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
S3 : 9화
일반 직장인들 퇴근시간이 가까운 즈음.
한솜이는 수호*헌터부 앞 근처에 있는 한 카페로 향했다.
주변에 직장인, 공무원이 가득한 고층 건물들.
아니면 좋은 상권 덕에 각종 상업 시설이 즐비한 동네이기 때문에 카페 건물은 이 많은 유동인구를 전부 끌어들이겠다는 사장님의 야심만큼이나 으리으리했다.
프랜차이즈 간판을 달고 있었고,
총 4층으로 이루어진 카페는 한 층이 100평에 가까울 정도로 넓었다.
“어?”
사람들이 가득 들어찬 1층, 한솜이가 들어서자 한 여자가 알아본다.
예의바른 미소를 지어보여 주고 위층으로 향하는 한솜이.
연예인 같은 것은 아니지만 마케팅을 워낙 좋아하는 현 수헌부, 구 헌특부 의 얼굴 간판 노릇을 했던 통에 가끔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사람들로 벅석한 1, 2층과 다르게 올라갈수록 카페 주인의 바람과 달리 한산해 지는 3, 4층.
그 4층의 구석 창가 자리에 한솜이가 찾으러 온 사람이 있다.
“김주희씨?”
“어?”
세계적인 패션브랜드의 CEO가 뜬금없이 시내 한 커피숍에 앉아 있다는 걸 누가 알겠는가.
물론 특이 이력 덕분에 각종 잡지 인터뷰, 가끔은 티브이 인터뷰도 나왔던 그녀니 패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눈에 알아보겠지만.
언제나처럼 흰색 톤의 고급스러운 소재의 옷을 몸에 두른 김주희가 자기에게 다가온 한솜이를 보고 깜짝 놀란다.
“한솜이씨?”
김주희 입장에서야 한솜이는 헌특부 광고판의 얼굴로 더 익숙하다.
실제로도 얼굴 정도야 본 적 있다.
칠성의 회사 사람이니까.
“전화가 안 되신다고. 장관님이 보내셨어요.”
“아? 앗.”
한솜이의 말에 다급하게 자신의 전화기를 꺼내보는 주희.
“아~ 제가 평소엔 업무용 전화도 갖고 다니는데....”
김주희가 꺼져있는 화면을 보곤 민망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이마를 긁적였다.
오늘은 큰마음 먹고 업무도 모두 다른 날로 미뤄두고, 기사도 없이 혼자 칠성을 만나러 온 것 인데 오히려 그것 덕에 연락이 안 됐다.
“장관님 오늘 늦을 거 같다고 기다리지 마시라고요. 그거 전해드리려고 왔어요.”
“아, 네...”
굉장히 영혼 없이 대답하는 주희.
실망한 기색이 스친다.
“그럼 이만....”
슬쩍 목례를 하고 돌아가려는 한솜이.
“아, 저기!”
그런 솜이를 주희가 불러 세운다.
“네?”
뒤돌아보는 한솜이.
“바빠요?”
의아한 표정의 한솜이에게 주희가 실실 웃어 보인다.
* * *
“진짜 그런 대사를 날렸단 말이에요?”
“키키키킥! 그러니까요!”
한솜이가 충격이라는 듯 입을 크게 벌리자 김주희가 솜이의 리액션에 만족한 듯 킥킥 거리며 웃었다.
여기까지 온 김에 자기가 커피를 사겠다며 놀아달라는 주희의 청에 한솜이가 쭈뼛쭈뼛 했던 것도 잠시.
주희 특유의 친화력 덕 분 일까 아니면 수다의 힘 일까?
두 사람은 김칠성이 이 관경을 보면 턱이 쩍 벌어질 정도로 마치 베스트 프랜드라도 된 양 떠들고 있었다.
다행히 두 사람 사이엔 칠성이라는 아주 씹을 때 감칠맛이 나는 대화 주제도 있었다.
칠성이야 학을 떼며 싫어하겠지만 말이다.
“정확하게 뭐라고 그랬더라? 아 그래.”
주희가 흠흠. 주먹을 입에 댄 채 헛기침을 하더니 목소리를 한 톤 내려서 김칠성 흉내를 낸다.
“절대로 안 올 것 같은 날도 오더라고. 그러니까...”
번뜻. 한솜이를 초롱초롱 한 눈으로 바라보는 김주희.
“살아봐.”
그 뒤에 누가 먼저랄 것 도 없이 박장대소가 이어진다.
주희는 너무 웃어 배가 아팠고, 한솜이는 정신이 나가게 웃으며 줄줄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는 중 이었다.
“칠성 씨 생긴 거랑 다르게 은근히 귀엽지 않아요?”
“그니까요!”
김주희의 말에 아직도 웃음이 그치지 않은 한솜이가 맞장구를 쳤다.
웃음은 사람을 급속도로 친하게 만든다.
적어도, 사실은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지금의 한솜이가 그랬다.
“그리고 또 저번에는 요~.”
“정말요?”
분위기를 타고 한솜이가 김칠성에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김주희도 환하게 웃으며 솜이의 이야기에 하나하나 호응 해 주었다.
“혼자 남자다운 척은 다 하는데 그럴 때 보면 애 같고.”
어쩐지, 주희의 표정이 점점 굳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자기가 하는 칠성의 이야기에 깊이 빠진 한솜이는 주희의 분위기가 변한 것을 눈치 채지 못 했다.
“그때는 또 춤 까지 추는 거예요. 절대로 그런 거 안 할 거 같은 사람이.”
칠성의 이야기를 하면서, 잠시라도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 한솜이.
그런 한솜이의 모습을 보고 주희는 생각했다.
‘뭐야, 나보다 훨씬 더... 잘 알잖아?’
김칠성의 귀여운 면은 자기만 알고 있는 것 이라고 생각했는데.
에피소드들을 늘어놓는 한솜이를 보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리고, 그런 것 보다도...
좋아하는 거 아니야?
‘맞네.’
그렇게 생각 한 순간 얼음장 같이 굳어버린 김주희의 얼굴을 본 한솜이가 깜짝 놀라 늘어놓던 이야기를 멈추었다.
그리곤 자기도 모르게 내려놓았던 보이지 방벽을 다시 챙겨 들었다.
“제가 너무 제 얘기만 했죠?”
“아, 아뇨.”
주희가 급하게 표정관리를 하며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게 왜 네 얘기인데?’
어쩐지 고까운 기분이 훅 올라와 어찔했다.
사실 주희의 반응은 과한 것 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자신이 칠성과 장거리 연애에 버금가는 힘든 연애를 하고 있다는 점.
“그 드라마 봤어요? 두 번째 연예의 계약이던가.”
“네?”
“거기 보면 평범한 여직원이 엄청 높은 직장 상사랑 사귀는 게 나오더라고요. 그거 진짜 말 안되지 않아요?”
그렇게 물으며 피씩 웃는 김주희.
“아 뭐... 드라마에 그런 게 자주 나오긴 하죠.”
“아니 말이야 바른 말이지, 능력 있고 잘 나가는 남자가 뭐가 아쉬워서 자기 부하 직원한테 찝쩍대겠어요?”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한솜이는 엄연히 김칠성의 직장에 있는 직장 동료.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한솜이가 칠성을 꾀여 낼 여우인지, 아닌지 까지야 모르겠으나.
“그러고 보니까 칠성씨 같은 사람은 참 힘들겠어요.”
“네?”
“아니 그, 칠성씨 장관이잖아요. 장관이면 어디 어리숙한 일반 서민이랑은 사귀기 힘들 텐데...”
주희가 한쪽 머리를 귀 뒤로 넘긴다.
“아닌 게 아니고, 사람이 급이 너무 안 맞으면 서로 괴롭잖아요. 그죠?”
주희의 시선이 한솜이를 아래위로 훑었다.
말이 없어진 한솜이가 주희의 시선을 피하며 입이 마른 듯 입술을 핥았다.
“왜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시는 지...?”
한솜이도 백치는 아니다.
속 보이는 수작이야 눈에 다 보인다.
그렇게 묻는 한솜이쪽을 한참이나 보던 주희.
“그냥요.”
정말 별 것 아니라는 듯.
쿨 하게 대답한다.
‘꿈도 꾸지 말라고.’
마지막 말은 속으로 삼켰다.
* * *
“아니 그래서, 구체적으로 그 방법이 뭡니까?”
널찍한 회의실에는 예의 육군 장성들과 간부들이 모여있다.
참모총장의 질문에 대대장 박중령이 설명을 이어간다.
“예, 그러니까 이게 일반 아주 평범한 병사를 소위 말 하는 슈퍼 병사로 탈바꿈 시키는 그런 기술인데요. 그, 던전 테크놀러지를 이용 하는 것 이라고 하고요.”
탁, 탁. 참모총장의 손톱이 탁상을 두드린다.
“그게 뭐, 그런 거 해 봐야 수헌부 헌터들한테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그것이... 일반인은 당연하고, 결과만 잘 나오면 어지간한 헌터도 가볍게 이길 수 있을 정도로 강한 군인이 된다고 합니다.”
“흐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사람 몸에다가 뭘 하는 것도 좀 그렇고...”
“맞습니다. 그러다가 사고라도 나면 누가 책임집니까?”
“거 괜히 이런 거 하지 말고. 쉽게 갑시다 쉽게. 뭐 이렇게 무기 만들고 이런 걸로 가요.”
참모 총장이 탐탁치않아 하는 듯하자 여기저기의 장성들이 한마디 씩 거든다.
적당히 하는 척만 하면 되는 분위기 인데 위험을 감수 할 거 없다는 것 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산도 문제입니다. 이런 말씀 드리기 뭐 하지만요. 지금 던전테크놀러지 대비 육군 선진화 예산을 오백억원 정도밖에 안 잡아놨어요. 말씀 하시는 거 보니까 한 두 푼 들 게 아닌데 말이죠.”
미사일이던 전투기든 뭐라도 하나 개발하려면 뻑 하면 수백억, 천억이 드는 게 예사다.
그런데 그런 평범한 것 도 아니고 던전테크놀러지가 적용된 강화병사?
말로만 들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닌가.
“바로 그...점이.”
박중령의 입 끝에 모두의 관심이 집중 되었다.
박중령이 좌우로 눈치를 살피더니 참모총장에게 슬쩍 다가가 귓속말을 한다.
“아니, 그게 정말입니까?”
박중령의 귓속말을 들은 참모총장의 눈이 땡그랗게 커진다.
“그렇습니다.”
박중령이 쐐기를 박듯 고개를 끄덕인다.
“허어...!”
테이블을 탁 치는 참모총장.
섣부르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참모총장은 생각만으로도 설래이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백억이면 된단 말이야?’
“정말로 확실 합니까 대대장님? 이거 나중에 다른 말 하시면 안돼요. 또 예산이 모자라서 품질에 이상이 생긴다던가....”
“예 그런 일 없을 겁니다.”
“아무쪼록 병사들 안전이 최우선이란 점 숙지하시고요...”
갑작스럽게 되는 분위기로 돌아가자 장성들 사이에서 눈치 보기가 시작된다.
뭐지? 대체 얼마라고 들었길래 표정이 저래?
하여간 500억 보다는 훨씬 적은 금액임이 틀림없다.
참모총장의 머릿속에선 이미 개발비를 어떻게 떼어 먹어야 잘 떼어먹었다고 소문이 날지 고민하고 있을 터 였다.
예산은 정해져 있으니, 실제로 필요한 연구개발비가 적게 들어간다면 개발비 내역서만 눈덩이처럼 불려서 보고하면 그 차액은 누구 주머니에 들어가든지 알게 없는 눈 먼 돈이 된다.
“이러면 또 안 들어볼 수가 없지요. 전문가 분 대기중이라고 했지요? 들라고 하세요.”
방금 전 까진 전문가고 뭐고 문전 박대를 할 기세였는데,
갑자기 인심이 후해진 참모총장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어서 진행하라고 명령했다.
애초에 설명을 들어볼 것 도 없다.
참모총장의 머릿속에선 이미 하는 걸로 확정이다.
“예 알겠습니다.”
참모총장이 모르는 것은 똑같은 타이밍에 박중령도 속으로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는 것 이었다.
‘아파트 한 채 사게 생겼구만.’
왜냐면 박중령이 이번에 모집한 던전 테크놀러지 전문가에게 들은 슈퍼 병사의 예산 금액은 약 50억 정도였기 때문이다. 윗선엔 100억 인걸로 되어 있으니 나머지는...
“전문가 분 모셔오세요.”
박중령의 명령에 김소령이 고개를 꾸벅 하곤 회의장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열리는 회의장 문.
끼드득-.
철문이 양쪽으로 열리자 전문가라는 남자를 양 쪽에서 보필하는 두 명의 군인이 보인다.
깜빡, 깜빠박...
갑자기 방금까지 멀쩡하던, 회의장을 비춰주고 있던 낡은 전등불들이 수명이 다 되기라도 한 양 간헐적으로 껌뻑인다.
쿠우우우-.
무언가 기묘한 느낌이 회의장을 감싸 안는다.
장성들이 갑작스러운 이변에 불이 껌벅이는 천장을 바쁜 눈으로 살핀다.
깜빡거리던 전등이 완전히 불이 나가버린다.
“뭐야, 왜 이래!”
장성 중 한명이 불안한 목소리로 소리 지른다.
그것은 괜한 오두방정 같은 것이 아니었다.
소리만 지르지 않았지, 이 현장의 모두가 느낀 그것.
마치, 해질 무렵의 산길에서 늑대를 보았을 때의 감각.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꿀꺽.
팽배해지는 긴장감.
누군가가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안녕하십니까.”
그리고 그때 좌중을 압도하는, 진득하게 깔리는 목소리.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검은 후드를 눌러쓰고 검은 코트를 두른 사내가 모습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