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
S3 : 31화
“환장 하겠네 진짜.”
박인규가 카메라에 눈을 드밀고 초조하게 중얼거렸다.
무슨 연예가X계 도 아니고, 내한한 가수 인터뷰라도 따는 듯한 질문.
‘좀 있으면 사랑해요 코레아도 시키겠구만.’
박인규의 온몸에 땀이 흐른다.
그때 입을 여는 임프.
“키륵...한국...육군... 슈퍼 병사... 우리의 힘으로... 자신들의 군대 강하게 만들려고 했다...크르륵! 자기들 손으로... 소환 해 주었다. 멍청한 한국... 멍청한 인간들... 크르륵!”
‘뭐라는 거야?’
박지민이 얼이 빠진 표정으로 박인규 쪽을 돌아보며 무음으로 입을 뻐끔대며 물었다.
‘빨리 앞에 봐!’
박인규가 얼른 손짓하며 지민을 재촉했다.
악마의 주의가 다른 데로 향하게 만들면 안 된다!
악마의 집중이 깨지는 순간 끝장이다.
“멍청한...인간은...크륵...노예가...어울린다!”
기적 같은 순간은 지나가 버리고 있었다.
“네? 아니, 아니 선생님저기.”
“노예!”
심상찮음을 느낀 지민이 무언가 다른 것으로 주의를 돌려보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꺅!”
갑자기 조울증 환자처럼 분개한 악마가 순식간에 지민의 멱살을 낚아챘다.
그리고 다음순간.
피-슉.
“크륵?!”
임프의 눈을 뒤에서부터 뚫고나온 어둠의 창.
“엄마야!!!”
지민의 얼굴에 초록색 피가 튄다.
퍼엉!
순간 터져나가는 어둠의 창.
비명을 지르며 재생의 불꽃을 타올리는 임프.
“키리릭!”
임프가 지민을 내팽겨 치고 하늘로 솟아오른다.
피피융! 날아오르려는 임프에게 박히는 K-이그저스트의 탄환들.
“잡아야 되요!”
요원들을 끌고 온 김태홍이다.
“*다크스피어*!”
태홍이 어둠의 창을 한발 더 날아가는 임프를 향해 날린다!
퍼펑!
비틀거리며 하늘을 날던 임프가 땅으로 떨어진다.
그 뒤를 추격하는 요원들.
“괜찮아요?!”
태홍이 반쯤 정신이 나간 지민을 붙잡고 묻는다.
“네, 네....”
* * *
번쩍!
지우혁이 눈을 떴다.
“헉...헉...”
거친숨을 몰아쉬는 지우혁.
잽싸게 눈을 굴려본다.
예의 노숙자의 텐트가 쳐져있던 다리 밑이다.
이번에는 텐트 안이 아닌 밖의 시멘트 바닥 위라는 게 다른 점 이었다.
‘어쩐지 최근 들어서 이런 식으로 자주 일어나는 거 같은데.’
“아뜨!”
상반신을 일으키려던 지우혁이 인상을 찌푸리며 팔에 흐트러진 잿더미를 털었다.
지우혁의 온 몸에는 뜸이 타들어가고 있었고, 곳곳에는 장침이 박혀있었다.
“이게 뭐야 대체.”
툴툴거리며 침들을 빼며 몸을 일으켜 앉으니, 이번엔 지우혁이 누워있던 자리를 중심으로 그려진, 커다란 규모의 방진이 보인다.
지우혁의 키 보다 큰 지름의 원이 바닥에 둥글게 그려져 있었고, 그 사이사이론 기하학적 문양과 더불어 알 수 없는 한자들이 수 없이 새겨져 있었다.
“크으...”
그 방진을 내려다보던 지우혁이 머리를 긁었다.
“영감님!”
목소리 높여서 불러보지만 주변엔 아무도 없다.
노숙자영감과 술을 엄청나게 먹고 같이 대련을 했던 거 까진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
지우혁이 일어난 시멘트 바닥 앞쪽에 펼쳐진 잔디밭.
아마도 저쯤이 분명한데, 영감이 쳐두었던 텐트역시 자취를 감추었다.
“아씨.”
지우혁은 사각 팬티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
벌떡 일어나서 주변을 살펴보니 근처에 예의 지우혁의 아티펙트 건틀릿, 그리고 그 옆에 옷가지와 신발 같은 게 있다.
지우혁의 옷 은 아니다.
한복인가?
누구 건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맨몸으로 있다간 변태로 오해받기 십상이니 놓여있던, 백색에 가까운 밝은 상아색의 한복을 대충 걸쳤다.
일반적인 한복은 아니다.
사극에 등장하는 무관복과 비슷한 디자인.
커다란 키에 펑퍼짐한 한복, 특유의 동그란 금테 안경까지 갖춰 쓰자 희한하게 제법 모양새가 갖춰진다.
“취룡醉龍...?”
검은 허리띠의 장신구에 흘리듯 적혀있는 한자를 보고 중얼거리는 지우혁.
건틀릿까지 챙기고 나니 바닥에 남아있는 것은 소주 한 병.
“아주 아무것도 없구나 아무것도 없어!”
지갑이고 휴대폰이고, 지우혁에게 남은 것 이라곤 한복과 건틀릿, 그리고 이 소주 한 병.
영감이 다 털어 갔나?
“후!”
마침내 깨어난 지우혁이 길을 나선다.
* * *
부웅~!
“선생님 저기요!”
“맞아 저기야. 다 왔어 민재야!”
하나경이 핸들을 두 손으로 꼭 잡고 전방을 보며 말 했다.
저 멀리 민재가 가리키는 손끝엔 쉘터로 향하는 지하철을 타기위해 줄지어 내려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뒤를 호위하고 있는 수헌부 직원들이 보였다.
하나경과 민재를 태운 유치원 차가 지하철 역 까지 몇 백미터 앞 까지 접근했다.
그런데 피난민들이 모두 들어가자 요원들이 지하철에 숨겨져 있던 장치로 문을 폐쇠하려는 것 이 아닌가.
“어..어어?”
당황한 하나경은 크랙션을 울렸다.
빠앙!
지하철의 문을 폐쇠하려던 요원들이 자신들 쪽을 향해 달려오는 노오란 봉고차의 크랙션을 듣고 봉고차 쪽을 보더니 서로 수신호를 주고받으며 닫히던 문을 멈췄다.
“됐다!”
자신들을 발견하고 맞이할 준비를 하는 요원들을 보고 하나경의 흰 솜사탕 같은 얼굴 만면에 미소가 올라갔다.
그리고,
그때였다.
콰아앙!!
“꺅!”
순식간에, 봉고차가 엄청난 충격으로 뒤덮혔다.
마치 미처 보지 못 한 전봇대를 정면으로 박기라도 한 듯한 감각이었다.
털컹!
봉고차의 뒷바퀴가 잠시 허공으로 들렸다가 다시 주저앉았다.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른 하나경이 움츠렸던 고개를 들었다.
금이 가고 깨어진 앞 유리 사이로 서서히 고개를 든 것은 사람같았다.
지나치게 창백한 흰 피부, 도무지 인간 같지 않을 정도로 우락부락한 상반신의 근육에, 결정적으로 머리의 검은 뿔과 등의 날개만 없었다면 말이다.
“크르륵.”
눈동자가 없는 빛나는 눈을 번뜩이는 악마.
메피스토의 오른팔, 마계의 권왕 발스락스였다.
발스락스는 이제 단독으로 서울 전역을 누비며, 인간들이 있을 소리가 나는 곳을 기습해 초토화시키길 반복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자동차 크랙션 소리 같은 것을 신호로 말이다.
파창!
“꺄아악!!”
“으아앙!”
발스락스가 손을 휘두르자 유치원 봉고차의 뚜껑이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날아간 천장이 뒷부분의 프레임과 엮이어 뒤로 넘어갔다.
마치 참치 캔을 따둔 듯한 모습이었다.
비명을 지르며 보조석에 앉아있던 민재를 껴안은 하나경.
유치원생인 민재는 이미 경기를 일으키며 울고 있었다.
지하철 입구를 지키던 수헌부의 요원들이 서로 고함을 지르며 이쪽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으나, 너무 느렸다.
파창.
발스락스의 손이 잔뜩 금이 간 유치원 차의 앞유리를 뚫고 민재를, 아니 민재를 감싸 안은 하나경을 향했다.
그때였다.
퍼-캉!!
너무나도 경쾌한 소리를 내며 무언가가 발스락스의 안면을 치고 지나갔다.
“크륵!”
발스락스의 이마에서 재생의 불꽃이 타올랐다.
발스락스가 자신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를 손으로 닦아서 확인하며 가늘게 뜬 눈을 번뜩였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발스락스가 노려본 방향 시선의 끝...!
“엣헴.”
자신이 발스락스에게 뽑아 던진 소화전에서 터져 나오는 물줄기를 배경으로, 소화전을 던진 뒤 마무리 자세로 서 있던 지우혁이 자세를 바로 잡았다.
“아녀자랑 어린애한테 힘자랑을 하다니. 그놈, 짐승인줄은 알았다만 쓰레기 중 쓰레기구나!”
쩌렁 쩌렁 울리는 지우혁의 목소리.
자신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지우혁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빼죽한 이빨을 드러내 보이며 씨익 웃는 발스락스.
“궂이 죽고 싶어서 두 번이나 찾아왔구나.”
지우혁을 알아본 발스락스.
이미 하나경과 민재는 관심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우, 우혁씨?”
처억.
봉고차와 발스락스 사이를 막아서는 지우혁.
“어서가세요 선생님. 여기는 저한테 맡기시고요.”
“우...우혁씨는 요?”
되묻는 하나경을 쓱 돌아보는 지우혁.
“저한테 데이트 하나 빚지시는 겁니다.”
“네?!”
“아니 그럼, 목숨 걸고 지켜주는데 그 정도도 안 해줘요?”
“아, 아뇨 그게 아니고...!”
“빨리 가 보세요. 처리하고 곧 따라 갈테니.”
그렇게 덧붙이며 씩 웃는 지우혁.
고민하던 하나경이 고개를 끄덕이고 유치원 차에서 내려 민재의 손을 꼭 잡고 지하철 역 쪽으로 뛰어간다.
그 모습을 보던 지우혁, 지하철 역 근처에서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우물쭈물하고 있는 수헌부 요원에게 수신호를 보낸다.
지우혁의 수신호를 알아보고 눈이 커졌던 요원이 이내 비장한 얼굴로 맡겨두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수신호의 내용. 하나경과 민재가 들어간 뒤 방호벽을 닫고 역을 폐쇄하라는 메시지다.
지우혁 자신은 들어가지 못할 것 이란 소리다.
“우습지도 않군. 네가 내 앞을 막겠다 이거냐? 쓰레기 같은 인간 주제에?”
꼴깍깍깍...
채앵!
품속에서 꺼낸 소주병을 순식간에 비워낸 지우혁이 내던진 소주병이 저 멀리 아스팔트에서 부숴져 산산조각이 났다.
“너. 취권이라고 들어 봤냐...?”
“춰권...?”
발스락스가 눈을 번뜩이며 되물었다.
스-윽.
“댐벼 이쟈식아.”
자세를 취한 지우혁이 말마디를 씹어 뱉었다.
‘이거 쏘주 아니네 썩을....’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마시는 순간 깨달았다.
소주병에 담겨있던 것은 소주가 아니었다.
공장에서 찍어낸 소주라기엔 향기로운 내음과 부드러운 혀 굴림. 환상적인 끝 맛까지.
술을 잘 모르는 지우혁이라도 무언가 고급진 술 이란걸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문제는 알콜 도수도 일반 소주와는 비교가 불가능 한 것 같았다.
그저 기분이라도 내 보려고 병나발을 불었는데,
어지간한 술에는 취기조차 보이지 않는 지우혁이 단병에 순식간에 몸을 못 가눌 정도로 비틀거리고 있었다.
“크크크크...크하하하하!! 재미난 쓰레기구나!!!”
비틀거리는 지우혁을 보며 발광하듯 터지는 웃음을 터뜨린 발스락스가 허리를 꺾어가며 웃었다.
그리고 순식간의 정색.
“죽어라.”
파---슝!
소닉붐을 일으키며 음속의 속도를 주파해 날아오는 발스락스의 주먹!
그러나, 이번은 저번 대결과는 전혀 달랐다.
눈이 괴괴 풀린 지우혁.
마치 녀석의 주먹이 일으키는 바람, 에너지의 폭풍우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았다.
마치 드넓은 평원 위에서 낮잠을 자는 듯한 몽롱한 기분.
지우혁의 앞머리가 기분 좋은 바람에 휘날렸다.
저 멀리 따스한 태양이 보였다고 느꼈을 때 즈음.
콰각!!
“으..컥...!!!”
발스락스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발스락스의 주먹을 간발의 차이로 빗겨낸 지우혁의 머리는 허리를 뒤로 굽힌 지우혁 덕에 마치 림보를 하듯 발스락스의 팔목 밑에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발스락스의 몸뚱이를 향해 있는 지우혁의 주먹.
발스락스의 몸뚱이엔 솥뚜껑만한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쩌억!
이내 간신히 붙어있던 옆구리 부분이 찢어지며 뒤로 쓰러져 넘어가는 발스락스의 상반신.
“도...도대체. 커헉...어..어떻....게..쓰레기..같은 인...간!!이..!!!!!”
신음으로 이어가던 발스락스의 말마디.
하지만 그것은 진행될수록 고통이 아닌, 자기보다 열등한 종족에게 당했다는 수치심으로 물들어 있었다.
잘려진 허리에서 힘겹게 타오르는 재생의 불길.
마치 지옥에서 들려오는 비명성처럼 처절한 외침이 울려퍼진다.
“인간!! 따위가!!!!”
콰칙.
지우혁의 발꿈치가, 마치 토마토를 터뜨리듯 발스락스의 머리통을 터뜨린다.
그 모습을 보고, 멀리서 숨어 지우혁을 훔쳐보고 있던 수헌부 요원이 달려왔다.
그도 지우혁과 마찬가지로 죽음의 위협을 감수 한 것 이었다.
성수 앰플을 꺼내 재생의 불꽃을 타올리는 발스락스의 짓이겨진 몸체를 마무리하는 요원.
마른 진흙이 되어 생기를 잃은 발스락스의 동태 같은 눈을 슬쩍 보던 지우혁이 혀를 차며 말 했다.
“꼭, 겉모습만 보고 사람 판단하는 족속들이 큰 코 다치는 거지.”
발스락스로부터 눈을 들어, 저 먼 어딘가로 시선을 던진 지우혁이 중얼거린다.
“그죠? 영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