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무집행 흑마법사-53화 (53/145)

# 53

S3 : 8화

서울시내의 한 갈매기살 전문점.

한 방송국의 보도국 사람들의 회식 자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지글지글 고기들이 이미 불판위에서 얇은 연기를 피워 올리며 구워지고 있었고, 모두들 넥타이를 절반 쯤 풀어둔 여유로운 분위기.

“요즘 뭐 뒤숭숭한 소문들 많이들 들으셨을 겁니다.”

평소엔 박지민 기자와 늘 티격 대는 친근한 느낌의 아저씨인 조창완.

하지만 그는 사실 사회부 부장이자, 보도국의 국장이었다.

국장인 그가 한 손에는 소주잔을 들고 일어서 건배사를 이어간다.

“하지만 뭐 제가 우리 보도국 사람들 밥그릇 하나 못 지켜주겠습니까?”

“와아아아!”은근히, 아닌 척 하면서도 인원 감축이라는 살벌 한 소문을 신경 쓰고 있던 보도국 인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아 이렇게들 모이기 들도 힘든데 오늘은 마십시다! 자자, 잔들 드세요! 둘 셋!”

조창완 국장의 잔이 허공으로 올라간다.

언제나 와 같은, 모두가 알고 있는 구호가 튀어나올 타이밍이다.

“조져!!!”

수 십 명의 입에서 터져 나온 구호와 함께 잔들이 각자 테이블의 사람들의 잔들과 부딪혔다.

왁자지껄 시끄럽게 떠드는 분위기가 이어지는 회식장소.

계획적인지 결과론 적 인지 어쨌건 한편에는 소위 ‘부장 테이블’ 이 조성되었다.

조창완 국장을 비롯한 각 부 부장들.

그리고 몇몇 박인규를 포함한 나이 지긋한 맴버들.

직급 순 이라기보다는 나이 지긋한 사람들 끼리 모인 테이블이다.

부장 테이블에는 빈자리가 두어 개나 있는데, 젊은 사람들 테이블은 없는 자리에 의자를 더 밀어 넣어 꽉 꽉 들어차 있다.

“어휴, 늙은이들만 있고 술 맛 떨어지게. 젊은 애 좀 데려와 봐. 이쁜 아나운서 없어?”

정치부 부장이 푸념하자 조창완 부장이 면박을 준다.

“야 너 큰일 나 그런 거 찾다가~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자 자. 술이나 마셔.”

그러면서 소주를 따라주는 조창완 국장.

“저 새끼는 저거 늙어서도 여자 밝히는 건.”

“아 뭘. 내가 밝히긴 뭘 밝혀.”

껄껄껄. 말을 그렇게 하면서도 얼굴엔 웃음기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 때 입구 쪽에서 누군가가 쭈뼛 거리며 들어온다.

“젊은 애 저기 오네. 야! 지민아!”

혼자 가든 찬 테이블들 사이를 쭈뼛거리며 어디에 낄지 눈치를 보고 있던 지민이 국장이 부르는 소리에 환하게 웃는다.

재빠르게 지민에게 건네 진 잔이 채워진다.

“야 넌 일찍일찍 좀 다녀라. 무슨 회식을 지각 하냐?”

“아니 차가 막혀가지고...”

조국장의 말에 이어 정치부 부장이 거든다.

“이게 조직 생활 이란 게 있는데...”

“에이, 요즘 애들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문화부 부장이 웃으며 끼어든다.

“그래도 뭐, 지민이 일은 잘 하잖아?”

국장이 씩 웃는다.

위하여!

짠 소리와 함께 잔이 오간다.

“아니 얘가 아까 젊고 이쁜 애 없냐고 찾더라고.”

조창완 부장이 슬쩍 정치부 부장에게 새끼손가락으로 손가락질을 하며 놀린다.

“어머 부장님, 저 찾으셨어요?”

박지민이 두 손을 다소곳하게 모으고 환하게 웃으며 정치부 부장에게 묻는다.

“아니 저, 박기자는 젊기만 하잖아.”

“하~하~하! 마셔요 마셔.”

정치부 부장의 말에 지민이 연극같이 과장된 웃음을 웃으며 잔을 내민다.

“여자애한테 별 소리를 다한다.”

조국장이 슬쩍 지민의 편을 든다.

“자자, 위하여!”

짠.

점차 술이 되어가는 사람들.

“아니 2차 안 가?”

점차 고기 집에 인원이 슬슬 빠졌다.

꽉꽉 들어찼던 젊은 테이블들은 이미 많이 비었다.

부장 테이블 만이 처음의 인원 그대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2차는 무슨. 우리도 대충 먹고 들어 가. 술 많이 마시면 추해.”

2차, 3차. 조직적으로 이어지던 회식 문화는 정말로 구시대 유물이 되었다.

“너는 왜 안 가냐?”

평소 같았으면 얼굴만 비추고 슬그머니 사라졌을 지민을 향해 정치부 부장이 묻는다.

“그냥요. 오늘 소주가 다네?”

취기가 약간 오르자 팔불출 끼가 돋은 문화부 부장이 스마트 폰으로 자신의 애들 사진을 돌려가며 보여준다.

“봐보세요, 얼마나 예쁜가.”

“아 쌍둥이 유치원 간다 그랬지?”

문화부 부장의 자랑에 한마디 씩 들 거든다.

“이때가 딱 예쁠 때다.”

문화부 부장의 스마트폰 안에는 소풍을 간 듯 유치원복을 차려입고 바위 위에 앉아있는 어린 쌍둥이 둘이 브이를 하고 찍은 사진이 있다.

“부장님 애기 있어요?”

박지민이 놀란 목소리로 눈을 땡그랗게 뜨며 핸드폰을 건네받는다.

“아니, 몰랐어?”

그런 지민의 행동에 웃는 사람들.

“야 너는 너무 모른다! 이 녀석이 늦둥이 봤다고 지난 5년간 얼마나 자랑을 하고 다녔는데 그것도 몰라?”

조국장도 한마디 거든다.

“치, 모를 수도 있지! 한잔 하세요!”

민망해진 지민이 병을 든다.

몇 차례의 짠 이 오가고,

2차는 없다는 정신으로 마시다 보니 앉은 자리에서 인당 소주 몇 병씩이나 까게 되었다.

부장 테이블을 제외하곤 거의 정리된 분위기.

사람도 적어지고,

취기가 상당히 오르자 슬슬, 맨 정신에는 하려고 하다가도 입이 안 떨어졌던 말 들이 오가기 시작한다.

“아니 그래, 요즘 애들은 소위 말하는 기자정신. 이런 게 없잖아.”

문화부 부장이 포문을 연다.

평소엔 나이대야 비슷한 사람들 이지만 그래도 부장이라고 격식을 갖추었는데, 이미 말투부터 반말 조다.

“에이 또 그걸 그렇게 말씀 하시면 안 되죠.”

옆에 있던 정치부 부장이 반기를 든다.

“아니 내가 없는 말 해? 기자가 다 뭐야. 그저 방송국 다니면 좋은 건 줄 알고. 연봉 높으니까. 그래서 하는 애들 태반인 거 아니야 솔직히. 우리 때처럼 총대 메고, 이런 거 없잖아? 안 그래 들?”

문화부 부장이 터진 보처럼 말을 뱉어냈다.

아마도 ‘우리 때는’ 하는 말로 시작되는 푸념은 아주 오래 전 조상님들서부터 있어 왔을 것이다.

게다가 문화부 부장의 일반화는 지극히 잘못 된 말이기도 했다.

그야 젊은 기자들을 죄다 쓰레기로 매도하는 언사였으니까.

그런 문화부 부장의 말에 백 프로 동의야 하지 않는 사람이 있더라도 정년이 10년, 5년 남은 사람으로서야 아무 말 없이 넘길 만 했다.

동의도 반박도 하지 않고 소주잔을 비우는 박인규 촬영 기자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년이 5년 남은 사람들에 한해서 얘기였다.

문화부 부장이 간과한 것 은 하필 오늘 이 ‘부장 테이블’ 에 정년 5년이 아닌, 5년차 기자가 끼어 있다는 것 이었다.

“선배는 총대 메 봤어요?”

그것도 한 성깔 하는 5년차가!

입으로 가져가던 지민의 소주잔이 문화부 장관의 연설 같은 푸념의 말에 멈췄다.

지민의 일침에 훈훈하던 술자리 분위기가 싸 해 진다.

“뭐?”

“선배도 총대 안 메 봤잖아요. 총대 멘 선배들 중에 부장 된 사람 없잖아!!”

지민이 목소리를 높임과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어유 왜 저러니 또.”

주변 사람들도 놀라서 지민을 말리려 일어난다.

“왜 슨배도 안 매본 총대 어린애들한테 메라고 해요? 너무 이그적인 거 아니야?”

취한 지민의 혀가 급속도로 꼬부라지기 시작한다.

“야! 취했어 너!”

“지민아 가자.”

지민을 뜯어 말리는 것은 퇴임은 살짝 멀었고, 신입이라기엔 지긋하게 나이 먹은 애매한 입지의 사람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쪽 편을 들어야 할지 모르겠는, 청년에서 중년이 되어가는 그들.

그들이 한 가지 확실히 아는 것은 부장 테이블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이 미친 5년차를 빨리 집에 보내야 한다는 것 뿐.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들을 포함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

인간 이란 건 워낙에 허접해서,

처음엔 정의로운 의협심에 말문을 열었다가도.

“나는 므 할 말 없는 줄 알러요? 이거 놔! 슨배가 뭐 훌륭한 기자라서 부장 된 그야요? 줄 잘 타서 된 거지. 아 쫌 놔 봐!”

실수로 끝을 맺곤 한다는 것 이다.

문화부 부장과는 정 반대의 일반화.

부장들을 죄다 줄이나 잘 타는 재주꾼으로 만들어 버리는 발언.

“고만 해 좀!”

이제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높아진다.

“그런 슨배가 무슨 권리로 애들더러 기자정신이니 뭐니. 박인규 슨배!”

문화부 부장과 지민의 싸움 사이, 방관자처럼 소주잔만 기울이고 있던 박인규가 자기 이름을 언급하는 소리에 눈이 번쩍 뜨인다.

“고만 해 쫌! 가자!”

“아 왜 이래 ...으으읍!”

반쯤 지민의 입을 막으며 끌고 나가는 선배들.

저항하며 바동대는 지민이 양 팔에 선배들을 차고 끌려 나간다.

딱.

박인규의 소주잔이 식탁을 울린다.

“할 말 있으면 하고 가.”

조용 담담한 박인규의 말투.

하지만 그 목소리가 마치 마법이라도 된 듯 주변을 일시정지 시킨다.

“말조심해라 너.”

선배 중 한명이 지민의 귀에 대고 소근거린다.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눈치를 보던 선배들이 지민을 풀어준다.

“조심은 므슨. 펙트만 말 해 바요. 진규가 선배랑 중국 갔을 때 경제 개발구 취재 하나 따자니까 선배가 안 한다고 바로 손 땠다면서요?”

갑자기 술에 꼬부라졌던 혀까지 똑똑한 발음으로 돌아오며 쏘아붙이는 지민.

“야 박지민. 작작 안 해!?”

보다 못한 국장이 소리친다.

“또 있어. 접때 육참이 접대 받았다고 돈 먹었다고 찬욱이가 첩보 가져 왔을 때도 업소녀 인터뷰 한 개만 따자는 데도 선배가 못하게 했다 그러구. 기자질 안하면 선배만 안하면 됐지 해 볼라는 애들 발목은 왜...웁!”

주변에서 말리건 말건 속에서 토해내듯 말을 내뱉어 가던 지민은 정말로 토가 쏠리게 되어서야 말을 멈췄다.

“웁,우욱.”

“아 더럽게 계집애가.”

계속해서 헛구역질을 하며 선배들에게 끌려가는 지민.

그 뒷모습을 보던 조국장이 박인규 들으라는 듯 거든다.

“아유, 가지가지 한다 진짜.”

지민이 뱉은 말들이 충격이었는지,

평소의 무덤덤한 느낌 그대로.

별다른 반응이 없는 박인규.

“이해해. 어린 게 뭘 알기나 알겠어?”

인규의 빈 잔을 채워주는 국장.

“자기가 다 참아야지. 응?”

박인규가 꿀꺽. 잔을 비운다.

“그래.”

씁쓸한 입맛으로 저 멀리 골목으로 사라지는 지민을 본다.

* * *

찰칵 찰칵. 찰칵.

“장관님 웃으세요! 김치~!”

“김치~!”

한 행사장.

독거노인들을 위한 김장 김치 담그기가 한창이다.

테이블 위의 김치에 양념을 바르던 칠성과 헌특부 지휘부 관련 인사들이 김치 포기를 저마다 하나씩 들고 환하게 웃는다.

“이제 끝이지?”

“네 그리고 다음은요...”

사진을 찍고서 김치를 내려놓고, 김장 복장을 벗어 던지던 칠성이 스케줄과 시간을 확인해 보곤 인상을 구긴다.

“아 이거 늦겠는데?”

칠성이 휴대전화로 주희에게로 전화를 해 보지만 먹통이다.

“뭐지?”

고민고민하던 칠성이 헌특부 3팀 화랑팀의 사무실로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것 은 한솜이의 목소리다.

“아....”살짝, 이런 부탁하기엔 껄끄로운데?

“태홍이나 우혁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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