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
S3 : 3화
* * *
삐비비빅-. 삐비비빅.
‘아, 눈뜨기 싫다.’
방송 기자 5년차.
곧 서른.
박지민 기자가 눈을 뜸과 동시에 제일 먼저 한 생각이었다.
“으자!”
눈은 뜨기 싫지만 몸을 벌떡 일으켜 일어난다.
차여나간 이불은 한쪽에 찌그러져 있던가말던가 본인 몸 챙기기 바쁘다.
씼어야 한다.
잽싸게, 철저하게.
어푸 어푸.
전투적인 세안이 이루어지고 각질 제거제, 닦아 내는 스킨, 에센스 까지 어울리지 않는 철저한 관리가 이어진다.
여기자란 직업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엿이다.
그것도 아주 크고 거대한 빅 엿.
아니 직업 앞에, ‘여’ 라는 수식어는 왜 붙는 거냔 말이다.
화장도 매너인 이 사회를 저주한다.
마치 전투에 나가는 군인처럼 체계적인 순서로 출근 준비를 해 나간다.
위장 크림인지 화장품인지 모를 무언가로 가면을 완성해 간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론 어제의 수면시간을 계산한다.
‘3시간 30분...?’
이래봐야 본인만 괴로워지는 건 본인이 가장 잘 안다.
방송 기자라는 건 기자이자, PD이자, 제작자다.
언 듯 못 하는 게 없는 매력적인 직업으로만 보인다면 오산이다.
바꿔 말 하면 모든 걸 다 해야 하는 노예라는 소리다.
6개월 수습 기간 때는 수습이라서 눈코 뜰 세 없이 바쁜 건 줄 알았다.
“아니었다는 거지~!”
어느새 완벽한 세팅, 화장과 헤어 스트레이터로 편 머리, 깔끔하게 차려입고 주차장으로 내려온 박지민 기자.
자신의 애마를 향해 스마트키를 조준하고 누르자 차가 삑삑 소리와 함께 응답한다.
“휴.”
작고 귀여운 경차.
들어가서 시동을 걸고 출발시킨다.
그녀의 취향대로 라면 이 모델이 적극적으로 밀고 있기도 한 레드 와인의 빨간색 이었어야 할 차.
하지만 그녀의 차는 칙칙한 검은색이다.
눈에 너무 띄는 차는 안 좋다.
차는 업무를 위한 탱크 같은 것 일 뿐 이다.
“아니, 내가 이렇게까지 노력하는데.”
무언가 갑자기 든 생각에 열이 뻗친 듯, 그녀가 핸들을 꺾으며 혼잣말로 불만을 토한다.
“그것도 못 해줘요?!”
어느새 회사에 도착해 부장 앞에 서 있는 박지민 기자.
그녀의 말에 부장은 한숨을 푹 쉰다.
“야 좋아, 네 말대로 수산부 장관이 해 먹었다고 치자. 그런데 네가 그걸 어떻게 캐겠다는 거야 무슨 수로?”
“아 그냥 부장 회의에 아이템이나 올려 달라니까요?”
“다른 언론사 애들이 다 호구고 등신인줄 알어? 걔들이 못 하는걸 혈혈단신 네가 무슨 수로 캔다는 거야.”
“내가 알아서 한다고요! 각이 나올 거 같으니까 이러지. 내가 괜히 그래?”
“새꺄. 내 선에서.”
말을 이어가던 도중 갑자기 화가 올라오는지 눈을 뒤집던 부장이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 벌떡 일어나 뒤의 벽면에 풀 스윙으로 던진다.
철썩.
하고 벽에 붙었다 서서히 떨어져 내리는 것은 끈끈이 인형이다.
“계집애 진짜 팰 수도 없고!”
“괜히 승질이야!”
일상적인 풍경인 듯 박지민 기자도 질세라 대든다.
“에휴, 씨!”
“선배 나한테 씨 했어?”
짝다리에 팔짱을 끼고 따박따박 대드는 박지민 기자를 향해 부장이 눈을 아래위로 흘긴다.
“너는 시집은 못 갈거야.”
“뭐?!”
휘청.
의외의 공격에 질문 이라기보다는 기험을 내뱉으며 팔짱 끼었던 손으로 책상 끝을 잡고 기대는 박지민 기자.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는 인형에다 스트레스 해소를 한 부장이 다시 앉아서 살살 손짓을 한다. 다가오라는 뜻 이다.
박지민 기자 귀에 대고 속삭인다.
“너 내가 뭐 억하심정 있어서 막겠냐? 아무도 안 건들이는 데는 이유가 다 있는 거야 짜식아...아무것도 모르는 시키가...”
“아니! 그런 것도 못 건들일 거면 내가 사회부 지망을 왜 했어요? 맨날 유명한 사람들 뒤꽁무니나 쫒아 다닐 거 같으면 문화부를 갔지.”
조용조용 타이르는 부장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큰 소리로 따지는 박지민 기자.
“아 됐고! 김칠성 수헌부 장관 취임식이나 가.”
“아 진짜!”
“팀 다 만들어 놨어 후딱 갔다 와.”
“...맨날 진짜 다 자기들 멋 대로고. 내가 하자는 건 아무것도 안 해주고....”
양손을 뒷짐 진 채 몸을 배배꼰다.
마치 삐진 어린애처럼 바닥을 쓰는 발끝만 쳐다본다.
전혀 기자답지 않은 행동.
불호령이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지만 부장은 또 다 받아 준다.
“새꺄, 이게 무슨 동아리야? 너만 기자야? 너만? 조직이 그렇게 굴러가는 게 아니잖아.”
“누군데요. 촬영.”
“누구기는 누구야 박인규 선배지. 오디오 태완이.”
“아 진짜! 내가 싫다고 했잖아요 박선배는. 나 젊고 기자정신 살아있는 사람이랑 하고 싶다고. 해가지고 오래오래 하고 싶다고.”
박인규 촬영기자는 정년이 5년 남은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엔 어땠는지 모르나, 박지민 기자의 눈엔 솔직히 말해 기자정신 보다는 공무원 정신으로 정년까지 버티는 사람 일 뿐이었다.
자꾸만 박인규와 자신을 붙여주는 게 자신의 소위, ‘기자정신’을 껄끄러워 하는 부장이 억제책이자 보험으로 그를 붙여둔다는 생각을 하는 박지민 기자 입장에선 불만 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아직 가슴이 활활 타오르는 5년밖에 안된 신임, 5년만 버티면 되는 말년의 조합이 매끄러울 수만은 없는 것이었다.
“좀 친하게 지내 봐라! 둘 다 박씨잖아. 밀양 박씨지? 박선배도 밀양 박씨야. 야~ 종친끼리. 친하게 지내고 얼마나 좋아?”
박기자가 괜히 툴툴대며 입술을 비죽였다.
“참 나, 대한민국 박씨 쳤다하면 다 밀양 박씨거든요?”
스르륵-탕.
검은색 국산 SUV 촬영차량의 문이 닫혔다.
“안녕하세요~.”
마지막으로 들어온 것은 박지민 기자였다.
운전석엔 아직 이십대 초중반 밖에 안 된 오디오 보조 김태완이. 보조석엔 예의 박인규 촬영기사가 앉아있다.
“안녕하세요 누나~”
누가 뭐라고 할 세라 밝은 톤으로 인사하는 태완.
“왔으면 가자.”
무심하게 벨트를 고쳐 매는 박인규.
차가 도로위에 서자 박지민 기자가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낸다.
“저기 이거 드세요.”
박인규에게 건네는 것은 자판기 등에서 살 수 있는 싸구려 캔 커피다.
“너도 먹어.”
“오~ 웬 거예요?”
태완도 받아 챙긴다.
“아니 동생이 또 어디서 잔뜩 얻어 왔더라고.”
부장과 언쟁을 하던 것은 전혀 딴 사람인 양,
생글생글 웃는 박지민 기자.
그러니까 이런 관계다.
뒤에서 뒷담화를 할지언정 만나서는 잘 한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상관없다.
촬영 기사는 취재팀의 생명이니까.
말하자면 이것도 직업의 일부 인 것 이다.
“여기 몇 개 더 있으니까 나중에 드세요.”
“누나는 안 먹어?”
“아... 누나 커피 끊었어.”
태완의 질문에 생긋 웃어 보인다.
어디서 보나 모로 보나 천사 같은 미소다.
거짓말이다.
커피는 입에 달고 산다.
싸구려 설탕물 같은 캔 커피를 먹고 싶지 않을 뿐 이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취임식 장소...
* * *
수호헌터부 장관 임명식은 서울 정부청사의 행정자치부 대 회의실에서 열렸다.
뭐, 딱히 장소가 좋아서 라기 보다는 나름의 의미가 있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장소의 크기는 제일 첫 번째 고려 대상이 아니었고, 그로인해 비교적 넓은 청와대에서 열렸던 저번 임명식과는 달리 여유로운 분위기가 아니었다.
좁은 장소야 아니었지만 몰려든 인파에 비하면 턱없이 작았다.
물 반 고기반이 아니라 공무원 반, 기자 반 의 대회의실의 밖까지 기자들의 무리가 삐져나와 있는 형국이었다.
넘치는 플래시 라이트 덕분에 눈이 부셨다.
“아이고 좋으시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아 예. 감사합니다.”
얼굴엔 한껏 촬영용 미소를 머금은 채 칠성에게 40cm 높이의, 황금으로 도금된 독수리 상을 넘기는 이는 행정자치부 장관이었다.
행정 자치부의 외청인 경찰청의 운용을 넘긴다는 의미였다.
무슨 국새國璽 도 아니고, 독수리 상에 경찰권이 깃들어 있음이 만무하고, 사실상 아무런 관련도 없는 아이템.
더군다나 보통의 상황 같으면 정부조직 재개편이 조금 이루어진다고 해서 이렇게 호들갑 떨 것 없이 조용히 서류상으로 처리되면 그만이었으나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언론이 김칠성을 주목하고 사랑한다.
그것도 이제는 세계 언론이!
그렇다 보니 그가 중심으로 있는 헌특부, 아니 이제는 수헌부인 그곳에도 초미의 관심사가 집중된다.
아무리 작은 사건이 있어도 기사가 난다.
고작 장관 임명식 따위에 언론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기자를 꾸역꾸역 넘치게 들여보내려 애쓰는 것도 괜한 헛짓거리가 아니란 것 이다.
그러니 그냥 서류상으로 띡. 처리하면 그만인 일,
이지만 이렇게 눈에 보이는 쇼를 해 가며 넘겨줄 필요가 있는 것 이다.
그래야 행자부 장관님도 사진 한 장이라도 더 올라갈 것 아닌가.
“장관님 같은 분이 나라를 지켜주시는 거죠.”
“아, 아유, 별 말씀을요.”
칠성과 손을 붙들고 잠시잠깐 미소 짓는 그 찰나의 와중에도 온갖 달달한 덕담을 처바르는 행자부 장관.
칠성은 악수를 하면서도 은연중에 벙 찐다.
행자부가 어떤 곳 이냐?
국회의 서무, 법령 조약 공포, 정부 조직, 행정, 전자 정부, 개인정보보호, 정부청사 관리, 지방자치제도 관련업무 ···.
줄줄이 더 나열할 것 없이, ‘정부에 꼭 필요는 한데 부서로 만들기까지엔 애매한’ 업무들의 총합인 것 이다.
소위 말하는 뒷설거지 부다.
그런데 이런 행자부가 가진 유일한 외청이 경찰청이다.
행자부에 있어 경찰청은 오른팔과 같은 존재감인 것 이다.
더 중요한 것들을 책임질수록 주요부서가 되는 것 이다.
그런 의미에서 경찰청은 크다.
아무리 높은 차원에서 정해진 일 이라고 해도 실제적으로 가지고 있던 것을 빼앗기는 것은 행자부다.
그런데 지금 행자부 장관의 행동은 자신의 오른팔을 잘라서 내어 주면서 싱글벙글, 금도금 칠 까지 해서 덕담과 함께 내어주는 격인 것 이다.
물론 정치인의 가식이야 속으로 품고 있는 불쾌한 감정을 가리고도 남았지만, 이런 오바는 심하지 않은가.
받는 칠성이 어리둥절할 만도 하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사실은 칠성을 스타로 키우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이란 것을 모르기 때문에 어리둥절한 것 이지만.
행자부 장관도 역시 결국 대통령이 임명한, 대통령 쪽 사람이란 것이 이 짜고 치는 고스톱의 키였다.
수헌부의 경찰청 흡수는 물론 김규형 사건 이후 상황에 몰린 대통령이 칠성의 반 협박성 제안을 떠맡은 것이 맞다.
일 한 두개 터졌다고 정부부처 조직을 멋대로 옮겨주다니 정치인으로서 어지간하면 떠안기 싫은 리스크가 있는 행동인 것도 분명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시류를 탈 줄 아는 남자였다.
쓰러졌다 일어날 땐 지푸라기라도 손에 주워들고 일어난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이것마저도 김칠성을 키워주는 기회로 삼는다!
그리고 그렇게 키운 김칠성으로...
“연임에 도전할 생각입니다.”
“예?”
임명장을 받아든 칠성의 귓가에 대통령이 속삭였다.
뜬금없는 대통령의 고백에 번쩍이는 카메라 불빛들 사이로 찌푸린 칠성의 표정.
“웃으세요 웃어. 허허.”
이전 정권에서 개정해 둔 법 덕에 대한민국 대통령은 2회까지 연임이 가능해 졌다.
내년까지 채우면 임기가 끝나는 대통령이 슬슬 이후 대책을 세울 때가 된 것이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김칠성이 이정도로 존재감 있는 인물이 되었으니,
헌특부 간판에서 그의 정부 간판으로.
나아가 차기 대선의 간판으로 김칠성을 적극적으로 써먹을 계획인 것 이다.
이미 대통령은 자격 논란마저 있었던, 더군다나 정치인으로선 한참 어린 칠성을 과감하게 등용한 것으로 선구안을 인정받고 있었다.
김규형을 제압하면서 보여준 헌특부의 활약이 인상적이었기에, 이제는 누구도 칠성의 정부 부서 운용 능력에 토를 달지 않았다.
오히려 진즉에 이를 알아보고 등용한 대통령마저 고평가 해 주고 있는 마당인 것 이다.
그리고 당연히, 대통령측이 그런 식으로 인식 되도록 적극적인 언론 플레이를 펼치고 있는 중 이었다.
자칫 레임덕 상태에 빠질 뻔 했던 대통령의 위상과 지지율이 오히려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었다.
대통령의 연임은 포기하고 있던 정당도 태도를 바꾸어 연임에 총력을 집중하기로 전략을 바꿨다.
이제 대통령에게 칠성은 금이야 옥이야 하는 보물 같은 존재가 된 것 이다.
여기까지 머리를 쓰고 있는 것은 대통령의 킹메이커인 이명준 특별 보좌관.
“그래서 말인데... 선거대책 위원장을 맡아주심이 어떻겠습니까?”
임명식이 끝난 뒤 사적인 공간에서 만나게 된 이특별보좌관과 김칠성.
“예?”
선거대책위원장 이란 건 일종의 선거캠프의 머리이자 얼굴 이었다.
“어차피 장관님도 대통령님과 한배를 탄 운명이 아닙니까? 장관님 성질을 대통령님이나 되니 받아주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니 뭐,
틀린 말이야 아니지만.
“예?”
“많이 귀찮으시게는 안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뭐, 그렇다고 해도 저도 업무가 있고...”
딱 봐도 귀찮아 보이는데?
슬쩍 빼는 칠성을 놓칠세라 낚아채는 이보좌관.
“장관님께서 선대위를 맡아주시는 거 자체가 엄청난 효과가 있습니다. 장관님께서 확실히 지지해 주신다는 의미가 되는 거니까요. 아시겠습니까? 그냥 이름만 빌려주신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흠.
대통령을 이모저모에서 본 바.
정치인으로서, 나쁘지는 않다.
상당히 속물적이고, 편법을 저지르는데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지만.
정말로 중요한, 국민의 생명 같은 걸로 도박은 안 하는 사람이다.
살짝은 밀어줘도 괜찮겠지?
“뭐... 그런 거라면 괜찮을 거 같기도 하네요.”
이보좌관 말 대로 이름을 빌려주는 것 정도라면 야.
대통령은 칠성을 장관까지 시켜줬는데 못 해줄 것 있으랴.
서로 고개를 주억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칠성과 이보좌관.
얼마 뒤, 이런 칠성의 생각이 얼마나 안일한 것 이었는지 깨달게 되는 데는 그렇게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젠장.”
낚였다.
선거 이벤트 차량.
그리고 그 앞에 마치 콘서트 장처럼 지평선을 이루며 서 있는 수많은 사람들.
둠스-둠스-둠스
커다란 스피커에서 뿜어져 나오는 댄스 음악.
“여기서 또 안 볼 수 없죠!! 장관님 댄스타임!!”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지는, 사회자 역할을 맡은 선거 홍보위원의 목소리.
“에휴”
작은 한숨을 쉰 칠성이
어깨를 매만지며 몸을 푼다.
그리고 시작되는 토끼 춤.
“꺄아아아악!!”
비명 같은 환호성을 지르는 관중들의 목소리가 음악소리를 뒤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