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무집행 흑마법사-70화 (70/145)

# 70

S3 : 25화

바아아앙!!

비어있는 차선을 내달리고 있는 커다란 탑차.

흰색의 화물차의 화물칸 위에는 커다란 롱소드와 원핸드 방패, 방어구까지 철저하게 챙겨 전신을 무장한 수헌부 제복의 헌터가 올라타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탑 차가 지나는 도로의 양편에는 여기저기 불타는 자동차나 편의점. 분수처럼 물을 뿜어 올리고 있는 소화전.

저 멀리 어디선가부터 들려오는 비명소리나 발포음 등이 혼란에 빠진 도심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탑차의 양쪽엔 역시 수헌부 제복을 입고 K-이그저스트로 무장한 요원들이 한쪽에 두 명씩 매달려 있었고, 운전석엔 특수 상황을 대비해 훈련을 받은 운전수가 시선은 끝없이 전방과 미러들을 번갈아 보며 매섭게 엑셀을 밟으며 핸들을 이리저리 조종했다.

앞에 무언가가 나타나자 운전수가 입술을 핥는다.

스우우웅!

앞쪽에 나자빠져 있는 사고 차량을 탑차가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유연하게 돌아 지나간다.

그리고 이런 탑차의 화물칸의 속.

밝은 LED 전등의 조명처리가 되어있는 탑차 화물칸안. 마치 자그마한 연구실 같은 모습이다.

“어어어!”

“집중해! 집중!”

비틀거리는 여자 연구원을 다그치는 것은 장영실 연구 소장이었다.

그들은 탑차 가운데 배치해 둔 기계장치가 가득한 물건을 조립하는 중 이었다.

“자자! 이 부분만 연결하면 되니까. 어서!”

“이씨! 이런 걸 왜 나를 시켜요!”치지지직!!

그녀가 쥐고 있는 레이저 건에 불이 들어옴과 동시에 갑옷에서 용접의 불꽃이 일어났다.

차혜진이 이를 악물었다.

그녀 입장에선 용접을 할 줄 아는 바람에 이 곤욕을 치르는 것 이었다.

이것도 아버지가 용접공인 덕 이었으니 죄라면 연자죄라 하겠다.

원래라면 기술자를 불러서 해야 할 작업이었으나,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럼 어떡해! 기술자가 있다고 쳐도 이걸 이해시킬 시간이 없다고.”

그것도 둘째 치고 달리는 차 안에서 용접을 하라하면 다들 내 뺄 것 이다.

“아씨! 저번에도 이런 식으로 이용당한 것 같은데!”

성을 내면서도 할 일은 다 하는 차혜진.

밖으로 드러났던 기계장치들이 몇 번의 작업으로 내부로 모습을 완전히 감추었다.

이제 누가 봐도 완연한 갑옷의 형상을 갖춘 물건.

마치 매우 투박한, SF 영화 속의 슈퍼아머 같은 모습이다.

“그래서 이게 뭐라고요? 알고나 만들자.”

마무리 작업을 하며 차혜진이 물었다.

“마나체인져!(Mana-Changer)”

“아씨, 유치해. 소장님이 지었죠?”

직관적이고도 해석의 여지가 없는 이름.

누가 봐도 장영실 소장의 스타일이다.

“당연하지!”

칭찬으로 아는지 엄지를 치켜들어 보이는 장영실 소장.

“익히는 기술이나 마법에 따라 마나의 색깔이 달라지는 건 알지? 그리고 해당 계열 마법은 해당 색깔의 마나로만 발동 되고. 서로 다른 계열을 섞어버리면 불적응 현상이 일어나고.”

자연을 위해 헌신한 청마법사만이 위대한 자연 원소의 힘을.

신을 경배하는 자 만이 성마법을.

죽음을 존중하는 자 들 만이 흑마법을.

모든 마법사들의 한계점이자,

그렇기 때문에 해당 분야의 절정고수가 인정받게 되는 근간.

어떤 세계에서든 통용되는 우주의 섭리!

불적응 현상이란 이러한 경계를 강제로 뛰어 넘으려 했을 때 빠져 들게 되는 심각한 폐인상태, 일종의 주화입마 같은 것 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장벽을 뛰어넘게 해 주는 게 바로 마나체인져란 말이야. 마법사들끼리는 청마나니, 흑마나니, 부르지만 던전 테크놀러지에서 바라보는 관점은 달라.”

“알아요 알아! 으! 설명 충 극혐! 결론만!”

“우리가 보기엔 별 차이가 없거든! 1000mmp(밀리마나포인트) 의 청마나는 1000mmp 의 흑마나와 똑같아!”

“으으~~”

설명을 요구했던 차혜진은 이미 던전 테크놀러지 덕후다운 장영실의 설명에 질색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용접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색깔 구분조차도 마법사들 눈 에나 그렇게 보이다 하는 것 이지, 우리 눈에 다른 것은 오로지 파장의 형태! 바로 이거다 싶었던 거지.”

하지만 자기의 연구 성과에 대해 말 할 때만큼은 이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은 눈치 없는 팔불출이 되는 장영실은 신이 나서 설명을 계속 이어갔다.

“착용자 몸에 패드를 연결해 사용자 몸에서 나오는 마나를 원하는 파장으로 전환시켜주는 장치! 그게 바로 이 마나체인져인 거야.”

차혜진이 용접을 하던 손길을 거두고 보안경을 들어 올리며 묻는다.

“그래서 누가 만들어 달라 했는데? 이딴 무식 한 걸?”

땀으로 차있던 보안경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장갑을 낀 손등으로 닦는다.

차혜진의 일침 같은 질문은 던전 테크놀러지에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는 연구원이라면 당연히 할 만한 질문이었다.

나름 지식인들이라고야 하지만 뻑 하면 지식보단 감성으로 접근 하는 게 일쑤인 마법사들이 읊조리는 마나 색의 차이가 사실은 파장의 차이에 지나지 않다는 것 은 이쪽 계통의 상식이었고,

지금까지 그걸 변환할 기술이 없었던 것 도 아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마법들은 고만고만했다.

계열을 따지지 않고서 말이다.

마법도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저마다 극단적으로 다른 특색이 나타 난다고야 하지만,

수 없는 레이드 결과 그렇게 많은 마도서가 발견되었음에도 불구,

마법사들이 현재 실제로 사용 하고 있는 마법 주문은 밝혀진 것의 1%도 채 되지 않았고,

던전 테크놀러지를 통해 구현한 것 역시 10%를 넘지 못했다.

한 분야에서 중급마법을 쓸 수 있는 마법사조차 전 세계적으로 드물었다.

예컨대 청마법, 흑마법, 녹마법, 적마법, 성마법, 소드 익스퍼트 등급의 무술까지 죄다 중급 이상의 수준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상상속의 괴물이 실존한다면야 모를까.

억지로 마나를 변환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도 모르는데 위험을 감수하면서 쓸모없는 애물단지를 만들 필요가 없었던 것 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애물단지를 이 고생을 해서 왜 만드냐고 따지는 차혜진이야 당연했다.

“이딴 게 누구한테 필요한데?”

장영실의 설계를 보며 허탈한 웃음을 내뱉는 차혜진.

그 질문에.

조심스럽게, 자기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안경을 쓸어 올리며 대답하는 장영실.

“우리 장관님한테.”

깜짝 놀란 차혜진과 장영실의 눈이 마주친다.

“정말?”

“...정말.”

무언가, 연구자 이전에.

합체 로봇의 필살 합체를 기대하는 초등학생 같은 기대어린 미소. 장영실 소장의 입 꼬리가 달싹인다.

* * *

피칙-크! 자각! 자각! 자각!

호치케스 라고도 불리는 스테이플러를 박아 넣는 소리 같았다.

“앗! 아응....”

신음을 흘리며 인상을 찌푸리는 한솜이.

수헌부 서포트팀의 의무요원이 마치 LED 패널이 달린 흰색의 스테이플러 같은 장비로 한솜이 팔에 난 상처를 꿰매고 있었다.

악마의 손톱에 긁힌 상처였다.

길게 그어진 검상 같은 상처는 왼쪽 팔꿈치 위의 안쪽 부분부터 죽 찢어져 내려왔다.

“읏...”

의무요원의 장비가 자그닥 거리는 소리와 함께 지나갈 때 마다 단백질 실로 순식간에 꿰매어 지는 상처.

상처로부터 시선을 돌리며 아랫입술을 깨무는 한솜이.

“응급처치는 끝났지만 절대로 무리하시면 안돼요.”

의무요원이 상처 위로 쿨링 젤을 발라주며 말 한다.

“네에...”

힘없게 대답하는 한솜이. 그때였다.

“다쳤어?!”

갑자기 불쑥, 의무차량의 모서리에서 튀어나와 묻는 칠성.

“아뇨, 별로.”

한솜이는 상처를 손으로 감싸며 눈을 피한다.

“아니기는!! 많이 다쳤네!”

그러거나 말거나 가리는 한솜이의 팔목을 낚아채 상처를 확인하는 칠성.

그 순간, 복잡한 감상에 빠지는 한솜이.

문득, 익스플로전으로 인한 테러 현장에서 자신을 들쳐 엎던 김칠성의 등이,

안희운전에 마치 백마탄 용사처럼 등장하던 칠성이.

그리고 날카롭게 끼어드는 목소리.

‘사람이 수준이 맞는 사람이랑 사귀어야죠.’

김주희의 경고 아닌 경고에 느꼈던 수치심.

자신의 팔의 상처를 살피며 걱정어린 시선을 보내는 칠성의 모습이 슬로우 모션같이 눈에 박혀든다.

그리고 떠오르는, 그 날 라운지에서 키스를 하고 있던 김주희와 김칠성.

결국 혼자 착각이었는데.

관심도 없는 여자한테 왜 이러냔 말이다.

“내가 다치던 말든 무슨 상관인데요?”

어라, 한솜이는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뱉고 말았다.

이렇게까지 공격적으로 말할 건 아니었는데?

아차 싶은 순간.

“걱정 되잖아!”

버럭 화를 내는 칠성.

“그러니까. 김칠성씨가 왜 제 걱정을 하는데요?”

이상하게 싸움이 붙었다.

“아..아니!! 팀원이 다쳤는데 그럼 걱정을 안 해?!”

당황한 칠성이 정론을 펼치며 둘러댄다.

“참 나, 여기 다친 사람 투성이거든요? 저기 저쪽 아저씨는 다리가 없어졌네.”

한솜이가 입술을 비죽이며 저쪽으로 손가락질한다.

한솜이의 손 끝 방향을 따라가서 보니 여러 명의 의무요원이 달라붙어 응급처치중인 환자가 보인다.

“끄아아악!! 으오아악!! 사람 죽는다!!”

정말로 한쪽 다리가 잘려있는 남자 요원의 다리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아오르고 있다.

누가 봐도 팀원 걱정이라면 저런 사람을 놔두고 조금 찢어진 한솜이 걱정을 하는 게 말이 안 된다.

“허허...참 그게.”

민망함에 귀 뒤를 긁적이는 칠성.

그 장면을 지켜보던 칠성과 한솜이가 다시 서로를 본다.

“아니, 그럼 나는 한솜이씨 걱정도 하지 말라 이거에요?!”

“네에! 그러세요!”

기싸움이 기세를 탓고 둘 모두 쌍심지를 켜고 덤빈다.

“아 좋아! 그럽시다! 어? 아는 척은 뭐하려고 하나? 그냥 서로 남남 해!”

홧김에 뱉은 칠성.

“그래요! 같이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보지 맙시다!”

질세라 되받아 치며 눈을 흘기는 한솜이.

“흥!”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두 사람이 과장된 콧방귀와 함께 팔짱을 끼며 서로 고개를 돌린다.

‘하이참 나, 이게 아닌데.’

그리고 그 잠깐의 순간, 알 길 없는 초조함을 느끼는 칠성.

이상하게 이 여자랑 말만 하면 이딴식이야!

그리고 흘깃, 한솜이 의 안색을 살피는데.

이상하게 눈에 들어오는 한솜이의 입술.

엷은 틴트만 발려 있는 입술이 유달리 촉촉하고 폭신해 보인다.

“에이씨!”

촙.

한솜이의 입술을 덮치는 김칠성.

“미, 미쳤어요?!”

순간 당황했다가 밀어내는 한솜이.

누가 봐도 이상한 상황.

아니 이상함을 넘어서 직장 내 성희롱으로 고발이 들어가도 스무스한 상황인데?

“마, 말로해요 말로!”

다시 들이대려는 칠성을 밀어내는 한솜이.

그런데.

“말로 하니까 자꾸 이상해지잖아! 닥쳐!”

‘이판사판이다.’

고자? 김칠성은 어디로 간 것일까.

말도 안 돼는 박력으로 밀어붙인다.

또, 김칠성이 다가오니까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내민 한솜이.

“아니 잠깐만! 그래도 이러면 안 돼는 거 아니에요? 응? 김주희씨도 있고....”

다시 칠성을 살짝 밀어내며 묻는다.

“김주희씨랑 헤어 진지 오래거든?”

춉.

“아? 아니, 아니 그래두....”

한솜이의 말은 이어지는 키스에 묻힌다.

“읏응....”

입술은 촉촉하다.

입술이 닿는순간 알았다.

진작에 이랬어야 한다는 걸.

오래 동안 갈길 모르고 헤메였던 만큼이나 격렬한 키스.

주변은 음소거 되고 오로지 상대방만 보이는 순간.

한참이나 둘 만의 세계에 갇혔던 두 사람이 떨어지고,

마치 방금 꿈에서 깬 것처럼 서로를 바라보는 눈.

“할 말 더 있어?”

칠성이 묻는다.

한참이나 생각하는 듯하다가, 좌우로 고개를 젓는 한솜이.

“미쳤어 진짜.”

서로를 보며 웃는다.

짝...짝...짝..짝짝짝짝

그때, 뜬금없이 들려오는 박수소리.

“올~~”

“이야!!”

“드디어구나 드디어.”

“둘이 무슨 사이예요??”

“묻긴 뭘~ 묻냐. 킥킥킥.”

정신차려보니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수헌부 직원들.

“내가 다 깝깝해 죽는 줄 알았네!”

김민수 팀장이 컬컬 대며 웃는다.

민망함에 얼굴이 빨개진 두 사람.

사내에선 이미 공공연한 소문이었다.

두 사람이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는.

“아! 일들 해요 일들!!”

얼굴이 뻘게진 칠성이 나서서 괜히 목청을 높이며 사람들을 해산시킨다.

“우우~!”

야유를 보내며, 또 재밌다는 듯 저들끼리 키득대며 흩어지는 사람들.

슬쩍 뒤를 돌아 본 칠성과 한솜이의 눈이 마주친다.

씨익, 웃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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