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무집행 흑마법사-44화 (44/145)

# 44

S2 : 23화 [외전, 김태홍의 과거] <2권 끝>

* * *

시간을 거슬러 몇 년 전. 뒷골목.

“후~우”

김태홍이 한숨같이 담배 연기를 뱉어낸다.

아직 고등학생인 어린 김태홍이다.

앳된 젖비린내 나는 어린 얼굴에 반들반들한 하복 교복을 챙겨 입었지만 주황색의 염색 머리는 그대로다.

“아니 그년이 존나 먼저 그랬다니까? 대 줄 거 같이.”

“또라이 새꺄. 그런 게 강간이라니까?”

“아 존나 뭐, 하지도 못 했는데.”

“미친 성추행범 새끼.”

김태홍 옆에서 또래로 보이는 남학생들이 각자 담배를 물고 값싼 대화를 나누며 킬킬거리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갓 지난 무렵이었지만, 점심을 먹기가 무섭게 학교를 뛰쳐나온 이들은 학교안의 학생들과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었다.

“아 쉬발 상납 어쩌지. 야 태홍아 어떻해?”

“어떻해가 아니라 어떡해 병신아. 그리고 무슨 상납?”

“어? 양원이 형이 걷으라고 안했어?”

까까머리 덩치가 태홍에게 반문하자 옆에서 킬킬 거리고 있던 비열해 보이는 인상의 친구가 거든다.

“병신아, 태홍이 한테는 안 걷지. 그게 너 같은 쩌리랑 쟤의 차이다.”

“진짜?!”

덩치가 화들짝 놀라서 반문한다.

“그니까 니도 병신 짓 좀 하지 말고 걍 나처럼 쿨하게 혼자 다녀. 서울연합 그 병신집단이 뭐가 좋다고.”

서울 연합.

일종의 좀 잘 나간다는 서울지역 학생들이 모인 조직이었다.

언 듯 친목회 같은 이름이지만 실상은 어른들의 조직 폭력배를 모방한 폭력조직에 가까운 형태였다.

무슨 일만 있으면 클럽을 통째로 빌려 파티를 벌린다더라. 비싼 오토바이도 거저 얻는다더라. 경찰도 못 건들이게 된다더라.

하는 무성한 소문과 함께,

노는 학생이라면 한번쯤 동경해 볼만한 이름.

하지만 화려한 이면의 실상은 다단계로 이루어진 상납 시스템에, 상위 몇 명을 위해서만 돌아가는 이름뿐인 조직이었다.

설사 소문처럼 정말 지역구 조직폭력배들이 뒤를 봐주고 있다고 해도 이런 조직에 가입 하는 게 학생들의 미래에 하등 도움이 될 리가 없었다.

“야, 태홍이도 서울 연합인데.”

또 다른 친구가 비열 해 보이는 인상의 친구에게 언질 했다.

살짝 긴장한 일동이 태홍의 눈치를 살핀다.

피식.

“서울 연합 병신 새끼들 맞어~.”

쿨 하게 웃어 보인 태홍이 필터만 남은 담배를 바닥에 던지더니 신발 밑창으로 비벼 끄고 자리를 뜬다.

골목 한편에 세워두었던 오토바이에 몸을 싣는다.

트드드득.

“간다~!”

시동을 건 태홍이 일동에게 인사를 던진다.

“어! 야 어디가! 나도 가!”

덩치 친구가 허둥대며 뒤따르려 했지만 태홍이 탄 오토바이는 속절없이 멀어진다.

바-앙!

달궈진 아스팔트의 공기만 불어온다.

“아~ 뭐야. 왜 나는 안 껴줘.”

남겨진 덩치가 투덜대자 옆에서 다른 친구가 덩치의 등판을 툭 치며 거든다.

“병신아. 오늘 쟤네 할머니 기일이잖아.”

“응? 그게 뭐...”

어리둥절해 하는 덩치를 두고 친구들이 킬킬거린다.

같은 시각,

바아앙-!

헬멧도 쓰지 않은 김태홍이 머리칼을 휘날리며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한산한 평일 오후의 국도를 질주하고 있다.

하늘이 쨍 하니 맑다.

* * *

푸른빛이 도는 묘지 앞.

묘지 앞 맨질맨질한 상석 위에는 황도 캔 통조림 하나와 탄산음료인 맥콜 한 캔이 올라가 있다.

그리고 그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은 채 기도를 올리며 무언가를 중얼 거리고 있는 김태홍.

고인이 살아생전에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무덤에 절을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기독교 보단 한국식으로, 기일을 챙기는 것 또한 모순된 행동이었지만 거의 매년 태홍은 늦게라도 이곳에 찾아오고 있었다.

제사를 맡을 사람이라면 아버지가 있었지만 챙길 생각이 없었으니까.

고인이 좋아하던 음료수와 통조림.

이 허접한 상차림이나마 태홍이 매번 들고 오는 것 이었다.

“잘 있어.”

태홍이 인사를 올렸다.

태홍은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실은 개천용 출신의 아버지는 철저한 엘리트로 비춰지고, 살고 싶어 했고. 그럴 때 마다 촌스러운 할머니는 방해물이었다.

어머니는 개천용이 아닌, 소위 말하는 금수저 집안의 자식이었으니, 할머니를 창피해 하는 게 심했으면 더 심했지 아버지보다 덜하진 않았다.

늘 바쁜 부모님 덕에 할머니와 지낸 시간이 오래여서 이기도 하지만, 태홍에게 쏟아진 과도한 기대. 태홍은 무엇을 해도 아버지를 만족시킬 수 없었고. 결국 이 집에서 창피해하는 식구인 할머니와 태홍 두 사람은 점차 아웃사이더가 되어갔다.

“다음에 또. 올게.”

그리하여, 할머니가 돌아가신 중학교 부근부터 태홍은 완전히 엇나가기 시작했던 것 이다.

집근처의 공원, 밤.

그네에 축 처진 몸을 실은 김태홍의 손엔 맥주 캔이 들려 있다.

“여기 있었네.”

지쳐 보이지만 강단 있는 인상으로 찾아온 것은 동생이었다.

“학원 갔다 오냐?”

동생은 태홍과 달리 수재 중 수재였다.

무언가 다른 느낌이 있었다.

중학교 3학년인 동생은 특목고 진학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당연히 아버지의 자랑이었고 덕분에 태홍의 존재감은 더욱 희미해졌다.

그냥 이 녀석은 머리가 좋은 것 같았다.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 했지만, 덕분인지 어려서는 굉장히 친하고 돈독했던 형제였는데, 커가면서 점차 멀어져 버렸다.

어릴 땐 형같이 되고 싶다던 동생인데.

지금은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한 시선.

“형 진짜 어떻게 살라고 이러냐?”

“너... 내가 오늘 어디 갔다 온 줄 알아?”

“또 어디서 쓰레기 같은 친구들 만나서 쓰레기 짓이나 하고 다녔겠지 뭘.”

“뭐?!”

그 말을 들은 김태홍이 벌떡 일어났다.

“너 하고 다니는 거 뻔하잖아. 고딩이란 새끼가 공부도 안 하고 줄창 무슨 이상한 새끼들이랑 어울리고. 내가 진짜 너랑 같은 유전자란 게 창피....”

짝!

이어지는 정적.

동생의 뺨을 치고 허공을 가른 손을 멍하니 바라보던 태홍.

동생은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서서 씩씩거린다.

“존나. 야만적인 쓰레기 새끼....”

“야! 그게 아니고!”

태홍이 변명하려 하지만 돌아서서 갈 길대로 가 버리는 동생.

“아... 씨발.”

성질대로 안 된다.

구긴 맥주캔을 발로 차버리는 태홍.

* * *

잠시 다시 현재.

“생각해보면 제가 그때 어렸죠. 걔는 또 나름 저 생각해준다고 그런 건데.”

태홍이 새로운 담배에 불을 붙인다.

“음, 그 느낌 알지.”

칠성의 경우에도 아주 오래전엔 누나와 자주 싸웠던 기억이 있다.

그때였다.

끼-익.

“아, 장관님. 김태홍!”

백금색의 단발로 돌아온 한솜이가 문을 열고 나타났다.

“여기서 뭐해! 트레이닝 시간인데.”

시간이 되었는데도 태홍이 보이지 않자 찾으러 다닌 모양이다.

“아, 이야기 좀 하느라고. 조금만 있다 보내 드릴께.”

“아...네. 그럼.”

칠성의 말에 눈치를 살피던 한솜이가 등을 돌린다.

뭔가 찝찝한데?

“한솜이씨!”

“네?”

“언제 우리 3팀 끼리 회식이라도 한번 하죠?”

“아...”

그래도 처음 여기 발붙일 때 도와준 사람들이고, 정신적으로는 아직 소속감을 느끼는 3팀인데.

어쩐지 최근 멀어진 기분이라. 그래서 꺼내 본 소린데.

“개별 회식... 은 좀 아닌 거 같습니다. 전체 회식이면 모를까요. 사람들이 별로 좋게 볼 것 같지도 않네요.”

똑 떨어지는 답변을 하는 한솜이.

“아...그래요.”

“그럼.”

탁!

딱히 할 말이 없어 그냥 보내고 말았다.

뭐가 이렇게 찝찝하지?

“내가 뭐 잘못했나?”

김태홍에게 묻는 칠성.

“글쎄요...?”

잠시 고민하던 태홍이 잘 모르겠다는 듯 말꼬리를 흐린다.

“뭐, 맞는 말이잖아요. 원칙에 어긋나는 거겠죠.”

“흐음... 뭐 그런가. 하여간 이야기나 계속 해봐. 그래서?”

“후, 그래서....”

태홍이 한숨과 함께 이야기를 이어간다.

* * *

다시 과거의 서울. 낮.

길거리를 지나던 태홍. 지나가는 꼬마 형제 둘을 우연히 봤다.

사이좋게 아이스크림을 빨며 손을 잡은 채 어딘가로 걸어가는 초등생 쯤 되 보이는 형과 그 보다 어려보이는 동생.

저 먼 어딘가의 기억이 스친 태홍은 한숨을 한번 푹 내 쉰다.

“아유 젠장, 애새끼가 뭘 안다고.”

머리를 긁적이던 태홍은 휴대폰을 꺼내 든다.

술김에 뺨을 친 거. 풀어야겠다.

[어.]

금세 수화기 너머에서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학원에 있을 시간이라, 안 받을 수 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그냥... 어제 그거 미안하다고. 때린 건 내가 너무 심했다.”

[어.]

“나는 그냥 갑갑해서....”

[알아. 어제 할머니 기일이었잖아. 까먹은 나도 잘못했지.]

알고 있었나.

순식간에 할 말이 모두 바닥났다.

태홍이 멀쩡한 얼굴을 긁적인다.

“...있지. 가능하다면 다시 옛날처럼....”

[친해지고 싶다고? 그건 힘들겠는데.]

태홍의 말을 잘라먹는 동생.

아니, 이건 빈정 상하네.

“...뭐? 이 새끼가. 형이 먼저 어? 선심 써서 말을 하는 데 예의상으로라도 그러는 게 아니지.”

사람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말이다.

그런데 흥분한 태홍과 달리 착잡한 목소리의 동생.

[그런 게 아니고. 나도 그러고 싶지만 힘들겠다고.]

“...무슨 헛소리야?”

같은 시각, 태홍이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강남 학원가.

거리는 비명소리로 가득하다.

차가 전복되고 전선을 매단 전봇대가 스파크와 함께 불타오른다.

학원 안에서 태홍의 전화를 받으며 창 밖 너머를 바라보고 있는 동생.

동생이 있는 건물 주변은 창을 통해서만 봐도 이미 이세상의 것이 아닌 남색 빛깔의 강아지만한 크기의, 전갈 형태의 몬스터에게 포위당했다.

피 냄새를 맡은 놈들이 학원건물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중 이었다.

“허튼 생각 말고, 공부나 해라 형아. 머리는 좋잖아?”

형아. 굉장히 오랜만에 들어보는 호칭에 수화기 너머의 태홍은 움찔했다.

동생의 주변은 이미 아수라장 이었다.

고층 건물의 8층에 자리한 M학원 강남 본원은 아직 몬스터들이 들이닥치진 않았지만 끝장 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동생은 형과의 마무리를 하고 있는 것 이었다.

“...내 몫까지.”

전화를 하는 동생은 창문에 붙어있는 거대한 남색의 전갈을 보고 있었다.

* * *

실체화 몬스터.

투입된 헌터들의 반수를 참수한 거대한 날개 달린 독 전갈은 자신을 가두던 어둠의 알을 깨고 날아올랐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집채만 한 괴수가 알을 깐 곳은 여의도 상공.

수백의 흡사 멧돼지 크기의 새끼 전갈 몬스터들이 여의도일대와 강남 지역으로 흩뿌려졌다.

모두가 도망치기 바쁜 지옥 같은 그곳.

차를 타고 간발의 차로 그 아수라장에서 빠져나온 이들은 행운아 들이었다.

그리고 그 다급한 행렬 사이로.

단 하나의 오토바이만 지옥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바아앙!

[멍청아!! 어딜 온 다는 거야!!]

“고만 징징대고 딱 기다려! 금방 가니까!”

이어폰을 낀 채 통화를 하며, 오토바이의 패달을 더욱 거세게 밟는 김태홍.

“하나뿐인 동생이 살고 싶다고 울부짖는데 손 놓고 있을 정도로 멍청이는 아니니까!”

[내가 언제 그랬어! 말도 안 돼는 짓 하지 마!]

“공부는 네가 해! 알겠냐?”

[너...]

“나는 너 살릴 거니까!”

어느새 김태홍이 도달한 곳엔 노란색 방역복을 입은 남자들이 도로에 차단벽을 세워두고 다가오는 김태홍을 막는다. 헌특부의 서포트 팀이다.

“해당 지역 위험 지역으로 헌터만 진입 가능합니다! 돌아 가십요!”

혹시라도 사태를 파악하지 못 하고 위험지역으로 들어가려는 민간인을 막기 위해 위험지역 멀찌감치 서부터 통행을 차단 중 이었던 것 이다.

“나 들어가야 되요! 비켜 주세요!”

오토바이에서 내린 김태홍이 남자들에게 접근해서 어깃장을 부린다.

“헌터가 아닌 민간인 진입 불가입니다! 돌아 가십쇼!”

“아 잠깐, 잠깐. 나 헌터예요. 헌터라니까요?”

두 남자가 매우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김태홍을 아래위로 훑어본다.

“헌터 라이센스 제시 해 주십쇼.”

“아, 라이센스? 라이센스... 면허증!”

그런 게 있었나? 있겠지! 당연히.

낭패한 표정이 스치는 김태홍.

“잠깐만요, 잠깐만... 그러니까 내가.”

주머니를 더듬어 지갑을 꺼내 지갑속의 무언가를 내민다.

“자! 여기요!”

학생증 카드다.

김태홍이 엄지로 가린 것은 학교 이름.

“이게...윽!”

남자 둘이 학생증에 정신이 팔린 사이 그 사이를 뚫고 달려 들어가려던 김태홍이 붙잡힌다.

“아 놔요!! 나 가야된다고!”

“학생! 왜 이러는 진 모르겠지만 정말로 위험해!”

“진정하시고, 이 안은 헌터들과 헌특부 한테 맡겨두시고....”

완전히 꼼짝 못 하도록 두 남자에게 붙잡힌 김태홍.

“후... 알았어요, 알았어.”

안으로 마구잡이로 밀고 들어가려던 태홍이 포기하고 몸에 힘을 뺀다. 양 손을 들어 보이며 항복이라는 듯한 제스쳐를 취한다.

순순히 태홍이 차단 벽 밖 쪽으로 끌려나오자 서포트팀의 두 남자도 태홍을 놓아준다.

“별 수 없죠.”

태홍이 그렇게 말하고 세워둔 오토바이 위에 올라탄다. 다시 시동을 걸고 차단벽의 반대편으로 오토바이를 돌려 출발하는 김태홍.

“무슨 일 이었을까요?”

“글쎄요....”

금방이라도 덤벼들어 주먹이라도 날릴 기세로 달려들다가, 또 이내 갑자기 선선한 태도로 돌아간 김태홍이 떠난 자리를 의아하게 보던 두 사람의 서포트 대원.

“근데 저거 왜 열려있지?”

그들이 앞쪽에 세워둔, 차단벽을 실은 트럭의 뒷문이 열려있는걸 발견한다.

“글쎄요? 제가 닫고 오겠습니다.”

트럭으로 향하던 서포트 대원, 하지만 트럭 근처까지 간 그는 뒷문을 닫지 못 했다.

부아아아아앙!!!!!

이내 엄청난 굉음과 함께 달려오는 무언가에 눈이 휘둥그래 진다.

“뭐, 뭐야!”

“다 비켜어어어!!”

어느새 방향을 바꾸어 다시 서포트 팀과 트럭이 있는 곳으로 달려오는 김태홍. 서포트 팀이 허둥지둥 하는 사이, 오토바이의 앞바퀴를 들더니 열린 트럭의 뒷문을 향해 오토바이를 밀어 넣는다.

그리고 연이어 오토바이가 직각에 가까운 경사의, 트럭에 실어둔 차단벽의 벽을 타고 오른다.

부웅!

순식간에 김태홍을 실은 오토바이가 마치 로켓이 발사대에서 발사되듯 넘어지는 차단벽을 타고 허공으로 발사된다.

아차,

균형을 잃은 오토바이가 허공에서 360도 회전한다.

“제엔 자아앙!!”

찰나 몇 초의 순간, 김태홍의 전신에 아드레날린이 들끓는다. 허공에서의 시간이 마치 몇 분에 걸쳐서 일어나는 것처럼 아주 느리게 느껴진다.

김태홍의 오토바이는 김태홍의 컨트롤을 벗어나 놀이기구처럼 360도 회전하며 서포트 팀이 세워둔 차단벽 위를 포물선을 그리며 넘고 있다.

노란 방호복을 입은 남자들은 허공의 김태홍을 향해 경악한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있다.

흰 나비 하나가 김태홍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투캉!

바아아앙!

천만 다행히 김태홍의 오토바이가 바퀴부터 떨어진다. 오토바이가 스트라이크를 노리는 볼링공이라도 된 듯 힘차게 도로를 박차고 미끌어지듯 달려 나간다.

“으으으으으!!”

김태홍이 오토바이가 땅에 착지함과 동시에 전신에 쏟아지는 충격에 이를 악문다.

전혀 생전 인연 없던 오토바이 묘기를 선보인 김태홍이 서포트팀을 한참이나 제치고 도로를 따라 순식간에 쭉 멀어져간다.

같은 시각.

강남 M 학원 건물 3층.

“자! 이게 최선이야.”

특전사 출신의 김선생의 지도로 3층 상가건물의 한쪽 창고의 양 문을 잡동사니로 틀어막은 서너명의 선생과 십여명의 학생들.

사실 특전사 출신이란 것은 이런 프로 헌터도 기겁할 만 한 상황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으나, 그의 정신력에 만큼은 지대한 도움이 되어 제법 그럴싸한 방공호를 만들어 내었다.

아무렇게나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간 사람들은 이미 상당수 희생되었을 것 이다.

그나마 김선생이 안전하다고 판단 한 것은 건물 안. 그중에서도 창문이 없는 이 창고를 골랐다.

그리고 간발의 차로 학원에 남아있던 선생들과 학생들을 거의 멱살을 이끌 듯 이곳으로 데려온 것 이다. 게 중에는 몬스터들이 설치는 밖으로 나가는 것은 미친 짓이라 판단한 김태홍의 동생도 끼어 있었다.

그들은 나름의 방공호를 구축하고 그들을 구하러 올 헌터들을 기다릴 셈 이었다.

“....”

태홍의 동생 태영은 손에 들린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그냥, 혹시나 해서.

아버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받지 않았다. 바쁠 것 이다.

“휴우...”

같은 시각, 김태홍.

“꺄악!”

“어?!”

동생의 학원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방향으로 달리던 김태홍. 한 소녀가 새끼 전갈 몬스터에게서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것을 본다.

“에이..씨!!”

어떻게 할지 잠시 갈등하던 김태홍이 오토바이의 핸들을 꺾는다.

“악!!”

도망치던 소녀가 넘어진다.

전갈 몬스터가 그 위를 덮쳐든다.

바키이잉!!! 쿵!

그리고 소녀에게로 뛰어드는 전갈 몬스터를 치어버리는 김태홍의 오토바이.

큰 개만한 전갈 몬스터가 비명한번 지르지 못 하고 럭비공이라도 된 마냥 허공을 가르고 저편으로 날아간다.

김태홍의 오토바이가 미끄러지고 김태홍이 그것에 휩쓸리는 걸 막기 위해 오토바이로부터 뛰어내린다.

“괜찮아요?!”

김태홍이 넘어진 소녀를 일으킨다.

교복을 입은 소녀다. 중학생 쯤 됐을까.

“네, 네에. 근데!”

소녀의 다급한 손가락질, 몬스터가 날려간 방향을 바라보자 전갈형태의 몬스터가 다시 몸을 일으키고 바짝 약이 오른 듯 독이 담겨있을 꼬리를 흔들며 이쪽을 노려본다.

작아도 몬스터는 몬스터.

헌터의 공격도, 강력한 중화기도 아닌 오토바이에 치인 것 따위론 흠조차 나지 않는 것 이다.

샤사사삭!

“젠장!”

번들거리는 붉은 눈깔을 번뜩이며 소녀와 김태홍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어 온다.

같은 시각.

쿵! 쿵! 쿠웅!!

태영과 김선생, 그리고 학원생들과 세 명의 여선생이 함께 있는 임시 방공호의 잡동사니가 밖에서부터 쿵쿵거리는 충격에 밀리기 시작한다.

“이런!!”

먹이들의 숨소리를 맡은 몬스터가 마치 공성전의 전차처럼 몸으로 철문을 두들기는 것 이다.

한계가 있다는 것은 알 고 있었다. 하지만 이다지도 빠르게 위험에 처할 것은 계산 밖 이었다.

밖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 야생 맹수가 아닌 몬스터라는 것을 간과한 것 이다.

이미 쇠문은 휘어지고 쌓아둔 책상과 의자, 가구등이 밀린다.

“안돼!”

태영이 벌떡 일어난다.

쿠웅!

“꺄아악!!”

철문과 잡동사니 사이를 뚫고 좀 큰 멧돼지 크기의 전갈이 쏜살처럼 희생양들을 향해 덤벼든다.

* * *

스사사사삭!!

김태홍과 소녀를 향해 새끼 전갈 몬스터가 꼬리를 바짝 세우고 여섯 개의 다리를 열차처럼 재게 놀리며 고속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어떻..어떻...어떻”

소녀는 어찌 할지 모른 채 패닉에 빠져있었고

“젠장할!”

김태홍도 마찬가지였다.

일상 외의 것, 그저 뉴스 속에서만 보던 존재인 몬스터. 이 세상 어딘가에 있긴 있다고, 어느 나라의 어느 도시는 이것 덕분에 난리가 났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겨지지 않는 것.

하지만 오토바이로 치여도 멀쩡하고, 오히려 붉은 눈을 번뜩이며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도가 지나치게 튼튼한 날짐승의 모습은 피부로 느껴지는 공포 그 자체였다.

실체화 몬스터 영향하의 위험지역.

그곳으로 포부 좋게 뛰어들면서도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는 지 도 몰랐던 김태홍의 머릿속이 비로소 공포로 점화 된 것 이었다.

“씨팔!”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그건 자신을 향해 내지른 욕 이었다.

김태홍은 다급히 도로 옆의 화단에 있던 수박만한 바윗돌을 양손으로 집어 들었다.

무언가라도 하지 않으면 도망치는 것도 힘들 거 같았다.

샤샤샥!

자신을 향해 덤벼드는 몬스터를 향해 머리위로 돌을 치켜든다.

“죽어!!”

쿵!

최대한의 힘을 실은 돌덩이가 큰 개만한 전갈을 찍어 눌렀다. 그리고...

“헉...씁...헉...헉....”

지나치게 긴장한 탓에 온 몸에 탈진하듯 힘이 빠져, 길바닥에 뒤로 쓰러지듯 주저앉은 뒤 거친 숨을 몰아쉬는 김태홍.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었다. 두근거리는 심박 수에 맞춰 머리가 조금씩 떨리는 게 느껴졌다.

사실은 오줌을 지리지 않고 주저앉기만 한 게 다행한 지경이었다.

바윗돌 아래로 최후의 저항인 듯 갑각류의 다리를 까닥대는 몬스터가 보인다.

“괘, 괜찮으세요...?”

예의 소녀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묻는다.

그제야 제정신이 든다.

벌떡 일어난 김태홍.

“새끼! 죽어라! 죽어!”

바윗돌을 들었다 다시 내리쳤다를 반복하여 완전히 짓이겨 몬스터의 숨통을 확실하게 끊어놓았다.

마치 대게나 홍게의 껍데기를 돌로 짓이기는 듯한 뚜득 거리는 감각이 손끝으로 전해져 온다.

제 아무리 몬스터라고 해도 이런 돌로 찍어 누르면 죽는구나.

“별 것도 아닌 게 까불고 있어!”

그런 생각을 하며 툭툭 손을 털며 뿌듯하게 일어 선 김태홍을 놀란 눈으로 보는 여중생.

응? 내 얼굴에 뭐 라도 묻었나?

“저기, 저기 혹시 헌터.. 헌터세요?”

아무리 소형개체 라도 몬스터를 돌로 찍어 눌러 죽인다? 헌터가 아니고서야 불가능 한 일이었다.

“응?”

자기 자신도 알지 못한 사이, 김태홍의 눈엔 강렬한 백색의 마나의 기운이 타오르고 있었다.

같은 시각.

“안 돼애애애!!”

태홍의 동생 태영의 절규와 함께 그들이 만들어두었던 대피소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주변에 있던 학생들과 선생들이 귀를 틀어막으며 주저앉았다. 건물에 폭격이라도 가해진 듯 공포스러운 충격이었다.

태영이 절규함과 동시에 쏟아져 나온 백색의 마나의 폭풍이 마치 발사된 미사일처럼 에너지의 덩어리가 되어 문이 있었던 자리에 성인 남자도 넉넉히 지나갈 법 한 커다란 구멍을 뚫어놓았다.

그리고 그 너머에도 보이는 마치 도넛 몇 개를 일렬로 세워둔 듯 건물의 벽과 벽 너머로 동그랗게 터널처럼 나있는, 태영의 마나가 뚫고 지나간 자리들이 보였다.

파지직, 파지지직...

마치 스파크처럼 태영의 폭격이 닿은 곳 여기저기서 타오르는 기의 덩어리들.

백색의 왕관을 쓴 듯 타오르는 흰빛의 마나를 상반신 전체에 두르고 있는 태영.

“헉...헉....후우....”

그들을 향해 덤벼들었던 멧돼지 만 한 전갈 몬스터는 본체를 잃고 강제로 떨어져, 마지막 숨결 마냥 까닥 거리고 있는 몇몇 개의 안쓰러운 다리만이 남아 그 존재가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을 뿐 이었다.

도무지 방금 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 지 파악이 되지 않아 덜덜 떨고만 있던 사람들 중, 김선생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태영에게 다가와 어깨를 잡았다.

“괜찮니?”

“선생...님.”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김선생을 돌아보던 태영이 쓰러져 선생이 받아내고, 주변의 사람들이 태영에게 몰려든다.

시간이 지난 뒤.

태홍.

중학생의 소녀의 처리에 대해서 고민했지만 소녀는 너무나도 단호하게 이 지역을 당장 벗어나고 싶어 했다. 어찌 보면 상식적인 판단이었다.

태홍의 손길을 뿌리치고 위험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거리를 향해 달려가는 소녀를, 태홍은 잡을 수 없었다.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M학원 건물 근처까지 온 태홍.

어딘가에서 뽑아온 ‘일단 정지’ 교통 사인이 붙어있는 표지판이 뿌리부터 뽑혀 있는 것을 마치 검이라도 된 양 등 뒤에 매고 있다.

평소 같았으면 상상도 안 했을 일이지만, 무슨 영문인진 모르겠지만 자신의 신체능력이 크게 향상된 걸 깨달은 태홍이 무기 삼을 만 한 것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뽑아 온 것이다.

태영과의 연락은 한참 전에 온, 3층에 있다는 문자가 마지막이다.

문제는 M 건물 주변은 이미 전갈 같은 몬스터들에게 점령당한지 오래란 점이다.

아마도 서로가 만들어낸 교통 체증에 갇히게 되었을 사람들의 시체가 제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자동차들 속이나 밖에 이리저리 널 부러 져 있는 게 멀리서도 보였다.

“후...우.”

바아아앙!!

한숨을 한번 내 쉰 태홍의 오토바이가 그 참혹한 현장 사이를 가르고 돌진한다.

M학원 건물 주변을 서성거리던 몬스터들이 태홍을 발견하고 덤벼들기 시작한다.

“젠...장.”

수십개의 붉은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자 두려움인지 희열인지 모를 감정에 태홍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이거 미친 짓인데.

에라, 어떻게든 되겠지.

“다 꺼져!!”

태홍의 오토바이가 몬스터들 위로 날아든다.

콰타탕!!

오토바이가 몬스터들 사이를 가르고 M건물의 유리문을 박살내며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부우우웅-!!

태홍은 전혀 속도를 줄이긴 커녕 오히려 가속에 가속을 더하며 커다란 건물 상업시설 한편에 멋드러진 계단 위로 오토바이를 굴린다.

이대로 3층까지 간다!!

콰카카카카!

덜컹거리는 오토바이가 소음을 내뿜으며 계단을 타고 오른다.

한층을 오를 때 마다 몇 마리의 몬스터들이 태홍의 꼬리를 쫒아오기 시작한다.

비키키킥!

“젠장!”

3층에 도착한 태홍이 방향을 전환하다 실수를 하는 바람에 오토바이가 옆으로 미끌어지며 넘어진다.

그리고 바로 빠른 발을 잃은 태홍에게 몬스터들이 덤벼든다.

“뒈져! 뒈져 이 벌레같은 새끼들!”

매고 온 일시정지 사인을 마치 커다란 둔기처럼 마구잡이로 휘두른다.

“케에엑!!”

그 마구잡이식으로 휘두른 둔기에 몬스터들이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진다.

자신에게 붙는 몬스터를 골프공처럼 쳐내고, 날개를 펴고 날아들어 덤비는 녀석을 땅바닥에 매다 꽂아 곤죽을 만드는 모습이 제법 익숙해 보인다.

“태영아!! 태영아 어디 있어!!”

오토바이는 버려두고 간간히 자신을 향해 덤벼드는 몬스터에게 무기를 휘두르며 비어있는 건물의 3층을 뛰기 시작했다.

“뭐야...?”

그리고 태영이 있는 곳은 제법 쉽게 눈에 들어왔다.

얼마 뛰지 않아 기묘한 균열을 가진 벽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마치 거대한 송곳이 뚫어놓은 듯 둥글게 뚫린 벽들이 행진을 이루고 있는 곳. 손으로 만져보니 절단면은 마치 사포로 갈아두기라도 한 듯 맨들맨들 하다.

이런 충격을 받았다면 건물이 무너졌어야 할 것 같지만, 깔끔하게 도려낸 거 같은 이 섬세함 덕분에 뚫린 자리를 제외하곤 균열조차 가지 않은 것 같았다.

“이게 도대체...?”

그리고 그것들을 따라가자 얼마 가지 않아 한 사람들의 무리가, 그리고 동생이 보였다.

“태영아!”

* * *

이제는 네다섯 개의 거대한 구멍이 사방으로 뚫려있는 안전지대에서, 조금 더 안전해 보이는 장소로 이동 중이던 김선생과 학생들.

“김태영!”

그들 사이를 비집고 김선생과 남학생에게 부축을 받으며 걸음을 옮기고 있던 태영에게 달려 온 것은 형인 태홍이었다.

“왔어?”

뭐? 왔어?

“참나!”

폐인 같은 모습으로 양쪽으로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걷고 있는 주제에.

왔어? 라며 태연히 하이파이브를 하자며 부축 받고 있는 한쪽 손을 뻗는 태영의 손을 쳐 주는 태홍.

“무슨 꼴이냐 이게 대체?”

걱정 하지 말라는 거겠지만 그런 태도 때문에 진짜로 걱정이 된다.

바로 아침까지만 해도 멀쩡했을 태영은 마치 오랜 병을 앓아온 중환자 같은 모습이었다.

얼굴에 핏기가 가시고 살조차 빠져있는 것 같았다. 광대가 유난히 튀어나와 보였다.

태영은 태홍의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물끄러미 시선을 커다랗게 뚫려있는 구멍들에게로 던졌다.

“설마...?”

의심스러운 눈으로 태영의 얼굴을 살피는 태홍.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묻지는 않았다.

“하여간 이제 됐어. 다 같이 나가자!”

태홍이 태영에게, 그리고 사람들에게 외쳤다.

“그건 너무 위험...”

“여기에 있는 게 제일 위험해!”

김선생이 토를 달려 했지만 태홍이 받아주지 않는다.

그리고 태홍의 말은 사실이었다.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몬스터 위협 지역에 오래 채류 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잘 없었으니까.

“여기 차 같은 거 있으신 분?”

태홍이 좌중에게 물었다.

서로서로를 둘러보는 사람들.

태영을 포함해서 사람들은 총 8명이었다.

“김선생님 차가 카니바 아니에요?”

“네 맞습니다.”

여선생의 물음에 끄덕이는 김성생.

“됐네!”

태홍이 옳다구나 쾌제를 질렀다.

SUV인 카니바 라면 여기 있는 모두를 태우고도 남았다. 초반의 몬스터들만 처리하고 지역을 조금만 벗어나 미리 봐둔 안전한 길로 달리면 세이프다.

“하지만 주차장 근처만 해도 몬스터들이 있을 텐데....”

“그런 건 걱정 마십쇼!”

태홍이 울상이 된 김선생의 말을 끊었다.

어떻게 된 일 인지야 모르겠지만 이제 자그마한 몬스터들은 자신이 처리 할 자신이 있었다.

자신이 휘두르는 공격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몬스터에게 먹혀들어갔다. 몸엔 전에 없이 활기가 넘쳤다. 어느새 헌터로서의 자신감이 붙고 있었던 것이다.

“어지간한 몬스터는 자신 있으니까!”

태홍이 어깨를 펴고 자신만 믿으라는 듯 치켜세운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찍었을 무렵이었다.

구우우우...

진동? 태홍과 사람들의 시선이 머리 위의 천장을 향했다.

까득. 까득. 까드드득...

그들이 있는 3층의 높은 천장에 괴상한, 마치 무언가가 유리를 씹어 먹는 듯한 소리가 들리며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파차창!!

그리고 이내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태홍의 뒤편에 있던 천장이 계란 껍질이 박살나듯 무너져 내렸다.

쿵-!

“꺄악!!”

“젠장...”

그 박살난 파편들과 함께 태홍의 등 뒤편으로 뛰어내린 것은 보기에도 육중 해 보이는, 치켜든 꼬리의 높이가 2미터 정도 되 보이는, 여태까지 본 것과는 급이 다른 크기의 전갈형태의 몬스터였다.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고 태홍은 욕지기를 뱉었다.

어지간한 몬스터는 자신 있다고 외친 바로 그 순간 어지간하지 않은 몬스터가 나타난 것 이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몬스터와 반대방향으로 물러섰고 태홍은 그들을 보호하듯 몬스터의 앞을 막아섰다.

“썩을.”

태홍은 무기처럼 휘두르던 정지 신호판을 창처럼 슥슥 휘둘러보며 되잡았다.

얼굴엔 긴장한 미소가 어렸다.

어떻게든 해 볼 생각이었다.

“형! 하지마!”

태영이 안간힘을 짜낸 듯한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하지..마.

태영이 이런 목소리로 태홍을 부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태영이 유치원을 다니던 무렵. 태홍이 초등생쯤이었던 시절. 둘은 함께 길을 가다가 태영이 지나가던 오토바이에게 치인 일이 있었다.

먹고 있던 아이스크림은 허공에 휘날렸고 작은 태영의 몸은 공처럼 굴렀다.

태영을 살피던 태홍.

부드등!

“재수 옮 붙었네!”

그런데 태영을 치인 오토바이의 운전수가 욕지기와 함께 바닥에 침을 탁 뱉더니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뺑소니를 칠 심산이었다.

상황을 파악한 태홍은 뺑소니를 치려는 오토바이 주인에게 덤벼들었다.

형.. 하지마.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남자는 너무 무서워 보였다. 덩치가 산만하고 험악하기 그지없는 인상이었다. 이길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태홍은 덤벼들었다.

뺑소니범은 태홍을 떨쳐버리고 도망가려 했으나 태홍은 달리는 오토바이에 끝까지 매달렸고. 결국 그걸 발견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범인은 멀리 가지 못 하고 채포되었다.

어른들은 태홍더러 대단한 일을 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그때부터 태영은 태홍을 볼 때 마다 무언가가 불안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덩치보다도 훨씬 큰 몬스터를 막아 선 태홍이 있다.

“그만둬!”

태홍에게 가려는 태영을 주변 사람들이 뜯어말린다.

태홍과 몬스터의 일전이 시작된다.

콰직!

몬스터가 휘두른 한쪽 집게발을 태홍이 휘두른 정지 신호판 밑둥에 달린 묵직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뭉게 버린다.

“키리리릭?!”

몬스터가 비명을 지른다.

집게발이 이상한 각도로 꺾여있다.

촤촥! 촤악!

“컥!”

하지만 몇 번의 합을 나누지도 못 하고 태홍이 바닥에 쓰러진다.

태홍의 피가 묻은 멀쩡한 편의 집게발이 빼죽 빼죽이 톱처럼 솟아난 칼날들을 빛낸다.

역시나, 급수가 다른 것 이다.

태홍의 옆구리에서부터 가슴팍으로 이어지는 커다란 상흔에서 피가 흐른다.

“끄윽...”

태홍이 정신을 잃는다.

그리고 그렇게 쓰러져 있는 태홍의 위로 몬스터가 덮쳐온다. 태홍의 머리통을 향해 몬스터의 이빨이 빛난다.

중환자처럼 힘을 못 쓰던 태영이 어디서 힘이 솟았는지 자신을 말리던 사람들을 무서운 기세로 뿌리치고 태홍이 있는 쪽으로 발을 뻗는다.

‘그걸’ 쓸 셈이었다.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울컥하는 무언가를 뱉어 낼 때 마다 마치 소년 만화의 주인공이 쓸 것 만 같은 에너지 파가 뿜어져 나갔고, 그걸 한번 쓸 때 마다 태영의 몸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악화되었다. 지금 같은 상태에서 또 그걸 뱉어내면 위험할 지도 모르지만, 멈출 생각은 없었다. 형도 그럴 거니까.

“으아아!!”

태영의 입에서부터 예의 미사일 같은 마나의 덩어리가 쏘아져 나갔다.

쿠-슝.

엄청난 기세로 쏘아져 나간 마나의 덩어리는 몬스터의 얼굴에 격중했다.

“키리...릭..키리릭....”

몬스터의 얼굴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몬스터 얼굴의 1/3 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린 형국이었다.

몬스터는 눈앞의 태홍을 깨물어 삼키려 했으나 한쪽 이빨이, 아니 입이 없는 상태였다.

태홍을 아무리 깨물려고 해 봐야 허공에 헛질일 뿐 이었다.

“키리리리릭!!!”

전신을 부들부들 떨며 분개하던 몬스터가 돌연 태영에게 달려든다.

“윽!”

태영은 간신히 의식을 유지하고 서 있는 상태였고, 김선생이 몬스터의 의중을 알고 태영을 잡아채려 발을 땠으나 한참이나 늦었다.

취-익!

몬스터의 꼬리가 휘둘러졌고, 태영의 몸이 볼링공에 맞은 핀처럼 방 한구석으로 휘날렸다.

자가자가 작!

“키릭!?”

집게발을 자각 대며 태영에게 덤벼들려던 몬스터의 움직임이 돌연 멈췄다.

“...못 가 이 개새끼야.”

태홍이었다.

어느새 몬스터의 등 뒤에 올라탄 태홍.

꽈드득!

마치 들짐승이 된 듯 태홍이 몬스터의 등판, 갑주와 갑주가 이어진 사이를 이빨로 물어뜯는다.

“키리리릭!!”

몬스터가 비명을 내지르며 등뒤의 태홍을 죽이기 위해 꼬리를 휘두르고 몸을 마구잡이로 뒤집으며 바닥을 뒹군다.

콰드득! 콰득!

하지만 태홍은 마치 코끼리의 등에 올라탄 사자처럼 이빨로 틈을 만들고, 손으로 몬스터의 속살을 파낸다. 마구잡이로 쑤셔 넣어진 팔이 수박덩이 만한 살들을 퍼 올려 흩뿌린다.

타강! 탕.

바닥엔 태홍이 던져버린 몬스터의 등껍질들이 쌓여간다.

“키예에에엑!!”

몬스터가 절규하며 벽에 스스로 몸통을 가져다 박는 등 저항을 이어가지만 소용없다.

“뒤졌어.”

몬스터의 등판에서 괴물의 초록피를 전신에 둘러쓴 태홍이 이를 갈며 튀어나온다.

츠르르릉-.

자신이 무기로 쓰던 정지 표지판의 표지 부분을 바닥에 두고 다른 면을 꾸욱 밟은 채 갈아 날카롭게 만든다.

그대로 비실대는 몬스터의 목 관절 부분에 마치 삽질을 하듯 정지 표지를 대고 밟아서 박아 넣는다.

“키르르륵...”

쿵!

몬스터의 모가지가 바닥에 떨어진다.

“후우...후... 까불고 있어, 별것도 아닌 게....”

탱그렁.

힘이 빠진 태홍의 손에서 정지 표지판이 떨어져 바닥을 구른다.

태홍은 곧 죽을듯한 걸음걸이로, 자신의 피와 몬스터의 피로 진창이 된 몸으로 걸음마다 피 웅덩이를 남기며.

쓰러진 태영과, 그런 태영을 둘러싼 사람들 사이에게로 다가간다.

“씨발...”

사람들 사이를 해치고 들어간다.

주변에 몰려들었던 이들이 태홍을 보고 길을 터 준다.

입맛이 썼다.

동생 태영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김선생이 응급 처치랍시고 압박해 묶어 둘러둔 천 사이로 계속해서 피가 배겨 나오고 있었다.

전갈 몬스터의 꼬리 부분에 찔린 것 같았다.

손으로 압박 해 봐도 손에 더 많은 피가 묻어나올 뿐 이었다.

“괜찮아...”

얼굴에 핏기가 가신 태영이 태홍의 손등에 자신의 손을 힘없이 겹쳤다.

“가만히 좀 있어봐! 이게 왜 피가 왜이래 이거. 있어봐! 좀.”

태홍이 허둥거렸다.

상처도 크긴 했지만, 이렇게 까지 멈추지 않는 피는 아마도 몬스터에게 있었을 독의 영향 인 것 같았다.

“형 있잖아...”

입을 떼려던 태영이 피를 한줌 뱉어냈다.

“말 하지 말고 있어! 유언 할 타이밍 아니니까 지랄하지 말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태홍의 눈동자가 떨렸다.

그때 태홍의 저쪽 뒤편에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찾았습니다! 3층에서 생존자 무리 발견!”

아직 기술이 발전하기 이전, 초창기의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두터운 방어복을 입은 헌특부의 헌터들이었다.

“형, 내 말...”

“봐, 봐! 저기 사람들도 왔잖아! 너 괜찮다니까? 금방 괜찮아 지니까 좀!”

태홍이 다급하게 태영의 말을 끊었다.

하지만 괜찮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위로일 뿐 이었다. 두려움에 숨을 헐떡대고 있는 것은 부상을 당한 태영이 아닌 태홍 이었다.

“...부모님 좀 잘 챙겨 드려.”

태영이 속삭이듯 가냘픈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여기!! 여기 다친 사람 있어요!!”

태홍이 구하러 온 이들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아이들의 요청으로 달려오고 있던 구급대원들이 태영을 들것에 실었다.

“부모님 좀 잘 챙겨드려... 짜증나도... 부모는 부모잖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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