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
S3 : 7화
“아유, 주희씨가 와 주시면 영광이죠.”
“어머 정말요?”
김주희와 신나게 떠들고 있는 것은 박잔욱 감독, 그리고 박감독이 데려온 미술감독 이었다.
박잔욱 감독은 한국인 이지만 그 실력을 인정받아 전 세계 적으로 팔리는 작품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그야말로 간만에 대한민국 땅에서 나온 능력 있는 감독 이다.
“아이 그럼요. 얼마나 많이 도와주시는데. 게다가 주희씨 같은 미인이 참석 해 주시면 누구라도 좋아 하죠.”
“아이참. 감독님 왜 이리 능글맞아 지셨어요?”
아니라고 하면서도 주희가 얼굴을 살짝 붉힌다.
주희야 김태희 같은 엄청난 미인은 아니었지만, 모델같이 쭉 뻗은 몸에 흰 피부를 갖고 있으니 어디서라도 인사 치례로라도 이쁘단 소리를 들을 만하긴 했다.
“거기는 영화인들 다 모이고 그런 거예요?”
“그렇죠~ 아무래도. 주로 배우들 보다는 감독들, 작가들 이니까 비주얼 적으론 영 아니지만.”
박잔욱 감독은 그런 농담을 날리고 껄껄껄 웃었다.
주희와 박감독이 시시덕대고 있는 이유는, 박감독이 준비 중인 신작의 소재가 패션이기 때문이다.
패션 비즈니스 산업에 속한 여주인공의 꿈과 좌절, 투쟁과 사랑 등을 다루는 영화로. 필연적으로 옷에 관련된 게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영화 전반에 나오는 것 들, 디자인, 산업. 그 뒷면에 관한 이야기 등등.
더군다나 패션 산업에 몸담은 여자로서의 인생까지.
세계적인 디자인 시장을 뚫으며 직접 경험한 경험치가 있는 주희야 말로 완벽한 조언자인 것 이다.
여기에 박잔욱 감독은 주희의 회사 JH 에 PPL 제안을 자기가 먼저 했다.
박잔욱 감독의 영화라면 세계 시장에 걸리니 PPL 효과라고 한다면 국내 이런저런 영화에 걸리는 효과에 도저히 비견할 게 못 된다.
타이밍만 잘 맞춘다면 아예 영화 속 에서 주인공이 입고 있는 옷을 개봉 다음날 JH의 매장에 깔아버리는 것 까지도 가능했다.
경우에 따라 아예 영화 속에 JH 매장이 노출되거나, 그것도 아니면 JH 매장 배경의 에피소드를 집어넣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이미 주희의 회사도 유럽시장까지 노리고 있는 만큼, 칸 단골손님인 박잔욱 감독의 영화가 끼칠 마케팅 적 효과는 눈이 뒤집어질 만 한 숫자가 오가는 것 이다.
이렇게 되다보니 JH 쪽 에서도 두 손 들고 환영했다.
사장인 주희가 직접 튀어나올 정도로.
박감독의 부탁이 있기도 전부터, 영화 시나리오의 감수를 주희가 자처했고, 이렇게 정기적으로 만나 관련 된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 이다.
주고받는 것이 확실하니, 두 사람의 분위기가 화기애애해 졌음은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그럼 이제 촬영만 남으신 거예요?”
“그렇죠. 이번에 행사 참여하고, 바로 출국할 거예요.”
박감독이 뿌듯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영화는 의외로, 촬영 자체도 일이지만 사전에 준비하는 일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대업이다.
주희와 하고 있는 이런 스토리의 디테일 체크는 물론, 각종 섭외와 촬영 계획, 장소와 촬영 팀의 구성, 미술팀의 계획 등 까지.
각기 담당자들이 존재하나 어느 하나 감독이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없기에.
제대로 된 작품을 찍기 위해선 촬영 이전에 이미 감독이 골골대는 상태가 될 정도로 스스로를 혹사 시킬 정도가 되는 것이 태반이다.
박감독이 주희를 초대하기도 한 이 행사는, ‘영화인의 밤’ 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었다.
대충 영화인들이 모여서 예술 영화나 몇 편 보고 술이나 까는 행사지만.
영화판에 붙어있다는 것 자체가 전쟁터에 서 있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기에 그럴까, 이름값 있다는 감독들도 곧 잘 참석하곤 하였다.
“주희씨 남자친구 있죠? 같이 와요.”
“예? 남자친구...”
주희의 머릿속에 김칠성의 얼굴이 스친다.
싱글싱글. 티가 나게 미소 짓는 주희.
“네!”
박잔욱 감독과 헤어지고 나서 이동 중인 차 안.
주희가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칠성씨! 우리 영화 보러 가요!”
* * *
“육군 개혁을 실시하자 이겁니다! 우리가 어?”
육군 참모총장이 핏대를 올리고 있는 것은 대통령이 각군 참모총장을 소집회의 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 이었다.
“수헌부 이런 뭐 되먹지도 못한 것들한테 밀려서야 되겠습니까?”
내려까기인지 돌려 까기 인지, 뭐 던 간에 회의랍시고 소집되어 앉아있는 육군 지휘부는 표정이 좋지 못 했다.
“요즘 애들이 뭐 라고 하는지 들어나 보셨습니까? 우리나라는 수호헌터부가 다 지킨 데요. 이게 무슨 소립니까?”
으흠. 어허험. 끄응.
모르고 싶어도 그 유명한 영상을 아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여기저기서 신음성 같은 불편한 소리들이 새어나왔다.
“국군이 하는 일이 없다 이거예요! 이미지가 완전 나가리 됐다 이겁니다!”
아니, 무슨 육군이 마케팅 업체도 아니고,
옛날엔 태권브이가. 지금은 김칠성이 있을 뿐,
철없는 어린애들이야 뭐라고 하던 간에 경쟁의 대상은 아닌 듯 하것만.
“국군 위상이! 이렇게까지 떨어진 일이 없다 이겁니다.”
도대체 대통령에게서 무슨 말을 듣고 온 건지 노발대발하는 참모총장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리고 참모총장 정도 되는 사람이 소리치는 건 그냥 소리가 아니다.
마치 잘 세워 둔 도미노의 한쪽 끝을 손가락으로 툭 치는 것과도 같다.
“당장! 던전! 헌터! 이런 것들. 육군 선진화 실현 방안을 가져 오세요 실현방안을!”
탕!
“수헌부 잡아오라 이겁니다!”
차르르륵-.
벌떡 일어난 참모총장의 손바닥이 테이블을 내려치는 소리와 함께 도미노가 구르기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 흘러.
조그만 한 공간,
천장엔 천장용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다.
그 밑에는 이번 사태의 도미노 중 한명인 대대장.
박중령.
“옘~병 이제 진짜 별걸 다 시키네.”
대대장이 효자손으로 귀 뒤를 긁었다.
“아니죠...! 아니죠 대대장님.”
그의 앞에 앉아있는 건 육군 사관학교 시절부터 인연이 있는 김소령이다.
“뭐가 아니야?”
“위기라는 건 위기와 기회가 동시에 있다. 뭐 그런 말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것이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고요. 사람들이 또 어두운 면만 볼 때 구름 뒤엔 밝은 태양이...”
김소령의 말미가 길어지자 대대장의 눈썹이 찌푸려진다.
“거 하고 싶은 말이 뭔데.”
“기회를 살리시라. 잡으시라 이겁니다.”
김소령의 눈매가 빛났다.
무언가 염두 해 둔 아이디어가 있다는 소리다.
“아니 대대장님, 별 한번 다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별?”
별.
이라는 소리에 대대장의 눈이 번쩍 뜨인다.
“뭘 해야 하는데?”
“우선은 전문가를 불러들여야죠. 저한테 맡기십쇼.”
김소령과 대대장 사이에 눈빛이 오간다.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두 사람.
얼마 뒤,
육군 사이버 홍보병 중 한명에게 붙어 밀착 지시를 내리고 있는 김소령.
“아니 뭔가 좀! 눈에 확 들어오고 딱 봐도 헌터느낌 나는 그런 걸로!”
홍보병의 앞에 있는 구형 모니터 속엔 제작중인 홍보 베너가 보인다.
한 숨을 푹 내 쉰 홍보병.
엄지를 치켜들고 웃고 있는 육군 모델 누군가의 사진을 보며 고민에 빠진다.
까다롭다 까다로워.
도저히 이 디자인 감각이라곤 없는 까마득히 높은 상사의 취향을 맞춰 줄 수가 없다.
‘에라 모르겠다.’
타닥, 타다다닥.
홍보병의 재빠른 손짓에 사진 속에 이미지가 휙휙휙 변하기 시작한다.
웃고 있던 병사의 치켜든 손은 어딘가 먼 미래를 향해 쫙 뻗은 듯한 동작이 되었고.
웃고 있는 사진속의 병사의 눈은 형광 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어... 어떠십니까?”
이건 소위 디자인계 전문용어로(?) 던졌다고 한다.
진지한 디자인을 때려치웠단 소리다.
하지만 막상 던지고 보니 초조해 진다.
아, 이건 좀 심했나?
아무리 디자인 감각이 없는 소령이라도...
행여 바보로 아냐며 불호령이 떨어질 까 노심초사 눈치를 보는데.
“봐~~! 하니까 되잖아! 이렇게 잘하면서! 빨리! 여기다가 막 불 같은 것도 나오고 이렇게 안 되나?”
“예...옙?!”
“아 왜 막 영화 보면 불덩이 같은 것도 막 나오고 그러잖아.”
진심인가...?
어느새 베너 속 병사의 손끝엔 동그란 날아가는 불덩이가 추가된다.
“왐마 멋지네~~! 더 해봐 더!”
“예..옙!”
“뒤에 배경도 말이야. 이런 거 말고 있잖아 거 왜~”
“옙!”
“봐봐봐 여기에도 말야 이런 거...”
“이렇게 말이십니까?”
“그래~그래! 잘 하네! 아니 왜 이런 실력을 숨겼어?”
“하하하..”
홍보병이 침을 꼴깍 삼켰다.
고래는 칭찬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그 반대던가?
하여간 자꾸 잘 한다 잘한다 하니 어쩐지 중간부터 신이 나서 흐름을 타고 마구잡이로 편집 해 버렸다.
그리고 나온 결과물.
“키야~ 멋지다. 수고했다 수고했어. 휴가 줄까? 휴가?”
“감사합니다!!”
입이 귀에 걸려서 인사를 하는 홍보병.
모니터 속 웃고 있는 병사는 어딘가로 손을 뻗고 있고,
그 손끝에선 파이어볼이 날아가고 있으며,
눈은 허공으로 형광 빛 레이저를 쏘고 있고 군복은 창연한 기운에 감싸여 빛나고 있고 뒤에는 3D 게임 그래픽의 북한 병사들이 쓰러져 있다.
이미 정상적인 미적 감각을 가진 사람의 센스에서 3만 광년은 벗어나 있는 우주적 센스의 작품이었다.
‘에..에라. 모르겠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휴가까지 받았는데 뭐 어떠랴.
설마 배너 디자인 엽기적으로 했다고 영창이야 보내지 않겠지.
차르르륵-.
그리고 이 기묘한 추진력과 디자인 센스의 앙상블 위에 새겨진 홍보 문구.
[대한민국 육군이 헌터 전문가를 모십니다.]
“풉!”
인터넷 폐인 김모씨는 이 기묘한 홍보 배너가 자신이 다니던 사이트의 한편에 작게 뜨자마자 먹고 있던 컵라면을 뿜었다.
“뭐야, 이거 진짜잖아?!”
클릭 해 보니 정말로 대한민국 육군에서 사람을 찾는다는 내용이다. 낄낄 거리는 김모씨.
유감없이 베너를 다운받아 손수 손을 보태준다.
차르르륵-.
순식간에 김소령이 만든 베너는 인터넷 세상에서 대유행이 되었다.
‘흔한 대한민국 용사’ 하는 제목으로 말이다.
각종 유머사이트에 바닷가에 있는 병사.
사막에 있는 병사.
우주선 위에서 외계인과 싸우는 병사.
영화 포스터 속에 병사.
축구선수를 쓰러뜨리는 병사.
국회 의사당을 폭파하는 병사.
스타X즈의 오다와 싸우는 병사.
몬스터 볼에서 튀어나온 병사.
외국 배우와 벤치에 앉아있는 병사.
여자 아이돌 무대 옆에 숨어있는 병사 등
국방부 베너의 병사를 소스로 한 각종 합성 이미지들 잔뜩 과, 그 사이에 있어도 위화감이 전혀 없는 국방부 배너 원본이 올라와 있는 게시판.
그리고 댓글들.
[ㅋㅋㅋㅋ 미쳤다 미쳤어.]
[아놔 이름만 용사인줄 알았더니 ㅋㅋㅋ]
[디자인 전문가인데 이건 진짜 아닌 거 같다.]
[ㄴ디자인 비전문가 인데 이건 아닌 거 알겠다.]
[ㄴ뒤자인? 앞자인 전문가는 없냐? 엌ㅋㅋㅋㅋ]
[ㄴ아...ㅡㅡ아재요...마우스만 쓰세요...]
그리고 이 우스꽝스러운 게시물을 한 없이 진지한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사내.
차르르륵-탁.
누군가의 손가락에 도미노가 멈춘다.
“흐음....”
아직은 더운 피시방에서 검은 후드티를 뒤집어 쓴 사내의 눈가가 모니터의 불빛을 받아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