 아니잖아.”
순응하는 삶을 살기 위해선 훨씬 더 좋은 직업도 많이 있었다.
지민이 국장의 눈을 보며 꾹꾹 눌러 말한다.
“딱 한번만, 그런 거 말고 진짜로 해 보자구요. 응?!”
“후....”
한숨을 쉬는 국장.
고민한다.
그때 박인규가 거든다.
“빚 갚아라. 너 철민이한테 빚 있잖냐.”
지독히도, 한구석에서 늘 국장을 괴롭히던 망령의 이름.
“여기서 그 이름이 왜 나와?”
“그 시절에 네가 손 털었어도 철민이도 나도 아무도 뭐라 안 했다. 진짜로 위험한 거 맞으니까. 그런데.”
박인규가 국장실을 넘치게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한다.
“봐라 지금. 어린 애들 보기 쪽팔리지도 않냐?”
국장은 속으로 혀를 찼다.
아니 왜 또, 철민이 얘기를 꺼내고 그래?
“후우..... 첫 꼭지 뭐야.”
국장이 말하자 옆에 있던 젊은 직원이 어떨떨하게 쳐다보기만 한다.
“뭐든지 간에 치우고, 이거 틀어.”
그러면서 박지민과 박인규가 가져온 테잎을 넘기는 조국장.
놀란 눈으로 국장을 보는 지민과 박인규.
“예? 데스크고 어디고....”
테잎을 받아들고 반문하는 젊은 남자.
“책임은 내가 진다. 무조건 틀어.”
“그렇지만...”
말리는 남자의 말을 자른다.
“너도 기자 맞지?”
국장의 말을 듣더니 서서히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
알겠다는 듯 몇 번이고 다시 고개를 끄덕이더니 테잎을 쥐고 국장실 밖으로 뛰쳐나간다.
“비켜요! 비켜!”
그런 뒷모습을 보더니 망설임 없이 털고 일어나는 국장. 피식 웃더니 자신의 핸드폰 베터리를 빼 버린다.
“오늘은 일찍 퇴근해야겠다.”
자신을 지켜보는 지민과 인규, 기자등을 등 뒤로하고 조국장이 쿨하게 국장실을 나선다.
* * *
조금 뒤,
사무실에 모여 있는 지민과 인규, 태완과 다른 기자들.
그들이 보고 있는 티브이 화면, 9시 뉴스 헤드라인으로 그들이 찍은 악마의 인터뷰 화면이 나온다.
깔리는 자막은
‘악마 군단의 배후는 김칠성이 아닌 국방부?’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
박인규와 박지민이 기쁨에 포옹한다.
태완까지 합세해 환호성을 지르며 빙글빙글 뛰는 세 사람.
같은 시각,
퇴근한 조국장.
커다란 평면 티비 밑에는 어린 쌍둥이 초등생 아들들이 조국장이 사온 후라이드 치킨을 먹고 있다.
티브이에선 예의 악마 인터뷰 화면이 나오고 있고,
맥주 한캔을 들고 티브이를 보고 있던 조국장.
쭉 빨아들이더니 웃는다.
“그림은 이쁘게 찍었네.”
* * *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늦은 밤. 한솜이가 자취하는 원룸.
띵동.
“누구세요?”
눈이 퉁퉁 불어있는 한솜이가 대문을 연다.
코끝이 빨개 져 있는, 간신히 울음을 멈추었던 한솜이가 또다시 울상이 된다.
“왔어.”
씨익 웃는 남자.
칠성이다.
칠성에게 와락 안기는 한솜이.
국방부가 칠성을 악마군단의 소환을 돕고, 병사들을 헤친 죄목으로 기소한 사건은 헤프닝으로 끝나게 되었다.
이어진 수사에서 국방부와 악마군단의 연결고리, 정명석의 존재 조차 너무나도 쉽게 드러난 것 이다.
증인이 될 만한 사람이 너무나도 많았다.
거기다 특별한 증인도 있었다.
재판소.
“말도 안 돼는 모함입니다!”
자신의 무죄를 울부짖는 육군참모총장과 박중령, 정명석까지.
“증인 들어오세요.”
명령에 따라 소환된 증인.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에 따라 회장의 사람들의 집중되는 이목.
증인의 정체를 보고 재판소 안의 모든 사람들의 눈이 왕방울 만 해 진다.
“마계의 아이돌 ★ 등장.”
윙크를 하며 재판장에 등장한 코코.
코코가 데려온 채찍의 이마노프 까지.
“말...말도 안 돼는....”
참모총장이 고개를 숙이고 신음한다.
결국 이 사건은 ‘최고, 최악의 국방비리’ 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고 사람들에게 기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