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
S3 : 11화
그러니까 지우혁의 팝콘을 야금야금 집어 먹었던 팝콘녀는 지우혁의 팝콘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 했던 것 이었다.
들고 왔던 가방을 한편에 내려놓으면서 팝콘을 잠깐 바닥에 내려놓았는데, 화장실에 갔다가 영화가 시작되고 돌아와 보니 지우혁이 자기 팝콘을 먹고 있더란다.
“그러니까요, 제가 원래 절대로 그런 사람이 아닌데.”
“하하하. 그럴 수도 있죠 뭐.”팝콘녀는 민망해 죽으려고 했지만,
사실 혼자 분노 했다가 영화를 보며 혼자 어느 정도 풀려 있었던 지우혁은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오히려.
‘좀 귀여운데?’
자신의 앞에서 팝콘 하나 때문에 안절부절 하고 있는 여자가 오히려 순진 해 보인다.
“제, 제가 뭐 커피 같은 거라도 사 드릴게요!”
“커피 안 먹는데...”
“그러면...”
“음료수라도 사요.”
지우혁이 눈썹을 꿈틀 하며 어깨를 으쓱 해 보였다.
“네!”
그리해서 영화관이 있는 건물 위에 있는 옥상의 야외 공원.
한산한 오후의 파란 하늘이 두 사람을 반겨 줬다.
간간히, 아니 애당초 결혼식 뒤풀이 등의 파티 장소 대여 용도로 쓰기 위하여 지어 둔 이 공원의 이름은 ‘하늘 밑 정원’.
하지만 경기가 안 좋아서 그럴까.
상업적으로 이용 해 먹기 위해 지어둔 이 도심 속 건물 위의 공원은 상업적으로는 딱히 인기가 없었고,
결국 옥상 정원을 포함해 건물을 사용하던 파티 전문 뷔페 업체마저 문을 닫고 나가자 이곳은 건물 이용객 들에게 그냥 개방 되었다.
“아니, 맛있는 거 드셔도 되는데요?”
지우혁의 팝콘을 집어먹었던 소위 팝콘녀가 지우혁의 눈치를 보며 말 했다.
“뭐, 이거면 돼요.”
지우혁이 공원 한편의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들곤 으쓱 하며 말 했다.
공원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벤치 중 하나에 두 사람이 자리를 잡았다.
“어유, 그래요? 그러면 선생님 이네!”
“아니이, 그런 건 아니구요.”
“에이. 뭐 곧 되실 거 같은데요.”
팝콘녀의 이름은 하나경.
유아 교육과를 나왔고 지금은 유치원 선생님을 준비 하며? 카페 알바를 하고 있단다.
이해는 안 가지만 안정적인 유치원에 정교사로 가기 위해 기다리는 것 같다.
“그럼 애들 좋아하세요?”
“네. 애들 보면 막 그런 거 있잖아요 막....”
하나경이 신나서 대답하며 할 말을 고르고 있었다.“뭐 순수하고? 착하고?”
“글쎄요 착한 거 보다는 뭐랄까... 사악하지 못한 거 있잖아요.”
“풉.”
음료수를 들이키던 지우혁은 거의 뿜을 뻔 했다.
그래, 뭐 애들이 사악하진 않겠지.
“아니 제가 말을 잘못했나? 그러니까 그런 게 전 너무 귀엽더라고요. 거짓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거짓말을 하는데 자기가 너무 미안해 죽는 그런 거요.”
“으흠.”
지우혁이 맞는 소리라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우혁씨는 뭐 하시는 분이세요?”
어라, 흠.
‘헌터....’
헌터예요. 하는 소리가 입 끝에서 맴돌았다.
그런데. 그 찰나의 순간.
이상하게도, 너무나도 당연한 그 자기소개가 하기 싫었다.
사실 헌터인 걸 밝히는 것보다도.
혹시라도 자기가 헌터란 걸 알게 된 하나경의 입에서 연봉이 얼마냐는 질문이 튀어나오기라도 할 까봐 무서웠다.
그래서 애 같은 짓을 했다.
“백수예요.”
죽을 거 같진 않고, 좀 미안하긴 한데. 거짓말을 했다.
“아...그래요?”
뭐, 엄밀히 따지면 소개팅 자리도 아니고.
그냥 지나가던 백수로 기억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은가.
그리고 평일 낮에 조깅복을 입고 혼자 영화나 보러 온 놈이 백수라고 하니까 전혀 위화감도 없고.
“공무원 될라고요.”
뭐, 이미 사실은 공무원이지만.
그것도 꽤나 높은.
실망이시겠지? 그래도 상황상.
결과론 적으로 자기 시간 빼서 만나고 있는 남자가 백수라니.
그런데.
“아~ 그러시구나.”
하나경은 어쩐지, 백수라는 소리를 듣고서 오히려 싱글싱글 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것 이다.
“그럼 우리 둘 다 망생이네요?”
“망생이요?”
“네. 지망생이요 지망생.”
윗니까지 드러내 보이며 웃는 하나경.
건배를 하지는 듯 음료수가 담긴 알루미늄 캔을 들어올린다.
“망생이 끼리 파이팅 합시다. 완생을 위하여!”
“위하여.”
하나경이 워낙 신나게 말하는 바람에, 지우혁도 슬쩍 웃는다.
탁.
캔 두 개가 부딪힌다.
* * *
“이게 정말 되겠습니까?”
참모 총장이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속초 군부대 근처의 산속,
모래가 휘날리는 한 널찍한 공터.
공터의 주변엔 육군 마크가 찍혀 있는 천막들과 일반의 출입을 막는 바리케이드들이 새워져 있었다.
“구해달라는 것들의 목록에도 딱히 병사들의 안전에 위해를 끼칠 만한 물건은 없었습니다. 전문가라니까 믿어 봐야죠.”
장성들이 있는 천막 아래,
박중령이 육군참모총장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렇게 대답하는 박중령도 한쪽에 쳐져 있는 천막의 그늘에서 공터 한 가운데서 진행 중인 실험을 눈을 가늘게 뜨고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육군 선진 화 라고,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젝트.
더구나 그 결과물은 헌터들보다도 강한 슈퍼 병사가 탄생하게 된다는데. 어쩐지 과정이 너무나도 간단했기 때문이다.
주석, 거대한 크리스탈 판, 각종 금속들과 황금으로 만든 창과 단검.
그리고 목장에서 공수 해다 준 300여 마리의 어린 양 들.
그 외에도 양귀비 꽃 이라 던지, 숯으로 만든 양초 등
이런 잡스러운 것 들을 준비해 주자마자 정명석은 프로젝트를 급 진행하기 시작했다.
슈퍼 병사로 양성할 대상은 엄선된 특전사 50명이었다.
그리고 해가 뜨기도 전부터 정명석은 검은 후드를 뒤집어 쓴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어린양의 피로 300여 평 크기의 공터에 마법 진을 새겨 넣고 있었고, 해가 중천에 뜬 지금이 돼서야 그 모습을 완성해 가고 있었다.
고작 이런 걸로 그놈의 슈퍼 병사가 가능 한 건지, 문외한 들이 보기엔 한참이나 이상했던 것 이다.
‘거의 다... 됐다.’
물론 이런 그들의 의심을 정명석이 행여 알 게 된 다면야 노발대발할 일 이었지만.
이 술법은 자신이 이미 수년에 걸쳐 발견, 연구 개발 해 온 것 이었고.
이 의식마법을 실행하는 일 조차 녹록한 것은 아니었다.
의식에 필요한 초대형의 법진을 그리는데 마나를 꾹꾹 우겨넣느라,
벌써 자신이 모아둔 흑마석은 모두 소모한 지 오래였고,
시시 때때로 준비되어있던 어린양의 목을 하나씩 따 마나를 흡수해서 근근이 작업을 이어갔다.
물론 이럴 용도로 준비시킨 양은 아니었지만. 다행이다 싶었다.
그리고 고생 고생 한 작업이 이제야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창백한 정명석의 얼굴에 희열에 떨리는 미소가 걸렸다.
“그럼 시작하겠다!”
이미 온 몸이 땀에 푹 젖은 정명석이 허리를 펴고 외쳤다.
드디어 자신이 꿈에만 그리던 그것의 현실화.
그래서 꿈에도 잊지 못 했던 치욕을 되갚아 줄 차례!
감정에 휩 쌓인 정명석의 입에선 자신도 모르게 반말의 명령조의 말들이 튀어나왔다.
아니지.
‘어차피 이런 녀석들 따위 이제 필요 없다.’
정명석이 군의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은 사실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어서였다.
“이제 시작 하나봅니다.”
멀찍이서 쌍안경으로 지켜보고 있는 박중사와 참모총장. 그리고 실험, 아니 의식의 진행을 돕고 있는 김소령.
먼저 50여명의 병사가 은으로 만든 단검을 하나씩 쥐고 바닥에 지정해 준 위치들에 드러누웠다.
정확히 비어있는 마법진의 부분 부분들을 병사들이 채우는 격 이었다.
“각자 단검에 자신의 피를 묻힌다!”
정명석의 쩌렁쩌렁한 외침.
“뭐야.”
“피를?”
“괜찮은 겁니까 이거?”
여기저기서 궁시렁 대는 소리들이 있었으나.
“까라면 까는 거지 새꺄.”
까라면 깐다. 군인정신으로 은의 단검들에 손가락 끝에서부터 전도된 피가 배겨 들었다.
정명석이 황금의 창과 단검을 양 손에 하나씩 들고 하늘을 향해 양 팔을 치켜들었다.
우우웅-.
그와 동시에 정명석이 부탁해 동원한 음악가들이 쇠뿔로 된 피리들을 불었다.
음산한 피리소리들과 함께 정명석의 입에서 기나긴 주문이 영창 되기 시작했다.
“...주옵시고...”
이세상의 언어와, 이세상의 언어가 아닌 듯한 것들이 교차되었다.
“뭘...하는 걸까요?”
“글쎄요 저거 일종의 굿..같은 거 아닙니까? 서양 굿....”
구경을 하던 장성들이 수근 거렸다.
이 프로젝트를 제안한 박중사조차 뒤통수를 긁적였다.
이거, 괜히 사기당한 거 아니겠지?
불길한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런 박중사의 의심을 씼어 주는 관경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파파앙!
300여평의 공터를 장식하는 거대한 마법진에 청록색의 불이 붙었다!
부뿌우-
부뿌우-
“...하지 아니하며 죽음을 보지 아니하니 들으라 고귀하게 태어난 자여!”
고조되는 피리소리와 함께 정명석의 신들린 듯한 주문의 영창도 고조되고 있었다.
“그대를 위한 양식을 준비했으니!”
그 영창과 함께 한 정명석의 수신호를 받은 김소령이 끄덕거림과 동시에, 법진 위에 누워있는 병사들과는 별개로 김소령을 비롯해 대기 중이던 수 십명의 일반 사병이 말뚝에 묶어 놓은 어린 양들의 목을 은 단검으로 따기 시작한다.
“메에에!!”
“메에에엑!!”
여기저기서 끔찍한 짐승들의 비명과 함께 새빨간 선혈이 병사들과 바닥을 적셨다.
김소령은 잽싸게 양 한 마리의 목을 따자마자 다른 것을 땄고, 나머지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찡그린 병사들의 옷 역시 붉은 피에 물이 들어 검붉게 변해갔고,
쏟아져 내린 피 들이 법진에 닿으면 마치 법진이 하수구라도 된 양 법진 속으로 흘린 피들이 말끔하게 빨려들어 갔다.
그럴수록 법진을 수 놓은 청록색의 불길은 더욱 더 거세지고 있었다.
“크크크크크...”
정명석은 광기어린 웃음을 흘렸다.
이 의식은 단순히 ‘슈퍼 병사’를 만드는 게 아니었다.
군단의 악마들로부터 힘을 받아들인 인간 병사를 만드는 과정이었고. 이 악마들과의 계약은 정명석이 주도한다.
즉, 다시 말해 그렇게 탄생한 악마의 힘을 가진 슈퍼 병사들은....
‘나의 수족이 된다.’
정명석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 이유였다.
그는 그저 군을 이용 할 뿐.
결과물로 얻게 될 병사들은 자신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무 이성의 제 3의 전투병기가 될 뿐 일 것이다.
한명 한명이 그 어떤 헌터에게도 꿇리지 않는, 50명의최강의 전투 노예들이 생기는 것 이다.
이것이면 능히.
“김칠성 따위는 물론이고...”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자신의 생각을 중얼거리는 정명석.
“내가 최고다.”
콰아아아!!
법진의 불길이 사람 키 높이를 넘어 치솟았다.
그리고 그의 반동 영향인 양 하늘이 시커멓게 물드나 싶더니.
콰슈욱!
퍼펑!!!!
순식간에, 불길이 하나의 점으로 모여드는 양 하더니 연기가 되어 폭발한다.
“억!”
폭발이 일으킨 거대한 풍압이 강렬한 모래폭풍으로 천막과 바리케이드를 날려버린다.
의식을 주도하던 정명석도 마치 마네킹처럼 폭발에 휩쓸려 볼품없이 날려간다.
“끄아아악!!”
“크악!”
물론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정명석의 지시로 법진 위에서 누워있던 특전사들 이었다.
잠시 정신을 잃었던 정명석이 눈을 떴다.
삐----이.
충격으로 인한 이명음이 그의 귓가를 때린다.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눈을 뜬다.
마치 전쟁의 폭격을 입은 폐허처럼, 낙진이 휘날린다.
맑은 하늘은 낙진으로 인해 어두컴컴한 지옥의 날씨처럼 변해있었고,
사이사이론 부상을 입은 듯한 병사들이 아슬아슬한 시야 사이로 자신의 다리나 허리 등을 붙잡고 비명을 지르는 게 보인다.
곳곳엔 죽은 어린 양의 시체들이 즐비하다.
마치 지옥을 보는 듯 한 풍경.
“실패...했나.”
쿨럭.
흑마술의 역린을 건들인 댓가가 정명석의 목구멍을 넘어 손바닥을 피로 적시고 있었다.
정말 오랫동안 계획해 온 일인데.
지옥의 힘을 인간의 손으로 마구 다룰 수 있다고 자만한 탓 일까.
절망에 빠져드는 그때.
“어라...”
저 멀리서, 법진 가운데에 움직이는 무언가가 보인다.
검은색 실루엣의... 인간?
머리 한쪽에는 커다란 뿔이 돋아있다.
“...하!”
그것을 본 정명석의 눈이 터질 듯이 크게 떠 지고,
입 꼬리는 슬슬슬 박을 타듯 올라간다.
“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