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S3 : 4화
* * *
티브이 뉴스 인터뷰 화면.
앵커멘트가 이어진다.
“수헌부 특수범죄 전담팀이 제압한 이모씨는 조직 ‘앙상블’파의 보스로. 이들은 각종 연예인에게 마약을 공급한 혐의와 불법 도박장운영에 관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자료화면으로 수헌부 근무복을 입은 요원의 인터뷰가 나온다.
클럽의 룸에 멋지게 쳐들어가 식칼로 무장한 조직 폭력배들을 순식간에 제압한 요원 두 명이다.
둘 모두 카메라 앞은 처음인 듯 매우 긴장한 표정.
뒤편에서 입을 꾹 다문 요원은 뚫어져라 카메라를 노려보고 있고,
그중 살짝 앞선 요원은 매우 어색하게 카메라를 보지 않고, 기자가 있을 곳으로 추정되는 어딘가의 허공을 보는 채로 더듬더듬 거리며 멘트를 뱉는다.
“저희 수헌부 특수범죄 전담팀은, 앞으로도 몸을! 아끼지 않는 그러한 활약으로. 이제 국민들의 치안에 다시금 또 그런 안정을 가져올 것이며, 그 부분에 있어서 약속을 드립니다.”
눈을 끔뻑이면서 간신히 뱉은 멘트를 여자 앵커가 이어받는다.
“헌터 라이센스를 가진 요원들로 구성된 수헌부 특수범죄 전담팀은 강력 범죄자 검거에 있어서 경관의 위험부담을 낮추는 등. 치안 강화에 일조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요. 고영욱 범죄심리 전문가 프로파일러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앵커 옆에 있던 범죄전문가 고영욱이 말을 이어 받는다.
“네 고영욱입니다. 방금의 활약을 보셨듯이. 흉기로 무장한 범죄자들을 검거하는데도 전혀 장애가 없죠. 더군다나 기존에 흉기를 든 범죄자를 상대하려면 총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경우 문제가 많았었단 말이죠. 이번 전담팀 같은 경우엔 전력 차이가 워낙에 압도적이기 때문에, 맨손으로 흉기를 든 범죄자들도 가볍게 제압이 가능하고요, 또 다른 한편 범죄자들에게 있어 경찰의 위상이 넘을 수 없는 어떠한 경지로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것만으로도 범죄율 감소 효과가...”
전문가의 멘트가 이어진 뒤에는 일반 시민들의 인터뷰가 이어진다.
수헌부의 인식에 대한 길거리 인터뷰 이다.
“아유, 든든하죠.”
40대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경찰이 강해지는 거 아니에요? 너무 좋죠!”
2,30대 쯤 되 보이는 직장인 여성이 웃으며 대꾸한다.
“아~ 이제는 우리나라는 수헌부가 지키겠구나 하죠.”
10대로 보이는 젊은 학생이 교복을 입고 장난치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여서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티브이 화면이 점차 멀어지면 티브이 화면을 지켜보고 있는, 사무실 안의 육군 참모총장.
책상 위에 팔을 올리고 앞으로 몸을 잔뜩 땡겨 화면을 지켜보던 참모 총장이 의자가 꺼져라 의자 속으로 몸을 파묻으며 끄응 하는 한숨 같은 것을 내뱉는다.
“뭐? 우리나라를 수헌부가 지켜?”
“아, 아유! 신경 쓰지 마십시오. 뭐 이런걸 보신다고 해 가지고....”
자기 발등에 불이라도 떨어진 듯 호들갑을 떠는 것은 육군 참모총장의 비서였다.
수헌부 관련 소식은 모조리 보고하라는 명령에 수헌부 관련 뉴스 꼭지를 보여준 것 인데.
아니나 다를까 총장의 반응은 격렬했다.
어찌 이정도 미적지근한 반응이 격렬한 것 이냐 되물을지 모르겠으나, 북한 포격이 일어났을 때도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는 듯 눈썹하나 꿈틀 안 한 인사인 것을 고려해 보면 금세기에 기록될 놀라운 리액션 이었다.
“저저 어린 애들이 뭘 알겠습니까? 그리고 이 방송 자체가 대놓고 수헌부 광고영상인데요 뭘.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무슨 말을 이어 봐도 총장의 미간은 더욱 더 구겨질 뿐 이었다.
그래서 점차 달래는 말이 더더욱 붙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쟤들이야 김칠성이 대한민국이 아니라 지구라도 지키는 줄 알 텐데요. 그냥 실체는 없는 이미지일 뿐입니다 이미지.”
결국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르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총장의 표정이 구겨지고 나서야 비서의 말문이 멎었다.
그도 중년의 사내인데, 마치 소녀마냥
안절부절 아무것도 못 하고 눈치만 보는 비서에게 눈을 질끈 감고 있던 총장이 실눈을 슬쩍 뜨며 다그쳤다.
“정치는 이미지야. 이미지. 실체는 하등 필요가 없어!”
언론에서 찬양하다 시피 하는 김칠성이 가진 그 무궁한 능력과 리더쉽의 실체가 있던, 없던 간에.
수헌부에서 이런 언론플레이를 안 하고 가만히만 있어도 신경 쓰이는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조직도 상으론 일개 외청이라고는 하나,
그 무게감은 어떠한 부서급의 이상인 경찰청을 집어 삼키질 않나.
이쪽은 만드는 것 마다 결함이니 어쩌니 하는 신무기 분야도 김칠성네는 이제 역수출 시대를 연다 만다 하고 있질 않나.
이제는 시민들 입에서 우리나라는 수헌부가 지키는 거 라는 소리까지 튀어나온다.
“수헌부가 나라 다~ 지키면! 국방부는 뭐 하러 있나?”
“아아니, 무슨 그런 말씀을!”
“그런 소리 나오나 안 나오나 봐. 금방 일테니까.”
즉,
김칠성의 실체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관심도 없다.
그가 가해오는 위협만큼은 진짜다.
그래도 설마 수헌부가 국방부를 집어삼킬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른다는 가정은 상상의 영역일 뿐 이지만,
그런 일을 꿈에서라도 상상하게 만드는 김칠성의 존재 자체가 너무도 껄끄럽다.
“대통령이 오냐오냐 싸고도니까 정신을 못 차려서....”
“그, 그럼 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비서실장이 물었다.
사실 정말로 궁금해서 물은 게 아니라, 총장이 이런 말투로 질질 끌 때는 무언가 심중에 둔 것이 있다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묻기는 뭘 물어. 김칠성 그놈. 머리부터 발끝까지 싹 다 털어봐!”
“예?”
“은닉 자산, 학력 위조, 탈세, 기타 등등등... 세상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나? 분명이 놈도 뭔가 있을 거야.”
총장의 입꼬리가 밑으로 처지며 치켜뜬 눈이 번뜩였다.
“잘난 대한민국 영웅한테 똥물 한번 끼얹어 보자고.”
* * *
덜컹.
퍼런색 벙거지 모자를 쓴 칠성의 아버지가 자가용 운전석에 타고선 모자를 벗었다.
이내 곧 시동이 켜지고, 부팅된 네비게이션에 쳐서 넣는 주소는 경기도 안산 대부도의 한 방조제다.
비록 아무 일도 없는 평일 이지만, 방금 전 만해도,
낚시가요~?
어~
하는, 이제는 꽤 익숙한 인사를 받으면서 나왔다.
아버지가 억울한 갑질을 당하는 것을 참고 보지 못한 칠성, 그런 칠성의 활약으로 삼익의 이사자리에 까지 올랐었던 칠성의 아버지.
김이사라는 기분 좋은 호칭에 익숙해진 것도 얼마 안 갔다.
그냥, 회사 생활 자체가 너무나도 무료했다.
얼렁뚱땅 꿰어 찬 자리는 그저 이름만 있을 뿐 이었다.
치열했지만, 능력으로 후배들에게 존경받고 현장을 진두지휘 하던 시절은 지났다.
이사라는 명목으로 모셔두고, 칠성과의 커넥션 중간다리 정도의 역할.
그냥 삼익 내에서 칠성의 아버지는 칠성의 대사관 역할을 하는 것뿐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네비게이션의 청아한 목소리가 목적지 도착을 알린다.
트렁크에서 낚싯대를 챙겨 나서는 칠성의 아버지.
차갑고도 신선한 바람이 벙거지 챙을 스친다.
“아이고, 형님 오셨네!”
바닷가의 방조제 위에서 비슷한 나잇대의 남자가 손을 흔든다.
오래된 친구나, 동호회 회원 같은 것은 아닌데.
낚시터에서 자주보다 보니 친해졌다.
“뭐 좀 잡았어?”
“이야, 우럭 있어 우럭. 크다 아주. 회 떠먹자 좀 있다.”
남자가 말은 회를 먹자고 하면서, 손동작은 소주잔을 기울이는 흉내를 내며 말 했다.
칠성 아버지의 낚싯대가 허공을 휘젓는다.
이사라고야 하지만 누구도 칠성의 아버지에게 이사로서의 활약을 기대해서 된 게 아닌 이사.
딱히, 아무 일도 배정된 것이 없고.
간간히 올라오는 결제서류에 사인이나 하고,
월급이나 받아 챙겨도 모두가 시기 질투, 혹은 우러러 본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이런 꿀 같은 직장생활을 마다 할 리가 없지만, 칠성의 아버지는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회사에 붙어있는 것에 별 재미를 느끼지 못 했다.
아, 이럴 바엔 낚시나 다니지 뭣 하러 회사를 다녀.
어차피 월급을 벌어봐야 칠성이 버는 돈의 용돈 수준에밖에 미치지 못 한다.
물론 회사를 나가는 둥 마는 둥, 이사 생활을 하면서 낚시를 다닌다 해도 칠성의 존재감 덕에 아무도 불만을 제기하지 못 할 상황이었으나.
그럴 바엔 그냥 깔끔하게 나가자는 판단이었다.
칠성의 아버지야 자신이야 이러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자기 나이대의 직장인들 이라면 이런저런 명목으로 많이들 잘리기도 하고,
그렇지 않더라고 해도 곧 정년이 가까운 나이다.
조금 더 일찍 퇴직을 한다고 생각하면 거리낄 것 도 없다.
그러나 자신과는 별개로,
게임이 너무 쉬우면 재미가 없다고 했던가?
하여간 이러한 과정을 칠성의 누나인 칠선은 겪지 않기를 바란 아버지.
칠성이 든든한 기둥으로 집안을 지켜주는 것 이야 고마운 일 이었으나, 그것 이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평생 평범하게 살던 사람이 거액의 복권에 당첨되어 인생이 망가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칠성의 아버지는 누나인 칠선이 가급적, 평범한 삶을 살길 원했다.
나중에 잘 안 되어 회사를 나와 카페 같은 것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도 말 이다.
바닷바람이 부는 시화 방조제 위엔 줄지어 선 차들, 그리고 낚시꾼들이 저마다 의자에 앉거나 서 세월이나 우럭을 낚고 있었고,
슬슬 해가 진다.
그러한 이유로 늦은 시각.
서울시내 한 제약회사의 기획팀.
자신의 자리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작업하고 있는 칠성의 누나, 칠선.
야근이라곤 하지만 자청한 일 이었다.
사람이라는 게 굉장히 이상해서.
“아이고, 먹어가면서 해요.”
“어? 감사 합니다~”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몸이 고단한 것쯤은 또 별것 아니다.
칠선의 귓가에 갈색의 종이 백을 들이미는 남자.
정도현팀장.
남자치곤 작달만한 키에 소년 같은 동글동글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다.
자른 지 오래되어 삐죽 나온 콧 밑 수염을 감안 하더라도, 50대의 나이에 비해 상당히 동안인 귀여운 인상의 남자.
저 정도면 성격이지.
싶을 정도로 깔끔한 각 세운 정장 바지와 남방을 입고 있었다.
“와~ 이런 건 언제 사셨어요.”
커피와 샌드위치를 확인한 칠선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뜬다.
“내 꺼 사면서 샀지. 잘 돼?”
“덕분에요.”
칠선이 준비 중인 것은 ppt 자료였다.
회사의 외국의 유명 유산균 브랜드 S#3 의 M&A 에 대응하는 국내 유산균 시장 점유율 흡수 전략에 관한 내용이었다.
간략하게 말해 칠선이 다니는 회사가 외국 유명 브랜드 제품을 집어 삼켰는데, 이걸 효율적으로 이용해 팔아먹을 방법을 궁리하는 것 인 것이다.
칠선의 기획서가 채택되었고,
임원진 앞에서 칠선이 직접 발표 할 내용을 준비하는 중 이었다.
그리고 칠선이 이 일을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은, 정도현 팀장의 영향이 있었다.
적어도 그는, 자신의 부하직원의 공로를 훔쳐 먹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 한 만큼 인정받으니 괴로움 속에서도 보람이 있다.
치열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칠선이었다.
“봐봐, 어제 워터파크 갔다 왔데.”
정도현 팀장이 칠선의 앞에 내민 스마트폰엔 구명조끼를 입고 손가락으론 브이를 그리고 있는 꼬맹이가 웃고 있다.
자그맣게 미소 짓고 있는 꼬마는 정도현 팀장을 꼭 닮았다.
“어머!”
칠선이 호들갑 떨며 휴대폰을 받아 확대 해 본다.
“와 너무 귀여워 와...”
가정적인 남자.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칠선도 마치 친 동생이나 대학 선후배처럼 진짜 선배로서 이끌어주고, 잘하는 것은 높게 평가 해 준다.
할 일이 많은 게 흠 이지만,
좋은 상사와 함께 평범한 직장생활을 잘 헤쳐가고 있는 칠선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