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
S3 : 5화
그리고...
국방부 참모총장 사무실.
“그래서, 아무것도 못 찾았단 말 이야?”
칠성의 뒤를 털어보라고 지시했던 그.
그의 앞에서 안절부절, 가시방석 위에 앉은 것 마냥, 오갈 곳 없는 길거리 개처럼 눈치를 보며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는 비서.
“그, 그게. 이모저모로 열심히 털어 봤는데요...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깨끗... 합니다. 그 흔한 탈세 같은 것도...”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어. 이상하다면 진짜로 뭔가 이상 한 거겠지.”
깍지를 낀 참모총장의 눈썹이 팔자로 구겨진다.
“김칠성이 그렇게 수가 좋을 거 같진 않은데....”
참모총장이 중얼거렸다.
김칠성에 관해 구린 점을 몽땅 털어오라고 했는데 깨끗하게 아무것도 안 털어왔다니.
김칠성이 정말로 청렴결백하기만 한 수호성인 일 리도 없고,
자기 손으로 세탁을 했다고 해도 정치 신인인 꼬맹이가 이렇게 노련할린 없다.
그렇다면 이건 좀 더 능숙하고 높은 사람이 미리 손을 써 둔 것 일 것 이다.
라는 것이 참모총장의 생각이었다.
“그...그럼 누가요?”
총장 비서가 의도를 눈치 채고 물었다.
참모 총장의 위세로도 쉽게 닿기 힘든 높은 위세를 가진 인물.
“우리가 손을 못 쓸 정도로 약을 쳐둘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지...”
참모총장 보다 높은 사람?
그리고 김칠성의 뒤를 적극적으로 봐 줄만한 사람.
예를 들자면...
“요즘 중국의 동향이 심상치가 않다고 들었습니다.”
대통령을 참모총장이 직접 보게 된 것은
시간이 조금 흘러 광복절 행사 날 이었다.
무대에선 광복적 기념식 관련 공연이 한창인 와중에, 무대 뒤편의 회의실로 기어코 군사 관계자들을 불러낸 것 이다.
“국정에 관해 의견은 나눠 봐야 할 거 같은데, 바쁘신 분들이니 모시기가 쉽지 않지 않습니까.”
“아유, 그럼요.”
“현명하신 처사십니다.”
나름 별 들 달았다는 사람들이 꼼짝 못 하고 대통령의 비위를 맞추어 준다.
하지만 웃는 면으로 대통령을 맞는 이 들도 그렇고,
뚱한 표정으로 관망하고 있는 육군 참모총장 역시도
이 자리가 편하지는 않았다.
“제가 군에 관해서 전문가는 아닙니다만... 이제 이런 정보들, 그러니까 댜오위다우 분쟁에 관련된 사항들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만큼. 우리 군도 최악의 사태도 대비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보나마나 시어머니 질을 하려고 만든 자리일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과 일본의 영토분쟁은 상당히 오래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차치하고서라도, 문제는 이것이 무력 분쟁화 될 요지가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재판소에 넘어간 이 문제.
문제는 중국이 재판에서 패소할 경우 댜오위다우를 무력점거 할 것 이란 루머가, 사실은 루머가 아니라는 첩보가 국군에게 입수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이 댜오위다우를 위한 병력을 재편하고 있다는 정보다.
“만약에 우리 예측대로 중국이 군사력을 동원한다면... 이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높은 확률로 중국의 패소가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일본이 미리 손을 다 써 두었다는 정보다.
대통령이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이건 전쟁입니다.”
대통령과 군 관계자들 사이에 심각한 눈빛이 오갔다.
심각한 문제인 것은 맞는데,
사실상 군대 내부 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대통령이 훈수를 둔다는 것은 고깝다.
“중*일 전쟁이 현실화 될 경우에 언제든지 대응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 되어야겠습니다.”
전쟁은 무슨 놈에.
참모 총장은 속으로 비웃음이 나왔다.
중국 놈 들이 미쳤다고 군사 강국 일본과 전면전을 하겠는가. 해도 대충 흉내나 내겠지.
일본 입장에서도 역시 마찬가지고.
“가능성이 낮은 일 이라 할지라도, 막상 우리가 휘말리게 되면 큰 일이 아닙니까? 나라의 안보를 책임지는 분들이 좀 더 신경을 써 주셔야 할 시기입니다.”
하여간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말 했으니 손 놓고 있을 수는 없고 다들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것 이다.
마치 방학숙제를 받은 초등학생들처럼 말이다.
그런 것과는 별개로, 참모총장은 대통령의 안색을 유심히 살피며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말 저 인간이 김칠성의 세탁까지 도와줬을까?
왜 그렇게까지 끼고 도는 거지?
“너무 심각한 이야기만 하면 또 그렇겠죠, 좋은 소식도 가지고 왔습니다.”
좋은 소식이란 말에 듣던 이들의 귀가 번쩍 뜨인다.
“신무기 문제에 관해서 말입니다.”
신무기는 로망의 문제다.
자국은 자국의 무기로 지킨다는 문제에 대한 로망.
이게 세계 2차 대전 상황도 아니고, 막대한 신규 무기 개발비에 비하면 사다가 쓰는 것이 효율적인 경우가 많다.
굳이 국방을 자국의 무기로 할 필요가 없는 상황임에도 끝없이 신규무기 개발에 돈을 쓰는 것.
그것은 실리보다는 로망이 아닐까.
“이번에 수호헌터부가 신무기 관련해서 굉장한 쾌거를 이루었다는 것은 알고들 계실 거라고 믿습니다.”
육군총장, 그리고 몇몇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진다.
이건 상상도 못 했다.
신무기에 대한 이야기가 김칠성에 대한 칭찬으로 이어지다니.
김칠성과 수호헌터부에 대한 근황은 대강 알고 있었다.
미국 국방부 차관과 악수하는 대통령의 환히 웃는 사진은 신문 일면에서 실렸다.
간만에 무언가를 얻어내는 게 아닌, 미국이 얻어가고 싶어 하는 것을 쥔 입장이 되어보니 상당히 신이 났나보다.
“보면서 느낀 것이, 연구 인력에 대한 지원이 중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구 인력에 대한 지원 관련 예산을 내년에 증진하는 방안으로 가닥을 잡았으면 하는데요, 어떻게들 생각하십니까?”
어떻게들 생각 하냐니.
대통령이 신경을 써 주는 것 이야 고마운 일 이나,
국방부 연구 인력에 대한 지원비가 어느 부서 예산에서 나갈지는 뻔 한 일이다.
뭐라도 좀 보태주고 저러나 모르겠다.
떨떠름하지만 물으니,
“아... 아주 훌륭하신 생각 같습니다.”“적극 지원하겠습니다.”
좋다고 할 수 밖에 없지.
참모총장이 입을 비죽인다.
* * *
비슷한 시각 다른 곳.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앞.
“준비 됐냐?”
칠성이 팔짱을 낀 채 미술관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국립 현대 미술관은 평소와 엇비슷한 모습이었으나, 그 앞의 대문은 평소와 조금 달랐다.
백색의 암석으로 지어진 계단들 위에, 미술관의 문이 있어야 할 부근에 매우 거대한 문,
살아 숨 쉬는 마법의 문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 뒤의 미술관 건물은 사이사이로 검붉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칠성과 태홍이 난입한 4팀의 맴버들, 그리고 그들이 준비되자 자리를 뜨는 서포트 팀들.
“예. 준비 됐습니다.”
김태홍은 김칠성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수련을 받는 중 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김태홍은 청마법을 근간에 두고 있고, 김칠성은 흑마법사란 점이다.
그리고 칠성은 태홍을 흑마법사로 키울 생각 이었다.
문제는 청마법을 익히는 사람은 몸속의 마나가 점차 청색으로 물들어가고,
흑마법을 익히는 사람은 흑색으로 물들어 간다는 점 이다.
마치 몸에 흐르는 피가 서로 다르듯,
어떠한 마법을 익히고 수련하느냐에 따라 몸에 흐르는 마나의 종류와 특성 자체가 바뀌는 것 이다.
그래서 꼬박 지난 두 달 간 김태홍은 몸에서 자연의 에너지와 청마나를 빼내는 작업을 했다.
칠성이 휘갈기듯이 수정해 준 마법서를 토대로 이론 작업도 끝냈다.
그리고 이제 실전이다.
-준비 하십쇼 진입과 동시에 가이드스톤 사용해 집결합니다.
4팀 팀장의 텔레파시가 울려 퍼지고, 문이 일렬의 빛과 함께 사람들을 집어 삼킨다.
이제 실전이다.
태홍이 침을 꿀꺽 삼켰다.
* * *
언제서 부턴가 나타나기 시작한, 전혀 다른 세계로 연결되는 문들.
그리고 이 문 안의 몬스터가 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전에 제압하기 위해 투입되는 헌터들.
헌터들이 몬스터를 토벌하는 준비 과정과 전략, 실행을 모두 통틀어 놓은 개념의 용어인 레이드.
초창기에는 마구잡이식으로 이루어지던 레이드는 점차 형태를 자리 잡았고, 그 형태는 대게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다.
첫째, 최소한의 인력만을 투입한다.
몬스터들은 생명체, 특히나 인간을 잡아먹었을 때 비약적인 급성장을 하는 이상한 특징이 있다.
소위 ‘레벨업’ 으로 불리는 이 현상 덕분에 초창기 레이드에선 투입된 인원이 전멸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자격이 부족한 요원의 투입은 팀원들의 발목을 잡을 뿐 아니라 모두의 목숨을 위험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레이드 팀의 헌터가 되기 위해선 상당히 높은 자격요건이 요구되었다.
둘째, 타운트 탱킹에 기초한 공략과 포지션 배분.
최소한의 맴버로 최대한의 안전하고 빠른 토벌을 위해서 안정된 구성의 팀을 꾸린다.
몬스터를 자극해 무조건적으로 타운트 에너지 파를 발산하는 대상만 공격하게 만드는 타운트 기술이 없었다면 헌터 사상자가 최소 3배는 증가했을 것 이다.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부분의 항목들이 지향하는 것은 한 가지다.
‘제한된 인원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자 이것이다.
그래서 배정되는 문 마다 다르긴 하지만 각 팀들의 구성은 대략 5명 전후였다.
3팀 화랑팀만 보아도 기존 칠성의 탱커 포지션의 후임인 한대균을 비롯해서, 레귤러로 김태홍, 한솜이, 지우혁 세 명을 포함해 기본 4명으로 운용되고 있었고, 이외의 팀도 거의 비슷했다.
탱커와 기사, 마법사 간의 숫자 비율만 차이가 있을 뿐 이었다.
그런데 지금 칠성과 태홍이 은근 슬쩍 끼어든 레이드 팀인 4팀의 인원은 무려 11명.
‘축구팀이냐...?!’
하지만 그런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정확히는 4팀 팀장의 신호와 함께 문 안으로 들어오면서 완전히 인식이 뒤바뀌었다.
첨벙!
“이런 미친....”칠성이 정말로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건 미친 게 분명하다.
대한민국 수호*헌터 부 레이드 4팀 전담.
영문명 Fisherman Door.
어부의 문.
아니 그래,
이름에서부터 무언가 감각이 왔고.
챙겨준 장비만 봐도 어떤 몬스터를 상대해야 하는 상황인지는 알았다 이거다.
하지만 이렇게 까지...
“이게 말이 되냐?!”
“그...그니까요!”
당황한 칠성과 태홍이 서로 구명조끼에 의지해 두리번 두리번, 첨벙거리며 외쳤다.
김칠성과 김태홍이 퐁당 떨어진 것은 그야말로 시야가 닿지 않아서 사방으로 수평선이 생긴 끝도 없는 망망 대해 바다의 한가운데였다.
현실 세계로 치면 대서양이나 태평양 한 가운데 떨어진 격으로 보였다.
의지 할 만 한 대륙이나 땅덩이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바다가 어찌나 넓은지 칠성과 태홍을 제외하고는 팀원들은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들도 분명히 거의 황금빛으로 빛나다 시피 하는 형광 톤의 주황색 구명조끼들을 각자 하나씩 껴입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디잉!
그때 칠성의 구명조끼에 부착된 가슴팍 부근 주머니에서 가이드 스톤이 발동되는 진동음과 함께 움직이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 경도 126 다시 57 다시 47, 위도 37 다시 28 다시 35 범고래 잠이 추정 몬스터 발견
- 같이 보고 있는데 좀 더 남쪽 부근 아닙니까? 85도 주셔야죠.
- 전원 플립보트 펴고 가이드 스톤 따라 집결합니다!
“저게 무슨 말 이냐?”
팀장의 명령 사이사이, 그리고 지금도 계속 무언가 알 수 없는 좌표 값 같은 것을 주고받고 있다.
마치 칠성과 태홍만 모르는 지도라도 서로 가지고 비교해 보고 있는 듯이 말이다.
“아 저거... 그러니까, 천문항해학 일걸요?”
천문항해학.
태홍은 언 듯 알고 있는 이 분야는 쉽게 말해 해의 위치를 통해서 좌표 값을 산출 해 내는 학문이었다.
망망대해에서 레이드를 이어가던 피셔맨 도어 전문가들은 매번 이어지는 레이드에 떠 있는 해의 황도.
즉 해가 지나가는 경로가 엇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해서 그것을 기반으로 산출해 낸 좌표 값을 공유,
망망대해 위에서도 서로 위치정보를 공유할 방법을 고안 해 낸 것 이다.
이 방법은 가이드 스톤이 만들어 지기 전에 나온 방법 이다.
물론 이제는 팀원끼리 모이는 것 은 가이드 스톤으로 가능하지만, 이렇게 몬스터 정보 등의 공유에 쓰이고 있었다.
비록 암산으로 하는 것 일지라도 꽤나 정확하고,
그리고 몬스터에 대한 정보를 단 한 줄 이라도 더 얻는 것이 생존율을 올리는 방법이었음으로, 4팀에선 지금도 필수적으로 익히고 쓰는 방법이었다.
알아먹지도 못 하겠는 좌표 값이야 저들끼리 떠들게 내버려 두고 칠성과 태홍은 문 입장 전부터 등에 메고 있던 납작 만두 같이 생긴, 1미터 크기가 조금 넘는 얇고 단단한 베이지 색의 천으로 되어있는 무언가를 펼치기 시작했다.
“오, 뜨네?”
마치 종이배 같은 형상의 플립보트가 바닷물 위에 살포시 떴다.
해양 레이드를 진행해야 하는 4팀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던전 테크놀러지의 집약체 플립보트.
1인용인 이 보트는 던전 테크놀러지를 적용, 작은 몸체이지만 커다란 파도 위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으며, 절대로 물이 들어차지 않는 특수한 선체를 가지고 있음은 물론이고.
“이게... 그러니까...”
태홍이 플립보트 위에 서서 마치 사진기의 유선 버튼 같은 손잡이를 쥐고 갸우뚱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야 그거.”
달칵.
그것이 무엇인지 대충 눈치로 알아챈 칠성이 무언가 훈수를 두려는데, 태홍이 덮어두고 자신이 쥔 손잡이의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지이이-
태홍이 누른 버튼이 희미하게 빛이 나나 싶더니.
바아아앙!!!
“으아아아아!!!”
태홍을 태운 플립보트가 엄청난 속도로 쏘아져 나간다.
퍼펑!
방향 조절이 서툰 태홍이 보트와 함께 마치 한 몸의 미사일이 된 듯 함께 쏘아져 나가 바다에 격렬한 소음과 함께 처박힌다.
마치 포탄이라도 떨어진 듯 새하얀 물보라가 치솟는다.
“야 이 미친놈아!!”
칠성이 절규 같은 욕설과 함께 태홍이 처박힌 곳으로 보트를 몰아간다.
“정신 차려~ 색히야!”
칠성이 저 멀리 따로 떨어져 둥둥 떠 있던 태홍의 플립 보트를 주워서 구명조끼에 의지해 둥둥 떠 있던 태홍에게 던져주며 구박 했다.
해서 플립보트에는 다른 아티펙트들과 마찬가지로, 마나를 불어넣으면 동작하는 추진체가 있다는 소리다.
플립보트의 몸체의 부유마법과 추진체 역할을 하는 원형 크리스탈 판에 적용된 몇 개의 바람계열 마법이 단단한 천 쪼가리를 제트 보트 마냥 바다를 가로지르게 만들었다.
저 혼자 대포알처럼 수면에 덤벼들어 얼이 빠진 채 있던 태홍을 정신 차리게 만들어, 가이드 스톤이 알려주는 방향을 따라 4팀의 팀장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전방 주시하십쇼. 타운트 준비 합니다!
프로패셔널!
이름에 걸맞게 해상 레이드의 전문가인 4팀 팀원들 11명은 이미 바다 위에 각자의 플립보트를 타고 나름의 진영을 짜고 있었다.
뒤늦게 합류 한 칠성과 태홍이 도착했을 땐 이미 4팀의 인원들 끼리 자체적으로 몬스터의 무리를 막아 낼 준비를 완비한 상태였다.
“흐음.”
칠성이 보기엔 조금 의아했다.
이렇게나 많은 인원이 있는 레이드 팀은 잘 없는 법인데, 몬스터의 이목을 끌고 공격을 막아낼 탱커는 단 한명 뿐 인 것이다.
이상하다 싶었지만 그런 거야 지들끼리 알아서 하라고 하고, 그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준비는 제대로 했겠지?”
“예, 그렇기는 한데에...”
평소에 맞먹기 바쁘던 태홍이 어쩐지 칼같이 존대를 하며 말끝을 흐렸다.
“쫄았냐~?”
칠성은 괜히 도발한다.
자신감이 없으면 될 것도 안 된다.
“아 쫄기는요~”
오늘은 태홍의 흑마법 시전 실전 첫 날 이다.
연습은 역시 실전이지.
연습을 실전처럼 해야 한다는 것 도 아니고, 연습을 정말로 실전에서 해야 한다!
라는 요상한 칠성의 방침에 따라 굳이 남의 팀 레이드에까지 따라 온 것 이다.
마법을 사사받고 싶은 마음만은 진심인 태홍이 그간 준비를 안 해 왔을 리는 없다.
더군다나 나름 엘리트가 아닌가. 이론상은 완벽하다.
칠성이 대충 휘갈기듯 적어서 던져 준 노트와, 태홍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에 칠성이 덧칠하듯 해 수정해 놓은 이론서 만 으로도 머릿속에 흑마법의 원리를 대강이나마 깨우쳤다.
-옵니다! 플라잉 피쉬...
그때 수면을 관찰하는 역할을 하고 있던 4팀의 팀원 중 하나의 텔레파시가 울려 퍼졌다.
저 먼 바다에서, 무언가 파도 같은 것이, 혹은 바다 위에 붙은 구름 같은 것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었다.
일인용 보트에 의지한 채 수면위에 떠 있는 헌터들에게 점차 가까이 오면 올수록 실체를 드러내는 그것, 아니 그것들은....
“키에에엑!!”
바다 표면 위와 위를 유선형의 몸체를 튕겨서 튀어다니며, 날개 같은 지느러미를 휘둘러 추진력을 얻어 마치 저공비행을 하는 해상 비행기 마냥 고속 이동하며 달려오고 있는 몬스터의 무리였다.
날치 같은 모습에 징그러울 정도로 길쭉한 지느러미.
자비 없어 보이는 빼죽한 이빨과 철갑 같은 비늘의 몸체는 개체별로 크기가 1미터 여 정도 되는 것 같았다.
꿀꺽.
태홍과 몇몇 헌터들이 침을 삼켰다.
몬스터들의 몸체 한편에 삐쭉 빼쭉 튀어나와 있는,
자연적인 동물에게라면 있을 리가 없는 형태인
철갑을 두른 날카로운 앞발들이 빛난다.
-개체 약 20기!
육안으로 몬스터의 대략적인 모습이 그려질 정도가 되자 상세한 브리핑이 이어지고, 이내 격돌을 준비하는 4팀의 팀원들. 그리고.
“캐스팅 해!”
끄덕.
다그치는 칠성의 말에 주문 영창에 들어가기 시작하는 태홍.
“...어둠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 구도자여 그대의 표적이 곧 나의 적이니 꿰뚫을 지어다!”
두-웅.
태홍의 손끝에서 마나의 기운이 올라온다.
주문의 영창이 계속됨과 함께 태홍이 꺼내든 수정구 위에 차곡차곡 연보라 빛으로 빛나는 마나의 진 들이 쌓여들기 시작한다.
“키에에에!!”
그 와중에도 수면을 튀어 오르며 점차 이쪽을 향해 빠르게 거리를 좁혀 들어오고 있는 몬스터의 무리들.
구우웅~!
전방으로 보트를 끌고 나간 탱커 역할의 헌터가 방패를 치켜들자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커다란 타운트 에너지의 파동!칠성, 태홍을 제외하곤 마치 학익진의 형태로, 타운트를 시전 하는 탱커를 둘러싸고 있던 마법사들과.
탱커 역할의 헌터 지원을 위해 탱커 근처를 맴돌던 기사들.
타운트의 파장에 노출된 몬스터들의 눈이 희번뜩 하더니 예상대로 탱커 역할의 헌터를 향해 몰려들기 시작한다.
“어어어?!”
그때 이변이 생겼다.
- 무, 무슨 상황이야!
- 타운트가!
- 플라잉 피쉬 1기 후방으로 접근 중!!
전방에서 격전을 준비 중이던 헌터들 사이에서 비명과 외침이 터져 나왔다.
20여 개의 개체인 플라잉 피쉬 중 한 놈이 허공을 향해 치솟는 가 싶더니 앞쪽에서 대기 중이던 헌터들의 진영을 뛰어넘어 칠성과 태홍, 그리고 몇몇 마법사들이 있는 라인으로 덤벼드는 것 이다.
꿀꺽.
칠성이 몬스터와 태홍을 날카롭게 긴장한 눈으로 번갈아가며 살폈다.
“광염의 여제여...”
“붉은 창이여...”
당황한 4팀의 마법사들이 주문 영창을 하기 시작했지만 너무 늦는다.
일촉즉발의 순간.
끼어들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태홍의 캐스팅 역시 너무 느리다.
캐스팅 이란 건 마법의 이해도와 관련되어 있다.
말을 빨리 뱉어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주문은 공식일 뿐, 마법을 실제화 하기 위해선 논리적 흐름의 연결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태홍은 너무 느리다.
마법에 재능이 있는 것 같았는데, 자신이 너무 태홍을 과대평가 한 것 같다.
“에, 에잇!”
보다 못 한 칠성이 자신의 판단을 자책하며 손을 들어 올리는 찰나!
“...남는 것은 오로지 어둠뿐이리라!”
번뜩.
갑자기 태홍의 눈빛이 빛나나 싶더니 머뭇머뭇 지지부진하던 태홍의 오브 위의 마법진들이 순식간에 제 형태를 갖춘다.
이내 태홍이 자신의 수정구 위에 떠 있는 완성된 형태의 어둠의 총알을 향해 손가락을 펼쳤다.
“*다크 볼트*!”
피유우우웅-!
태홍이 날려 보낸 어둠의 총알이 허공을 가르고 날아간다.
파캉!
“키에에에엑!!”
마치 그림같이, 2, 3 미터위의 허공에서 태홍을 향해 뛰어들던 플라잉 피쉬의 미간에 명중 하는 어둠의 총알.
미간을 기점으로 부숴져 내리듯 금이 쩍 쩍 가는 몬스터.
풍덩.
이내 포물선 형태로 칠성과 태홍이 있는 곳을 지나 그들의 등 뒤에 물보라를 일으키며 침몰 한다.
언제 살아서 그들을 위협했냐는 듯.
마치 플라스틱 조각들처럼 쩍쩍 갈라진 채 위로 떠오른 몬스터의 사체.
“후~ 유.”
고작, 따지자면 소형에 속하는 개체 일 뿐인 몬스터 하나에 온갖 긴장을 다 한 베테랑헌터,
칠성과 태홍이 한숨을 뱉으며 땀을 닦았다.
뚜두둑.
“자, 그럼 시작 해 볼까?”
“좋죠!”
두 사람이 슬슬~ 난전을 펼치고 있는 전방으로 보트를 몰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