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무집행 흑마법사-72화 (72/145)

# 72

S3 : 27화

과연 그랬다.

노숙자의 겉모습을 보고서 녀석들은 완전히 자신들의 하수로 판단했고, 그렇기 때문에 변변한 반격이나, 항복의 기회 조차 잡지 못 하고 저렇게 아스팔트에 쳐박히게 되었다.

“네놈은 뭐 다른 줄 알어?”

노숙자가 슬쩍 고개를 뒤로 돌려 지우혁을 바라보며 말 했다.

이상할 정도로, 방금 전 까지 와는 다르게 술주정뱅이의 주정이 아닌, 귀에 또렷하게 박히는 목소리였다.

“너 내가준 약 안 먹었지?”

“!”

놀란 눈으로 노숙자를 보던 지우혁.

혀를 차는 노숙자를 뒤로하고 잽싸게 몸을 돌려 계단을 탔다.

“휴!”

다행히 잔디밭을 찾아 뒤지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공 같은 것을 감싸 안고 있는 흰색의 한지덩어리를 쉽게 발견 할 수 있었다.

“커후...냄새는 진짜.”

한지포장을 벗겨내자 예의 악취가 몰려온다.

비주얼도 예의 그 비둘기 토사물을 뭉쳐놓은 듯한 형태다.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지는 지우혁.

하지만 아까와는 다르다.

그 역겨워 보이는 단을 입에 집어넣고 우거지상을 쓰며 억지로 씹어 삼키는 지우혁.

“헛?!”

그리고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머리 끝 까지 올라오는 기운.

“뭐야...이거.”

올림픽 국가 대표들이 간혹 사용하다 걸린다는 불법 약물을 섭취하면 이런 느낌일까?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떨려서 열을 내는 기분.

거기다가

“어...어라?”

이상한 기분에 몸에 난 상처들을 손으로 짚어보니 분명하다.

환단을 씹어 삼키고 고작 이, 삼분된 그 짧은 사이에 이미 몸 곳곳의 상처가 전에 없이 호전 되어 있었다.

“허... 한약 같은 건가?”

기운이 솟아오르는 의문의 환단.

문비아 무협지 독자들 이라면 눈을 반짝반짝 빛낼 물건이었으나, 아이러니 하게도 당사자인 지우혁은 관련 지식이 전무 한 지라 어리둥절할 뿐 이었다.

하여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젠장.”

지우혁은 잽싸게 달리기 시작했다.

계단 위를 오른다.

자기 자신도 마찬가지 였던 족속이었던 것 이다.

세상 사람들이, 변해버린 친구들이, 가족들이, 친척들이.

다른 궁금한 점은 없이 자기의 직업이나, 연봉부터 물어보던 소개팅녀들이!

자신의 본질이 아닌 겉모습만 보고 평가한다고 불만을 가졌었다.

하지만 자기 역시도 본질을 보지 않고,

겉모습으로만 사람의 모든 것을 평가하는 눈먼 장님이 아닌가!

“제자로 삼아 주십시요!”

스승 된 재목도 몰라보고 말이다!

“에헤? 미친놈 보게. 그세 약을 처먹었나?”

어느새 평소의 술주정뱅이로 돌아와 있는 노숙자가 자신의 앞에 엎드려 있는 지우혁을 보고 말했다.

“길 막지 말구 비켜 시캬.”

“예? 아 예!”

지우혁이 잽싸게 비켜나자 깨어진 유리창, 나간 전등불 등. 반쯤 폐허가 되어있는 24시간 편의점으로 향하는 노숙자.

지우혁도 뒤를 따라 들어간다.

* * *

다시 제 4 쉘터 (방공호).

열차의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우르르 내린다.

요원들에 의해 쉘터 안으로 인도되는 인파.

“친구 손 꼭 잡아야 해요!!”

그 사이에 한때 지우혁과 썸씽이 있기도 했던,

지우혁의 거짓말을 알고 나서 매몰차게 차버린.

지금은 그토록 본인이 원하던 유치원 선생님이 된 하나경과 동료 유치원 선생님들.

그리고 유치원 원아들이 있었다.

“어디로 나가야 하는 거야?”

“이쪽!”

사람들 사이로 빠져나가는 박인규와 박지민 기자가 보인다.

행렬을 역으로 빠져나가는 이상한 사람들에게 잠시 시선을 주다가 다시 아이들에게 집중하는 하나경.

“참새!”

“짹짹!”

겁에 질린 아이들을 집중시키기 위한 방도였지만 반쯤은 이미 울먹거리느라 구호를 제대로 하지도 못 한다.

어렵사리 아이들을 이끌고 쉘터로 들어와 인원점검을 할 때 였다.

“하선생님!”

“네?”

“민재 어디 있어요?”

“네?!”

사색이 되어 아이들을 돌아보는 하나경.

정말로 하나경 반의 남자 아이인 민재가 보이지 않는다.

“민재애... 차 못 탔는데에...아까부터 내가 말 했는데에....”

여자애 하나가 울먹거리며 말 한다.

민재의 짝꿍이다.

지하철 역 까지 달려온 유치원 봉고차.

그 차를 못 탔다는 소리다.

“뭐라고? 왜? 왜 못 탔는데?”

이상하다 아이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태웠는데?

“민재 화장실 갔어요....”

“왜! 왜 선생님 말 안 들었어. 화장실 선생님한테 말하고 가야된다고 했잖아!”

“저는 가면 안 된다고 했어요....”

히끅 히끅 숨이 넘어가는 여자아이가 간신히 말한다.

“잘못했어요....”

여자아이가 눈물을 쏟자,

자기도 모르게 아이에게 화를 낸 하나경이 깜짝 놀라 아이를 안아주며 도닥인다.

“아니야 아니야, 희연이 잘못한 거 없어요.”

“어떡하죠?”

“저분들한테 얘기를 해야죠!”

그 틈에 자기들 끼리 결론을 내린 다른 선생님들이 수헌부의 요원을 불러 세웠다.

말 하는 것을 들어보니 어딘가에 신고를 해 준다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난리통, 아이를 제대로 챙겨 줄 사람이 있을지 걱정이다.

하나경의 가슴이 타들어 간다.

하나경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

하나는 유치원 차량의 보조키.

그리고 또 하나는 반쯤 녹은 초콜릿.

‘선생님 드세요.’

반짝반짝한 눈으로 건네던 민재의 모습이 그려진다.

유난히, 이상할 정도로 잘 따르던 아이다.

욱, 하고 올라오는 감정을 입을 앙 다물어 막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경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내 탓이다.

하나경은 그 때 자신이 인생의 어떤 분기점 아래에 서 있다고 느꼈다.

민재가 잘못되면 자신은 제대로 살아갈 수 없게 될 것 같은 기분.

사고였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라고 그때 가서 말해도 변명이다.

“선생님 어떻게 해요...?”

희연이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물어온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하나경이 한쪽 무릎을 꿇어 희연이의 눈높이를 맞추고 말 했다.

“걱정하지 마. 선생님이 민재 데려올 거야.”

“선생님이요...?”

눈이 땡그래지는 희연이.

하나경 자신도 눈물이 금방이라도 터져 폭포수처럼 흐를 것 같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민재를 봐야한다.

“여러분! 난초반 선생님 말 잘 듣고 있어야 해요! 알았죠?”

“네에!”

하나경의 개나리반 아이들이 대답한다.

지하철역으론 두 정거장.

거기까지만 뛰어가면 차를 탈 수 있다.

너무나도 위험한 상황인 건 알지만.

민재는 더 위험하다.

가만히 있는 건 자신이 견딜 수 가 없다.

누가 봐도 연약한 솜사탕 같이 생긴 하나경이지만.

힘을 내야한다.

그래서 갈라지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 했다.

“애들 좀 봐 주세요 선생님.”

“네?”

“민재 데려 올게요.”

그렇게 말 하곤 잽싸게 인파들 사이로 뛰어 들어가 사라지는 하나경.

“네?! 선생님!!”

* * *

편의점.

찰그랑 찰그랑.

노숙자가 잔뜩 산 것은 소주와 막걸리였다.

쇼핑 카트가 되어 양 손 가득히 소주와 막걸 리가 들어찬 봉지를 들고 뒤따르는 지우혁.

노숙자는 품에서 만원짜리 몇 장을 꺼내 아무도 없는 편의점의 카운터 위에 버리듯 던져둔다.

“돈은 왜 내요?”

“어허. 남에 거 공짜로 탐 하는 거 아니다 이눔아.”

“...내건 공짜로 잘만 가져가 놓으시곤.”

“어허! 이자식아. 그건 목숨값!”

제법 요상한 도덕관의 노숙자.

어깨를 으쓱 해 보이고 따르는 지우혁.

다시 다리 밑, 노숙자의 텐트근처.

“마셔라.”

잔에 따라주는 것 도 아니고, 소주병을 하나 까 그대로 건내는 노숙자.

“예?”

찌푸리는 지우혁.

“무술 가르쳐 달라매 시캬. 실전이 최고여.”

“예?”

아니, 무슨 놈의 무술이 술을 먹는 게 실전이란 말 인가?

하여간 시키니까 먹기 시작하는데, 여러 가지의 이유로 술이 상당히 센 지우혁.

“아~~진짜 이제 노노 그만.”

“껄껄걸 이놈 면상 벌게진거 보소.”

만류하는 지우혁에게 계속 소주를 들이미는 노숙자.

내리 12병을 스트레이트로 꼽아 넣으니 지우혁도 비틀거리기 시작한다.

“야이 개쉬키야.”

갑작스레 뺨을 내리치는 노숙자.

“어이고.”

뺨을 쥐고 쓰러지는 지우혁.

“댐벼 이시캬.”

누워 쓰러진 지우혁을 손으로 굴려버리는 노숙자.

구르던 지우혁이 간신히 고개를 쳐들자 발로 얼굴을 차 다시 쓰러뜨린다.

“아 이게 무슨 짓이에요 영감님~~~!”

“댐벼 이시캬. 실전이야 실전.”

“아 진짜 이게 무슨 실전이야!!”

정말 없어 보이는 실전 대련을 펼치는 두 사람.

아니 도무지 무술의 전수과정이라고는 볼 수가 없는 진상스러운 풍경이다.

두 꾀죄죄한 노숙자가 머리채를 잡고 싸우며 바닥을 구르는 모습이다.

덤벼들면 빰따귀를 때리고,

반격하려면 불알을 치려고 하고,

그럴싸한 그라운드 기술은커녕 귓불을 비틀어 댕기는 등.

정말 너무 볼품없어 보이는 싸움이다.

“아, 괜히 했어. 아!”

지우혁이 죽는소리를 한다.

한참이나 굴렀을 즈음.

기묘한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거의 무심결에,

지우혁이 뻗은 주먹이 제대로 노숙자의 코끝까지 들어간다.

비틀거리기 바빠서 제대로 된 타격 근처도 못 갔었던 것들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다.

더불어 지우혁이 무언가를 제대로 했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순간.

노숙자의 태도도 바뀌어 진지한 대련으로 분위기가 바뀐다.

여전히 서로 비틀거리며 허공을 휘적대는 것으로,

남들이 보기엔 여전히 술 취한 진상 둘의 싸움으로 보일지 모르겠으나, 대련에 임하는 두 사람에게만은 이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제대로 보였다.

마치 바람결과 같은 움직임들.

흐르는 에너지를 타고 지우혁의 손, 발. 아니 사지가 춤추듯 움직인다.

마치 우아한 스포츠 댄서처럼, 파트너인 노숙자 역시

물결과 같은 동작으로 응대한다.

마치 꿈을 꾸는 듯 한 대결.

전신에서 땀이 흐른다.

그리고 그 흐름에 한참이나 몸을 맡긴 두 사람.

‘쩝, 내 대에서 끊기는 것 보단 낫겠지.’

이 시대 마지막 남은,

취권의 유일한 전승자.

태극 문파 출신의 무술가.

취룡醉龍 하원준은 속으로 그렇게 읊조리는 것 이었다.

* * *

“흐에에엥!!”

도로 근처의 놀이터.

노란색 병아리 같은 옷을 입은 유치원생 하나가 울고 있다.

“흐음....”

그 모습을 살피던, 수상하게 생긴 남자 하나가 유치원생에게 접근한다.

“얘야... 부모님 잃어 버렸니?”“네...?”

난리통에 생기는 치안의 공백.

검은 속내를 가진 이 들이 본심을 드러내기 쉬운 시간.

“자...아저씨랑 갈까?”

유치원생의 불안한 눈.

혼란스러운 와중, 자신에게 손을 내 밀어 준 남자의 손을 잡으려는 순간.

“김민재!”

어디선가 들려오는 날카로운 목소리.

덜컹!

유치원 차에서 내려 나오는 것은 선생님인 하나경이다.

땀에 푹 절어 보송보송했던 앞머리가 축 쳐져 떡진 하나경. 매서운 눈빛으로 민재에게 접근하던 남자를 노려본다.

“선생니임....”

“선생님이 모르는 어른이 따라오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었죠?!”

“따라가면 안돼요...”

겁에 질려 대답하는 민재.

그런 민재의 손을 남자에게서부터 휙 낚아채는 하나경.

남자를 코 앞에서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본다.

“들으셨죠? 따라가면 안 돼는 거래요.”

“아니 나는 그냥 애가 혼자 있길래...칫!”

하나경과 민재를 번갈아 보며 상황을 살피던 남자가 변명도 그만두곤 김샜다는 듯 혀를 차고 돌아간다.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진 않은 모양이다.

남자가 골목을 돌아 사라지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긴장이 풀린 하나경.

“휴!”

“선...선생님... 잘못했어요...저가... 말을 안 하고 화장실에 가서....”

민재는 알아서 자신이 잘못 한 것을 시인하고 있었다.

아무 말이 없던 하나경, 두 무릎을 꿇고 민재를 와락 껴안는다.

“선생님 걱정했잖아!!”

“선생...님?”

하나경의 눈에서 그제야 눈물이 왈칵 흘러내린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가며 자신을 품에 안고 엉엉 우는 하나경을 의아하게 보던 민재.

작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선생님의 옆구리를 토닥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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