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
S3 : 32화
솨아아아아아아-.
청와대 건물 앞, 정문에서부터 이어진 내부의 잔디밭은 갑작스러운 소나기로 젖어들고 있었다.
“메피스토는 신경과민이야.”
메피스토의 오른팔, 이마노프.
메피스토, 발스락스와 비슷한 핏기가 하나도 없는 창백한 피부. 피같이 붉은 머리칼.
상식에 위배되는 노출도가 상당히 높은 황금빛 금속의 갑옷을 입은 그녀.
‘채찍의 이마노프’ 란 이름의 값을 하려는 듯 자신의 채찍을 바닥에 간헐적으로 한번 씩 휘두르며 건물 앞의 구역을 찬찬히 걷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비에 검은색 우산을 준비해서 달려오고 있는 임프를 무시 한 채 말이다.
메피스토는 ‘무언가가 불길하다’ 며, 그녀더러 자신의 옆에 있으라고 했으나, 그녀가 보기에 그것은 기우였다.
콰슈우-.
그런 그녀의 눈에 저 멀리 하늘, 빗속을 뚫고 날아오는 무언가가 보였다.
마나 체인져로 비행 마법을 쓰고 있는 칠성 이었다.
“청마법사... 한 마리?”
피식,
그녀의 입 꼬리가 어이없다는 듯 셀쭉하게 올라갔다.
고작 저게 메피스토가 불안해했던 것의 정체란 말인가?
마법사 군단도, 성기사와 홀리오더도 아닌 고작 마법사 한 마리?
쫘악!
그녀의 채찍이 울음을 울었다.
“저 미련한 인간을 찢어 발겨라!”
이마노프의 목소리가 전과 달리 마치 거대한 동굴에서 울려 퍼지는 양, 세 사람의 서로 다른 목소리를 섞어둔 양 괴기한 색채로 울려 퍼졌다.
하늘을 가르고 날아오고 있는 칠성을 날카로운 손톱으로 가리키며 이마노프의 눈이 끌어올린 마나에 반응해 마치 어둠속의 등대라도 된 듯 광채를 뿜었다.
“키야악!!”
60여마리의 임프들이 이마노프의 명령에 짐승같은 울음을 울부짖었다.
* * *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갑작스레 쏟아져 내리던 소낙비는 지나갔다.
철퍽.
칠성의 갑주에 쌓인 발이 촉촉하게 젖은 대지에 딛어졌다.
칠성의 걸음 걸음 양 편에는 자그마한 물웅덩이와,
비로 샤워를 해 사근사근한 초록빛을 뿜는 잔디들이 있었다.
아직 슬쩍 어두운 구름들 사이를 뚫고 들어온 햇빛이 잔디밭 위에 굴러다니는 빈 앰플 병에서 반사되어 빛을 냈다.
성수가 담겨있었던 수많은 앰플 병들,
그리고 그 보다 많은 수의, 진흙 덩어리로 탈변해 버린 소악마의 시체들.
그리고 자신의 채찍에 꽁꽁 묶여있는 이마노프.
“풀어라 비겁한 인간아!!”
악을 쓰는 이마노프, 양 손은 뒤로 수갑이 채워진 채 묶여 있다.
온 몸은 마계 최상의 소재를 사용한 자신의 채찍으로 단 1cm 도 옴짝 달싹 할 수 없게 철저하게 묶여있는 상황.
억울해서 분통을 터뜨리는 이마노프.
너무나도 압도적인 전력차이였다.
자신의 목조차 베지 않는 상대는 그녀에게 차라리 죽고 싶은 치욕을 주었다.
슬쩍 돌아본 칠성은 아무 말 없이 청와대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 * *
메피스토는, 어느새 꾸려놓은 자신의 왕좌에 앉아있었다.
넓은 청와대 본관의 가운데에, 짐승의 뼈들로 이루어진 왕좌를 만들어놓고, 2, 3층을 뚫어 단층으로,
방들을 모두 하나로 엮어 거대한 자신만의 공간을 꾸려놓고 있었다.
벽면엔 알 수 없는 피떡이 져 마치 데스메탈 순종자가 선호할 끔찍한 모양새의 벽지같이 보였다.
아마도 마계의 성체 내부를 재현해 둔 듯 했다.
천장에 뚫어둔 구멍, 그를 막아둔 스테인레스 글래스에서 햇살이 내려오고 있었고,
전력시설이 망가져 불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내부에, 그렇게 내려온 한줄기 햇살이 메피스토 앞쪽에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포박당한 채 였다.
덜컹.
“이곳으로 와서...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칠성이 문을 열고 들어옴과 동시에, 메피스토는 마치 쌓여있던 할 말을 풀 듯 바로 입을 뗏다.
자신감 넘치게 지구정복의 포부를 밝히던 그는 이미 온데간데없었고, 마치 오랜 시름을 앓고 있는 몰락한 왕 같이 보였다.
“죠죠, 나를 왕으로 추대하겠다던 킹메이커의 배신... 교활한 님프족이지만, 그 만큼은 믿었는데....”
칠성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한귀로 흘러들으며 물끄러미 구석의 대통령을 살펴보는 중 이었지만,
배신의 상처에 크릉 거린 메피스토는 칠성의 반응 같은 것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나의 혈족인 발스락스 역시... 갑작스레 소식이 끊겨버렸다.”
그렇게 말하는 메피스토가 벌떡 왕좌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칠성에게 걸어오는 메피스토.
“전부 네놈 때문이겠지!! 이!! 울분을 어떻게 풀지...!”
원망어린 시선으로 칠성을 노려보는 메피스토.
곰곰... 히 메피스토의 말마디를 되씹어보던 칠성이 대답한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정말 질렸다는 표정으로 욕설을 씹어뱉는 칠성.
“뭐..?”
눈을 가늘게 뜨는 메피스토.
“이거 완전 사람 치여 놓고 자기 차 범퍼 나갔다고 징징댈 놈 일세, 어디서 피해자 코스프레야?”
“뭐, 뭐라고?”
“너 그거 중2병 이라는 거야 새꺄.”
당황하는 메피스토.
무슨 말 인진 하나도 못 알아듣겠지만 밑도끝도없이 기분이 나쁘다.
쯧쯧 혀를 차는 칠성.
“입 아프게 지랄 말고 빨리 끝내자.”
“크읏...!”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단호박 같은 칠성의 태도에 찌푸리는 메피스토.
딱!
“읍!?”
칠성이 손을 튕구자 묶여있던 대통령이 결계로 휩쌓였다.
쿠쿵!
그리고 칠성이 한번 더 손짓하자 결계속의 대통령이 결계채로 청와대 건물의 벽을 뚫고 날아가 버린다.
“내가 약속을 번복할 것 같은가?”
“아냐~ 난 너 믿지. 혹시 실수로 다칠까봐.”
윙크를 찡긋 해 보이는 칠성.
다음 동작은 순식간이었다.
“*지옥불(HELL FIRE)*”
콰카아아악!!
칠성이 손을 휘저으며 시동어를 뱉자 순식간에 불꽃이 타오른다.
자신의 망토를 휘둘러 막아낸 메피스토.
망토가 불길에 타오른다.
“귀엽군, *블러드 스피어*!”
지옥의 불길을 떨어낸 메피스토가 날카로운 핏빛의 손톱이 빛나는 손을 칠성에게로 펼치며 시동어를 외웠다.
일순간 수십 개의 피의창이 방 안에 가득 들어찼다.
“백마나”
칠성이 중얼거렸다.
콰직.
씨익 웃음이 걸린 메피스토의 손아귀가 쥐어짐과 동시에 칠성을 사방에서 포위한 피의 창이 칠성을 찔러들어갔다.
“*열파 수도권*”
파카카카캉!!!
순식간에 불꽃과 함께 피의창들을 박살내며 돌진한 칠성의 펀치가 칠성이 서 있던 정 반대편의 벽에 박혀들어갔다.
메피스토의 망토가 칠성의 주먹 모양대로 크게 찢어졌다.
“크읏!!”
간발의 차로 피한 메피스토가 마나를 끌어올린다, 그의 두 눈이 등대라도 된 듯 번쩍 빛을 낸다.
도무지 어떻게 된 것 인지 이해 할 수 가 없었다.
방금 전까지 마법사였던 녀석의 마나가 순식간에 형태가 변해 있었다.
그것은 마치, 소드 마스터의 그것과 같은!
“*청룡파!*”
콰아아아아!!
고민을 하기도 전에, 칠성이 내지른 장.
펼쳐진 양 손 사이에서 어마어마한 에너지의 흐름이 마치 KTX 열차라도 된 듯 메피스토를 치고 지나갔다.
콰르르르륵-.
그대로 청와대 건물 한쪽 외벽에 동그란 구멍이 생겨났다.
“어떻게!”
어떻게 된 것인지는 상관없다.
녀석이 청마법사이던, 소드마스터이던, 무투가이던, 죽이면 그만!
콰아악!
“쿨럭.”
칠성이 한 웅큼 뱉은 피가 투구의 안쪽에 스며들었다.
칠성의 머리위에, 사람만한 피의 구체가 하나 생겨났다.
칠성의 몸속에서 빠져나간 것 이었다.
갑옷의 사이사이 미세한 틈들이, 투구의 호흡기 부분이 피로 장식되었다.
칠성은 잠시 고민했다.
헬파이어를 시전하는 순간 확신했다.
마나체인저를 통해 다른색의 마나로 마나를 바꾸어 버린 동안, 성기사들의 ‘족쇄’ 는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나름 고등 마법인 헬파이어를 시전해도 잠잠한 족쇄.
마나체인저의 기능은 확실하다.
하지만 어디까지 믿어도 될까?
고민하던 칠성, 피가 모두 빠져나가 올라오는 현기증에 기절하기 직전, 결단을 내린다.
“성마나 변환”
띠----띳.
변환 파장이 쐬어지고,
흑마법사의 칠성의 몸에 흐르는 흑마나가 모두 성기사들의 그것으로 탈변한다.
“*리제너레이션(재생)*”
둥-둥-둥!!
칠성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생겨나는 황금의 방진들.
그리고 그것이 서로 호응을 이루며 황금빛으로 빛을 내 뿜는다.
“도대체....”
메피스토의 눈동자는 떨리고 있었다.
도대체 눈 앞의 상대가 무엇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휴우!”
안 그래도 빠른 칠성의 재생속도가 성마나의 축복으로 인해 더더욱 빨라졌다.
전신을 흐르는 피도 모두 복구되어 정상범위로 돌아온다.
‘이왕 한 거 도박 한 번 더 해볼까.’
칠성이 오른손의 손가락을 한 대 모아 뻗고 팔을 펼치며 시동어를 외운다.
“*라그라노크(신을 베는 검)*”
지이이잉-.
순식간에 손끝에서 뻗어나가는 황금빛의 검날.
약 60cm 정도 길이의 마나로 이루어진 황금의 칼날이 손끝에 맺힌다.
“라그라노크?! 장난치지마라!!”
메피스토의 머리에서 땀이 흘렀다.
신의 축복을 받은 성기사들만 쓸 수 있다는 ‘신을 베는 검’ 그것이 자신의 눈앞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건 조금 ‘특이한’ 상황 같은 게 아니었다.
인간 청마법사가 제 멋대로 마나를 바꾸어 신의 검을 휘두른다는 것은 신화적인 에러였다!
차라리 칠성이 눈속임을 한다고 믿는 편이 훨씬 더 간단했다.
“깊성승겅 나타시니....”
칠성이 과거, 오지게 고생했던 성문 마법이 이번엔 칠성의 몸을 감싸 안았다.
투웅!
성문에 의해 강화된 몸체가 대지를 박차고 튀어나갔다.
콰칭!
“제...기랄. 이게 도대체 무슨....”
자신의 베어진 옆구리를 매만지는 메피스토.
신을 베는 검에 베어진 옆구리는 아무리 불꽃을 타올려도 재생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였다.
“*헬파이어*”
콰카악!!
“끄아악!!!”
칠성의 마나가 또다시 순식간에 청마법사의 그것으로 바뀌었고, 메피스토의 옆구리 상처는 지옥불에 속절없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간단하게 막아내었을, 말 그대로 인간계에서나 고위 마법인 헬파이어가.
혈관을 타고 퍼져 들어가자 온 몸을 잡아먹을 기세로 메피스토를 비틀대게 만들었다.
끔찍한 악몽을 겪는 기분이었다.
메피스토가 상대하는 것은 고작 마법사 하나가 아니었다.
마치 대륙 최고의 무투가, 마법사, 성기사가 팀을 이루어 덤비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비행(FLY)*”칠성의 몸체가 솟아오른다.
“*부유(ICARUS)!*”
칠성이 자신의 검지와 중지를 세워 올림과 동시에
메피스토의 몸 역시 허공에 나부낀다.
파창!!
천장의 스태인드 글래스를 박살내며 허공으로 상승하는 두 사람.
쐐애애액!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우주 발사 로켓 같은 속도로 아찔한 고도를 높여간다.
“무슨 속셈이냐!!!”
메피스토가 절규했다.
더 이상 칠성이 무얼 한다 쳐도 이상하지가 않았다.
하지만 고통받고 있는 것은 메피스토 뿐이 아니었다.
[마나 허용치 초과, 시스템 과열.]
‘조금만 더...’
지나치게 빠르게 상승하는 덕, 그리고 많은 마나를 변환하는 덕에 마나체인저가 마치 방금 용광로에서 꺼낸 철물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변환마나 20만 mmp 돌파. 허용치인 28000mmp 까지 낮추 싶시오.]
[변환마나 60만 mmp 돌파. 허용치인....]
언제 폭발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칠성은 멈출 생각이 없어보였다.
‘조금만 더...!!!’
그리고,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