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
S3 : 28화
콰카카칵!!
순수한 에너지의 폭풍은 흔히 기상현상에서 볼 수 있는 그것을 닮아있었다.
토네이도, 허리케인 등의 이름이 붙어있는 회오리바람!
“키에에엑!!!”
“캬옥!!”
검신의 뿌리에서부터 시작된 칼날의 바람은 거대한 기둥을 형성하면서 쏘아져 나갔고, 칼의 주인은 바람의 기둥을 마치 채찍처럼 휘둘러댔다.
십 수기의 소악마 군단, 임프들이 날카로운 바람의 형상에 속절없이 썰려나갔다.
“크르르르르륵...!”
몸뚱이가 반절로 잘린 임프의 상반신이 재생의 불꽃을 타올리며 안쓰럽게 기어가고 있는 찰나.
“사격!”
피피피핑!
속절없이 인간의 군대,
정확히는 대한민국 수호*헌터부의 제1 제압팀의 총알받이가 되어 쓰러진다.
“킬킬킬...요거 재밌네. 다음은 불?”
칠성이 수헌부의 2세대 마법검,
엑셀러레이터. 속칭 캡틴 플래닛의 합성 수정으로 만들어진 계기판을 엄지의 버튼으로 조작하며 읊조렸다.
파카카캉!!
“끼엑!!”
그리고 다음순간, 칠성의 예고대로 쏟아지는 불꽃의 비!
레버를 당김과 동시에 칠성의 마나를 빨아들인 캡틴 플래닛이 바로 그 마나를 수 십개의 불덩이로 변환해 적지에 흩뿌렸고,
피격당한 악마들은 불길에 타오르는 것이 아닌, 포탄과도 같은 불덩이에 몸이 터져나가거나 잘려버렸다.
현대 과학이론과는 정면으로 맞서기로 결심이라도 한 듯한, 원소이론 기반의 마법 병기에 속절없이 악마군단의 잔챙이들이 불타올랐다.
그리고 그렇게 휘저어 놓은 전장을 제압팀의 헌터와 요원들이 달려들어 K-이그저스트 탄환을 퍼붓고, 성수를 실은 검격으로 소악마들을 진흙덩어리로 바꾸어 놓고 있었다.
이내 수 십 마리에 달하던 임프 군단의 절반 가까이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캬~! 요거 죽이네.”
심지어 전장을 혼자서 초토화 시키고 있는 칠성은 전쟁 보다는 새로 나온 장난감에 심취한 키덜트처럼 보이고 말이다.
‘잘못 걸렸군....’
그 관경을 보고 있던, 소악마 군단을 지휘하고 있던 메피스토 펠레스의 오른팔 중 하나.
속칭 킹-메이커, 죠죠는 미간을 찌푸렸다.
도대체 어디서 저런 흉측하고 위험한 놈이 튀어나왔단 말 인가.
여러 가지 자신의 패착 원인들이 떠올랐지만, 지략가인 그의 판단에 지금 해야 할 것은 딱 한 가지 였다.
“항복한다.”
“뭐?”
칠성이 죠죠 옆부근에 있던 임프를 캡틴플래닛으로 찔러 얼려버리고, 다시 패널을 조작해 속성을 바꾸어 벼락을 내려 친 뒤의 일 이었다.
자신의 지팡이를 바닥에 내버려두고 양 손을 양 귀 가까이 올린 체 확실히 투항해 오는 마족.
죠죠가 양손을 올리고 항복하는 제스쳐를 취하자, 전장에서 날뛰고 있던 소악마들이 전원 뭣 도 모르면서 죠죠를 따라 양손을 올리고 투항했다.
그들과 대치중이던 수헌부 요원들도 K-이그저스트의 총구를 그들에게 향한 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거기다 이어지는 죠죠의 대사는 더 가관이다.
“지금 당장 역소환으로 돌아가겠다. 적장에 대한 예를 보여 다오.”
“뭐?!”
칠성이 인상을 구겼다.
악마들은 대게가 정신이 반쯤 나가있었다.
이성적인 현대인의 기준에서 볼 때에 말이다.
이토록 이성적인 판단? 하에, 심지어 인간 따위에게 백기를 올리는 악마는 들어본 적 도 없다.
바로 그것이 그를 마계 최고의 지략가로 만든 점이란 걸 칠성은 모르고 있었지만 말 이다.
수 천년의 수명과 압도적인 힘, 애초에 다른 생명체는 자신들의 노예 이상으로 보지도 않는 거만함.
목숨보다는 자존심을 챙기는 고위 마족들.
자존심 보다 이성적 판단을 앞에 두는 것만으로도, 죠죠는 충분히 마계 최고의 지략가가 될 자질을 갖춘 셈 이었던 것 이다.
“애초에 귀공같이 뛰어난 수호자가 있다는 걸 알았으면 침공 자체를 하지 않았을 것 이네. 우리의 실수다.”
거기다 입에 발린 상대방을 띄워주는 사탕발림까지.
칠성은 당황해서 죠죠를 노려보듯 훑어보며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곤 캡틴플래닛의 가드부분으로 자신의 이마를 긁고 있었다.
“뭐? 너 마족 맞냐...? 아니 그 보다도, 싫은데?”
“?!”
“지금 니네가 쳐들어와서 끼친 피해가 얼마고, 사람이 얼마가 다친 지 알 수 가 없는데 이제 와서 적장의 예의? 뒤질래?”
“뭐. 뭐라...?”
죠죠가 눈에 띄게 당황했다.
눈을 끔뻑거리며 귀 뒤론 식은땀이 흘렀다.
“아, 아니... 그깟 노예들 몇 다친 게 그리 대수인가? 그런 것 보다는...”
죠죠 입장에선 너무나도 상식적인 대화였고 질문이었다.
아무리 이성적 판단을 앞에 둔다는 죠죠 조차도, 고위 마족 특유의 종족적 거만함에서 자유일 순 없기에.
하지만...
피-슉.
“계속 지껄이든가.”
그 대화를 들을 상대, 칠성에겐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내용임이 문제였지만 말 이다.
칠성이 찔러들어간 캡틴플래닛의 검신이 죠죠의 목에 작은 흠집을 내었다.
자신의 목옆에서 떨리는 검신이 느껴지는 죠죠.
마법으로 된 냉기가 목에 난 얇은 상처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꿀꺽.
죠죠가 긴장해서 침을 삼켰다.
“아...니, 귀공...의. 백성..? 들을....”
그의 상식선에서 최대한 머리를 굴려 변명을 짜내고 있었다.
하지만 노예가 아니라 백성이라고 쳐도, 왜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지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죠죠.
어차피 백성도 이름만 다른 노예일 뿐, 한 닢 금화보다 미천한 존재들이 아닌가?
분명 인간들의 왕도 그런 그의 상식과 일맥상통할 터 인데.
어째서 칠성이 화를 내는 건진 알 수 가 없었다.
털썩.
하지만 역시나, 판단과 행동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다.
“내, 내 이렇게 무릎 꿇고 사죄한다! 진심으로 미안하다!”
순식간에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비는 죠죠.
“허.”
빠르고만. 빨라.
“목숨만 살려다오. 난 이 모든 것에서 빠지겠다!”
“그걸 내가 어떻게 믿냐? 메피스토도 배신하겠다고?”
“애초, 배신이랄 것 도 없는 관계다.”
어차피 반 푼이 녀석, 마계의 끝으로 추방당할 때부터 오래 함께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내가 너 살려준다 치고. 넌 나한테 뭘 해 줄 수가 있는데?”
“뭐, 뭐시라...?”
칠성의 분위기가 변했다.
의미심장하게 씨익 웃으며 칼날로 툭툭 죠죠의 목줄기를 건들이는 칠성.
“아니 뭐, 줄 거 없으면 너 죽여서 마석이나 빼서 쓰게.”
마치 짐승처럼 크르륵 대는 칠성.
“응? 탐스러워 보이는데.”
전혀 농담 같지가 않다.
‘악마다...!’
죠죠는 사실 이정도로까지 일이 더럽게 풀릴 줄은 몰랐다.
‘이 녀석은 진짜 악마야...!’
비유가 아닌 진짜 소악마 군단을 부리는 마족인 죠죠, 인간들이 ‘악마’ 라는 표현을 어떨 때 사용하는 건지 이번기회에 몸소 정확히 배우는 중 이었다.
방법이 없다.
역소환 마법에 준비시간이 걸리는 건 둘째 치고,
아무리 킹메이커라고 해도 상대방이 목에 칼날을 들이민 상태에서 무사히 탈출하는 건 불가능하다.
“크윽...”
반쯤 본인이 자처한 상황에 탄식하는 죠죠.
칠성이 이렇게까지 할 줄 알았다면 투항하기 보단 진즉 두 발로 뛰어서라도 도망쳤을 것 이다.
별 수가 없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조, 좋다... 그럼 이런 건 어떤가. 내 목숨을 사겠다.”
“응? 뭘로.”
그러면서 품속으로 손을 가져가는 킹메이커.
“잘 꺼내라.”
칠성이 씨익 비뚫어진 미소를 덧붙였다.
“기회 한 번 준다, 꺼낸 게 마음에 안 들면 바로 모가지야.”
“크읏....”
킹메이커가 인상을 찌푸린다.
적당한 거 쥐어서 보낼려고 했더니....
“후.”
한번에, 그 어떤 마법사라도 무엇을 걸고서라도 침을 흘릴만한 물건.
한숨을 내쉰 킹메이커가 넣던 손을 빼고 반대쪽 손을 처음과 다른 주머니로 넣어 무언가를 꺼낸다.
검은 묵빛, 반지 케이스 같은 것 이다.
“음? 그게 뭔데.”
아직까지도 자신의 목에 칼을 드민 칠성이 묻자 조심스럽게 케이스를 열어 보여주는 죠죠.
반지 케이스 같은 케이스가 아가리를 벌리고,
안에 들어있는 것은 투명해 마지않은, 마치 유리같아 보이는 구체.
보라색의 빛으로 이루어진 홍체가 빛나고 있는 작은 공 같은 물건이다.
그 물건은 이세상의 것이 아닌 듯, 유리같이 투명함은 물론, 마치 해파리 같이 흐물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공기처럼 가벼워 보였다.
“주문 추적자... 속칭, ‘마왕의 눈’ 이다.”
“뭐?!”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른 칠성.
“이...이게 진짜? 네가 이런 걸 왜 갖고 있는 거냐?”
케이스를 받아든 칠성이 되묻자 죠죠가 한숨을 푹 내쉰다.
“...아깝게 됐군, 이런 반응일 줄 알았으면 조금 덜 한 물건을 꺼내도 될 법 했는데.”
그의 별칭은 킹 메이커.
메피스토와 군단이 땅끝으로 추방되기 직전까지 죠죠의 인맥과 커넥션은 마계 최강의 수준이었다.
그것이 설사 전 우주를 통틀어 희귀한 보물이라고 해도, 그의 손에 넣는 것이 불가능은 아니었다.
마왕의 눈의 경우 그에게 꼭 필요한 물건은 아니었지만, 지금과 같이 마법사등을 상대할 때 협상의 카드로 쥐고 있기 위해 간직하고 있던 물건이다.
일종의 와일드카드. 게다가 특성까지 완벽하다.
“지금 계약서를 쓰면 이식 해 주겠다.”
죠죠가 도와주지 않으면 사용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물건.
“아차, 이거 영혼병기였지.”
흠. 아리까리한 표정으로 마왕의 눈을 관찰하는 칠성.
칠성이 말을 알아듣자 바로 허공에서 나타나는 어둠의 계약서.
작성을 하려던 죠죠가 칠성에게 묻는다.
“귀공의 이름은?”
“김칠성. 흑마법사 김칠성이다.”
“흑마법사 김칠....”
계약서를 채워가던 죠죠가 문 듯 고개를 들어 칠성을 본다.
“설마 판브르크 대륙의 흑마법사 김칠성 말인가?”
“음? 그렇다. 왜.”
“허...!”
허탈한 표정의 죠죠.
이제야 모든 게 설명 되었다는 표정이다.
“그렇군, 아니. 자네가 왜 이런 외딴곳에 있나?”
어지간한 정보는 모두 머릿속에 집어넣어두는 죠죠이기에 칠성의 행적역시 잊을 리 없었다.
물론 다른 차원에서 일어난 일을 그가 자세히 알 필요는 없지만 말 이다,
칠성의 경우엔 별개였다.
일전에 마계가 심각하게 혼란스러운 틈을 타,
마신의 관을 얻고 마신의 자리를 탐한 망나니가 있었다.
물론 죠죠생각엔 그따위 녀석이 마신의 관을 얻게 된 것 부터가, 원로원이라는 조직이 얼마나 이름뿐인 천치들 인가를 보여주는 일 이었지만 말이다.
녀석은 아니나 다를까 마신이 되자마자 마계의 수호신이란 본분을 망각하고 다른 차원을 정벌한다며 정신 나간 마법사의 계약에 응해 뛰쳐나갔다.
심지어 차원 이동으로 자신의 힘이 채 돌아오지 않은 것을 간과하고, 정벌 간 세계에서도 혼자 뛰어다니며 망나니짓을 하다가 한 흑마법사에게 죽임을 당했다.
“...뭐, 이래저래 사정이 있었지만. 일단은 고향이다.”
김칠성에게 말이다.
그 모든 것이 놈이 마신의 지위에 오른 지 고작 3일 만에 일어난 일 이었다.
‘마계의 수치’ 로 불려도 이상할 게 없다.
“...그렇군.”
새삼 김칠성을 바라보는 죠죠의 눈빛이 변해 있었다.
확실히 탐이 나는 재목이다.
킹메이커인 그의 눈에 말이다.
아무리 ‘마계의 수치’ 라고 불린 ‘3일천하’ 사건의 주인공인 놈이라고는 해도,
마신의 관을,
아무것도 모르는 여섯 살짜리 아이라도 쓰고만 있으면 대현자를 벌레 눌러 죽이 듯 짓이겨 버릴 수 있다는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마신의 관을 가진 상대였다.
그런 상대로 분전해 이기기까지 하다니.
칠성을 바라보는 죠죠의 눈에 담긴 것 중 일부는 약간의 존경심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