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
S3 : 17화
“예?”
박지민이 너무 놀라서 되물었다.
차라리 평소에 버럭 거리고, 할 말 있으면 다 하는 타입의 사람이 막말을 하면 그저 그런가보다 한다.
그 사람은 워낙에 원래가 그런 사람인가 보다.
하는 방어 기제 내지 대비가 가능 하니까.
하지만 평소에 워낙에 조용한 타입,
할 말이 있어도 그저 넘어가기만 하던 석불 같던 박인규가 그렇게 툭 던지자 받는 사람은 깜짝 놀랄 수 밖에 없는 것 이다.
“기자들이, 어 빼고 다 쓰레기야? 너만 기자야?”“아니 선배, 그런 게 아니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폭언, 하지만 일단 지은 죄가 있으니 굽히는...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굽혀야 하는 박지민이 그렇게 받아쳤다.
‘나 뭐하는 거냐 대체’
자기가 하고도 이해가 안 가는 반항적 태도였다.
지금은 좋게 좋게 넘어가야 할 타이밍이 맞는 거 같은데.
어쩐지 뚫린 입이라고 말대꾸 까지 나가버렸다.
“누가 막는다고 다 막히는 네 기자 정신은 그렇게 고고하냐 이 말이야!”
버럭 소리를 지르는 박인규.
차 안이 후끈 달아오른다.
“아 왜들 그러세요. 자자 다들 진정 좀 하시고...”
당황한 태완이 백미러로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말하지만 박인규의 일갈은 멈추지 않는다.
“너 회식 때 보니까 그간 아주 할 말 많았던 모양인데, 그간 내 비위 맞추기 힘들었겠다. 아주?”
“아이 선배도 좀...”
“촬영 눈치 보느라 비위 맞추기 바쁜 녀석이 누구 진실을 밝히는데?”
박인규가 뭐라고 하든간에 시선을 피하고 입술만 핥고 있던 박지민이 그말에 눈에 불이 켜졌다.
백미러를 두고 양 쪽에서 서로의 눈을 노려보는 박인규와 박지민.
“결국 진짜 위험한 건 하기 싫은 거잖아. 있는 척은 하고 싶고, 사실은 누군가가 붙들어주기를 바라는 거겠지!”
“아니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요. 부장 회의에 아이템도 한번 안 올려 주겠다는데!”
자기가 뭐든 다 알아?
일방적으로 쏘아대니 박지민도 억울함에 목소리가 높아진다.
“야 이 계집애야. 부장이 단 한번이라도 너한테 취재 가지 말란 소리 한 적 있었냐?”
“그게 무슨 억지...”
이제는 자기 말이 안 먹히니까 순 억지를 부릴 모양이다.
“너 같으면 새파란 후배가 ‘저 죽으러 갈게요’ 이러는데. 그러라고 하겠냐? 당연히 선배라는 놈이 말려야지.”
“그건!”
박인규의 말을 반박하려고 말마디를 꺼낸 순간 깨달았다.
덧붙일 말이 없다는 것을.
왜...없지?
따닥.
선배란 사람들은 박지민이 원하는 ‘진짜 기자’ 질을 용인 해 줄 수가 없단다. 위험하기 때문에?
그거야. 그럴 수도...
박지민이 내리깐 눈을 굴린다.
생각 해 본적 없다.
따가닥.
마음속의 무언가가 금이 가는 소리.
새는 날아오르기 위하여 자신의 세계, 즉 알을 부수어야 한다.
그 순간 박지민을 가두고 있던 알이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설사 박인규가 박지민을 먹이기 위해서 급조해 낸 이야기라고 해도, 어쩐지 그 방향만큼은 진실을 가리키고 있는 거 같았기에.
“왠줄 알아? 네가 좋아하는 ‘진짜 기자’ 놈들은 싸그리 멍청이거든. 김철민 그 새끼처럼.”
여기서 그 사람 얘기가 왜 나오지?
끼-익.
의문을 가진 지민이 뭐라고 되묻기도 전에 차량이 멈추어 섰다.
회사에 도착 한 것도 아니었고, 아직 서울에 들어가지도 못 한 상황이었다.
갑작스럽게 멈추어 선 태완.
주변을 둘러보니 서울로 향하는 도로를 경찰들이 막고 있다.
지-잉
태완이 창문을 연다.
“수고하심다. 무슨 일 이예요? 지금 서울 들어가야 가야하는데.”
“아-. 글쎄요 저희도 지금 자세한 사항은 못 들었는데, 무조건 통제하라는 명령이 떨어져서요.”
운전석의 태완쪽으로 다가온 경찰이 손가락으로 경찰모를 까닥 해보이며 말 했다.
“못 들어가는 거예요?”
“아마 이 쪽으로는 힘들 거 같습니다.”
“그럼 다른 데는요?”
“글쎄요... 아마 마찬가지 일 거 같은데요.”
“언제쯤 될 까요 그럼?”
“죄송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말 하곤 태완 뒤쪽의 차량들을 향해 걸어가는 경찰.
“뭐야 못 들어간데?”
“그런가 봐요. 경찰이 뭐 아는 게 없네.”
하는 수 없이 차를 돌리는 태완.
“시간 좀 걸릴 거 같은데 밥이나 먹을까요? 막국수 어때요 막국수.”
근처의 막국수 집 간판을 보며 말 하는 태완.
하지만 차 안의 두 사람은 방금 전의 설전으로 냉랭한 분위기만 감돌고 있다.
“그럼 점심은 막국수~ 예~!”
혼자 어색하게 신난다는 듯한 리액션을 하며 막국수 집으로 차를 모는 태완.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막국수 식당의 주차장 부근에서 떠들고 있는 태완과 지민.
지민의 손 에만 모 유명 브랜드 커피 전문점의 테이크 아웃 커피가 들려져 있다.
“누나 몰랐어요? 박인규 선배가 김철민 선배 짝찌 였잖아.”
“그래 퍽이나.”
한 두 번이야 붙을 수 도 있겠지.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철민 선배가 작업한거 거의 박인규 선배가 같이 했다니까요?”
“뭐라고...?”
전설적인 기자로 불리는 김철민 선배.
능력 있는 기자였고 누구보다 진실에 목말라 있었다.
위험한 사건들에도 곧 잘 뛰어들었고, 실제로 파헤쳐 낸 굵직한 사건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래서 인지 전설이 되 버렸다.
사인은 조난사. 가을의 금강산에서 죽었단다.
조난사라고 하지만 모두들 의문사라고 부르고 있었다.
“...안 어울려. 난 왜 몰랐지?”
그런 사람이랑 공무원 정신의 박인규가 같은 팀.
그것도 파트너 같은 관계였다고?
“누나 원래 아는 거 없잖아요.”
태완이 웃으며 말 했다.
그래.
난 아는 게 없구나.
문화부장님 늦둥이 쌍둥이도 모르고.
같이 다니는 촬영기사가 뭐 하던 사람인지도 모르고.
“...이씨.”
박지민이 손에 힘이 들어갔다.
테이크아웃 커피잔이 비명을 지르며 움쑥 구겨졌다.
가끔, 너무나도 편협한 자기 자신의 편견에 자기가 너무 놀라워 뒤통수가 얼얼할 때가 있다.
한 방 크게 먹었다.
그냥 관용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 커다란 주먹으로 얼굴을 한 대 푹 꺼지도록 맞은 기분이었다.
쿠구웅!!!
그때였다.
어디선가 격렬한 폭음이 들려왔다.
마치 하늘이 폭죽 옆에 둔 한지라도 된 양 격렬하게 흔들렸다.
울리는 폭음은 하늘에서부터 다시 대지로 쏟아져 온 천지를 적셨다.
그 떨림이 멀쩡히 서 있는 사람들의 피부에 닭살이 돋을 정도로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뭐, 뭐야?”
식당에 있던 사람들.
그리고 주변 건물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씩 튀어나왔다.
저 멀리서 기둥 같은 굵직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 같이 보였다.
서울 쪽 이었다.
“무슨 일이...”
무언가 좋지 않은 기운이 지민의 촉을 울렸다.
* * *
시간을 약간만 되돌려 어제.
삑-삑-삑.
달크닥.
번호키로 보안이 되어있는 고급형 아파트의 철문이 열린다.
칠선의 누나에게 억울한 경험을 하게 만든 정도현 팀장이 문을 열고 등장한다.
“휴우.”
넥타이를 슬슬 풀며 걸어 들어오는 정도현 팀장.
주방부근에 불을 켜고 물을 한잔 들이킨다.
드넓은 집에 자신을 제외하곤 아무도 없지만 익숙한 모양이다.
그리고선 거실로 향하며 거실 쪽 불을 켜려 스위치로 손을 뻗다가.
“뭐, 뭐, 뭐야?!”
무언가를 발견하고 사색이 된다.
“당신 누구야!”
덜덜덜 떨며 뒷걸음질 치는 정도현 팀장.
어둠 속, 구조상 꺾어져 있는 구조 덕에 주방에 켜둔 아스라한 빛이 간신히 칠흑만을 면해 준 거실.
그 곳에 없어야할 누군가가 앉아있다.
그것도 마치 수도승처럼 두 눈을 감고.
손에는 무엇이 담겨있는지 알 수 없는 서류봉투를 들고 있다.
“너...너 이놈 도둑새끼.”
뒤 걸음 치던 한편에 놓여있던 야구배트를 말아 쥔다.
“어...어? 한걸음만 움직여봐 너...”
그렇게 말하며 마치 야구배트가 검 이라도 된 양 치켜드는 정도현 팀장. 그런데.
스윽.
어둠속에서 앉아있던 남자의 눈을 떠, 아스라한 빛을 흰자가 반사한다 싶었을 때.
파삭!
정도현 팀장이 들고 있던 배트의 위쪽 부분이 박살난다.
아니 박살 이라기보다는 끝 부분이 지극히 날카로운 무언가에 잘린 것처럼 되었다.
단면역시 마치 목공소의 장비로 자른 양 동그랗고 매끈하며 평평하다.
“무...뭣”
파삭!
파팍!
그리고 정도현 팀장의 눈이 채 다 커지기도 전에 마치 김밥을 자르는 양 위쪽 부분부터 작은 단위로 한칸 한칸 씩 잘려나가 떨어진다.
우수수숙!
“히, 히익!”
가속도가 붙은 그 기운에 정도현이 기겁하며 배트를 놓자 허공에서 배트가 손잡이 부분까지 난도질 되듯 잘린다.
털퍽!
갑작스럽게 경험한 말 도 안 되는 공포스러운 상황에 정도현의 다리가 풀린다.
“너...너...!”
정도현이 반사적으로 주저앉은 채로라도 슬금슬금 엉덩이와 팔을 움직여 뒤 걸음 치기 시작한다.
조금이라도 어둠속의 사내와 거리를 벌리기 위해서 필사적이다.
하지만 그의 처절한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여태까지 앉아있기만 하던 사내가 벌떡 일어나 정도현에게로 슬금슬금 매우 느린 동작으로 걸어오기 시작한다.
“이..이 개자식..!”
원시인의 무기가 통하지 않자,
잽싸게 현대인의 무기인 휴대폰을 꺼내든 정도현.
엉덩이로 뒷걸음치는 도중에도 착실하게 필요한 번호를 누른다.
“거, 거기 경찰서죠! 여기 미친놈이...”
파삭!
“히익!!”
부릅떠진 정도현의 눈에 실핏줄이 터진다.
배트와 마찬가지로 휴대폰의 위 부분이 순식간에 날아갔기 때문이다.
기겁한 정도현이 휴대폰을 던져버리자 허공에서 휴대폰이 수 십 조각으로 잘려져서 흩뿌려진다.
“미친... 헉..흑...너..너 누구야! 왜...왜이래 나한테!!”
이제는 울먹이는 정도현.
“...좀 이상하다 싶었어.”
처음으로, 어둠속의 남자가 입을 뗀다.
“뭐, 그럭저럭 평범한 직장인. 30대 후반에... 능력도 나름 인정받고 있는 거 같고.”
자신이 들고 있던 서류를 꺼내서 읽기 시작하는 남자.
“특이한 이력이 있다면 마누라가 엄청난 금수저. 대학시절에 사귀었다고... 땡 잡으셨네. 마누라네 집안이 무슨 기업을 하고 있고...”
“너, 너 누구야!”
남자가 줄줄 읊는 정보에 멍 해졌던 정도현의 얼굴이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경악으로 들어찬다.
단순히 돈을 노리고 침입한 도둑이나, 강도같은게 아닌 것 같다.
이 남자는 대체 누구 길래 자신의 신상이력을 세세하게 꿰고 있는 것 인가.
“마누라랑 사이는 별로 안 좋은 거 같고... 무시당하고 있는 것 같고. 최근에 바람까지 피워서 사이는 극악이지만 마누라 쪽도 괜한 소문 날 까 이혼 할 생각은 없는 거 같고.”
“이...이 개새끼가?!”
의문의 사내가 속속들이 삭삭 긁어내는 말에 욕지기를 내뱉는 정도현 팀장.
주저앉은 상태에서도 주먹을 불끈 쥐긴 했지만.
방금 전의 배트와 휴대폰에 일어난 강렬한 변화들이 각인 되었기 때문에,
서류에서 눈을 뗀 남자가 자신을 쳐다보자 주먹을 내리며 시선을 회피하고 움찔 하는 정도현 팀장.
“그런데 이상하잖아? 바람을 피웠다고 치고, 바람을 피웠으면 안 피웠다고 둘러 대는 게 정상적인 바람쟁이의 대처 일 텐데...”
남자가 한 걸음 더 정도현 에게로 가까이 오자,
주방에 켜둔 불빛으로 남자의 얼굴이 절반쯤 드러난다.
“왜 멀쩡한 남에 누나랑 바람을 피웠다고 거짓말을 했을까?”
드러난 얼굴의 정체, 무서울 만큼 무표정한 얼굴의 김칠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