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
S3 : 23화
“꺄아악!”
“이쪽입니다! 이쪽!”
한 지하철 플랫폼, 들어온 열차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기 시작한다.
K-이그저스트와 방호장비, 롱소드와 방패 등으로
완전무장한 수헌부의 요원들이 사람들의 안내를 돕는다.
역시, 레이드 업무에는 적합하지 못하단 판정을 받아 수헌부의 레이드팀 헌터가 되지 못한, 마나 사용 능력자들과 헌터라이센스 보유자들로 구성된 인원이었다.
평소에는 열릴 일 없이 마치 벽같이 닫혀있던, 손잡이 조차 없는 철문이 환하게 개방되어 있다.
안에는 겉보기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넓은 공간.
약 1000여평은 되어 보이는 지하공간에 조명과 구호물품이 들어있는 캐비넷, 화장실과 침대 등의 시설이 준비되어 있다.
철문 안에는 또 다른 철문이, 그리고 또 다른 철문을 열어야만 이어지는 대피소 공간.
그리고 민간인들을 위한 대피소 공간을 둘러싸고 벽이 쳐져 분리되어 요원들이 지키는 최후의 전선이 마련되어있다.
지하철이 모두 비워지도록 인산인해로 플랫폼에 밀어닥치는 사람들의 행렬.
그 사이엔 칠성의 누나 칠선을 옹호 해 주었던, 정도현에게 토마토를 던지기도 했던 회사 여 선배도 끼어있다.
“아 씨, 어떡해....”
먹통인 휴대폰에서 가족들의 연락처를 확인하는 그녀.
나머지 가족들의 안위가 걱정되는 모양이다.
“종로 대피인원으로 현재 제 4 쉘터 인원 87%. 현재 87% 찼습니다. 결계 재 작동 합니다.”
벽면에 달린 유선 전화기로 보고를 한, 염색한 블루 블랙의 머리를 뒤로 넘겨 묶은 덩치 좋은 여 대원이 손으로 지시하자 주변의 대원들이 쉘터의 패널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구----웅.
이내 엄청난 굉음과 함께 봉해지는 거대한 철문들.
인간은 도저히 들기 힘든 무개의 철문이 기계장치들에 의해 스스로 닫힌다.
지지지징-.
방탄은 물론이고, 방마법 시설까지 되어있는 쉘터의 문들에 청색의 마법진이 어렸다 사라진다.
수헌부의 대테러 비상사태가 시작되면 서울시내 주요 지하철 7곳을 포함한 전국 100여개 방공호가 가동되기 시작한다.
이상에서는 한참 모자란 숫자 이지만 이것도 수헌부의 여력을 쥐어짜낸 결과였다.
수헌부의 헌터들은 비상사태 발동 시 미리 배정받은 이러한 쉘터들, 혹은 진압팀에 합류해야 했지만...
혼란스러운 차선을 달리는 회색 외제차.
“후우....”
머리야.
눈을 찌푸둥 하게 뜨곤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 꾹 누른다.
수헌부의 헌터이자, 칠성의 학창시절 친구이기도 한 지우혁은 한참이나 늦게 서야 수헌부로 차를 몰고 가고 있었다.
아침 늦게까지 서울시내 모 모텔에서 뻗어 있다가 간신히 정신을 챙기고 나온 참 이었다.
이미 시각은 오후, 명백한 징계감 이었다.
분명 어제 밤 누구랑 같이 있었던 거 같은데.
깨어나 보니 혼자였다.
‘이러다 곧 뒈질텐데.’
그렇게 생각 하면서도 개선할 생각은 없어 보이는 지우혁.
지우혁 본인조차도 모르고 있었지만, 지우혁의 생활이 본격적으로 망가진 것 은 하나경이 떠나간 이후였다.
“꺄아악!!”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의 파도가 지우혁이 달려야 할 차도를 점거하고 휩쓸며 지나간다.
워낙에 순식간이라 도망가던 여자를 치일 뻔 하면서 겨우 멈춰섰다.
“젠장.”
마치 오래전 월드컵 응원전처럼 인산인해의 사람들 속에서 차 밖으로 나온 지우혁.
저 멀리 사람들이 도망쳐 오는 곳을 보니 수헌부 제복을 입은 남자들이 사투를 벌이는 게 보인다.
“사격해! 사격!”
피핑 핑!
남자들이 둘러싸고 싸우고 있는 상대는 이미 민간인으로 보이는 남녀 여러명을 산책시키는 개처럼 자신의 쇠사슬에 묶어 끌고 다니는 악마다.
“키리릭!”
임프가 날개를 크게 펄럭이더니 순식간에 자신을 사격하던 요원 한명을 덮친다.
“으, 으악!”
뒤이어 덮쳐진 요원을 구하기 위해 칼을 휘두른 요원 역시 임프가 휘두른 팔 한 번에 나동그라지며 몇 미터 밖으로 튕겨져 나간다.
고작 키가 140cm 정도 밖에 안 되는 소 악마가 사십 여명의 요원들을 가지고 논다.
“아 놔 진짜.”
도망치는 사람들 사이, 머리를 긁적인 지우혁이 사람들 사이를 펄쩍 뛰어 임프와 사투중인 요원들을 향한다.
“내놔봐.”
“엇,어?! 아. 안돼요.”
“돼!”
샤프니스 주문이 부여된 롱소드를 들고 파들파들 떨고있던 요원에게 롱소드를 빼앗은 지우혁.
탓!
“크아!”
바로 커다란 점프로 자신이 발밑에 깐 요원을 향해 아가리를 벌린 임프에게 덤벼든다.
“허앗!”
지우혁의 기합과 함께 종베기로 들어간 롱소드가 임프의 눈가를 찢어둔다.
“키엑!”
예의 불길과 함께 재생되는 임프의 눈가.
‘그러든가 말든가.’
“사격 준비!”
지우혁이 목소리 높여 요원들에게 외쳤다.
너무나도 익숙한 명령조의 말.
지우혁이 이곳의 대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요원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총신을 임프를 향해 치켜든다.
“흐읏.”
지우혁이 숨을 들이킨다.
촤촤촤촤촥!
그리고서 무호흡으로 이어지는 초고속의 검격.
애시 당초, 고속으로 공격하는 문 속의 진짜 몬스터들과도 인간의 몸으로 합을 나누던 지우혁이다.
지우혁의 쾌검이 순식간에 임프의 몸뚱이를 수 십번이나 긁고 지나간다.
취익-취이익-챡챡챡챡!!!
얇게 긁히고 말아야 옳을 수준의 검격들이 샤프니스 주문에 의해 하나하나가 깊은 검상이 되어 들어간다.
그러고는 몸을 뒤로 뺀 지우혁.
“일제사격!!!”
끄덕.
지우혁을 유심히 지켜보던,
수헌부 요원 한명이 수신호 하자,
발포된 K-이그저스트의 탄환들이 임프를 향한다.
그리고.
“키엑?!”
씨익.
임프가 총탄의 비를 피하려 비틀거리지만.
임프가 방심한 사이, 이미 지우혁이 들고 있던 롱소드는 임프의 한쪽 발과 함께 땅 깊숙이 꽂혀있다.
양손을 털어 보이며 백스텝으로 빠져나가는 지우혁.
퍼퍼퍼퍽!
사십 여명의 요원이 당긴 탄환들에 임프가 곤죽이 된다.
바닥에서 힘을 못 쓰고 비틀거리는 임프.
탁!!
누군가 지우혁을 향해 무언가를 던져준다.
지우혁이 반사적으로 잡고 던져준 사람을 보자 설명이 이어진다.
아까전 수신호로 지우혁을 엄호한 그 남자다.
“성수 앰플 입니다! 검신에 바르면 됩니다.”
또각.
끄덕여 보인 뒤 앰플의 뚜껑을 따는 지우혁.
“키륵...크르륵...”
자신의 최후를 예감 했는지 없는 기운 속 에서도 이빨을 드러내며 크르륵 대는 임프.
성겅.
지우혁의 검신이 빛나며 허공을 가른다.
임프의 시신이 매마른 아스팔트 조각이 되어 부스러져 내린다.
“후유...”
긴장되었던 숨을 몰아쉬곤, 이리저리 스트레치 하며 몸을 푸는 지우혁.
“누구십니까?”
그제야 앰플을 던져주었던 남자가 지우혁에게 물어왔다.
“레이드 3팀 헌터 지우혁입니다.”
악수를 나누는 두 사람.
“레이드팀 헌터래...”
“그렇구나...”
여기저기서 요원들의 탄성 같은 것이 터져 나온다.
그들에게는 아마도 꿈의 직장.
그것 이전에 느껴지는 압도적인 클래스의 차이.
지우혁이 보기엔 이들은 간단하게 저 악마 정도는 제압 할 수 있는 여력을 갖추고 있었다.
“성수는 어디서 난 겁니까?”
“네, 대한민국 천주회에서 보유 중이던 것을 제공 해 주었습니다.”
충분한 인원수와 제압용 무기들에 무언진 잘 모르겠지만 한방에 마무리 할 수 있는 성수까지.
여러모로 저런 것 하나에 쩔쩔 맬 전력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롱소드 하나 든 지우혁 보다도 못한 전투를 펼치고 있던 이들.
이것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경험치의 차이. 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것 이다.
그들은 악마들이 인간사냥을 진행 중이라는 장소를 향해 달려가던 길 이었다고 한다.
도로 한편에 뒤집어져 있는 버스가 증명하듯, 그 장소를 향해 가던 중에 습격당했다고 한다.
“우리랑 함께 하시죠.”
끄덕.
지우혁이 고개를 주억여 보였다.
어차피 통신 장애현상이 계속 되는 지라 본 팀에 합류하기도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
이 사람들이 걱정이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 * *
기적적으로 붕괴되는 한남대교를 건너 북단으로 입성한 박지만과 박인규 일행.
“하하하하하.”
이제야 가슴을 쓰러 내리는 일행.
“와 진짜 죽는 줄”
콰앙!
말하기가 무섭게 달리던 차가 심장이 쿵 떨어 질만한 충격과 함께 옆으로 눕는다.
치이이이익-!
마찰음과 함께 도로에 붙어 미끄러지던 차체가 멈춘다.
“헉...어헉....”
“선배, 선배?!”
이미 기절한 듯한 보조석의 박인규.
“선배 일어나봐요 선배!”
자신의 안전벨트를 풀고 박인규를 챙기려는 박지민.
그때.
카드드드득....
덜컹!
뜯어지는 보조석의 문짝.
그리고 가볍게 뜯어진 보조석 문을 저 멀리 던져버리는 차 밖의 누군가.
누워있는 차량 위를 양 발로 딛고 선 것은 누가 봐도....
“악...악마?”
지민의 눈동자가 떨린다.
“크르르륵...”
악마가 끔찍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박민규 쪽으로 손을 뻗는다.
“안 돼! 안. 안 돼!”
박민규를 감싸는 지민.
“크르륵...”
악마는 생각이 변했는지, 박민규를 향하던 손을 지민의 얼굴을 향해 뻗는다.
“윽!으!”
아무것도 못 하고 몸이 굳어버린 지민.
점차 다가오는 악마의 손길.
그때.
피피피융!
비틀거리는 악마. 그리고.
“키리릭?!”
“흐이야압!”
퍼석.
악마의 가슴팍을 뚫고 튀어나오는 검신.
“*홀리*!”
과아아앙-!
“키에에엑!!”
절규하며 저항하는 악마가 지민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조금 뒤.
“괜찮으십니까?”
악마가 뜯어둔, 문이 있던 자리에 등장하는 여자의 얼굴.
멀대 같이 큰 키. 긴 갈색 롱 헤어.
수헌부에도 한솜이를 포함해 단 다섯명 밖에 없는 특채 헌터. 성기사 중 한명인 여성 헌터였다.
“저는 괜찮은데 여기 선배가. 태완아?!”
뒷좌석의 태완을 챙기는 지민.
“네, 네 저 괜찮아요.”
뒷좌석에서 들려오는 태완의 목소리.
“잠시만 기다리십쇼. 뒤집겠습니다.”
그런 말을 남기고 또다시 사라진 갈색 머리의 여자.
뭐지? 뒤집어?
퉁!
지민이 그 말을 곱씹어 보기도 전에 차체가 다시 기우뚱 흔들리더니 가볍게 다시 기울어 원상태로 섰다.
차체가 다시 똑바로 서고 보니 수 십 명의, 똑같은 유니폼을 챙겨 입은 인파가 지민이 탄 차를 포위하고 있었다.
“수헌부 제압 3팀입니다. 출동 중 우연히 발견하고 구조 해 드린 겁니다. 정말 큰일 날 뻔 했습니다.”
지민의 일행을 구해준 갈색 롱헤어의 여자가 말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구조 활동.
“여기는 통제 구역인데 어떻게 들어오신 겁니까?”
이어지는 추궁.
“아니 그게....”
“지금 당장 대피소로 후송해 드리겠습니다.”
“아니, 아니 저 그게....”
도무지 안 되는데요. 라는 말을 할 상황이 안 되기에 안절부절 하는 지민.
그때 부스스 깨어나는 박인규.
“무슨...일이야 이게?”
“아 선배! 아 다행이다 진짜.”
깜짝 놀라서 박인규를 껴안는 지민.
“...허허허. 왜이래 얘가?”
“너무 놀랐잖아요 진짜... 나 땜에 어떻게 되는 줄 알고.”
박인규의 품에 머리를 파묻으며 꼭 껴안는 지민.
답지 않은 지민의 행동에 당황한 박인규가 지민을 토닥여 준다.
* * *
콰아악-.
“크...크윽.”
멱살을 잡힌 지우혁이 신음한다.
제압 2팀에 합류해 제압 활동을 시작한 것 도 잠시.
그들은 곧 대규모의 악마 떼와 조우하게 되었다.
싸우던 도중 검이 부러지자 지우혁은 자신의 트렁크에서 예의 김칠성이 주었었던 건틀릿을 들고와 싸우기 시작했다.
한번 휘두르면 칼날의 폭풍이 악마들을 덮쳤고,
또 한 번 휘두르며 악마의 머리통이 날아갔다.
어린 시절 배웠던 복싱의 감각이 그대로 살아났다.
그렇게 대 활약 하던 지우혁 앞에 말도 안 돼는 상대가 나타난 것 이다.
“끄륵....”
멱살을 잡힌 지우혁의 전신에서 힘이 빠져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