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
S3 : 30화
기잉-
다그더더덕.
칠성의 팔꿈치에서부터 시작된 기계장치가 빠르게 펼쳐지며 팔을 타고 올라와 펼쳐져 갑옷이 되었다.
각종 기어들과 장치들이 움직여 칠성의 손등을 덮고 손가락들로 뻗어나갔다.
마치 중세의 기사의 투박한 갑옷과 SF영화의 미래형 기계갑옷을 섞어놓은 듯한 기묘한 모습이었다.
약속된 시간이 지나도 칠성이 물건을 찾으러 오지 않자, 장영실 소장이 직접 탑차에 갑옷을 싣고 달려온 것 이다.
차혜진이 칠성의 몸을 덮고 있는 갑옷 들을 레이저 토치를 이용해 용접을 하고 있었다.
“이게 완성형이란 말 이지?”
“네. 마나체인져 1호. 이글입니다.”
“칫! 유치하긴.”
칠성이 허리를 돌려 자신의 몸을 뒤덮고 있는 갑옷을 둘러보며 혀를 찼다.
그런 칠성에게 영실의 당부가 이어진다.
“한 번에 커버 가능한 최대 마나는 28000mmp 예요. 사실은 그게 한계치니까 그거보다 낮게 써야 되요.”
“뭐?! 내가 분명히 28000mmp 이상도 커버해야 한다고 했잖아!”
영실의 설명에 놀란 칠성이 다그쳤다.
“아니 제가 28000mmp를 예시로 말씀 드렸던 건, 고위마법들이 보통 28000mmp 이상의 마나를 사용해서 그런 거라고요. 일반적인 경우엔....”
“그러니까 새꺄!”
칠성이 영실의 설명을 끊으며 버럭 화를 냈다.
“네?”
영실의 입장에선 의아 할 수밖에 없었다.
28000mmp란 마나 수용량은 엄청난 것 이다.
고위마법을 난사하지 않는 이상 문제없는 범위다.
아무래도 마법에 대해 잘 아는 장관이라도 던전 테크놀러지에 대한 지식은 별로 없는 게 분명하다.
“아니, 그게 말이죠. 그러니까 일반적으론 28000mmp를 한 번에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하, 씨바.”
또다시 영실의 말을 끊어먹은 칠성이 저 먼 곳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저 천 더미 같아 보이던 것이, 칠성의 손짓 한 번에 움찔거리더니, 그 밑에서 검은색 석판 하나가 스윽 미끄러져 나온다.
마치 유영하듯 바닥을 헤엄쳐 온 석판이 칠성의 손에 착 감긴다.
폭이 1미터, 길이가 2미터 정도 되는 네모난 석판.
석판을 영실에게 건네는 칠성.
“야. 그 잘난 던전테크놀러지 장비로 이거 찍어봐.”
“이게...?”
“마석이니까.”
마석? 이런 게?
아무리 흑마석 이라고 해도 영실의 상식에, 그리고 학계에 보고된 일반상식적인 마석은 반투명한 고체, 흔히 크리스탈로 비유되는 그런 물건인데.
이 단단해 보이는 석판은 그저 흑연 같은 검은색이다.
칠성의 눈치를 살피며 품에서 휴대용 마나 측정기를 꺼내 석판을 찍어보는 영실.
“1200mmp...?”
자기도 모르게 수치를 중얼거린 영실은 칠성을 되돌아보고, 다시 한 번 수치를 측정 해 본다.
여러 가지 설정을 변경해 보며 몇 번이나 찍어 봐도 마찬가지다.
측정기가 측정한 범위에 찍히는 마나는 1200mmp.
“알겠냐?”
고개를 든 영실을 희멀겋게 쳐다보는 칠성.
“이거....”
측정기의 결과를 토대로, 이 석판 전체의 마나를 계략적으로 추산 해 보면....
“20만...정도?”
수헌부 건물 전체에 방마법 결계를 치는데 들어간 마나가 7만 mmp 다.
그런데 이 석판 하나에 20만 이라고?
“니들이 말하는 단위는 잘 모르겠지만, 그거 정확히 60개가 지금 내 몸에 쌓여있어.”
칠성이 자신의 이를 갈아낼 듯한 기세로 이를 악물고 말 했다.
영실은 그저 충격으로 아무 말도 잇지 못 했다.
그렇다면 칠성의 마나 수용량은 1200만 mmp 이상이란 소리.
실제로 칠성은 지금 자신의 마나가 치솟지 않도록 극도로 신경을 쓰고 있는 중 이었다.
살짝만 잘못 움직이면 성기사들이 심어둔 족쇄가 폭발 할 테니 말 이다.
“그럼 내가 이거 입고 고위 마법을 쓰면 어떻게 되는 건데?”
“그게.... 마나체인져의 수용량 이상의 마나를 변환하게 되면 장치가 과열되게 됩니다. 폭발 할 수 도 있고요.”
“젠장! 폭탄을 입으란 소리구만.”
왜 말을 안 들어 처먹어!
칠성이 분통을 터뜨렸지만, 이건 꼭 영실의 잘못이라고 할 수 는 없었다.
마나 수용량이 12000mmp 인 헌터는, 상식 밖 수준 정도가 아니라. 학계에 보고가 전무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번 상대는 흑마법 만으로 상대하기엔 무리일 가능성이 높다.
기본적으로 흑마법에 대한 저항력이 너무 어마하다.
아쉬운데로 이거라도 챙겨 입어야 할 판이다.
“저기 그리고 이거...”
“뭔데.”
기묘한 헬맷같이 생긴 것을 영실이 드밀었다.
둥근 형태의 투구는 얼굴이 있는 부분은 삼각형으로 빼죽 튀어나온 베젤과 유리 같은 소재로 얼굴까지 가리게 되어 있었다.
마치 조류의 부리가 연상되는 앞모습이다.
이것 때문에 모델명이 이글(독수리)이 된 것 이다.
“‘전신’을 덮어야 한다고 했잖아요. 이거까지 해야 완전한 마나체인져에에요.”
덜컹-.
투구부분이 칠성의 머리에 씌워졌다.
[사용자 체내 정보 확인.]
[환영 합니다 김칠성님.]
[음성 명령 기능이 활성화 됩니다.]
“이건 뭐야?”
투구를 쓰자 어디선가 여성의 음성이 들려왔다.
“마나체인져 보조 A.I 예요. 스마트폰에 있는 음성 명령어 기능 같은 거라고 생각하세요.”
“별게 다 있네. 끝난 거야?”
칠성이 기계 갑옷으로 덮여있는 손아귀를 쥐었다 폈다 해 보며 물었다.
“예, 잠시 만요.”
치이이익-.
용접을 끝낸 차혜진이 물러났다.
장영실 소장이 손에 든 스마트 패드를 갑옷에 있는 포트에 유선으로 연결해 무언가 명령어를 쳐 넣자 갑옷이 한차례 살아있는 듯 꿈틀거린다.
두우우웅-.
취이익, 치익-.
갑옷이 저절로 이리저리 움직이며 칠성의 몸에 맞춰진다.
갑옷에 내장되어있는 패드가 칠성의 몸에 완전밀착 된다.
[파장 일체화에 성공했습니다. 마나체인져가 정상 가동합니다.]
“된 것 같네.”
“예.”
덜컹. 덜컹.
칠성이 전신 갑옷을 입은 채 탑차 밖으로 향한다.
칠성이 밖으로 나오자 집중되는 시선들.
“수호 헌터부 제압 1팀. 계속해서 서울을 돌며 잔존 악마들을 처리한다.”
칠성이 자신을 주목하고 있는 요원들을 보며 명령했다.
“코코. 1팀 사람들을 도와준다.”
한편에 있던 코코를 보며 말하는 칠성.
눈을 마주친 코코가 고개를 끄덕인다.
“난 지금 시간부로, 단독으로 메피스토펠레스를 친다.”
칠성의 말에 화들짝 놀라는 사람들.
하지만 처음부터 이럴 계획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레벨의 적이 아니다.
김규형과도 차원이 다르다.
김규형은 아무리 잘나 봐야 악마와 계약하나 못 맺은 녀석이니까.
“그렇지만 장관님!”
“저희도 돕게 해 주십시오 장관님!”
“아니요, 짐만 됩니다.”
단호한 칠성의 말.
하지만 아무도 반박 할 수 없었다.
방금 전 메피스토의 함정만 해도, 칠성의 대처가 아니었다면 전멸 했을지 살아남았을지 알 수 가 없는 사람들 이었다.
자신들이 끼어들 레벨이 아니란 것 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칠성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은 너무나도 무책임하게 느껴졌던...
“해산!!”
칠성이 손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누구하나 무엇으로던 나서지 못하고 웅성거리기만 했다.
그런 인파들 사이를 헤치고 지나가는 칠성.
“기다려!”
그런 칠성을 붙잡는 한솜이.
“나도 같이 가.”칠성은 말없이 물끄러미 처다 보기만 한다.
“이번엔 다르잖아. 악마 상대하는 건 내 특기잖아. 응? 나도, 나도 데려가.”
아무 말 없이 한솜이의 어깨를 감싼 칠성.
한숨을 푹 쉬더니 말한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데려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너야.”
한솜이의 눈동자가 떨린다.
“그래, 그래도....”
한솜이를 한번 안아주는 칠성.
이상하게도 차갑기만 할 갑옷 너머로, 온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다녀올게.”
인사를 남긴 칠성이 포옹을 풀고 떨어진다.
아무 말도 못 하고 멀어지는 칠성을 보는 한솜이.
“청마나로 변환.”
[파장변화. 청마나.]
위이이잉-.
약간의 소음과 함께 갑옷이 푸른빛의 마나로 타오르기 시작한다.
“*비행(FLY)*!”
칠성의 시동어와 함께 허공으로 느리게 떠오르는 칠성의 몸.
칠성이 한솜이 쪽을 향해 손 인사를 한다.
떨리는 눈동자로 칠성을 보며 손을 흔들어주는 한솜이.
슝,
칠성이 뒤돌아섬과 동시에 칠성을 감싸 안은 바람의 폭풍이 제트비행기의 추진기처럼 발화하기 시작한다.
콰아아아-!
칠성의 몸뚱이가 바람을 찢고 마치 총알처럼 날아가 시야에서 사라진다.
* * *
타타탓!
방공호를 벗어나온 기자 박지민과 박인규는 폐허가 된 서울을 누비고 있었다.
“어, 저거 뭐지?”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쓰러진 사람의 위로 누군가가 쪼그려 앉아 쓰러진 사람의 살피고 있는 것 같았다.
타탓!
그쪽을 향해 달리는 지민과 박인규.
그런데.
“자, 잠깐.”
“왜?”
뒤따라 뛰던 박인규가 달려드는 지민의 어깨를 휘어잡으며 멈춰 세웠다.
“저거....”
하지만 대답은 따로 필요 없었다.
지민이 멈춰 선 순간.
쪼그려 앉아 있던 사람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아니, 그들이 사람으로 착각했던 소악마 임프가 벌떡 일어나 그들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임프의 날개에서 날개를 덮고 있던 점퍼가 떨어져내렸다.
“인간, 잡는다! 노예! 캬르륵!”
“힉!”
순식간에 박인규와 박지민을 따라 잡은 임프.
박지민의 목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때.
“잠, 잠깐만요.”
지민이 말리자 잠시 뻗던 손길을 멈춘 임프.
“지, 지금 우리 말 한 거 아니야?”
“뭐라고?”
지민이 박인규를 되돌아보며 묻는다.
의아한 표정의 박인규.
“크륵...인간의 말...쉽다.”
지민과 박인규 모두 교통사고라도 당한 듯 멍한 표정이 되었다.
악마가, 인간 말을. 그것도 한국어를 해?
이 정신 나간 상황에서 지민이 다음에 한 행동은,
본능이라고 할 수 도 있었고, 천운 이라고 할 수도 있었고, 그냥 순수하게 미친 짓 이라고 할 수 도 있었다.
“서, 선생님. 저기 인터뷰 좀 가능 하실 까요?”
임프의 입가에 드밀어진 지민의 마이크.
‘무슨짓이야!’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은 박인규가 눈으로 책망했지만 지민은 박인규쪽을 돌아보지도 않고 박인규에게 손짓을 할 뿐 이었다.
카메라를 들라는 수신호. 촬영을 하라 이거다.
“오 하나님 아버지....”
입속으로 중얼중얼 거리며 땀에 젖은 손으로 카메라를 조작하는 박인규.
카메라가 악마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이 정신 나간 상황이,
마치 신의 장난처럼 돌아가기 시작했다.
“크륵...인터...뷰?”
임프가 인터뷰에 응대하기 시작 한 것 이다!
“네 선생님. 지구에서는 아주 중요한 사람이나 아주 특별한 사람이 오면 인터뷰를 하거든요.”
“특별...크륵...중요....”
박지민 역시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악마에게 인터뷰에 대해 설명하다니!
하지만 이 우연히 뱉은 단어들의 조합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오랜 기간을 고위 마족들의 도구로 쓰여 온 임프의 무언가를 자극했다.
“중요...한 사람. 인터뷰...한다. 크륵. 크륵.”
“네 선생님... 저희가 가장 궁금한 게....”
이리저리 눈을 굴리는 지민.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지민도 한 가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이 흐름이 끊기면 큰일 난다!
고르고 고른 끝에 질문을 던진다.
“선생님이 어떻게 이렇게 지구로, 또 한국에 오시게 된 건지 그게 가장 궁금하거든요.”
지민이 간신히 임프에게 질문을 던졌다.
키 170cm 부근의 악마는 야생의 맹수같이 위협적이었다. 커다란 야생 호랑이를 인터뷰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미친 짓 이었고, 위압감이었다.
숨이 달달 떨릴 정도로 긴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친절한 미소를 유지하는 지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