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
S3 : 15화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
정명석을 필두로 슈퍼병사 양성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육군 장성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하나는 정명석의 약속과 완벽히 다른 상황이 연출 된 지금, 사태가 잘못 돌아갔음을 인정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구하던가.
“지금이라도... 외부에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급하게 회의실이 조성된 낡은 사무실 안.
껌뻑이는 전등 불빛 밑에서 장성 한명이 묻는다.
나무 테이블에 손을 집고 선 다른 장성역시 팔을 벌려 이리저리 휘두르며 거든다.
“이거, 이거 어떻게 흘러갈지 모릅니다. 지금이라도 진짜 제대로 된 전문가들한테....”
“진짜 전문가 누구요.”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참모총장이 되묻는다.
“수헌부요?”
공기 중에 흐르는 어색한 긴장감.
등장한 악마들에게 끌려들어갔었던 병사들은 지금도 의식이 없었다.
만일 깨어난다고 해도 폐인이 되지 않았다는 보장 역시.
이렇게 된 마당에,
자존심을 굽히고, 자신들의 판단 미스로 많은 장병들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외부에 도움을 요청 하는 것이 첫 번째 선택지.
또 다른 선택지는....
“가능합니다.”
정명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 악마같이 생긴 것 들을 우리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
“그렇습니다.”
정명석의 확답을 들은 장성들이 눈빛을 서로 교환한다.
“그러니까, 원래 생각했던 방향대로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정명석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끝을 끌었다.
“실패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말도 안 되는 궤변이었다.
문제는 정명석의 머릿속에선 이게 사실인 데다가.
“그렇다면... 문제가 없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침묵하는 가운데 장성 한명이 운을 뗐다.
그러한 궤변이라도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는 것 이다.
그리해서 성사된 메피스토 펠레스와 참모 총장의 대면.
“인간의 군단장이라 했던가... 물론... 힘을 빌려줄 수...있지...”
낮게 긁는 그렁그렁한 목소리.
임시 막사에 앉아있던 메피스토 펠레스가 이빨을 빛내며 대답했다.
“우리가... 서로 돕는다면 말이야.”
꿀꺽.
잔뜩 긴장한 참모총장과, 메피스토의 악수가 이어진다.
바다 건너 미국에선 비밀리에 전설 속의 용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소문도 있는데, 국방력 향상을 위해 악마와 손을 잡는 게 그리 이상한 문제랴?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 * *
토요일,
한정판 신발을 사기위해 한 유명 스포츠 브랜드 매장에서 줄을 서 있던 태홍은 분개하며 손에 쥔 커피를 빨고 있었다.
“아~~! 인간들이 신발에 환장을 했나?”태홍의 살짝 앞에서 줄이 끊겼고,
거기 까지가 이 매장이 가진 한정판 수량의 전부였던 것 이다.
원하던 신발을 얻지 못 하게 된 태홍.
또다시 나중에 몇 배의 가격을 얹어주고 이 신발을 구하게 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속이 뒤집혔다.
“이게 다 연예인 그놈이 신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지경이 난 거잖아. 줏대 없는 따라쟁이들 극혐이다 진짜.”
남들 눈에는 태홍 역시 그 따라쟁이 들 한명으로 비춰질 수 있겠지만 그건 모르는 태홍이었다.
그런 와중에.
“꺄악! 어떡, 어떡, 어떡해!”
“응?”
갑작스러운 비명소리에 돌아보니 날치기 상황 같았다.
비명을 지른 여자가 발을 동동 구르며 뻗은 손끝엔 풀 페이스 헬멧으로 얼굴을 다 가린 채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오토바이가 보였다.
“어어어...!”
김태홍도 덩달아 허둥거렸다.
잡아주고 싶기야 하지만, 뭘로?
마법으로?
하지만 마법을 실행 시켜주는 아티펙트 도구인 오브는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곤 수헌부에 보관하도록 법제화 되어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지금 오브가 없는 김태홍은 일반인과 매 한가지 였다.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김칠성의 말마디.
‘야, 그런 건 그냥 계산기 같은 거야. 거기서 일어나는 과정을 니 머릿속으로 해 버리면 되는거라고.’
어떻게 맨 손으로 마법을 마구잡이로 써 대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이었다.
‘말은 쉽지.’
그건 마치 물리학도가 공학용 계산기 없이 머릿속으로 모든 것을 처리한다는 거랑 매 한가지인 소리 였다.
더군다나 마법은 사용 할 때 마다 모든 변수가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그걸 술자가 하나하나 계산해 내기란 헌터스쿨의 상식에선 불가능 이었다.
하지만.
‘야이 빠가사리야, 누가 계산을 하래?’
그건 헌터스쿨의 상식.
김태홍의 상식이었을 뿐,
‘느끼라고, 느낌이 중요 한 거야.’
그 어느 때보다 확신에 차 있었던 김칠성의 답변.
“느낌.”
중얼거린 김태홍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캐스팅.
지이이잉-.
번쩍.
김태홍이 눈을 뜬다.
“*다크 볼트*”
피슈-웅!
그 손끝에서 어둠의 총알이 날아간다.
바아앙~
달려가던 오토바이.
퍼펑!! 끼이이익-.
멀쩡하게 질주하던 오토바이의 뒷바퀴가 다크 볼트에 의해 터져나가며 오토바이의 몸통이 아스팔트 도로위에 긴 궤적을 그리며 넘어져 뒹굴었다.
“꺄아악!”
주변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되...된거야?”
아직도 뻗은 자신의 손을 의심스럽게 내려다보는 태홍.
아티펙트를 사용하지 않은 마법?
그걸 내가?
김칠성을 제외하곤 들어 본적도 없는 경지였다.
“예쓰!!”
환호하며 쓰러진 날치기에게로 달려간다.
* * *
그리고 칠성의 누나 칠선이 다니는 회사.
“아이 사모님 이러시면 안돼요!”
어딘가 사무실 입구 쪽 에서 시끄러운 소란이 일어나고 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고개를 빼꼼 내민 칠선.
깔끔한 코트를 차려입은 30대 후반 즈음의 여성이 화를 펄펄 내며 말리는 직원들 사이로 소리를 지르고 있다.
이미 사무실 밖 에서부터 난리를 치며 들어와 회사의 경비를 맡고 있는 보안 직원이 말리고 있는 것 같다.
“누구예요?”
“어라, 정도현 팀장님 사모님 아니셔?”
칠선 옆의 직원끼리 떠드는 게 들린다.
그리고 그 때.
“여기 김칠선이 누구야!”
자기 이름이 불리자 깜짝 놀란 칠선.
동시에 칠선 옆에서 저들끼리 수근 거리고 있던 직원들이 깜짝 놀라 칠선 쪽을 바라본다.
“칠선씨...?”
누군가가 칠선을 보며 묻는다.
집중되는 시선.
무슨 상황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나쁜 일에 휘말린 느낌.
‘아니, 아니야.’
하는 의미로 그들에게 고개를 젓는 칠선.
하지만 그 관경을 이미 본, 정도현 팀장의 부인이라는 여자는 이미 얼굴이 시뻘게져 칠선에게 담벼든다.
“이계집애가!”
“꺅!”
순식간에 머리채를 잡힌 칠선이 비명을 지른다.
“어이구!”
“왜이러세요!”
“참으세요 참어!”
“이 계집애가 남에 가정을 파탄을 내려고!”
술렁술렁 거리는 사무실.
깜짝 놀라서 칠선에게서부터 사모를 떼어 내려는 사무실 직원들과 사모, 기타 등등의 사람들이 마구 뒤섥히고 얽힌다.
“놔 이거! 내가 저 계집애 오늘 아주 죽여버릴꺼니까!”
“아아 사모님 좀!”
한참이나 스크럼같은 실랑이가 있은 뒤 사모를 칠선으로부터 떼어내고, 칠선을 사무실 안쪽으로 빼돌려 주는 사람들.
“아이! 빨리 좀 모시고 나가봐!”
“칠선씨, 칠선씨 괜찮아?”
머리가 뜯겨 산발이 된 칠선.
그런 칠선을 다독이는 여 선배.
“언니 이거 뭐예요...?”
눈물 때문에 화장이 번진 채, 억울해서 씩씩 거리는 칠선.
“당신 미쳤어? 여기가 어디라고!”
어디선가 소식을 듣고 달려온 정도현 팀장이 자신의 부인을 사무실에서 끌고 나가려 한다.
“아 놔봐! 저년이잖아 저년!”
나가면서 칠선 쪽을 가리키며 소리를 지르는 부인.
“저 아니예요!”
억울한 마음에 소리를 지르는 칠선.
“저년 아니야? 아니면 말을 해 봐!”
부인이 정도현에게 소리지른다.
정도현과 눈이 마주친 칠선.
“아 나가!”
그런 칠선의 시선을 외면하고 그저 부인을 끌고 나가는 정도현.
눈을 크게 뜬 채 망부석처럼 굳어버린 칠선.
정도현이 부인을 끌고 나가고, 슬슬 정리되는 분위기.
행여나 부인이 달려들까 칠선 주변을 지키고 있던 사무실 사람들도 각자 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일들 합시다 일!”
그리고 사무실 가운데에 산발이 된 채 멍하니 서 있는 칠선.
“뭐야?”
“뭔가 있나보지.”
“쉿, 조용히 해. 듣겠다.”
수근 거리는 사람들.
누가 봐도 오해하기 너무나도 좋은 상황.
이러면 손해라는 것을 알지만 너무 억울해서 가만히 있을 수 가없다.
“아니, 아니 예요... 저 그런 거.”
맞아서 부어오른 뺨을 쥐고 불안한 시선으로 여기저기를 훑으며 딱히 누구랄 것도 없이 사람들에게 변명하는 칠선.
칠선이 마치 전염병 환자라도 되는 것처럼 아무도 반응하지 않고 외면 할 뿐이다.
“선배...선배 저.”
아까 칠선을 위로해 주었던 선배역시, 칠선과 눈을 마주치더니 시선을 피하고 사무실 밖으로 나가버린다.
“음...칠선씨?”
그러고 있는 와중에 중년의 남자가 다가온다.
지나가다가 상황을 파악하고 온 차장이다.
“급한 일 없지? 오늘은 조퇴 하는 게 어때?”
“아니... 저 괜찮은...데.”
“내가 불편해서 그래. 사람들도 그렇고.”
사람들 이란 말에 고개를 들어본 칠선.
사무실 사람들이 하나같이 몰래 칠선쪽을 훔쳐보다가 칠선이 고개를 들자 각자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관경을 보게 된다.
“집에 가서 쉬어. 처리는 내가 다 해 둘게. 알았지?”
차장은 그러면서 어깨를 두드려 준다.
“네, 네....”
아직도 화끈 거리는 뺨을 쥔 채 고개를 끄덕이고, 망연자실하게 선 칠선.
* * *
집으로 귀가 중이던 칠성.
휘파람을 불며 들어오다가.
“흑...”
아파트 복도 어디선가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멈칫 한다.
누가 우나?
칠성은 보통 사람들에 비해선 굉장히 청각에 민감 한 편 이었다.
그것이 비단 마나를 에너지로 쓰고 마나로 강화된 신체 때문이 아니더라 해도, 오랜 기간 많은 적들을 상대 해 오느라 언제 어디서나 귀를 열어두는 버릇이 들었기 때문이다.
소리를 들어보니 아마도 어떤 여자가 복도 계단 같은데서 훌쩍이고 있는 것 같았다.
워낙 숨 죽여 울고 있기에,
보통 사람이라면 듣지도 못 하고 지나쳤겠지만 칠성의 귀에 걸린 것 이다.
뭐 그렇다고야 해도 칠성은 딱히 관여할 생각이 없었다.
특히나 자기가 남들에게 들려주기 싫어 숨죽여 울고 있는 사람에게 왜 쓸데없이 관심을 주어 민망하게 하겠는가?
그래서 보통이라면 그냥 신경 끄고 집으로 갔을 터 였다.
“흐윽...”
그런 칠성의 눈이 번뜩 뜨였다.
소리가 나는 아파트 복도 천장 너머 위를 바라본다.
아는 목소리 였기 때문이었다.
‘누나...?’
“뭐해 여기서?”
화들짝 놀라 소리가 나는 방향을 따라 계단을 타고 올라가자 옥상으로 이어지는 계단에 쭈그려 앉아 질질 짜고 있는 누나가 보인다.
“칠, 칠성아....”
그것도 누가 쥐어뜯기라도 했는지, 머리 상태는 엉망이었고, 얼굴엔 상처까지 나 있었다.
“뭐야! 누가 이랬어!”순식간에 앞 뒤 없이 열이 확 뻗친 칠성이 따져 묻는다.
“아니 진짜 별 거 아니라니까.”
처음에는 말하기가 싫은지 재차 고개만 젓던 칠선.
“어?!”
칠성이 칠선의 어깨를 잡고 되묻는다.
“그게....”
거듭해서 묻는 칠성의 물음에 조심스럽게 입을 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