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
S3 : 33화
고공상승하던 칠성의 몸이 허공에서 멈췄다.
“무, 무슨 속셈이냐!”
콰슈웅!!
하지만 메피스토의 몸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끝도 없이 올라가기만 했다.
대기를 가르고 속절없이 날아오르는 메피스토의 몸.
저 멀리, 칠성의 시야에서도 점이 될 정도로 멀어진 메피스토.
“크르르륵....”
메피스토가 피의 날개를 펼쳤다.
더 이상 앞 뒤 가릴 것 없다.
그의 양 날개뼈를 뚫고 튀어나온 거대한 피의 날개가 상공을 뒤덮을 듯 커져가는 무렵이었다.
쿠----------------와와와와악!!
“이게...”
순식간에 구름을 뚫고 나온 것 은 그야말로 거대한, 유성이었다.
“...미친 자식.”
메피스토가 미처 대처할 바 도 없이, 모든 것을 손에서 놓고, 신의 검에 베이고, 유성에 치인다는.
그저 자신의 죽음 방식이 이다지도 어처구니없는 방식이란 것에 대해 넋을 놓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저 아래에서, 칠성이 중얼거렸다.
“...*유성 강타(Meteor Strike)*”
찍!
유성이 마치 하늘을 달리는 기차처럼, 유성에 비교하면 생쥐 크기인 메피스토를 가볍게 치어 젤리덩어리로 만들며 지나갔다.
이쪽 세계의 현대 과학기술과 저쪽 세계 마법의 하모니인 던전 테크놀러지,
그 던전 테크놀러지와 김칠성이 만들어 낸, 그 어느 세계에서도 꿈도 꾸지 못 했던 콤비네이션.
그 어느 세계의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방식의, 피의군주의 최후였다.
휘유우우웅-
쿵!!
마치 작은 유성과도 같은 것 이 떨어졌다.
잔디밭의 대지에 일대 충격을 일으키며 떨어진 것 은 칠성이었다.
“크으으으~~! 뜨뜨뜨!”
예상보다도 훨씬 빠른 순간에 마나체인저가 제 기능을 잃었고, 비행 마법이 해제되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즉사했어야 옳을 높이에서 떨어진 칠성.
하지만 낙하의 충격을 수습하는 것 보다, 용광로 같이 달궈진 갑옷을 떼어내는 게 우선이다.
덜컹. 덜컹.
칠성이 허둥대며 불타고 있는 갑옷을 해체시켰다.
퍼펑! 펑!
칠성의 몸에서 떨어진 갑옷들이 시한폭탄이라도 된 양 폭발했다.
다행한 점은 비가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은 관계로, 축축히 젖은 풀들에 크게 불이 옮겨 붙지 않는다는 것.
“어우 젠장!”
타오르는 불길,
덕분에 완전한 맨 몸뚱이가 된 칠성이 털퍽, 여기저기 연기를 피어올리고 있는 잔디밭 위에 눕는다.
“하아....”
숨을 크게 몰아쉬는 칠성.
비가 갠 뒤의, 유성이 휘저어 놓은 흰 포송포송한 구름들이 보이는 파아란 하늘,
대기권을 스쳐지나가는 유성이 꼬리를 남기며 저 먼 우주로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 * *
부웅-.
요원들을 날랐던 버스들이 세워져 있는 수헌부의 사옥 앞.
그 앞에 수송차량 한 대가 섰다.
거대한 밴 형태의 차량에서 작은 계단이 내려오고,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앞서서,
그 뒤엔 수헌부 요원들이 입는 제복을 입은 사람이 그 계단을 한 칸 한 칸 밟으며 내려온다.
“어, 저기!”
누군가의 손짓을 기점으로 집중되는 시선.
앉아있던 사람들 까지 앞으로 걸어 나와 수송차량에서 나온 이를 둘러싼다.
짝. 짝. 짝.짝
누군가를 시작으로 우레와 같이 쏟아지는 박수 세례.
자신의 몫이 아님을 눈치 챈 대한민국 대통령이 슬쩍 미소짓더니 비켜난다.
그리고 그 뒤에서 수헌부 제복을 입고 걸어 나오는 남자.
“아니 뭐야 이거? 민망하게.”
불타버린 옷 덕에, 남아있던 수헌부 제복을 챙겨 입은 칠성이다.
“워우~~”
그런 칠성이 타박했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만면에 미소를 띄웠고, 더더욱 거세지는 박수세례.
거기에 간간히 함성. 휘파람까지.
그들의 눈빛에는 여러 가지가 담겨있었다.
장관인 칠성이 요원복을 입은 것 은 의도되지 않은,
거의 우연에 가까운 일이었으나,
그들은 장관이 자신들과 같은 옷을 입은, 그것만으로도 일체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 * *
칠성과 수헌부 사람들은 꿈도 못 꾸고 있었지만,
대한민국 육군에 의해, 이미 서울은 포위가 완료된 상황이었다.
해군과 공군도 언제든지 힘을 보탤 준비를 마쳤다.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칫!”
육군 참모총장이 혀를 찼다.
그들이 서울을 포위한 것은 악마가 점령한 서울을 구하기 위해서.
“만약 우리가 개입한 일임이 밝혀지기라도 하는 날엔 모두 끝장입니다! 지금이 증거를 없앨 마지막 기회입니다!”
아니, 자신들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어쩔 수 없지... 좋아, 진행해!”
마지막 순간까지, 최후의 양심 때문에 망설이던 참모총장이 끄덕이더니 명령했다.
주변의 군인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여기저기로 무전 통신이 오간다.
그들은 서울을, 지도에서 지워버릴 참 이었다.
* * *
이 세상에 우연은 없다.
다만 생각지도 못 했던 인연이 있을 뿐.
띨릴리리리!!
수헌부 건물 입구 옆의 공중전화가 날카로운 벨소리를 울렸다.
“응?”
입구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칠성은 공중전화의 벨소리에 멈춰 섰다.
공중전화라니, 정말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하지만 진즉에 없어졌어야 맞을 듯한 저 구시대적 아이템은 지금까지도 존재하고 있었고,
심지어 새로운 모델로 교체까지 되고 있었다.
누가 쓰는 건진 모르겠지만.
하여간 쉽게 그저 지나칠 수 있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칠성은 발걸음을 돌려 공중전화의 수화기를 들었다.
[김칠성?]
“응?”
수화기에서 들려온 자신의 이름에 주변을 살펴보는 칠성.
멀리서 반짝이는 도로 CCTV.
[김칠성. 전해줄 정보가 있다.]
매끄러운 기계음 같은 목소리.
어조의 변동폭이 이상한 것이 절대로 사람 목소리 같지는 않았다.
마치 사람을 흉내낸 프로그램으로 쥐어 짜내는 사람 목소리 같은 그것.
“누구냐?”
[나는 ‘익명의 사자들’ 중 하나인 앤서리스 노드이다.]
“...뭐?”
칠성이 미간을 찌푸렸다.
익명의 사자들이라면, 김규형전을 치르던 시절 알게된 프로그래머, 판춘봉이 만들었던 AI 프로그램이 아닌가.
“진짜야? 전화를 니들이 어떻게...”
인간에 가까운 인격을 갖고, 스스로 발전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들이 인터넷 세상을 돌아다니게 된 것 까진 안다.
하지만 전화까지 할 수 있는 거였어?
[시간이 없다. 우리는 김칠성의 행동에 감명 받았다. 서울은 곧 폭파된다.]
“뭐?!”
갑자기 이게 뭔 소리야.
칭찬을 하다가 갑자기 맥락 없이 이어지는 폭탄선언에 칠성의 눈이 땡그래졌다.
[대한민국 육군 전력이 서울을 조준 중 이다. 우리가 막을 수 없다.]
무언가 잘못됐다.
“이런 썅!”
* * *
두구두구두구-!
헬기가 프로펠러를 돌리며 이륙 준비를 했다.
“나...나도가!”
“...휴. 알았어! 빨리타.”
칠성이 헬기에서 내민 손을 한솜이가 잡는다.
칠성이 한솜이를 헬기 안으로 끌어당긴다.
메피스토의 군대가 쳐둔 서울 결계가 아직도 해제 되지 않고 있었다.
유선이든, 무선이든.
서울을 조준중이라는 국군과 연락할 수단이 없다.
그래서 직접 가기로 한 칠성과 일행.
대한민국 수호*헌터부 옥상의 이륙장.
칠성과 보좌관 성진, 그리고 한솜이를 태운 헬기가 날아올랐다.
서울시내 상공을 가로지르는 헬기.
헬기의 시야 아래로, 혹시 남아 있을지도 모를 임프의 잔당을 쫓는 수헌부 요원들.
또 수헌부 요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안전지대로 대피하고 있는 사람들.
여기저기 넘어져 널부러져있는 차량들과,
곳곳에서 연기를 태워 올리는 건물 등이 보인다.
그리고 보이기 시작하는 군부대 병력들.
전차와 중화기 부대를 비롯해, 저 멀리 미사일을 탑제한 발사차들 까지 보인다.
“뭔가가....”
묘한, 이상한 직감이 칠성의 심장을 스쳐지나갔다.
그렇게 까지 크게 의심스러운 전후상황이 있었던 것 은 아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수 백년에 걸쳐 겪었던 삶의 위기가 알려주는, 말하자면 승부사적 직감.
“헬기에선 나만 내린다.”
“네?”
“왜, 왜요?”
갑작스러운 칠성의 명령조 말투에 반문하는 성진과 한솜이.
이건 논리적으로 설명은 못하겠다.
“그냥 시키는데로 해.”
하지만 무언가 위험한 게 기다리고 있다는 감각은 실제다.
“성진아 우리 누나 있지.”
“예, 예. 누님이요. 지금 수헌부 지하에...”
“알고 있어, 나 내려주고 헬기 돌려서 수헌부로 가.”
“네.”
“그리고 헬기로 우리 누나 데리고 서울 벗어나. 아무데나 좋으니까 가급적 멀리. 한솜이 팀장도 데리고.”
“네.”
비이성적으로 비칠 수 도 있는 칠성의 명령에, 단 한마디의 대꾸도 없이 그저 알겠다는 듯, 단호하게 고개를 주억여 보이는 성진.
“두 사람 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한솜이가 두 사람의 비장미가 느껴지는 대화에 벙쪄 있는 동안에도 헬기는 점차 진을 치고 있는 군인들과 가까워진다. 성진 역시 칠성이 무슨 의도로 이런 소리를 하는 건지, 근거가 있는 소리인지 같은 건 알지 못 했다.
다만 성진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칠성과 거의 붙어 있음으로서, 보좌관으로서 칠성을 면밀히 보아왔기 때문에 칠성의 심중을 읽게 된 것 이었다.
육군이 서울을 조준하고, 장관이 도망치라고 하고.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칠성이 자신에게 명령할 때의 눈빛만큼은 그 여느 때 보다 진심이다. 그렇다면 따른다.
이것이 성진의 판단이었을 뿐 이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목적지.
“알아 들었지? 내가 내리면 바로 다시 출발 하는 거야.”
“옙.”
“한솜이팀장을 태우고 대기하고 있다가, 김성진 보좌관이 누나를 태우고 오면 동쪽으로 빠져서 남쪽으로 향한다.”
“숙지했습니다.”
헬기를 조종하는 수헌부 서포트팀 소속의 헬기 조종사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대답했다.
“잘 부탁하네. 이번 일 끝나면 안 잊을 테니까.”
조종사의 어깨를 슬쩍 쥐며 부탁하는 칠성.
“너도.”
“옙.”
성진에게도 다시 한 번 당부한다.
이기적이라고 해도 좋다. 어쨌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위부터 챙겨놓고 봐야겠다.
두두두두두두-.
칠성을 태운 헬기가 접근하자 군인들이 헬기가 착륙할 만한 공터로 인도한다.
헬기가 땅에 닿을 때 쯤.
“나도 같이 갈래.”
“안돼.”
“왜 매번 위험한건....”
“말 좀 들어.”
한솜이의 말을 끊는 칠성.
착륙한 헬기, 칠성이 내린다.
“어서 출발해.”
헬기 조종사를 향해 말하며 올라가라는 수신호를 보내는 칠성.
그런데.
“이게 무슨 짓들이야?”
철-커컥.
칠성과 헬기를 포위하듯 둘러싼 수십의 군인들이 어느새 총구를 칠성과 헬기 쪽을 향하고 있다.
아니, 슬쩍 보니 저쪽 편의 중화기들도 헬기를 조준하고 있다.
“이륙하면 격추라도 시키겠단 겁니까?”
“벌써 가시면 서운하지 않습니까. 기다리십니다. 함께 가시죠.”
칠성의 물음에 동문서답 하는 이는 김소령이다.
정말 이녀석들이 격추라도 시킬 생각이라면 헬기를 타고 돌아가는 건 여러모로 위험하다.
칠성이 눈짓하자 눈치를 보고 있던 조종사가 끄덕인다.
이륙하려던 헬기의 프로펠러가 서서히 멈춘다.
내리는 조종사와 성진, 한솜이.
“나중에 책임지실 자신은 있으신거죠?”
칠성이 양 손을 주머니에 꿰고 삐딱하게 묻는다.
“이쪽으로.”
김소령이 웃으며 길을 안내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